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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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남자의 물건'과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재밌게 봤더랬다. 사실 읽고 나서 대단한 발견을 했다거나 참 유익한 책이었어 라는 느낌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 아플 때 읽으면 좋을 책을 쓰고 읽고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 또한 당연한 얘기를 박사임에도 쉽게 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글에는 쓸데없는 허세가 없어서 편안하고 어떻게 살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심리학적 설명을 곁들여서 알려준다. 한국의 역사와 유럽을 비교해서 설명해주니 이해가 쉽다. 그러고보니 유익하네.

 

이번에 하는 이야기도 전에 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작가에게서 나올 수 있는 주제는 많지 않다. 비슷한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작가는 50이 넘은 나이에 여수 바닷가에 있는 미역창고를 사서 자신의 작업실로 만들었다. 남자에게 슈필라움이라는 자기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이자 여유 공간을 독일어로 말하면 그렇단다. 저자가 남자이다보니 자꾸 남자에게는 남자만의 방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여자도 마찬가지다. 부부가 공통으로 쓰는 안방이나 거실이 여자의 방은 될 수 없지 않나. 화장대가 있다고 하는데 자기 반성을 하며 하루를 돌아보기에는 너무 소박하다. 누구에게나 자기 마음대로 꾸미고 그 안에서 창작을 하든 반성을 하든 뭔가 뜻대로 할 수 있는 실제적 공간이 필요하다. 가족들에게 너무 치인다면 이렇게 따로 독립된 작업실을 얻는 게 참 좋을 거 같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유일한 문제인데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희생정신도 필요하다. 저자가 언급한 '자연인' 역시 혼자 마음대로 사는 삶을 얻기 위해 엄청난 외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작가는 여수의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신이 이곳에 왜 반했는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그걸 모아서 이렇게 책도 내서 알려준다. 여수에 작업실이자 집을 지은 셈인데 돈이 많이 들었겠지만 이 책을 팔아서 좀 갚으면 될 거 같다. 일단 벌려놓으면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도 신기하다. 물론 저자가 쓴 글은 쉽게 읽혀도 독일 유학에, 일본 그림 유학에, 대학 교수 10년까지 지난 세월 쌓아온 내공이 많은 분이므로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지만 일반인도 자기만의 콘텐츠만 있으면 1인 방송을 해서라도 먹고 사는 세상이니 안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다 완성된 미역창고는 참으로 근사하고 부러웠다. 누군가는 이렇게 자기만의 슈펠리움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즐거운 일을 한다. 심지어 조그만 보트도 사서 저자의 닉네임인 오리가슴 글씨도 크게 쓰고 잘 타고 다닌다. 이렇게 컨텐츠를 만들어놓으면 이걸로 책도 쓸 수 있고 수익도 조금 얻을 수 있으니 인생의 선순환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들 행복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지만 은퇴 후에 가꿀 텃밭을 얻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다. 혹은 원하는 미래는 자꾸 뒤로 뒤로 미뤄져 겨우 그 때가 온들 너무 늙어서 그럭 마음도 기력도 증발한 후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작가가 알려주는 좋은 삶은 멀리있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인 슈펠리움을 일단 마련할 것, 거기에서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날아다니는 생각을 실컷 할 것-창조성의 원천이 된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할 것 등등.

걱정과 불안을 줄이는 법도 알려줬다. 개념화시키고 가나다 순으로 적어보는 것이다. 이건 작가가 알려주기 전에 내가 스스로 터득해서 하는 방법인데 효과가 있다. 글로 적어보면 얼마나 하찮은 일로, 혹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일어나지 않을 일로 걱정하는지 빤히 보인다. 그렇다고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한 불안감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 좀 더 실체가 분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불안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하찮은 것이라면 걱정을 그만하면 되고, 통제가 안 되는 일이라면 애초에 포기하고 될대로 되라고 놔두는 게 답이니까.  

 

가끔 야해보이는 말도 하는데 이 분의 실제 생활은 너무나 건전해보여서 그 괴리에 웃음이 난다. 기껏 오는 사람이 부인이나 오래된 친구들이라니... 그래도 그 건강함이 참으로 멋있다. 자기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위해 실천하는 분이다. 독자들에게도 이렇게 살면 된다고 몸소 보여준다. 낚시 좋아한다고 배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바다를 좋아해도 실제로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사는 분은 더욱 드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안 하면 언제 하랴 싶은 순간이 온다면 모두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tv만 보면서 연예인 흉보다 늙어가는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요즘은 남의 삶을 관찰하며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남의 연애, 남의 자녀, 남의 집일 뿐이다.

