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권력은 다른 집단과 개인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여 그들이 하려던 것이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 모이제스 나임,「권력의 종말」중 p50, 책읽는수요일, 2015.


우리가 살아가고/내고 있는 인간 사회란 것이 어쩔 수 없이 여러 (권력) 관계의 얽힘으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사실이, '권력'에 관한 이야기 - 권력의 시작과 종말 - 를 풀어내고 있는 '완장'이라는 제목의, 꽤나 오랫만에 접해본 문학 작품이었던 이 책을 그저 '한 권의 소설'로만 한정지어 이해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인간적 본질은 각각의 개인들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

- 류동민,「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중 p33, 위즈덤하우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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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 류동민, 위의 책 p109.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사상적 업적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게되는) 칼 마르크스가 쓴「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 중 한 구절인 위 문장이 이 소설의 핵심 줄거리를 단적으로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 이곡리 마을의 한량이었던 임종술이란 인물이, 널금 저수지의 감시원이 되고, '감시원'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권력의 행사'라는 달콤한 '그 무엇'이 임종술의 생각과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기본적인 줄거리로 하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도대체 '그 무엇'이 어떠한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위대함이라 불리는 그 무엇에 홀려 기고만장해지고 …"

- 에티엔 드 라 보에시,「자발적 복종」중 p64, 생각정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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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의 소유 】 


"권력은 네 개의 서로 다른 통로, 즉 어떤 일을 강제로 하게 하는 완력, 윤리적 의무감을 부여하는 규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선전,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보상을 통해서 작동한다. 이 가운데 완력과 보상은 사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려고 유인책을 바꾸고 상황을 새롭게 만든다. 반면에 선전과 규범은 유인책을 바꾸는 일 없이, 상황에 대한 평가를 바꾼다. 권력의 장벽은 완력, 규범, 선전, 보상이 효과를 발휘하는 한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 모이제스 나임, 위의 책 p150.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권력의 구조'는 ①널금 저수지의 주인(최사장)과 주인의 대리인(최익삼)으로부터 주인공 임종술에게 작동하는 권력과, 임종술이 마을 사람들에게 행하는 권력의 두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우리는 (당연히) ①번의 권력 구조에 보다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 ②번의 권력 구조가 어찌 보면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보여진다 하여도, 그 권력 구조의 근원은 결국 ①번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최사장/최익삼이 임종술에게 부여한 '감시원'의 권력에, 임종술이 빠져버리게 된 것은 (다른 요인들도 어느 정도는 작동하였으나) 단연코 '선전'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완장 때문에 녹아나는 건 늘 제 쪽이었다. 제각각 색깔 다르고 글씨도 다른 그 숱한 완장들에 그간 얼마나 많은 한을 품어왔던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완장들을 얼마나 또 많이 선망해 왔던가.(p20)


종술 자신의 과거에서 '완장'이라는 하나의 물건으로부터 받아왔던 수많은 피해들을, 본인이 그 '완장'의 주인이 됨으로써 보상받으려 했던 것이지요.


종술은 저녁 햇살을 온몸에 담뿍 받아가며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당당한 자세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 위에 그는 군림하기 시작했다. 마치 시장 경비원이 수많은 목판 장수와 포장마차 집과 노점상들 위해 군림하듯이, 또한 방범대원이 도로교통법과 통금 위반자들 위에 군림하듯이 이번에는 그가 판금 저수지에 딸린 모든 것들에게 무조건의 복종을 요구할 차례였다.(p35) …… 마치 그것 하나만 차고 있으면 널금 저수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사생활까지고 무소불통으로 간섭할 권한이 생긴다는 듯이 당당한 태도였다.(p249)

 

종술은 자신의 왼팔에 차여져 있는 '완장'을, '자신이 갖지 못한 모든 미덕을 완전하게 갖춘 존재'로서 기능하는 일종의 '물신(fetish)1이라 믿고 있습니다. '완장'이 있기에 자신은 권력을 갖고 있다고, 더 나아가 그 '완장'의 소유자가 본인이기에 권력 또한 자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2 이 지점에서 독자는, 


"권력을 갖는 자는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권력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비로소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 그러나 권력의 인정이 일상화하면,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력이 스스로의 내적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69.


