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태어나서 제가 가장 오랜 기간동안 배웠던 학문인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모든 지식은 결국 'feasiblility(실현가능성)와 affordability(획득가능성)'의 반경 이내에 국한되어 있는, 즉 우리의 삶은 그 누구에게든 이 두 가지의 범위내에서 고민되어야한다라 말하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수 천억원대의 상속재산을 내 아들에게 가급적 세금을 덜 내며 물려주는 것에 관한 고민은 (아쉽게도) 제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다행스럽게도) 그 극단적 반대의 경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쪽 모두에 대해서는 신경 꺼도된다! 이러했던 저의 생각이 헌데 말이죠... 이 세상.이란 곳에서 '마흔 여섯'이라는 나이가 되도록 살아와보니 썰물이 조금씩 밀려들어오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 새 갯벌 모두를 덮어버리고 있는 바닷물처럼 그렇게 제 생각이... 요즈음 들어 바뀌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더군요. '역사'에의 관심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뒤늦은 나이에 제게 생겨났었을 수도, '진화론'이란 것에 대한 흥미도, 소설이라는 분야의 책을 읽게 된 것도 모두 다... 그렇게 인생이라는 게 반드시 나에게 주어진 feasibility와 내가 가지고 있는 affordability의 범위 이내에서만의 고민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생겨난 새로운 자각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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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주제의 책을 한 권 더 골라봤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소문」, 그리고 「타임 슬립」이라는 작품을 통해 (아직은 이런 걸 만들 짬밥은 아닌듯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올려져있는 바로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 「네 번째 빙하기」. (책의 앞이나 뒤에 적혀 있는 간단한 소개글들을 보고 책을 펼치곤 하는데, 이 책은 아마... 그런 도움이 없었더라면 딱! 진화론이나 생물학 관련 소설이라 여겼을꺼에요. ^^;;)  

 

이 책은 아버지 없이 자란 한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제가 아이였을 때 저에게는 아버지가 계셨었고, 지금 나의 아이도 저라는 아버지를 가지고 있으니 왜 내가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며 살아온, 내 아이가 경험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야 하나? 예전에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었을겁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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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하고도 11개월을 살아온 와타루라는 소년이 되돌아본 그의 이제까지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성장 소설'이라 불리우기에 매우 전형적인 그런 에피소드들의 연속이지요. 위화의 「인생」과는 또 다른 묘사로 그려지고 있는 남자 아이의 몽정! 스토리, 그리고 첫 키스!!!... 뭐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 또한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만 무엇!보다... 이 소설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는 사람의 심정을 아시는지. 간단히 말해, 그것은 마치 몸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하나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다."라는 주인공 와타루의 고백, 그리고 그 뻥 뚫린 구멍을 주인공이 어떻게 결국 메꾸어 나가게되는가에 관한 기나긴 이야기라 소개하는 게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싶네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는 사람의 심정을 아시는지. 간단히 말해, 그것은 마치 몸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하나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다. …… 아버지. 내 몸에 늘 뚫려 있는 구멍 하나. 이제 곧 열네 살이 되는 지금도 그 구멍은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이 동굴보다 크다. …… 고등학생이 되서부터는 중학교 때 밝혀 낸 자신의 출생비밀을 웃어 넘기려고 했다. 어린애 같은 공상이라고. 그렇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추론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진짜로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라고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생각해 온 일이다. 이제 와서 다른 결론을 내리기도 곤란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사실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 아마도 인간은 누구나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내용물을 선택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고 가다가 버릴 수도 없는 짐. 때로 그것이 복주머니가 되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무거운 짐일 뿐이다. …… 엄마가 죽은 뒤, 자신의 친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로 간 와타루 …… "우 미야 온 스위 - 나는 그의 아들입니다." 일본어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이었다. …… 자신의 아버지라 믿었었던 아이스 맨이 안치되어 있는 박물관에 간 와타루 …… 나는 오랫동안 당신을 아버지라 생각하며 살았어요. 아버지가 필요했건든요, 꼭. 다른 아이들처럼 아버지를 가지고 싶었어요.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얼굴이라도 알고 싶었어요. 자신이 누군가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어요. 늘 찬바람이 통과하는, 몸에 뻥 뚫린 구멍에 끼워 넣은 퍼즐 조각이 필요했어요. 그렇지만 이젠 괜찮아요. 구멍은 메워졌거든요. 지금까지 정말 고마왔어요 

