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ssary 】
'만드는 자makers'란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일군의 사람, 기업, 아이디어다. '거저먹는 자takers'는 고장난 시장 시스템을 이용하여 사회 전체보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을 말한다. 거저먹는 자들의 범주에는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그릇된 사고에 젖어 있는 민간 및 공공 부문의 리더들, 그러니까 금융화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심지어 민주주의도 좀먹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CEO, 정치인, 규제 담당자까지 들어간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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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미국 경제의 7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전체 기업 수익 가운데 약 25퍼센트를 가져간다. 반면 전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몫은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p16)
(왜 이 문구가 '파레토 법칙'으로 불리우는지 좀 의문입니다만, 어쨌든 이렇게도 통용되고 있는) '20%가 80%를 먹여 살린다'란 파레토 법칙의 실례, 그러니까 금융권에 인재들이 많이 몰려있다라는 현상의 당연한 결과로 위 구절을 인용하려는/하고픈 사람도 있겠으나,
"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중 p30, 글항아리, 2014.
이 책,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는 위와 같은 편중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합당하지도 않다'라는 논조의 주장을 매우 강하게 펼쳐보입니다. 적어도 "예전에는 미국 기업의 부가 커지면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졌"(p26)었었던, 그러니까 --- 개인의 능력 차이에서 기인하는 불평등이 존재하긴 했었었으나, 그 정도가 용인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었으며, 무엇보다 파이의 전체 크기가 커짐에 따라 각자에게 분배되는 개별 파이의 양도 어쨌든 증가는 했었었거늘,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다."
-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중 p67, 더숲, 2014
현재의 미국 경제는 "경제 내에서 금융 및 금융 활동의 규모와 범위가 비대해지고, 생산을 위한 대출보다 부채에 기댄 투기적 행각이 기승을 부리며, 기업 지배구조 모델로 주주가치 우선주의가 득세"(p29)한 결과, "만드는 자들이 거저먹는 자들에게 예속되어 버린"(p30) 모습으로의 불평등에 이르러 있다라, 이 책의 저자는 단언합니다. 이같은 상황을 초래한 주범으로는 물론 --- 'Wall Street'가 지목되고 있지요. 그렇게 이 책은, 'Wall Street'로 대변되는 금융업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제조업을 위시한 산업 전반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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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말의 전도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 창세기 1장 1절
누군가(하나님)에 의지의 결과이건 아니건을 떠나, 그 모든 것의 시원(inception)은 '창조'의 단계, 또는 (물리적 결합이나 화학적 변형을 거친) '생산'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 인류의 운명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으로 '기업'을 꼽는 글도 있네요. 예의,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은 분명 '생산의 결과물'임이 틀림 없으며, 그 생산을 담당하는 주체로 '기업'을 꼽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서비스업의 역할도, 현대 경제에서는 생산을 담당하는 1·2차 산업의 비중 못지 않게 커진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같은 서비스업은 '생산'에의 직접적 기여는 하지 못하지만, 그 '생산'의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만큼은 훌륭하게 이행해주고 있지요. 그렇다면 --- 화폐로 상징되는 금융 산업은 과연 어떠할까요?
"돈을 버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부를 창조(wealth creation)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돈을 버는 부의 이전(wealth transfer)이다.
- '몇초만 보유한 주주에게도 같은 의결권 부여해야 하나?', 콜린 메이어 교수의 강연 중, DBR 131호, 2013.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도 사용될 수 없으며, 그것이 있다하여 비바람과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요즘에는 점점 전산상에서의 숫자로만 존재해가는) 것이 바로 '화폐'입니다. 애초부터 화폐는 스스로 기능하는 것이 아닌, 기본적으로 윤활유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고안된 실체였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우린 (더 이상 윤활유로서의 역할만 수행하기를 거부한) 그 화폐라는 실체가 자아낸, '돈을 향한 욕망',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에 이처럼 사로잡히게 된 것일까요? 더 나아가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치관의 측정 단위 자체가 되어버려 있는 이 현상은 대체 무엇 때문인걸까요?