주인공 임종술이 '완장'과 본인의 존재를 동일시하는3 모습, 더 나아가 임종술이 완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장이 임종술을 조종하고 있는 모습까지도 목격하게 됩니다.4 


"화폐가 화폐인 것은 원래부터 화폐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너도 나도 상품을 그것과 바꾸려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신이 되어 버린 돈은 이제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손에 얻기 위한 수단이었던 돈이 그 자체로써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pp67-68) …… 화폐와 교환되었으므로, 즉 팔렸으므로 그것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믿게 됩니다. 가치를 갖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 아니라 팔렸기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pp131-132)


- 류동민, 위의 책



【 권력의 근원 】 


"어떤 사람이 왕인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신하로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로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신하라고 생각한다."5


- 류동민, 위의 책 p67.


내 주머니 속에 있는 자동차키 때문에, 내가 차에 다가가면 차문이 자동적으로 열립니다. 물론 그 차와 차에 딸려있는 자동차키는 나의 소유이고, 실제 그 차문을 열게 하는 것은 자동차키입니다만, 나의 아이는 '우리 아빠가 차에 다가갔기에 차가 열렸으니, 우리 아빠가 차 문을 연 것이다'라 생각하게 됩니다. --- 자동차의 소유주인 아빠는 자동차의 문을 열고 닫을 (일종의) 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권력의 원천은 아빠가 돈을 지불하고 그 자동차를 구입하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동차의 구입과 함께 '딸려온' 자동차키는 그저 차의 문을 열고 시동을 켜는 것에 국한된 기능만을 부여받았을 뿐입니다. 물건인 자동차키는 단순히 자신이 부여받은 기능에 충실할 뿐이지만, 


"우리 저수지를 더럽히는 놈은 누구든지 가만 안 놔둘라요!" 저도 모르게 종술은 우리 저수지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 '앞으로는 내 저수지 꾸정거리는 놈은 누구든지 가만 안 둘 작정이요!"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내 저수지라는 말을 사용해버렸다.(p65)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 규정되는 인간인 임종술은, 타인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본인 스스로에게서 생겨난 권한으로 착각하게 되고 맙니다. 작가는 이를 설명함에 있어 임종술의 과거사 하나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못해 매번 나머지 공부를 해야했던 임종술은 구구단을 끝내 외우지 못해 반장에게 매를 맞곤 했었죠. 


말 안 듣는 놈은 때려도 좋다는 허락과 함께 녀석은 담임으로부터 선생의 권한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처지였다. (p61)


선생의 권력이란 그가 '선생임'이라는 그 자격으로부터 발생되는 것이기에, 그 '선생의 권력'은 선생이 아닌 다른 자에게는 이양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임종술의 과거는 그같은 권력의 이양이 일종의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게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 작가가 이 소설을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태생부터 잘못된 권력을 야유할 속셈"(pp5~6)으로 집필하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이건 '대의제'에 내포되어 있는 태생적 한계라 생각됩니다. 각 개인의 의사를 '투표'라는 제도를 통해 특정 집단/특정인에게 이양하는 과정에서 '취사선택'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요.)



【 권력의 하수인  


완장은 원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만석꾼의 권력을 쥔 진짜 주인은 언제나 완장 뒤편 안전한 곳에 숨어 있었다. … 중간에 마름을 세우거나 머슴을 부리는 형식이었다. 완장은 대개 머슴 푼수이거나 기껏 높아봤자 마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완장은 제가 무슨 하늘같은 벼슬이나 딴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넋이야 휘젓고다니기 버릇했다. 마냥 휘젓고다니는 데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완장은 대개 뒷전에 숨은 만석꾼의 권세가 원래부터 제 것이었던 양, 바로 만석꾼 본인인 양 얼토당토 않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소작인을 다루는 마름의 태도가 정작 지주보다도 오히려 더 혹독하고, 똑같은 머슴처지였으면서도 완장만 팔에 둘렀다 하면 다른 머슴들을 사정없이 구박하게 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바로 그 때문이었다.(pp105~106)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문단이라 생각합니다. 작가가 꼬집고자 했던 80년대의 상황에서, 진짜 권력을 쥔 자들은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으나, 그들에게서 일정 부분의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당시의 안기부, 검찰, 경찰 등)은 기꺼이 권력자들을 위해 본인들의 손에 피묻히기를 주저하지 않았죠.6 칼 마르크스가 설파했던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라는 주장, 어쩌면 인류의 역사에서 내내 이러져 왔던 인간 본성과도 같은 악습이, 아주 생생하게 1980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또한 보여졌던 겁니다. 


