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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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가치'다. (p264)


결국! --- 이 한 마디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거나 듣게 되는 말 중 하나인 '돈만 밝히는 사람'이란 표현이 비난/경멸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 역시 '가치'를 배제하고 '돈'만을 밝히는 행위가 경제, 더 나아가 우리 삶의 본질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겠죠.


돈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좋은 것이 되려면 '좋은 삶'이라는 지향과 맞물려야 한다. (p270)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을 통해 아담 스미스가 주창했던 '시장의 자유'란 엄연히 "시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는 될 수 없다"1란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거늘, 그 오래 전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수단의 양이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되어야 함을 분명히 설파했었었거늘,2 --- 저자 김찬호 선생님3 현인들의 그 오래전 가르침과는 달리, 현대의 삶이란 게 수단과 목적이 완벽하게 전이된 모습을 띠고 있다고 지적해줍니다. 


돈이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궁극적인 가치요 최종적인 획득 대상이 된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돈만 있는' 삶을 맹렬하게 추구한다. (p221)

경제학의 기본 모형을 빌어 설명해보자면 이는 --- '전제 조건'으로서의 역할로만 규정되어 있는4 소득, 즉 돈의 양이란 것이 거꾸로 목적이 되어 버리면서 우리의 삶이 변질되었고 급기야 수단과 목적의 전이되어 있다라는 인식 자체까지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경쟁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의식을 낳으며 결국 현실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 경쟁은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요한 것인데, 거꾸로 경쟁을 거쳤으므로 성과 역시 틀림없이 좋을 것이라는 식의 뒤집어진 의식이 생겨나곤 하는 것이지요. 또는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은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현상 때문에 정작 내재되어 있는 현실의 문제를 왜곡하거나 은폐하기까지 합니다." 


- 류동민,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pp159-160, 위즈덤하우스, 2012


「돈의 인문학」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 현재와 같은 돈에 대한 '수단과 목적의 전이'가 어떠한 이유로 발생되었는가, 그리고 그 폐해는 무엇인가에 대한 비경제학적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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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본질은 각각의 개인들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 


- 류동민, 위의 책 p33


인간과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사회과학입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사회과학의 여왕'이라 칭하고 있는5 경제학이 바라보는 인간의 본질 역시, 사회적 관계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여러가지 전문용어들과 복잡한 수학으로 무장한 사회과학만 인간과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소설가의 역할에 대한 설명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대로 된 관찰자"6로서의 문학 또한 --- '지금의 나'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생물학적 유전자만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성장해 온 존재라 표현하고 있지요.   


"인간은 DNA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기억의 총합입니다."


- 박주영, 「고요한 밤의 눈」 p36, 다산책방, 2016

 


제가 어렸을 적에는 흙바닥의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땅따먹기도 하고, 정글짐도 하고, 야구도 하며 놀았더랬습니다. 요즘의 아이들은 PC방 혹은 적어도 와이파이가 되는 곳, 그 중에서도 전기콘센트가 있는 곳 주변에서 주로 논다더군요. 바로 옆에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서로를 온라인상에서만 상대하는 것이죠. 세상이 이상해졌다라거나 이전이 더 좋았다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 사회적 동물인 인간, 그러하기에 그 본질이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로까지 정의될 수 있는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의 성질이 변하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이죠. 저자 김찬호는 동네마다 있던 (외상이 가능했었던) '가게'가 (고객과 종업원 서로가 서로를 알지조차 못하는) '편의점'으로 대체되었다라는 현상을 그같은 변화의 일례로 들고 있습니다. 


생활양식이 다양해지고 인간관계가 단절되어 공통의 문화가 희박해지는 가운데 돈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체로 그 위상이 더욱 확고해진다. (p23) 


이같은 관계의 변화를 통해, 본래 '거래의 원활'이라는 필요에 의해 생겨났던 '돈'이라는 단순한 물질의7 역할을 탈피하여, 거래 당사자들간의 관계를 설정지어내는 지위로까지8 격상됩니다. 돈(화폐)의 본질을 그 어떠한 단어로 표현건 엄연히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임에 분명하고, 수단의 보유가 곧 (원하는) 결과의 획득과 동치가 아님을 잘 알고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  돈에게 "그 자체로써 가장 중요한 목적"9이라는 지위에, 심지어 얼마나 많은 돈을 보유하고 있는가를 곧 (나를 포함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기준의 지위까지 허하고10 있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결국, 


돈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로 절대화되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실종되어버렸다. (p179)


삶의 목표가 '한 10억 쯤 버는 것'이라 말하면서도 그 10억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하지못하는/관심없는 세태, 즉 결과의 도출을 위한 삶이 아닌, 수단의 확보를 위한 삶이 되어 버린거죠. 허나 위와 같은 목적의 실종이란 현상이 각 개인의 욕망이 과도하다거나 무지해서가 아님 또한 자명합니다. 그럼 대체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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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도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하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에서 저자 홍기빈은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는 경제학의 가정에 대해, 무한한 욕망은 오로지 '화폐(돈)'이라는 재화에만 한정된다라는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지요. 류동민의 간결한 표현을 빌자면, 