 

'도대체 이게 뭐야?'라 생각하시기를 바라며 요약해 본 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해 알려드리기 보다는 이렇게 함으로써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 소설을 한번 좀 읽어봐야겠어!라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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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른 두살때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에 대해 여.전.히. 그 분이 내 곁에 계셔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제 마음 한 가운데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 아이에게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아버지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어린 의문 - 저의 생물학적 수명에 관한 의문뿐 아니라, 제 아이가 갖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미지가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을 수는 없지않겠나하는 의미도 포함된 - 또한 어느 새 초등학교 6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는 종원군의 성장, 그리고 그와 비례해 육체의 산화가 쉬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저를 느끼게 될 때, 그때마다마다... 그 가장자리를 메꾸어 가고 있기도 하지요.  

 

옛... 어느 드라마 속 주인공의 독백을 빌자면, 저 또한 '아버지라는 역할을 난생 처음.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기에'라는 말로써 그 역할에 대한 미숙했었음을 변명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헌데... 이 소설 「네 번째 빙하기」를 통해 알게 된 '아버지의 역할', 아버지가 없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통해 본 '아버지'라는 존재의 필요... 는 현재 '아버지'가 되어있는 제가 그러한 변명들을 감히 내뱉을 수 없는 것임을, '아버지'라는 역할은 그처럼 무겁고 무거운... 그런 것이었음을 새삼 일깨워 주더군요. 그것도 다름아닌... 분명 제 인생의 feasibility와 affordability 범위 밖에 있는 것이라 믿어왔었던 상황을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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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아빠, 숙제 다 했으니까 우리 개콘 같이 봐요!'라 저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네요.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짧았기에 '좋은 시절'일 수 있는 것이다."란 작가의 말이 새삼... 두렵게 느껴집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도키오」에서 아버지 미야모토는 식물인간의 아들 도키오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행복했는지 아니면 우리를 원망하는지.' 이 소설 「네 번째 빙하기」에서 아들 와타루가 자신의 유년 시절 내내 아버지라 믿었었던 아이스 맨에게 말하지요. "오랜 세월 동안, 고마웠어요." ------ 지나고보니... 그저 '한 순간이었다'라 말해도 괜찮을만큼 빠르게 지나가 버린 시간이었던 듯도 싶네요. 어리기만 했던 종원군이 어느덧 이렇게 커버린 그 시간말입니다. 그러했기에...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짧았기에 '좋은 시절'일 수 있는 것이다."란 작가의 말이 이리 두렵게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인간은 누구나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내용물을 선택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고 가다가 버릴 수도 없는 짐. 때로 그것이 복주머니가 되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무거운 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짊어지고 있는 이 짐은... 분명.히 나에게 복주머니가 되는 행운을 안겨줄 짐일 것이라, 그렇게 믿으며,,, 이 '좋은 시절'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만드는 것이 어쩌면... 결국 '아버지'란 역할을 맡은 이들이 이행해내고 완수해내어야 할 그런 임무.같은 게 아닐까 싶네요. '가족'이란 주제에 관한 책을 읽어보겠다했었을 때 제가 마음 속에 어렴풋하게 그려보았던었던... 바로 그! 이야기를 이 책 「네 번째 빙하기」를 통해 만날 수 있어 너무도 즐거웠던 독서였었습니다. 이 작가... 새로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점점 더... 빠져드네요. 

 

  

 

(읽어본) 오기와라 히로시의 다른 작품들 :   소문」 · 타임 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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