"궁사, 경호원, 창기병들도 이따금 군주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 그들이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받은 모멸을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인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불행을 초래한 군주를 향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처럼 불행을 참고 견디며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약한 존재들에게 악습을 그대로 반복한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pp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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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술의 삶은, 적어도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부분에서만큼은 불행한 결말을 맞고 있습니다. '완장'으로 인해 자신에게 허여되었던 권력이 그 생명을 다하자, 술집 작부인 부월과 함께 마을을 떠난 후의 삶이 어떠한 모습으로 진행될지에 대해 작가는 전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만,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볼일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없는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줏어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진수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 우리 둘이서 힘만 합친다면 자기는 앞으로 진짜배기 완장도 찰 수가 있단 말여!(p314)


임종술과 부월의 소설 밖 삶이 '진짜배기 완장'을 차기 위해 노력으로 점철될 것이라는 짐작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됩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저의 어렴풋한 이해로는 어쩌면! --- 정말로 작가가 비판하고자 했던 부분이, 1980년대의 상황 그 자체가 아닌, 그러한 상황이 자아낼 이후의 역사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자식 세대한테까지 못난 조상처럼 살게 할 수는 없다던, 그래서 도둑질을 해서라도 큰자식을 가르쳐서 기필고 그 손에 붓대를 쥐어주고 싶었노라던 김준환의 그 울부짖음을 어금니 사이에 넣고 껌처럼 질겅질겅 씹다가 종술은 느닷없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 "완장이구나, 완장!" 그렇다. 그것은 완장이었다. 준환이놈은 그때 다름아닌 그 완장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 팔에다 차는 것만이 완장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도둑질도 서슴지 않으면서까지 김준환이 필사적으로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것 또한 완장의 하나였던 것이다. "권력 한 가지가 다는 아니여" 이 세상에는 빛깔 다르고 소리와 냄새도 아른 수많은 완장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 땅도 완장이었다. …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것, 남들을 큰소리로 부리고 남들 앞에서 마냥 뻐겨댈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완장이었다.(pp147~148)


본인의 경험, 거기에 더해지는 그 경험과 동일한 타인의 현실을 목격할 때 우리는 그 상황을 별 저항 없이 일반화시켜버리게 됩니다. 본인 임종술의 과거에서 완장들로부터 받았던 고통들, 본인이 그 완장을 차고 휘두르는 권력, 그리고 그 권력에 고통받는 친구 준환의 모습을 보며 --- 현재 자신의 쥐고 있는 그 한 줌의 권력에의 집착이 더더욱 강해지며, 이후의 삶에서도 더 커다란 권력을 탐하는 것이 (일견) 정당화되어버리죠. 


"현 세대에서의 소득 격차가 다음 세대에서의 기회의 격차가 된다면, 경제적 불평등은 영속적인 계급 격차로 고착된다.(p27) … 철학자 클레어 챔버스가 말했듯이 '각각에서의 결과는 그 다음에서의 기회'다. … 좋은 고등학교에 가면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일자리를 잡기 위한 경쟁에 더 잘 준비할 수 있다.(p124) … 계급이 인위적인 형태의 상속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인정받는 능력을 통해 재생산될 때, 승리자들은 그 결과로 발생하는 모든 불평등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확신하기 쉽니다. 패배자들에게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공명정대하게 승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123)


- 리처드 리브스,「20 VS 80의 사회」중, 민음사, 2019.


