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경제 공부 - 경제의 흐름과 쟁점이 보인다
로버트 하일브로너.레스터 서로우 지음, 조윤수 옮김 / 부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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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 경제학에는 정치적,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생태에서 확립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 장하준,「장하준의 경제학 강의」p441, 부키, 2014.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겠다라는 젊었던 시절 제 결심의 계기는 온전히 '분석 도구로서의 경제학'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었습니다. '경제(economy)'가 아닌, '경제학(economics)'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라는 건 여전히 '분석의 도구'일 때의 경제학이 가장 활짝 날개를 펼칠 수 있다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죠.


"한기주에게 오른팔은 공을 던지는 도구가 아닌 세상을 인식하는 도구와도 같다."


OSEN, <"급하게 할 필요없다" 한기주,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 중, 2019.02.02.


그러하기에, '경제학에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란 장하준의 규정은 당연히 매우 낯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이름은 참 많이 들어보았으나, 정작 이 분들이 쓴 paper는 읽어본 기억이 없는) 경제학계의 big shot이라 불리우는 두 경제학자가 쓴 이 책에서 따온  다음의 한 문장은, 저의 그러한 낯설음을 예의 지지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시장 체제는 비록 효율적이고 역동적이기는 하지만 가치 판단이 배제되어 있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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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 미국이 독립 선언을 한 해인 1776년에 자신의 걸작「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를 발표했는데, … 독립 선언문은 '생명, 자유, 행복 추구'를 목표로 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새로운 외침이요,「국부론」은 이런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것. (p39) 


경제학의 역할이란 것이 '사회는 이러이러하게 작동하여야 한다'라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 아닌, "사회가 어떻게 협력을 이루며 움직여 나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p38)이라는 두 저자의 규정은, 여전히 경제학이 정치적 논쟁이라는 장하준의 주장을 반박하고 싶어하는 저에게 유용한 논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이론으로서의 '경제학(economics)'을 공부하는 입장이 아닌, 매일 매일 맞닥뜨리게 되는 일상의 '경제(economy)'를 알아야 하는 생활인이 되어 있는 지금에도 '분석의 도구'로서의 경제학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옳은/도움이 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게 되는 요즈음,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거의 하나에 가까운 세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적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p298) …… 다국적 기업의 등장과 경제의 세계화로 인해 빚어진 새로운 문제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국가 경제간의 갈등이 아니다. 그 저변에 깔린 문제는 국가의 주권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데 따른 갈등이다. 다국적 기업과 경제의 세계화가 야기한 실질적인 고민은 경제 지도가 정치 지도와  딱 들어맞지 않다는 데에 있다. 국가의 주권이 금융이나 생산이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된 지점까지 미쳐야 하는지 아닌지 질문에 제기되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는 세계 시장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지와 같은 단순한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21세기에는 국가 주권 자체가 어떻게 표현될 것인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p309~310)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란 장하준의 규정을 이제 더 이상은 부인할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라는 것이, 이 책으로부터의 가장 큰 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가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체제이고, 이런 갈등의 연속이 바로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 과정이라는 마르크스의 견해 (p55) 

경제학사에서 마르크스가 차지하는 무게감이란 게,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로 인해 너무나 과소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가져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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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 20여 년간을, 그저 소장하고만 있어왔던「Economics Explained」의 개정판이 우리말로 번역되었고, 그 번역본의 개정판인 이 책,「한번은 경제 공부이 저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행운이 생겼습니다. 때마침 어느덧 고딩 2학년이 된 종원군이 새로운 학기부터 경제학을 배우게 되었다 하며, 이 아빠에게 모르는 부분 나오면 설명해주세요~ 라는 요청을 해왔기에, 녹슬대로 녹슬어 버린 저의 경제학 지식을 다시금 구축해야할 시점이기도 했었는데 말이죠. 물론 이 책이, 고등학교 2학년생의 경제과목을 가르치는 데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합니다.1 그러나, 


경제학을 가르치는 단계를 흔히 '로하는 설명 → 그래프를 이용한 설명  수학을 동원한 설명'의 세 단계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수학으로 설명하는/배우는 경제학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자칫 그 안에서 '경제학' 본연의 목적을 잊게되버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지요. 그러하기에, 경제학 강의의 정점은 또 다시 '로하는 설명'으로 끝맺음된다고들 합니다.  


경제학자들에게 투자는 저축의 '실질' 작용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저축의 실질 작용이 투자에 사용될 수 있도록 소비로부터 자원을 해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의 실질 작용은 이 해제된 자원으로 자본재를 창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p140)


'저축'과 '투자'의 관계를 설명해주고 있는 위의 한 문장이야말로, 이 책을 쓴 두 경제학자가 왜 경제학계의 big shot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정점으로서의 '로 하는 설명'의 일례라 생각됩니다. ---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의 핵심은 투자가, 경제 내의 저축 규모와는 독립적으로, 경영자나 기업의 의사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2이란 주장에 대한 비판은 그저 위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끝맺음된다고나 할까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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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제 이론을 주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p7)


생활인으로서 맞닥뜨리게 되는 '경제'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분명, 일정 수준의 '경제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허나, 그 진입장벽이란 게 은근 높기도 하지요. ---「Economics Explained : Everything you need you know about how the economy works and where it's going」라는 이 책 원서의 제목처럼, 이 책은 경제학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알아야 할 '경제'에 대해, 제가 읽어 본 경제학 입문서 중에서 이 책보다 더 낮은 진입장벽을 보여주는 책은 없었다라 생각될만큼 평이한 문장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은 첫째도 둘째도 이익이지. 그러니 모든 개인들과 민족들 사이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만 있을 뿐이야. 자본의 원리는 대결에, 전쟁에, 약자를 짓밟아버리는 데 있어."    


- 장 지글러,「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p176, 시공사, 2019. 


라는 반자본주의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 변화의 창출 (p333) …… 자본주의 체제에는 위협적인 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있다. 제도를 변경하거나 보완함으로써 위협적 변화에 따른 부정적 파장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상당 부분 줄여낼 수 있는 것이다.(p346)


이 책이 설파하고 있는 위와 같은 자본주의의 능력에 아직은 여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또한, 주류 경제학을 공부했던 저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생활인으로서 '경제(economy)'가 궁금한 당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 '경제학' 입문서 : 

-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유시민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보다 깊숙한 '경제학' : 

-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세일러 :「불편한 경제학

- 데이비드 보일&앤드류 심스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1.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때 더 잘 보인다"라는 뒷 표지의 문구처럼, 이 책은 철저하게 숲의 모습을 한 경제학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지요.
  2. 마크 라부아,「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 입문」p52, 후마니타스, 2016.
  3. 이 밖에도 이 책 속에는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 부양이라는 '소득주도성장'에의 비판을 위한 이론적 근거가 되는 저자들의 주장이 실려 있기도 합니다. --- "그 비중이 어떻든 소비는 GDP의 엔진이 아니다. … 소비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소비는 본질적으로 경제 활동을 변화시키는 주요 요인이 될 수는 없다. … 소비는 분명 경제의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반영하지만 소비가 경제의 장기적 성과를 좌우하지는 못한다. 이같은 경제학적 통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pp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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