283페이지를 다 읽고 마음에 남은 구절은 하나뿐이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한다는 게 조금 슬프지만 행복해지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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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모 Chang-mo K-픽션 25
우다영 지음, 스텔라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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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K픽션 시리즈가 있다. 한국의 유망한 신인 작가들의 단편을 싣고, 같은 페이지 맞은편에는 그걸 영어로 번역해서 싣는다. 한번에 양쪽을 다 번갈아가며 비교해 봐도 재미있겠지만 사실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처음 읽을 땐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모국어인 한국어에서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이다. 2독은 해야 영어 페이지에 눈이 간다.

 

 

우다영의 '창모'는 창모라는 남자 주인공을 여주인공인 '나'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내용이다. 창모는 흔히 말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여주인공 '나'는 창모와 동창으로 어릴 때부터 한 학교에서 그를 봐왔다. 같은 반 친구들이 두려워하는 창모를 '나'만 똑바로 볼 수 있다. '나'는 특별히 창모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호기심이 충만해서도 아니지만 창모와 가까워지고 그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독자인 나는 창모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여주인공의 심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창모와 친해지는 과정, 멀어지는 과정 역시 특이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학창시절 모범생 범위에 들었지만 그렇다고 소위 노는 애들 중에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아이는 학교도 띄엄띄엄 나왔고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염색이나 화장도 거리낌이 없었고 선생님도 포기한지 오래였고 아마도 다른 학교 누군가에는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가 나에게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웃고 어울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여주인공이 창모와 친하다고 느끼지 않아도 친구였던 것처럼 나역시 그랬다.

창모는 줄거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니다. 반사회적인 인물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할지, 아니면 짐승 다루듯이 하며 피하고 치워버릴지 선택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나는 그 사이코패스라는 범죄자들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들이 왜 그런지 이해해보려고 표창원 교수의 '한국의 연쇄살인'이나 다른 프로파일러들의 범죄심리서를 줄줄이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들은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이고, 남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으며, 자기의 불행한 과거만을 불쌍히 여기는 쓰레기 같은 자들이었다. 결국 나는 왜 사형제를 부활시키지 않는지 분노하며 책장을 닫을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 우다영 작가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여주인공은 창모의 범죄행각, 각종 기행에도 불구하고 그가 험악한 마음을 먹지 않도록 도와야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정말 여주인공이 창모를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계속 돌보고 연락했다고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그 이후의 삶까지 엉망으로 살고 있던 창모가 달라졌을까 의심스럽다. 또한 그 사이 엉망이 될 여주인공의 삶은 어떡하나. 그 정도 희생을 치룰 정도로 그녀가 창모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범죄 관련이 아닌 다른 심리서를 보면 어릴 때부터 폭력적인 기질을 타고 났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단 한 명의 조력자가 인생에 있으면 확 달라진 삶을 살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소위 위험한 애라고 딱 선을 그어서 치워버리는 게 아니라 약간씩 엇나가고 이상행동을 시작하는 초기에 그의 부모나 조부모, 동네 어른, 선생님, 혹은 친구 그 누구라도 단 한 명만 그를 사랑해주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면 그 사람은 긴긴 인생의 어느 한 때에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짤막한 뉴스에서 수갑찬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기자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끔찍하지만 그 사람 또한 얼마나 불행한 환경에 있었나 한번씩 프로필을 읊어준다. 아마 우리 대다수는 그들이 스스로 만든 그 구덩이 같은 인생에 끼어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까닥하면 잘 걸어가던 우리도 거기 빠져서 고생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다 피해가고 외면하면 그들은 점점 더 괴물이 되어서 우리 중 누군가를 희생자로 삼고 결국은 경찰 손에 끌려가겠지. 창모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한 일이, 여주인공의 입장이 되면 훨씬 복잡하고 죄책감이 드는 묵직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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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은 처음입니다만 - 살벌한 비즈니스 세상에 필요한 서바이벌 센스
박하연 지음 / 라온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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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회생활은 처음입니다만'은 20대 사회초년생을 위한 자기계발서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제 처음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대학생이나 취준생이 보면 도움이 될 책이다. 다섯 챕터로 나눠지는데 앞의 세 챕터는 자기계발서에 가깝고 뒷부분의 4, 5 챕터는 간단한 법률 상식 및 서류 작성법이 나와있다.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근로기준법과 이력서, 자기소개서, 근로계약서, 원룸 구할 때 주의점까지 생활 밀착형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계발서인 앞부분은 사실 기존의 책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평소에 자기계발서를 안 읽었다면 당연히 도움이 될 것이고, 자주 읽는 분들이라면조금 식상할 수 있다.

