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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모 Chang-mo ㅣ K-픽션 25
우다영 지음, 스텔라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4월
평점 :
아시아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K픽션 시리즈가 있다. 한국의 유망한 신인 작가들의 단편을 싣고, 같은 페이지 맞은편에는 그걸 영어로 번역해서 싣는다. 한번에 양쪽을 다 번갈아가며 비교해 봐도 재미있겠지만 사실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처음 읽을 땐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모국어인 한국어에서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이다. 2독은 해야 영어 페이지에 눈이 간다.

우다영의 '창모'는 창모라는 남자 주인공을 여주인공인 '나'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내용이다. 창모는 흔히 말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여주인공 '나'는 창모와 동창으로 어릴 때부터 한 학교에서 그를 봐왔다. 같은 반 친구들이 두려워하는 창모를 '나'만 똑바로 볼 수 있다. '나'는 특별히 창모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호기심이 충만해서도 아니지만 창모와 가까워지고 그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독자인 나는 창모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여주인공의 심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창모와 친해지는 과정, 멀어지는 과정 역시 특이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학창시절 모범생 범위에 들었지만 그렇다고 소위 노는 애들 중에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아이는 학교도 띄엄띄엄 나왔고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염색이나 화장도 거리낌이 없었고 선생님도 포기한지 오래였고 아마도 다른 학교 누군가에는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가 나에게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웃고 어울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여주인공이 창모와 친하다고 느끼지 않아도 친구였던 것처럼 나역시 그랬다.
창모는 줄거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니다. 반사회적인 인물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할지, 아니면 짐승 다루듯이 하며 피하고 치워버릴지 선택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나는 그 사이코패스라는 범죄자들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들이 왜 그런지 이해해보려고 표창원 교수의 '한국의 연쇄살인'이나 다른 프로파일러들의 범죄심리서를 줄줄이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들은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이고, 남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으며, 자기의 불행한 과거만을 불쌍히 여기는 쓰레기 같은 자들이었다. 결국 나는 왜 사형제를 부활시키지 않는지 분노하며 책장을 닫을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 우다영 작가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여주인공은 창모의 범죄행각, 각종 기행에도 불구하고 그가 험악한 마음을 먹지 않도록 도와야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정말 여주인공이 창모를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계속 돌보고 연락했다고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그 이후의 삶까지 엉망으로 살고 있던 창모가 달라졌을까 의심스럽다. 또한 그 사이 엉망이 될 여주인공의 삶은 어떡하나. 그 정도 희생을 치룰 정도로 그녀가 창모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범죄 관련이 아닌 다른 심리서를 보면 어릴 때부터 폭력적인 기질을 타고 났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단 한 명의 조력자가 인생에 있으면 확 달라진 삶을 살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소위 위험한 애라고 딱 선을 그어서 치워버리는 게 아니라 약간씩 엇나가고 이상행동을 시작하는 초기에 그의 부모나 조부모, 동네 어른, 선생님, 혹은 친구 그 누구라도 단 한 명만 그를 사랑해주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면 그 사람은 긴긴 인생의 어느 한 때에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짤막한 뉴스에서 수갑찬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기자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끔찍하지만 그 사람 또한 얼마나 불행한 환경에 있었나 한번씩 프로필을 읊어준다. 아마 우리 대다수는 그들이 스스로 만든 그 구덩이 같은 인생에 끼어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까닥하면 잘 걸어가던 우리도 거기 빠져서 고생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다 피해가고 외면하면 그들은 점점 더 괴물이 되어서 우리 중 누군가를 희생자로 삼고 결국은 경찰 손에 끌려가겠지. 창모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한 일이, 여주인공의 입장이 되면 훨씬 복잡하고 죄책감이 드는 묵직한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