"화폐가 화폐인 것은 원래부터 화폐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너도 나도 상품을 그것과 바꾸려 욕망하기 때문입니다.11 그러나 물신이 되어 버린 돈은 이제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67


원활한 거래를 위한 '교환의 수단'이었던 화폐, 교환되는 물품의 상대적 가치를 측정하는 수단일 뿐이었던 화폐는 이제 --- 그 관계를 역전시켜 '가치'를 규정/생성하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12 현대 사회에서의 절대 권력을 화폐에게 선사한 것이죠.13 


"권력을 갖는 자는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권력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비로소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의 인정이 일상화하면,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력이 스스로의 내적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 반대로 권력에 지배당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그 권력을 부여한 원천임을 깨닫지 못하고 일상적으로는 권력을 두려워하고 그에 기꺼이 복종합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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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돈을 낳는 세상에서, 부가가치의 원천은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가치는 점점 희미해진다. (p268) … 사람은 믿지 않고 돈만 믿는다. 자기에 대한 믿음(자신감)이 상실될수록 돈에 매달린다. 그러나 그 간극이 커질수록 경제와 사회는 위태로워진다. 사회에 신뢰의 토대가 부실한 상황에서 돈을 향한 맹신과 질주는 무서운 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 속에서 간간히 터지는 금융위기는 근원적으로 그러한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p51)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14이라 정의되고 있는 인문학이 진단한, 현 시대의 문제입니다. 뭐 별다른 게 있나요? --- 경제학이나 경영학, 또는 현대 첨단 과학이 지니고 있지 못한 특별한 통찰이나 가르침이 인문학에는 있을 것 같다는 뭐 그런, '인문학'이라는 단어에 대한 일종의 환상 혹은 경외와 같은 심리가 우리 사회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하여, 사회의 부분부분에 대한 '인문학으로 바라본~'의 접두어를 붙인 서적들이 한 때 유행했던 적도 있었었죠. 그렇게, 


특별히 새로운 지식이나 insight를 얻을 수 없는 독서였었습니다. '아! 이건 이전 어느 책에서 읽었었던 내용이고, 저건 그 때 그 책에서 읽었었던 건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나도 어느 정도 책 좀 읽었구나~라는 자뻑을 안겨주는 독서이기도 했네요. 허나 문제는 --- 이 감상문을 쓰며, '읽고 쓴다'라는 이전의 즐거움이, '읽었으니까 써야지'라는 의무감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었다는 점입니다. 정말 억지로, 쥐어짜내듯 이 감상문을 써내가며 느꼈던 그런 감정들이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제가 김찬호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가르침이 아닐까도 싶... --;;



 이전에 읽어본 저자의 책들 : 사회를 보는 논리」 · 「문화의 발견」 

 이 책의 내용을 담고 있는 더 멋있는 책 :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1. 조나단 B. 와이트,「애덤 스미스 구하기」중. 생각의 나무, 2010.
  2. "물자를 조달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가족 성원들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결코 '획득의 기술'이 '가정의 행복'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중 p95, 책세상, 2001.
  3. 제가 대학 3학년 때 이 분께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었었지요.
  4. 이에 대하여는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을 읽고 쓴 감상문의 초반부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5.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뮤엘슨(Samuelson)이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Gauss)가 수학을 ‘자연과학의 여왕’이라고 언급한 것을 참조하여 그렇게 칭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경제학이 여러 사회과학 학문 중에서 제일 먼저 과학적 방법론을 충실히 반영하였고 논리적 엄밀성이 가장 뛰어난 학문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 성병희,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제학의 반성"중, 대구일보, 2014.12.04.
  6. 박주영, 「고요한 밤의 눈」 p265, 다산책방, 2016.
  7. 이젠 '물질'로조차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죠. --- "How did we come to live in a world where most money is invisible, little more than numbers on a computer screen?",「The Ascent of Money」중 p1, The Penguin Press NY, 2008.
  8. "돈은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다. 개인과 세계를 묶어주는 사회 시스템이다. (p7) … 그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과 토대가 된다." (pp28~29)
  9. 류동민, 위의 책 p68.
  10. "인간이 돈을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무엇인가 꼭 사고 싶어서만이 아니다. … 이제 소비는 사회적인 소통의 회로로서 작동하고 있다. 무엇을 얼마나 소비하는가에 따라 정체성이 규정된다"(pp248~249)
  11.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기 때문에 가치가 발생하는 것은 화폐의 핵심적인 속성" (p229)
  12. "화폐와 교환되었으므로, 즉 팔렸으므로 그것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믿게 됩니다. 가치를 갖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 아니라 팔렸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 류동민, 위의 책 pp131-132.
  13. "화폐, 이는 곧 원하는 대상을 모조리 가져다주는 힘이었다." -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중 p25, 민음사, 2010.
  14.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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