 

 

요약해보면 '인생의 목표를 종이에 적어서 늘 떠올리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라, 좋은 습관을 만들어라, 계획은 구체적, 수치적, 평가적, 지속적이어야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룬다. 또한 도움이 되는 습관도 소개되어 있는데 요즘 대세인 블로그나 sns를 운영해서 파워블로거가 된다거나, 유튜버를 취미로 한다거나 하면 인사담당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팁도 빼놓지 않았고 사회성이 부족한 요즘 밀레니얼들을 위한 인간관계에 관한 조언도 있었다. 저자는 유명한 커리어코치로 7년동안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강의를 진행했고 직업상담사를 오래 해오고 있다. 저자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는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는데 이렇게 해도 취직이 안된다면 이건 말이 안되는 수준이다. 일단 그녀는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했고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doing이라고 그저 일을 하는 개념이 아니라 일을 배우려는 자세로 남들보다 몇 배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금방 사업주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기에 1:100 경쟁률에서 살아남는 법(성실한 입사지원서 작성, 해당 기업에 대한 공부와 직무에 대한 관심을 어필하여 면접을 준비, 자기자신을 적극적으로 세일링할 것), 일잘러 되는 법(하루 10분 업무 플래너 짜기 등) 등을 세세히 코치하고 있다.

 

4, 5챕터 내용은 법관련이어서 특히 실용적인데 나도 여태 주휴수당이나 연차, 근로계약서 작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한 게 없어서 '아, 그렇구나'하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연차대체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법정공휴일을 모두 연차 휴가에 포함하는 기업의 경우에는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연차가 0일이라는 것은 충격적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처음 다닌 회사도 연차가 없었다. 이런 회사에는 애초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또한 포괄임금제를 시행하는 회사는 추가 근무, 야근을 해도 따로 주는 수당이 없다는 것도 몰랐다. 두 번째 충격이다. 합법적으로 안 줘도 되는 회사다. 이런 회사도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ㅋㅋ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때에는 회사에서 뽑아준다고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감지덕지 다니는 경우가 있다. 나도 첫취직 때 저런 사항을 따져본 적이 없다. 그 후에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미리 알고 들어가는 것과 아예 모르고서 당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회사에 일단 들어가면 쉽게 그만둘 수 없고 다소간의 불이익도 신입사원 입장에서 따질 수 없으니 감수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사전 정보를 미리 알고서 애초에 지원을 안 하던지, 뽑혔다면 근로계약서 작성할 때 인사담당자에게 꼼꼼히 물어봐서 입사 후에 조건이 실망스러워서 떠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재해근로자가 산재를 신청하려면 예전에는 사업주의 허가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직접 접수가 가능하고 근로복지공단이 경위를 파악한다는 것도 중요한 팁이다. 다쳐도 사업주가 자기가 손해를 볼 거 같으면 보험처리를 안해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근로자가 직접 산재를 신청할 수 있다니 세상이 많이 좋아졌구나 느꼈다. 실업급여 역시 자기가 스스로 그만두면 받을 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신청도 안했는데 본인이 자발적으로 그만둬도 몇 가지 사유에 해당되면 신청할 수 있었다. 사회초년생 뿐만 아니라 나같은 오래된 사람도 모르는 정보가 많아서 참으로 알아두면 쓸모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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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이들이 알아야 할 7가지 법칙
이랑주 지음 / 지와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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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전략가라는 다소 생소한 직업의 저자가 쓴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은 넓게 보면 경제/경영서이고 좁게 보면 마케팅서이다. 띠지 사진의 저자가 하도 멋쟁이라 사진만 보고는 무슨 에스테틱 관련이나 미용서인 줄 알았다. ㅎㅎ 이 책에는 요즘같이 유행이 빠르고 물건이든 음식이든 싫증을 잘내는 소비자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브랜드, 제품, 매장을 만드는 방법이 담겼다. 책의 목차가 꽤 함축적이어서 중요 내용은 목차만 읽어봐도 될 정도이다. 그렇지만 마케팅에 대해 좀 더 관심이 있고,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거나 브랜드 런칭을 계획할 분들이라면 실례(例)가 풍부한 본문을 참고하면 마치 컨설팅을 받는 것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자그마한 매장 한 개를 운영하는 경우라도 집기 하나, 컨셉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1개의 매장이라면 그저 단순하게 선택할 일도 매장 1000개를 꾸민다고 상상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나는 여태 창업을 해도 매장 1개를 생각했는데 1000개라니.. 자영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지금 당면한 한 개의 매장이라도 성공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 취향대로 아무 계획없이 꾸밀 게 뻔하다. 그러나 앞으로 999개의 매장을 더 내게 되어 그 모든 매장을 지금 1호점과 똑같이 만들 거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보편성, 일관성, 통일성이 확 중요해지는 것이다. 내 눈에만, 우리 직원들 눈에만 좋아보여서는 안된다. 남들 눈에도 일관성있게, 비슷한 느낌을 전달해야 하고 남의 눈에도 똑같이 좋아보여야 한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타켓 고객층을 좁게 정의해야 하는 이유가 나온다. 물건수가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컨셉으로 어필할 것이가, 어떤 손님층을 고객으로 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시간을 아낄 수 있고 그 분야의 전문가, 전문기업으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인 스타벅스가 왜 포장제품 판매권을 매각하고 매장사업에만 몰두하는지, 기존 사업을 확장할 때에도 원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해야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은 과감히 접고,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빠른 시간 내에 고수 혹은 선도기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중간중간 들어있는 애플이나 스타벅스, 나이키 같은 선도기업들의 사진은 이 마케팅 기법을 실제로 적용한 것이기에 더욱 이해를 돕는다.

