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골 1 The Goal -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30주년 기념 개정판 번역본
엘리 골드렛 지음, 강승덕.김일운.김효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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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소설입니다.



#2.

내용은 경영 이론서스럽지만 어쨌든 소설이지요. 소설의 형태를 선택한 것에 에 대해 저자는 세 가지의 이유를 들고 있는데, 그 첫 이유가 본인이 (창안하여) 제시하는 원리들을 독자들이 더 쉽게 받아들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가진 의도가 해롭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기에, 우리는 그 이야기꾼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을 부여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꾼은 그가 행하는 재량과 관련해서 면책된다."


- 조나단 B. 와이트,「애덤 스미스 구하기」중 p6, 북스토리, 2017.



#3.

이 책의 원서는 1984년 미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보통 기업들은 잘나가는 회사의 성공 사례나 '베스트 프랙티스'를 적용해 자신의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식스시그마의 대유행이 그랬다. 모토로라에서 시작된 이 품질경영 기법은 잭 웰치가 제너럴일렉트릭에 도입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다. … 하지만 식스시그마에서 이야기하는 품질 문화를 달성한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외에도 GWP, TQM, TPS, Workout, ToC, TRIZ, Design Thinking 등 유행처럼 뜨거웠다가 확 식어버린 경영 전략들이 한둘이 아니다. 실적을 위해 일회성으로 도입했따가 금세 없애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혁신은 이뤄질 수 없다."


- "공동목표 설정하고 일 쪼개서 하기" 중, DBR Vol.273 (2019년 5월 issue 2)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ToC (제약이론 : Theory of Constraints) 입니다. ('유니코 사'의 유니웨어 사업부라는 가상의) 특정 사업부에서 고안되고 대성공을 거둔 ToC를 섣불리 '이론'이라 칭할 수 있느냐의 논쟁은 논외로 하더라도, 출간 후 31년이 지난 지금에는 (일부의 견해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유행처럼 뜨거웠다가 확 식어버린 경영 전략들'의 일례로 소개되는 처지에까지 이르러 있기도 하군요.1  



#4.

1984년 당시의 경영자/경영학자들보다 제가 더 똑똑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저 --- 1987년 즈음으로 기억되는, 제 방에 있었던 30MB 용량의 하드디스크를 지닌 IBM 컴퓨터를 보고, 당시 전자공학도였으며 현재엔 모 대학 전자공학과 교수가 되어 있는 제 친구가 했던 말, '너, 이 하드 뭘로 다 채울꺼냐?'라 했던 옛 추억마냥, 세월의 흐름이란 게 그냥 시간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그만큼 인류의 지식과 기술도 진보하는 것이기에, 


1984년에 미국에서 첫 출간된 이 책은 한국과 일본 기업의 무서운 성장세를 두려워한 저자의 의지대로 무려 17년 동안이나 번역을 허락하지 않았다가 200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국내에 소개될 수 있었다. (p561)


아니 대한민국과 일본에 이 책을 원서로 읽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책의 내용을 회사에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위치의 인물 정도라면 누본인이 읽건 누굴 시켜 요약 보고서를 읽어보건 얼마든지 접할 수 있었을 (어쨌든!) '소설''이, 2001년에 번역되어 나왔을 때 당시의 반응이 좀 궁금하긴 합니다. 우리나라 경영계가 막 충격에 빠지고 환호하고 그랬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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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이란 바로 기업의 목표 면에서 무언가를 완수하는 것 … 생산성이란 한 회사가 그 회사의 목표치에 점점 다가가는 일련의 행위 … 회사가 목표치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행위를 생산적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의 행위는 비생산적 (P83)


아, 뭐... 1984년에 출간된 책이라 하여, 모든 내용이 고리타분한 건 절대 아닙니다. 이 책 역시, --- 당신이 기업의 오너이건 경영자이건 그 무엇이건, 당신이 속해 있는 '조직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행위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한 마디고 '기본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고 있지요. 책에는 제조업의 예가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모든 '사()기업'의 목표는 동일하겠죠. 



