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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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남자의 물건'과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재밌게 봤더랬다. 사실 읽고 나서 대단한 발견을 했다거나 참 유익한 책이었어 라는 느낌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 아플 때 읽으면 좋을 책을 쓰고 읽고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 또한 당연한 얘기를 박사임에도 쉽게 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글에는 쓸데없는 허세가 없어서 편안하고 어떻게 살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심리학적 설명을 곁들여서 알려준다. 한국의 역사와 유럽을 비교해서 설명해주니 이해가 쉽다. 그러고보니 유익하네.

 

이번에 하는 이야기도 전에 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작가에게서 나올 수 있는 주제는 많지 않다. 비슷한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작가는 50이 넘은 나이에 여수 바닷가에 있는 미역창고를 사서 자신의 작업실로 만들었다. 남자에게 슈필라움이라는 자기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이자 여유 공간을 독일어로 말하면 그렇단다. 저자가 남자이다보니 자꾸 남자에게는 남자만의 방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여자도 마찬가지다. 부부가 공통으로 쓰는 안방이나 거실이 여자의 방은 될 수 없지 않나. 화장대가 있다고 하는데 자기 반성을 하며 하루를 돌아보기에는 너무 소박하다. 누구에게나 자기 마음대로 꾸미고 그 안에서 창작을 하든 반성을 하든 뭔가 뜻대로 할 수 있는 실제적 공간이 필요하다. 가족들에게 너무 치인다면 이렇게 따로 독립된 작업실을 얻는 게 참 좋을 거 같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유일한 문제인데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희생정신도 필요하다. 저자가 언급한 '자연인' 역시 혼자 마음대로 사는 삶을 얻기 위해 엄청난 외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작가는 여수의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신이 이곳에 왜 반했는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그걸 모아서 이렇게 책도 내서 알려준다. 여수에 작업실이자 집을 지은 셈인데 돈이 많이 들었겠지만 이 책을 팔아서 좀 갚으면 될 거 같다. 일단 벌려놓으면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도 신기하다. 물론 저자가 쓴 글은 쉽게 읽혀도 독일 유학에, 일본 그림 유학에, 대학 교수 10년까지 지난 세월 쌓아온 내공이 많은 분이므로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지만 일반인도 자기만의 콘텐츠만 있으면 1인 방송을 해서라도 먹고 사는 세상이니 안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다 완성된 미역창고는 참으로 근사하고 부러웠다. 누군가는 이렇게 자기만의 슈펠리움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즐거운 일을 한다. 심지어 조그만 보트도 사서 저자의 닉네임인 오리가슴 글씨도 크게 쓰고 잘 타고 다닌다. 이렇게 컨텐츠를 만들어놓으면 이걸로 책도 쓸 수 있고 수익도 조금 얻을 수 있으니 인생의 선순환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들 행복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지만 은퇴 후에 가꿀 텃밭을 얻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다. 혹은 원하는 미래는 자꾸 뒤로 뒤로 미뤄져 겨우 그 때가 온들 너무 늙어서 그럭 마음도 기력도 증발한 후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작가가 알려주는 좋은 삶은 멀리있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인 슈펠리움을 일단 마련할 것, 거기에서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날아다니는 생각을 실컷 할 것-창조성의 원천이 된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할 것 등등.

걱정과 불안을 줄이는 법도 알려줬다. 개념화시키고 가나다 순으로 적어보는 것이다. 이건 작가가 알려주기 전에 내가 스스로 터득해서 하는 방법인데 효과가 있다. 글로 적어보면 얼마나 하찮은 일로, 혹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일어나지 않을 일로 걱정하는지 빤히 보인다. 그렇다고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한 불안감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 좀 더 실체가 분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불안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하찮은 것이라면 걱정을 그만하면 되고, 통제가 안 되는 일이라면 애초에 포기하고 될대로 되라고 놔두는 게 답이니까.  

 

가끔 야해보이는 말도 하는데 이 분의 실제 생활은 너무나 건전해보여서 그 괴리에 웃음이 난다. 기껏 오는 사람이 부인이나 오래된 친구들이라니... 그래도 그 건강함이 참으로 멋있다. 자기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위해 실천하는 분이다. 독자들에게도 이렇게 살면 된다고 몸소 보여준다. 낚시 좋아한다고 배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바다를 좋아해도 실제로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사는 분은 더욱 드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안 하면 언제 하랴 싶은 순간이 온다면 모두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tv만 보면서 연예인 흉보다 늙어가는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요즘은 남의 삶을 관찰하며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남의 연애, 남의 자녀, 남의 집일 뿐이다.

283페이지를 다 읽고 마음에 남은 구절은 하나뿐이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한다는 게 조금 슬프지만 행복해지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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