 

세 번째 챕터부터는 좀 더 본격적으로 어떻게 비주얼 전략을 짤지 실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복숭아를 이용한 브레인 스토밍 기법 소개와 뇌가 말랑말랑해진 다음에 어떻게 자신만의 고유 상징, 이미지를 찾을 수 있는지 그 비법을 설명한다. 저자는 인터넷 검색으로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를 쉽게 갖다쓰는 일을 경계한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직접 손으로 그려보고, 촘촘한 일관성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 오래가는 것들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딱딱한 머리를 부드럽게 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남의 사례를 찾아 베끼지 말고 어려워도 처음부터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브랜드의 고유성이 없으면 남들이 쉽게 따라하고, 또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주고객층으로 부상한 2000년대 이후 출생자,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곳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 그것을 공유하고 싶은 세대이다. 왜 애플 매장이 세계 어느 곳에 있어도 한 장의 사진같은 이미지를 제공하는지, 밀레니얼들이 sns로 공유하는 사진은 주인공만 바뀔 뿐 배경과 경험이 동일한지 이유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7가지 챕터의 몇 가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마케팅 기법을 실제 경영에 적용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자세한 설명이 도움이 된다. 이미 문자의 시대를 지나 비주얼의 시대로 넘어왔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성공한 기업이나 제품에는 아주 오랜시간 공들여 쌓아온 그들만의 아이덴티티가 있고 쉽게 따라할 수 없는 탄생 스토리가 있다. 쉽게 얻으면 쉽게 사라진다.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은 그게 제품이 되었든, 브랜드가 되었든, 하나의 매장이 되었든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고, 자기만의 것을 오래가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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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안전가옥 앤솔로지 1
김유리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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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이 소재겠구나 라는 것만 빼면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이 소설집을 읽었다. 읽으면서 몇 번 놀랐다. 현대 한국문학을 읽은 게 너무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그게 내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놀라고 또 주인공이 내 예상과 빗나가서 놀라고 작가 프로필을 보고 등등. 미천한 내 한국 소설 경험은 고등학교 때 읽은 염상섭의 삼대라던가 그런 주요 고전에서 끝이 나고 이후에도 공지영이나 은희경 등 이제는 그렇게 젊다고 할 수 없고 너무 유명해진 작가들에서 대개 끝이 나 있었다.