'완장'의 역사가 일제 치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의 진위와 관계 없이, 1980년대의 권력 구조가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일종의 계급 격차라는 유산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그가 똑똑해서 서울 법대 교수가 된 것인지, 혹은 그가 그의 자녀에게 안겨 준 살뜰한 '배려들'을 그 역시 그의 부모로부터 받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라는 의구심까지를 자아낸, (그럼에도 불구하여 여전히!) 본인을 사회주의자라 자칭하는 사이비 진보 인사의 예에서 여실히 보여졌었듯, 


(이 사회에서 '만석꾼의 권력을 쥔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완장'을 차고 이 대한민국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들의 속내란 것이, 16세기 초 프랑스의 한 청춘이 지적했던 '궁사, 경호원, 창기병'들의 수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목수정이 칼날처럼 지적했던 바, "기회주의가 가장 현명한 삶의 해법임을, 힘 있는 자 밑에 엎드려 마름 노릇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생존의 전략임"7은, 비단 1980년대의 군부 정권 시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2020년에도 여하히 부인할 수는 없네요. 


오로지 '소설'로만 보자면, 읽어내는 재미가 있었다라는 점을 빼고는 크게 좋은 평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종(始終)이 애초의 예상과 큰 오차없이 그려지는 점도 그렇고, 인물의 내면에 대한 묘사도 그다지 세밀하지는 않았다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덜 양심적이고 덜 진지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는 잘못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가 속한 이 세상에서 틀렸다고 느끼면서도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 바빠서, 누군가는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다만 지켜보고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사회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도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그냥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기를 바라게 되고 만다.(pp45~46) ……  문제가 있을 때는 시비를 걸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 방법을 모른다. 아예 싸울 줄 모를뿐더러 비록 이번에는 싸워서 승리하지는 못해도 승리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한다.(p164)"


- 박주영,「고요한 밤의 눈」중, 다산책방, 2016.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참으로 진부한 표현이기는 합니다만,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희망찬'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예의 이 작품을 '한 권의 소설'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이 지구를 들쥐와 바퀴벌레들이 지배하는 날이8 오기 전 언젠가 반드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소설이다. 지금은 소설이 아닌 그 무엇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설이다."


- 박주영, 위의 책 p322.


작가 윤흥길 역시 가졌었을, 이러한 바람(願)이 이루어질 날이 올거라, 우리 모두 믿고 있으니까요. 




※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들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자발적 복종」,「권력의 종말」,「20 VS 80의 사회 




  1. "사람은 나면서부터 유한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모든 미덕을 완전하게 갖춘 존재를 갈망하며 상상했습니다.…… 신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믿음만으로는 충분한 위안이 되지 못합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돌이나 나무를 쪼아 신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물건으로 만들어진 신, 즉 물신=페티시fetish입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p65-66
  2. "널금 저수지와 거기에 딸린 모든 부속물 하나하나를 그는 마치 자기 소유인 양, 제 살점이나 다름없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p208)
  3. "그는 자신의 더렵혀진 자존심을 닦았다. 그는 자신의 망그러진 권위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완장을 원상으로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도 끝이라는 비장한 결심이었다."(p57)
  4. "익삼 씨는 운이 좋았다. 완장 덕분에 종술은 가까스로 참을 수가 있었다. 제발 고정하시라고, 자기 체면을 봐서 요번 한 번만 용서해주라고 매달리는 완장의 속삭임을 종술은 빤히 듣고 있었다."(p55)
  5. 「자본론」 1권 중.
  6. 주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쩌면 그러한 상황을 즐기기까지 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7.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역자 서문>중 pp 8~9.
  8. "자연은 파괴되지 않는다. 6,500만년 전, 소행성이 공룡을 쓸어버렸지만, 그럼으로써 포유류가 번성할 길이 열렸다. 오늘날 인류는 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조차 멸종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매우 잘 버티고 있는 생물들도 있다. 가령 들쥐와 바퀴벌레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 끈질긴 생명체들은 아마도 핵무기로 인한 아마겟돈의 폐허의 바닥을 헤치고 기어 나올 공산이 크다. 자신들의 유전자를 퍼뜨릴 능력과 준비를 갖춘 상태로. 어쩌면 지금부터 6,500만 년 후 지능 높은 쥐들은 인류가 일으킨 대량 살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이켜볼지도 모른다." -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 p497, 김영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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