"화폐, 이는 곧 원하는 대상을 모조리 가져다주는 힘이었다."
-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중 p25, 민음사, 2010.
화폐에 대한 욕망은 근본적으로 모든 재화/서비스를 언제 어디서건 또한 여하한 방식으로라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 보아야 하며,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의 권력의 크기는 곧 '화폐'의 양으로 측정되기에 우리는, '화폐에 대한'이란 문구가 생략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란 구절을 보게 되는 것이다란 논리에, 저는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다만 이 책이, 이같은 근본적인 측면에 관한 논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미 벌어져 있는 그같은 현상이 초래한 부조리들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을 뿐이죠. 그러나 --- 책 속 지적은 더할 나위 없이 통렬하며, 무엇보다!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힌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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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동원한 자사주 매입과 배당은 이미 업계의 상식이다. 그 방식이 주로 기업의 경영진과 대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반면, 기업 자신의 중장기적 혁신 역량과 일자리 창출 능력은 물론이고 경쟁력까지 제약하는데도 말이다.(p25)
2013년 시행되었던 애플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예로 들며 책은 시작됩니다. 논란이 있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주가를 부양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요. 애플 역시, 그같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액 증가가 자사의 주가 관리의 일환임을 굳이 숨기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상장 기업이 자사의 주가, 즉 기업의 가치를 증대 시키기 위해 취하는 행위에 대해 오류가 있다거나 혹은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할 수는 없겠죠. 저자 라나 포루하의 강조점 역시 --- '비난'이 아닌, '의아함'에 주어져 있지요.
자사주 매입은 경제 전반의 부를 키워 주지 않는다. 그저 금융 시스템 내에서만 기업 가치를 올려줄 뿐이다. 자사주 매입은 대부분의 경우 금융화 그 자체이다. (pp194~195)
"항공사들의 경우 비행기 좌석을 판매하는 것보다 유가 등락 위험을 헤지하여 번 돈이 더 많을 때도 있다."(p28) --- 이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위험 회피책인 헷징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때로는 자본이득을 얻는 것에 비난을 던질 이유는 없으니까요. 다만 기업의 본질, 그러니까 항공기업의 경우 승객과 화물의 안전한 운송이라는 본질적 행위로부터의 이윤 추구보다, 어느 순간부터는 헷징을 통한 자본 이득의 수취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라는, 본질의 전도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죠.
미국의 기업은 더 이상 기업이 아니라, 금융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 요즘 미국 기업들은 그저 돈을 이리저리 굴리는 방법만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다. … 그야말로 미국 전체가 은행업에 종사하는 느낌이다. (pp27~29)
화폐의 기능(들 중 본질적인 기능)은 분명 '윤활유' 역할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 '엔진의 원활한 가동'이라는 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이 윤활유가 어느 순간부터 그 스스로, 엔진의 가동 자체를 좌지우지하게 된다면, 이 상황을 두고 우리가 '정상'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듯, '부의 창조'가 본질인 (제조)기업이, '부의 이전'을 통한 돈벌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때, 우린 또한 '정상'이라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운영을 통해 얻어진 이윤 역시, 그 구성을 살펴보면,
미국 기업들의 수익이 오른 것도 맞고, 그에 따라 주가가 오른 것도 맞다. 그러나 이는 경기가 호전되어 물건을 더 많이 팔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고 임금을 동결하며 공장 신설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p219)
이같은 현실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단순할 수 밖엔 없겠죠.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이 떠받치는 가상의 성장이 아니라 메인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진짜 성장이다." (p32) --- 이같은 금융이 떠받치는 가상의 성장이 초래하는 비극을, 2008년의 금융위기에서 우리는 처절하게 경험해볼 수 있었었죠.
