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 방구석 문화여행자를 위한 58가지 문화 패키지 여행
한민 지음 / 부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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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통은 당신 탓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고통에 당신은 책임이 없다."


- 노명우, 「세상물정의 사회학」 p266, 사계절, 2013.


앞뒤 문맥을 살펴볼 여력마저 없는 상태에서 만났던 위 글은, 심지어 이 글의 목적이 위로를 주기 위함이라는 의도를 다분히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여도, 듣는/읽는 저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되어주었더랬습니다.1 --- 내 사업이 힘들어진 것도 내 잘못만으로 그리 된 것이 아닐 수도 있을거라는, 크게 보면(?) 이게 다 '신자유주의의 폐해' 때문인 거라고 스스로에게 억지 위로를 건낼 수 있는 일말의 건덕지를 찾아낼 수도 있었으니까요. 뭐 그렇게 대충 남 탓도 좀 하며 살아가도 괜찮겠구나,라 느낄 때 즈음...  






"한국 사회를 행복한 지옥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한국 사람들 스스로다. 결코 누군가가 몰래 만들어놓은 함정에 우리가 억지로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냥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 허태균, 「어쩌다 한국인 」 p28, 중앙books, 20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지워지지 않는 찜찜한 남 탓 타령에 기대고 있는 제게, 예의 이 모든 것이 남 탓이 아닌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탓이라 말하는 또 다른 사회학자의 책이 세상에 나오더군요. 이 분의 글을 읽으면 이게 맞는 것 같고, 저 분의 글을 읽으면 저게 맞는 것 같고,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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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한 집단이 최적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 낸 삶의 방식이자 습관입니다. (p164) 


예술의 전당에 가야만 볼/느낄/즐길 수 있는 것이 '문화'가 아님은 이젠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 생각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문화는 자고로 '삶의 방식이자 습관'인 것이며, 그 방식과 습관은 전적으로 해당 집단의 생존이라는 최종 목표에 부합되는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다라는 것이죠. 그러하기에, 

"모든 인간은 같은 '류()'로서 이른바 공통된 '유적(類的)' 특성을 가지나, 특정 사안에 대한 생각, 특정 사건에 대한 느낌,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은 민족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 pp11~12, 웅진지식하우스, 2007. 

인류로서의 공통된 유적 특성이 분명 존재하겠으나, 각 민족, 각 시대에 따라 문화의 외형과 내용은 당연히! 변화하게 되는 것이겠죠. 그렇게 저자 한민은 --- 이 책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를 통해 문화 상대주의, 그리고 기능주의적 인류학의 시선에서 타 문화를 바라보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특수주의 historical particularism 는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입니다. 바로 이 역사적 특수주의에서 문화상대주의가 출발합니다. (p71) …… 기능주의 인류학의 관심사는 어떠한 문화적 현상 또는 요소가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해 어떤 기능을 하느냐에 있습니다. (p108) …… 어떤 문화요소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 문화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것에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거나 필요가 없어지면 자연히 도태되어 없어지겠지요. 이것이 기능주의적 관점입니다. (p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푹 젖어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문화에도 서열을 매기는 것에 훨씬 익숙해져 있기만 합니다.2 더 나아가 그 서열은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인종 자체에까지 그대로 적용되기도 하지요.3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는 그 문화에서 온 사람과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비굴한 태도로 그를 대할 것이고, 상대방이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고압적인 태도로 그를 대할 것입니다. (p35)

그러나 저자는 --- 이같은 시선이 결코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닌, 우리가 타 문화를 바라보는 학습/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진단하며, 이 책을 통해 그러한 학습/훈련을 조금이나마 독자들이 얻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당연하다고 믿어 왔던 것들 달리 생각해 보는 것"(p39)으로부터 우리의 문화, 그리고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자 말해주고 있지요.       

사실상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기괴하고 엽기적인 문화들은 그것들이 수행하는 기능 때문에 존재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능들은 관광객 같은 외부인의 눈으로 본다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문화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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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문화 더 나아가 인종에의 서열 매기기는 아무래도 과거 역사를 통해 이 세상을 이끌어 왔다라 생각하는 서양인들에게 더욱 더 심합니다. 저자는 아메리카 대륙에 이미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단어로 콜럼부스의 항해를 표현하는 것을 서양인들이 지닌 이기적 시각의 단적인 예로 들고 있지요.4 

동양이나 동양 문화, 동양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동양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죠. 바로 이것이 오리엔탈리즘이고 오리엔탈리즘의 폐해입니다. (p45)

이같은 서양인들의 우월주의는 외계인들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무리수까지 두게 된다라, 저자는 또한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의 논리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저로서는 그것이 실제로 외계인들의 개입이라 말할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그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을 때에는 예의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죠? ^^;;)

서양인들이 생각하기에는 도저히 그럴 만한 능력과 기술이 없는 애들 - 예를 들면 남미 사람들 - 이 상상도 못할 규모의 건축물을 갖고 있는 겁니다. 이런 고대 문명의 흔적은 자신들이 제일 진화한 인간일 거라는 서양인들의 가정을 위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설을 택한 것이죠. "아! 외계인들이 와서 만든 거구나!"  … 외계문명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가장 진화한 종족이라는 서양인들의 지위는 유지되고 다른 민족들은 진화를 못한 이들이라는 진화론적 설명이 그대로 살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pp 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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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나라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났고, 자랐고, 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이야기해 보려 하면 말문이 막힙니다. 생각보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 한국인들이 한국을 잘 모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이고, 둘째는 알려고 하지 않아서입니다. (p207)

