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연필 - 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칠 때 아무튼 시리즈 34
김지승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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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를 조금 가볍게 재밌다 라는 감각으로 읽어갔다면, 후반부 여성작가들의 연필에 대한부분은 곱씹으며 어느새 그들의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있었다.


-가난과 관계하는 것들은 글로 표현이 잘 되지않는다. 표현할수록 낮아지거나, 다른 문장과 만나면 거짓말이 되는 말들이 있는데 가난이 꼭 그렇다. ‘연필을 좋아한다‘와 ‘가난하다‘가 만나면 연필이 초라해지거나 거짓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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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빤했던 그 시간에 내가 바랐던 게 무엇이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슬픈건 그런 거다. 소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소유할 수 없음을 알고 원했던 기억조차 지워버리는 일 같은거 말이다.
......
대체로 가난한 나의 친구들이 경험한 억압의 양상은 비슷했지만 모두 달랐다. 그 다름 덕분에 우리는 다행히 아무도 비난하지 않으면서 실패와 가난, 과잉과 불안을 표현할수 있다. 너는 그랬구나. 가만히 귀기울이며 그렇게. 유연한 자존감과 세심한 감각은 가난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어떤 기이한 임무처럼 친구들은 그것들을 해낸다. 가난이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럽지도 않으니까.-
p.196~205 《루이자 메이 올컷의 연필》

나 역시 조에 이입했고 에이미를 얄밉게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루이자가 그의 작품에서 ‘여성이 강하게 욕구를 표현하거나 뚜렷한 의지로 선택하는 장면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도록 격려했다‘고 하니 다시 읽어보고싶어졌다. 나의 어린시절 가난과 억압이 내가 뭘 욕망하는지 알수없게 만들었을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조금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

전반부의 가장 좋은 부분은《마녀의 빗자루》p.80~90.

- 나는 이 동네 마녀가 반지하에서 연필을 빗자루 대신 쥐고 박완서와 오정희의 글을 마법서처럼 중얼중얼 읽는 모습을 상상했다. 현대판 마녀는 재판이나 화형보다 매일밤 고독사를 두려워하겠지.
......
토독, 토독 반지하 낮은 창에 비 닿는 소리가 들렸다. ˝아, 희우다˝ 내 말에 노인이 반색했다. ˝나는 기쁨과 걱정이 나란한 희우인줄 알았어요. 아니었구나. 비에젖은 기쁨이었구나.˝ 희우를 ‘비에 젖은 기쁨‘이라고 읽어내는 노인이 좋았다. 빗자루같은 노란 연필들도. 그렇다고 하자 노인의 코가 쑤욱 커졌다. 아니, 그랬던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오늘이 그날인가, <파우스트>에 나오는 마녀와 철학자, 시인과 문학가 들이 뒤섞인 밤. 낭만적 발푸르기스의 밤이 희우와 함께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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