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1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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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엄마의 아들들은 왜 이렇게 엄친아들인가.

영국인과 결혼해 영국에서 블루칼라계층 (추측하기로는 중간층((중산층말고)) 정도)으로 사는 일본인 엄마가 아들의 중학교 1학년시기의 일들을 칼럼으로 연재하던 글이다. 19년의 일들을 20년에 엮어냈으니 비교적 최근의 영국사회를 엿볼수 있었다.

글의 제목은 어느날 발견한 아들의 메모속 구절인데, 백인과 동양인의 모습이 드러나는 아이가 자신을 표현한 문장이다. 블루(우울) 라는 말에 엄마의 심장이 툭.

계층과 인종에 대한 다양성, 엠퍼시(empathy)와 심퍼시(sympathy), 백인주류사회에서 사는 biracial 아이의 정체성등 그동안 묵직하게 고민해 왔기에 아이와의 즉흥적인 대화에서도 가볍지않게 생각을 나눌수 있었던것같다.

영국 일반인들의 차문화가 미국의 커피문화급이라는것과 계층간 분리가 생각보다 큰 것이 놀라웠고 이와중에 다양성 존중 교육을 이렇게 열심히 한다는게 부러웠다.


<사랑하는 안드레아>는 중산층 지식인 엄마의 다정하고 섬세한 가르침이었다면 이 책은 아이와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즉흥적으로 나누는 대화다.

가장 묘했던 차이는, 같은 유럽인과 동양인 사이에서 태어난 biracial인데 전형적 지식중산층의 아이인 안드레아는 당연하게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보다는 더 고차원의 삶과 사회문제들에 관심이 있었고, 중하층? 하상층?의 브래디 미카코의 아들(이름을 의도적으로 안쓴것같다)은 자기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인종적 정체성, 친구 사이의 빈부의 문제 등에 관심이 있었다. 두 아이의 연령차이에서 오는것 이기도 하겠지만 브래디 미카코가 상류층은 이런 대놓고 하는 인종 차별적 발언을 들을일이 없다고 말한게 이런건가 싶기도했다.


어쨌든 둘 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수있게 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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