【 비정상의 승리 】
"금융 제도는 경제의 두뇌이다. … 이는 경제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자본 할당 조정 장치로, 기업이나 가계가 자본을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만약 자본이 엉뚱한 곳에 쓰이거나 전혀 유동적이지 못할 경우, 경제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 결국 경제 성장도 침체된다."
- 니얼 퍼거슨, 위의 책 p338.
저자 라나 포루하의 주장은 간단해요. 현재 자본이 엉뚱한 곳에 쓰여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저성장 기조가 만들어졌다라는 겁니다. 성장을 위한 윤활유로 작용하여야 하는 임무를 띤 금융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주주가치 개념에 따르면, 기업의 최우선 임무는 주주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주주의 이익을 다른 집단, 이를테면 고객, 창업자, 노동자, 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보다 앞세우는 것이다. (p119) …… 부유한 투자자들 대부분, 즉 대형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는 애플의 원천 기술이나 생산적 자산에 한 푼도 기여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 그럼에도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기업이 베푸는 보상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 (p192) …… 최상위 1퍼센트에 집중된 돈은 … 극히 폐쇄적인 금융시장 안에서만 맴돌게 된다. 낙수 효과 옹호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런 돈은 실질적 경제 성장을 이끄는 사업, 공장,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투자로 결코 흘러가지 않는다. 이는 애초에 금융시장에 기대했던 역할이 아니다. 본래의 목적은 '새로운' 자산과 도전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었다.(p196)
주주 가치 극대화란 일종의 슬로건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p204)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라는 점입니다. "지금 당장의 성장거리를 찾는 문화"(p51)로 표현될 수 있는 금융의 성격은, 단기적 기업 경영 및 투자 방식의 확산을 가져왔지요.
"맥킨지의 재무 전문가들이 기업 주가에 내재된 기대가치를 분석한 결과 기업 가치의 70~90%는 3년, 혹은 그 후에 창출될 때가 많았다. 기업 가치의 상당 부분이 지금부터 3년 후에나 창출될 가능성이 큰데도 3개월 후의 측정 가능한 결과에 매달리는 식의 자본주의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 기업은 분기 성과에 집착하는 '분기 자본주의(quarterly capitalism)'에서 '장기 자본주의(long-term capitalism)'으로 이동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기간을 '장기'로 볼 것인가? 수익성이 높은 신규 사업에 투자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기간을 장기의 기준으로 보면 된다. 맥킨지는 5~7년 이상을 권고한다)"
- '자본주의, 개혁 당하기 전에 개혁하라', DBR 91호, 2011.10.
어떤 현상이 그 자체로만 존재하고 기능하면 그나마 문제가 커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현상이 (외도된 고의였건 외도되지 않은 우연이었건) 어떠한 오해를 통해 다른 현상에 (악)영향을 미치고, 여기에 특정의 의도를 지닌 마술이 더해진 결과, --- 미국 퇴직 연금 제도에서 보여지는, "이익의 사유화와 리스크의 사회화"(p71)라는, 금융이 지닌 권력에 의해 완성된 '비정상의 승리'를 우린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눈덩이를 굴리는 행동이 눈덩이의 크기를 크게 해준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성장의 확산을 위하여는 또 다른 작은 눈덩이를 뭉쳐내는 행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거늘, 너도나도 눈덩이를 굴리는 것에만 매달리게 되면 단 1개의 비정상적으로 커져버린 눈덩이만 존재하게 될 뿐이겠죠. 뭐, 콩알만한 내 떡이 뭐 (실체로서) 존재라도 해야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란 속담도 말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 정상의 승리를 되찾기 위하여 】
"우리가 하는 게임 이름이 뭐지? 고객의 주머니에서 돈 빼내기지. 고객의 주머니에서 네 주머니로.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누구도 주가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어. 모든 게 환상이야. 모든 게 가짜라고. 네가 할 일은 그 가짜인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거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 말이야. 사람들의 투자 수익을 돈으로 못 바꾸게 해야 해. 계속 투자하게 하는 거지. 그들은 중독되고, 그때 네 주머니에 돈이 차기 시작하는 거야."