 

 

사실 안전가옥이란 출판사가 냉면을 소재로 공모를 했지만 소설 속 냉면은 소재일 뿐 내용상 꼭 중요한 건 아니다. 이걸 읽고 냉면이 먹고 싶어졌냐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냉면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 같지만 또 그만큼 맛있는 냉면집이 있냐하면 다들 소문 듣고 갔다가 실망하기 일쑤인 그저그런 집이 참 많다. 맛없는 냉면에 실망한 사람도 이 냉면 소재 소설 모음에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내 취저는 김유리 작가의 A,B,C,A,A,A 이다. 무슨 기호 같기도 하고 약호 같기도 소설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나 몇 페이지 넘기자 나타난 여주인공의 정체는 무려 1977년생, 키 165에 98키로.. 머리 반삭, 문신 있음, 플러스 이혼녀. 멀쩡한 회사 이력서에 이렇게 쓰면 바로 휴지통으로 들어갈 거 같은 프로필이 아닌가? 거기에 취향은 원피스, 4XL. 여기서 웃음이 빵 터졌다. 주인공이 뚱뚱해서 웃은 게 아니라 내가 몇 년전까지만 해도 '4XL입는 사람이 어디있어?'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인 손님이 4XL를 찾을 때 무슨 특이하게 뚱뚱한 손님인가보다 했지만 외국에는 의외로 이런 사람이 아주 많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옷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소설 속 여주인공에게 남친이 4XL 원피스 파는 링크를 준 게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외에도 안팔리는 소설 강좌를 운영하는 여주인공의 상황 설명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이후 둘이서 사업을 확장해가는 과정은 더더욱 리얼해서 이게 과연 소설인가, 다큐인가 작가 프로필을 찾아보기에 이르렀는데 '뭐냐 이 사람!! 옥탑방 고양이 작가 아냐??' 하고 두 번째 놀란 것이다. 세 번째 놀란 것은 조금 슬픈 내용인데 나는 옥탑방 고양이처럼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을 쓴 사람은 분명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작가 후기에 '옥탑방 고양이가 드라마와 연극이 된 후에도 나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판사에게 인세를 다 떼이고 편의점과 슈퍼 알바를 한다'고 쓴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작가가 무슨 출판사도 운영하고, 소설 강좌도 하는가 본데 잠깐 검색해보니 나이도 1977년생.. 참 희한하지? 허구가 섞였다고 해도 사실을 조금 버무려서 쓰면 이렇게 리얼해진다.

 

 

 

 

다음 소설은 혼종의 중화냉면, 남극 낭만담, 목련면옥 등이 있었지만 SF나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내용을 그닥 안 좋아해서 내게는 인상적이지 않았다. 남극 낭만담은 초반부가 다소 지루해서 얘기가 본격화되는 중반부터 빠르게 읽혔고, 목련면옥은 무서운 내용이겠으나 내 나이가 있다보니 사다코 급으로는 아무래도 겁먹기가 무리다. 오히려 망해가는 냉면집을 인공지능을 이용해 성실하게 코치해서 완전히 망하게 만드는 게 목적인 스타트업 회사 이야기,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이렇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헉헉.. 제목이 길다)가 재미있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생각나는데 이 스타트업 회사는 백종원과 정반대로 코치하는 셈이다. 망해가는 걸 확실하게 망하게 해야 하는데 어쩌다보니 정반대로 흘러가는 이야기. 그런데 요즘은 공기청정기까지 인공지능이 들어가는 시대이고 알파고 이후에는 꽤나 신뢰하는 것 같아서 정말 인공지능이 분석해주면 저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웃음이 난다. 어차피 성공과 실패는 운칠기삼이라는 소리도 있지 않은가?

출판사 단독으로 이런 공모전을 해서 실제로 책을 내는 줄 몰랐기에 한가지 소재를 정해서 소설을 쓰는 시도가 신선하고 막상 나온 책도 단편이라 부담도 없고 다양한 색깔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초판이라 오탈자가 눈에 좀 띄는데 재판 찍으면 수정되어 나올 테니 많이 팔려서 재판도 나오고 이런 시도가 계속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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