1부에서는 세계의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내용을, 2부에서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담겨져 있습니다.5 --- 서양인들이 지닌 우월적 문화관보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는 문제는 아마도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적 충돌이 아닐까 싶습니다. '태극기 부대'로 통칭되는 세대 간 대립과, '페미니즘'의 외관을 띤 남녀 간 대립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지요. 그 중에서도 '태극기 부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그 분들을 그저 '주말 광화문 일대를 교통 지옥으로 만드는 노인들'로 생각했었던 저의 시선을 교정하는 데 매우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노인들은 살아온 날들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어떤 인생이었는지 의미를 부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데, 만약 자신이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면 곧 다가올 죽음 앞에서 인생 잘못 살았다는 절망감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신의 인생이 성공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재조정하여 분리, 분열되었던 자아상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 현재 한국의 노인들이 살아오신 시대는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란 트라우마가 모조리 집약된 그런 시대였습니다. 과거의 자기 모습이 늘 밝고 희망찰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어두웠던 과거의 기억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노년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 것입니다. … 부정적이었던 과거의 사건들은 재정의되고 성공적인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재조직됩니다. 어느 것 하나 넉넉지 않았던 가난한 삶은 가족과 이웃의 정으로 포장되고, 국가가 개인의 삶을 통제하던 시절의 기억은 통금 시간을 어기고 사랑하던 그녀와 사랑을 속삭이던 추억으로 변모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내렸던 모든 결정과 더 잘살기 위해 취했던 모든 행동은 '그나마 이렇게 발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그래서 너희를 '남부럽지 않게 가르치고 키운' 당신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을 살지 않은 너희는 모른다. 다 너희를 위한 것이었다."(pp 360~361) 

그 분들의 가치관에 대한 폄하라든가, '나는 정의이기 때문에 그 분들은 정의가 아니다'라는 이분법적 단정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개선시키는 데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들을 이해함'이 곧 '그들의 주장에 수긍함'이나 '굴복함'이 아님을 스스로 깨닫고 실천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성의 부족을 극복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연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주어도 자랑스러울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느낀다라면,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하겠죠.

지금 우리가 살게 된 헬조선은 저마다의 개인적 욕망이 쌓이고 쌓여 나타난 결과입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한국인들은 자신만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 다른 이와 다른 가치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내가 잘살기 위해 다른 이의 아픔을 외면했고 내가 잘 살기 위해 정의에 눈감았습니다. … '나만 잘되면 돼, 나만 아니면 돼'가 많은 이들의 좌우명이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해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 개인적인 욕망의 결과가 바로 우리가 사는 헬조선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순수할 수도 있는 개인적 욕망은 자신의 성취를 위해 다른 이들의 욕망을 짓밟는 것을 정당화하면서 어느덧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개인적인 노력이 개인적 욕망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닥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외면한 모든 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를 외면할 것입니다. (p324) ……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다른 것을 가르쳐야 할 때입니다. 개인의 성공보다 공공의 선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 혼자 잘사는 것보다 모두가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때로는 내 이익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p330)

이렇게 --- 노명우 교수와 허태균 교수의 상반된 듯한 구절이, 기실은 일맥상통하고 있다라는 것에 대한 힌트를, 이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습니다. 노명우 교수가 이야기했던 '당신'의 범주에 이미... 누군가에게 '당신'인 제가 들어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었을까,라고 말이죠.

 함께 읽어보길 권하여 드리는 책들 
- 김찬호 : 「사회를 보는 논리
- 진중권 : 「호모 코레아니쿠스
- 허태균 : 「어쩌다 한국인
- 노명우 : 「세상물정의 사회학
- 김두식 : 불편해도 괜찮아
- 김형민 :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썸데이 서울」 · 「삶을 만나다
- 마빈 해리스 : 「작은 인간




  1. 그 시절, 다음의 구절들도 제게 큰 힘이 되어주었었지요. : "어떤 기업이 망했다고 그 기업과 기업주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평가받아야만 하는가?"(p252) …… "우리가 성공이라 여겼던 것이 성공이 아니었듯, 우리가 실패라 여겼던 것이 실패만은 아니란 점"(p6) --- 이건범, 「파산」, 피어나, 2014.
  2. "외국인을 만나면 제일 먼저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고 묻는다. …… 상대가 대답을 하면 이제 머릿속에 당장 그 나라의 1인당 GDP가 떠오른다. 모든 문화적 가치를 화폐의 양으로 환원시켜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돈 내고 돈 먹는 사회의 '시장주의 코드'라 할 수 있다. 이어서 좌변에 그 나라의 GDP, 우변에 우리나라의 GDP를 놓는다.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좌변과 우변 사이에 들어올 부등호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보다 GDP가 많으면 괜히 그가 존경스러워진다. 우리보다 적으면 은근히 무시하면서 괜히 그에게 '잘살아보세". 새마을운동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사람을 늘 위아래로 놓고 보는 '보수주의 코드'다." - 진중권, 위의 책 중.
  3. "우리의 상식 속 나라 사이의 관계는 …… 수직적이기만 하다. 수직적 관계만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람은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 앞에선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지 못하고, 뒤에 있다고 생각하면 근거 없이 깔보기 일쑤다." - 노명우, 위의 책 p57.
  4. "인류사에 없던 새로운 대륙이 유럽의 한 항해자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고, 인류는 그때를 기점으로 새로운 곳에 '진출'하게 된 것일까요? 이런 생각은 상당히 유럽 중심적인 사고입니다. 그 땅에서 계속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도 그곳이 '신대륙'일까요? 그들 처지에서 1492년의 그 사건을 기술하자면 한 무리의 유럽인들의 '방문'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p37)
  5.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내가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시민으로서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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