- '어쩌면 변하지 않을,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 <The Banker> 736호, 2015.7.
'배고파 못살겠다'란 정서가 프랑스 혁명의 근본 정서였었음에는 별 이의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을 넘어 생각한다」의 저자 박한식 교수 역시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그 체제를 유지하는 정통성이 무너졌을 때"라는 일반론을 설명해주고 있지요. 따라서,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 역시 대중의 신뢰를 받아야 그 정당성과 생존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 "시장이 다른 무엇보다 시장 자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시대"(p93)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상대적 불평등 뿐만이 아니라 절대적 불평등까지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이 현실은 사뭇 암울해 보이기만 합니다.
"원래 경제학은 … 사람들을 빈곤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학문이다. 이것이 경제학의 본질"
- 데이비드 보일·앤드류 심스,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중, 사군자, 2012.
이것이 어찌 경제학만의 본질이겠습니까. (섣불리, 경제학의 일 분야라고는 말 못하겠는) 금융의 본질 역시, 결국 먹고 살자라는, 가급적이면 '잘' 먹고 살자라는, 더 나아가 '맛있는 것을 잘' 먹고 살자라는 목표에 종속될 수 밖에 없겠지요. 현실이 암울하다 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란 한 문장이 지닌, 단순하면서도 궁극적인 의지, 그리고 그 의지의 실천에 대하여 이 책의 저자 라나 포루하가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인 일 방안 역시 복잡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
① 만드는 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자. (p462)
② 은행들이 우월한 정보와 자원을 이용해 가며 원래는 도움을 주어야 할 고객들과 경쟁하는 현재 시스템은 건강한가? … 당연히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복잡성이 공익의 적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복잡성은 차익거래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금융업계는 그 누구보다 이 일을 잘한다. 금융업을 실물 경제에 이바지하는 본래의 위치로 되돌려놓으려거든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단순화하고 또 단순화해야 한다. (p297)
(합당한 예시인지는 자신 없습니다만) GDP 성장률이라든가 그 절대 평가액을 키우기 위해 생산량(q)의 증가가 수반되지 않는, 오직 가격(p)의 상승만을 지지해온 것이, makers 보다는 takers에, Main street 보다는 Wall street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해 온 현재의 미국 경제 그리고 예의 한국 경제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과 일맥 상통한다고나 할까요? --- 가격의 상승만으로 지속되어온 GDP의 상승은 반드시 거품으로 붕괴되기 마련입니다. 주연 배우와 조연 배우가 바뀌어질 수는 있겠으나, 주역과 조역 자체가 바뀌지는 않듯,
"기업은 높은 비용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나 소비자가 원하는 새로운 상품을 낮은 비용을 생산하여 이윤을 남기고자 합니다. … 기업의 목적은 보다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입니다."
- 「알기쉬운 경제이야기」중 pp74~75, 한국은행, 2013.
여하한 산업 내의 기업이라 할지라도, 유·무형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그 본질 자체만은 변하여서는 안 된다라는 것과, (영화 속 '거래 중개인'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는) 본질적으로마저 일종의 '폰지 게임'이라 할 수 있을, '금융' 섹터가 일 경제의 중심축이 되어버린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제가 이해하는 바, (너무 간단하고, 너무 당연한 인듯 싶지만)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입니다.
이러한 저의 이해가, 제조업에서만 기능해오고 있다라는 저의 현실적 한계로부터 비롯된 건 아니란 걸 스스로 자신할 수 있거늘, 경제 내의 다른 섹터에서 기능하고 있는 당신은, 콕 집어 금융업계에서 기능하고 있는 당신에겐 과연 어떠한 이해를 안기게 될 지, 은근 궁금하기도...
※ 함께 읽기를 권하여 드리는 책들 : 「불편한 경제학」, 「의장! 이의 있습니다」,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 「금융의 지배」,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