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안전가옥 앤솔로지 1
김유리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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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이 소재겠구나 라는 것만 빼면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이 소설집을 읽었다. 읽으면서 몇 번 놀랐다. 현대 한국문학을 읽은 게 너무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그게 내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놀라고 또 주인공이 내 예상과 빗나가서 놀라고 작가 프로필을 보고 등등. 미천한 내 한국 소설 경험은 고등학교 때 읽은 염상섭의 삼대라던가 그런 주요 고전에서 끝이 나고 이후에도 공지영이나 은희경 등 이제는 그렇게 젊다고 할 수 없고 너무 유명해진 작가들에서 대개 끝이 나 있었다.

 

 

사실 안전가옥이란 출판사가 냉면을 소재로 공모를 했지만 소설 속 냉면은 소재일 뿐 내용상 꼭 중요한 건 아니다. 이걸 읽고 냉면이 먹고 싶어졌냐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냉면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 같지만 또 그만큼 맛있는 냉면집이 있냐하면 다들 소문 듣고 갔다가 실망하기 일쑤인 그저그런 집이 참 많다. 맛없는 냉면에 실망한 사람도 이 냉면 소재 소설 모음에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내 취저는 김유리 작가의 A,B,C,A,A,A 이다. 무슨 기호 같기도 하고 약호 같기도 소설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나 몇 페이지 넘기자 나타난 여주인공의 정체는 무려 1977년생, 키 165에 98키로.. 머리 반삭, 문신 있음, 플러스 이혼녀. 멀쩡한 회사 이력서에 이렇게 쓰면 바로 휴지통으로 들어갈 거 같은 프로필이 아닌가? 거기에 취향은 원피스, 4XL. 여기서 웃음이 빵 터졌다. 주인공이 뚱뚱해서 웃은 게 아니라 내가 몇 년전까지만 해도 '4XL입는 사람이 어디있어?'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인 손님이 4XL를 찾을 때 무슨 특이하게 뚱뚱한 손님인가보다 했지만 외국에는 의외로 이런 사람이 아주 많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옷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소설 속 여주인공에게 남친이 4XL 원피스 파는 링크를 준 게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외에도 안팔리는 소설 강좌를 운영하는 여주인공의 상황 설명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이후 둘이서 사업을 확장해가는 과정은 더더욱 리얼해서 이게 과연 소설인가, 다큐인가 작가 프로필을 찾아보기에 이르렀는데 '뭐냐 이 사람!! 옥탑방 고양이 작가 아냐??' 하고 두 번째 놀란 것이다. 세 번째 놀란 것은 조금 슬픈 내용인데 나는 옥탑방 고양이처럼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을 쓴 사람은 분명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작가 후기에 '옥탑방 고양이가 드라마와 연극이 된 후에도 나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판사에게 인세를 다 떼이고 편의점과 슈퍼 알바를 한다'고 쓴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작가가 무슨 출판사도 운영하고, 소설 강좌도 하는가 본데 잠깐 검색해보니 나이도 1977년생.. 참 희한하지? 허구가 섞였다고 해도 사실을 조금 버무려서 쓰면 이렇게 리얼해진다.

 

 

 

 

다음 소설은 혼종의 중화냉면, 남극 낭만담, 목련면옥 등이 있었지만 SF나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내용을 그닥 안 좋아해서 내게는 인상적이지 않았다. 남극 낭만담은 초반부가 다소 지루해서 얘기가 본격화되는 중반부터 빠르게 읽혔고, 목련면옥은 무서운 내용이겠으나 내 나이가 있다보니 사다코 급으로는 아무래도 겁먹기가 무리다. 오히려 망해가는 냉면집을 인공지능을 이용해 성실하게 코치해서 완전히 망하게 만드는 게 목적인 스타트업 회사 이야기,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이렇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헉헉.. 제목이 길다)가 재미있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생각나는데 이 스타트업 회사는 백종원과 정반대로 코치하는 셈이다. 망해가는 걸 확실하게 망하게 해야 하는데 어쩌다보니 정반대로 흘러가는 이야기. 그런데 요즘은 공기청정기까지 인공지능이 들어가는 시대이고 알파고 이후에는 꽤나 신뢰하는 것 같아서 정말 인공지능이 분석해주면 저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웃음이 난다. 어차피 성공과 실패는 운칠기삼이라는 소리도 있지 않은가?

출판사 단독으로 이런 공모전을 해서 실제로 책을 내는 줄 몰랐기에 한가지 소재를 정해서 소설을 쓰는 시도가 신선하고 막상 나온 책도 단편이라 부담도 없고 다양한 색깔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초판이라 오탈자가 눈에 좀 띄는데 재판 찍으면 수정되어 나올 테니 많이 팔려서 재판도 나오고 이런 시도가 계속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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