제조 공장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고 있는 그 밖의 모든 일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p123)


(사상/이념에 따라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겠으나, 현 시대의 지배적 사상인 자본주의를 인정한다면) 위 두 문장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 이해한다라는 것과 현실에서 이해한 바대로 행동한다/할 수 있다라는 것에는 적잖은 괴리가 발생되죠. 


"인간의 활동에서 목적의 추구는 무한하지만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


- 홍기빈,「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중 p97, 책세상, 2001.


이 책의 저자 역시, "'목적 합리성'이 독립되어 따로 노는 것을 피하고 철저하게 '가치 합리성'의 차원에 복무하도록 묶어두"2어야 한다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경제관에 부합되는 내용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 "전 직원이 쉬지 않고 일하는 공장의 효율성은 최악"(p167)이라는, 처음 접했을 땐 뭔가 아리송한 구절이 그것이죠. 조직의 목적을 잊고, 부분의 효율성에만 매달릴 때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위 인용문은 다시금, 


"획득의 기술이 가정생활에 종속되는 하위 기술이라면 물자를 조달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가족 성원들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 획득의 기술도 가정의 행복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무시한 채 '돈벌이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굴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두 기술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더 많은 부의 획득을 목적으로 가정생활을 관리한다면, 가정의 행복은 사라지고 가정인지 공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혹사당하게 될 것이다."


- 홍기빈, 위의 책 p95.


옛 현인들(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너무 오래 전 인물들이지만 암튼)의 선구적 혜안 - 마치 단군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 놓은 역사서를 보는 것과 같은 - 에 그저 놀라움 어린 존경을 갖게 만들어 주네요. (이 책의 마지막에, 주인공 또한 플라톤의「대화편」을 읽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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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위해 소설의 형식을 빌어왔다는 저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책은 술술 읽힙니다. 거진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단 하루(의 10시간)만에 읽어냈었을만큼, 막 머리 싸매고 고민해야하는 부분도 거의 없습니다. 그 내용들 중에서,  


우리 대원들은 속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반면 속도를 줄이거나 정지하는 데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되는 논리다. 따라서 대원 중 누군가가 속도를 한없이 늦춘다면, 속도는 무한대로 늘어질 것이다. 문제는 변동의 평균치가 아니라, 바로 변동의 '축적'이었다. 현재 우리 대원들은 종속적인 제약 조건 때문에 느린 속도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누적 시간만큼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p195)


단연코 위 문장이 제게 가장 와닿았었습니다. --- 현재의 문제란 것에, 방금 전에 발생된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과거 잘못들의 모든 잔재/잔상/잔향이 어우러져 있다라는 점, 이 별 것 아니게 보이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2020년 3월의 어느 토요일에 투자했던 10시간의 노동은 충분히 보상받았다가 자평하게 되네요. 



#6.

역시나! --- 1984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 속에는, 2020년의 대한민국 독자에게 불편한 감정을 안겨주는 시대적 문제점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뭔 음주 운전을 그리 하는지, 심지어 낮술 마시고도... --;; (1984년의 대한민국에서도 그랬었???)



※ 소설의 형식을 빌고 있는 경제서 : 금의 홍수」,「애덤 스미스 구하기 




  1. 아, 물론 역자는 ToC가 우리나라의 몇몇 기업들에 도입되어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고 실례를 소개하고 있기는 합니다. (pp559~560)
  2. "마취를 행하는 의사의 목적은 분명히 수술이 이뤄지는 일정 시간 동안 환자가 의식을 잃도록 하는 것이므로 그 목적에 합당안 양이 투여되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마취의사가 '마취의 한계에 도전한다'면서) 너무 많은 양이 들어가면 환자가 엉뚱하게 수술대 위에서 황홀경 또는 사경을 헤매는 전혀 다른 목적이 달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홍기빈, 위의 책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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