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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그리던 아버지가 되어 - 죽음을 앞둔 서른다섯 살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하타노 히로시 지음, 한성례 옮김 / 애플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암에 걸려 젊은 나이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아직 아기인 아들에게 남기는 글을 모아 에세이로 냈다.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3년, 아들은 이제 2살이다. 의사의 예상시간이 맞다면 저자는 아들이 초등학생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저자는 아들에게 당부할 말을 마치 유언처럼, 그렇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적어내려갔다. 사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에게 전하는 지혜라는 설정을 빼더라도 이 글 자체로 누구나 납득할 내용이다. 원제는 일본어로 僕が子供の頃、欲しかった親になる。직역하면 '내가 어릴 적 원했던 부모가 되다'. 그렇다, 저자는 자기가 꿈꾸던 아버지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 아들의 긴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남기기로 한다. 아들과 함께 나이먹고,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시의적절하게 고민을 나누는게 더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남은 물리적인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서른다섯 살의 포토그래퍼 아버지, 객관적으로 봐도 주관적으로 봐도 너무나 짧은 인생이다. 요즘 35살은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이 나이에 무슨 인생이 경험이 그리 많으랴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글을 읽기 전에는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남자는 건강하고 다소 철없는 미혼의 35살이 아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고, 암투병으로 체력까지 저하된 절박한 35살의 아버지이다.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떠나기 싫을 것이다. 의사가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았다면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을 쳤을 나이이다. 하지만 그는 다발골수종이라는 암에 걸렸고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은지 자기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 부분이 다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기적이 가끔 있고 의사가 죽음을 선고했다고 그 시간 안에 모두 운명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가 자기 인생을 정리하는 것은 하되, 자기 운명에 대해서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지켜보면 어떨까 싶었고 그의 재능과 젊음이 아깝기까지 했다. 하지만 저자가 내 생각을 알면 이 또한 다정한 학대라고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무척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살면서 좋은 부모를 만나 그 나잇대에 맞는 도움을 받고 부모자식이 서로 성장해가는 좋은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 않다. 준비없이 부모가 된 사람도 많고 또 부모가 된 것 자체가 처음이기에 실수도 많고,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구체적인 다짐이나 생각이 없이 아이가 생겨서 자동으로 부모가 된 사람들도 많다. 자식도 자신이 어떤 부모를 가졌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생활한다. 부모 자식간이란 운명이기에 대개는 자라면서 남의 아버지와의 비교를 통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삶의 지혜는 결국 저자가 젊은 시절 몸소 사회의 쓴 맛을 보면서 깨달은 내용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도 자신과 똑같은 고생을 하고, 전철을 밟으며 어른이 되길 바랄까?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줄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더라도 흙탕물은 피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 것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아들에게 "유優"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형용사로 읽으면 야사시이, 즉 상냥하다, 다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이다. 기초 일본어에도 나올 만큼 쉬운 한자이므로 누구나 읽기 쉽고, 또한 중성적이어서 남자나 여자나 사용할 수 있다. 그는 온화하고 다정한 게 좋아서 그런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아들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작가가 말하는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란 그저 연약하고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강인하고 적극적인 선한 사람을 의미한다. 아들이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다정한 가진 사람이 되도록 구체적인 방법론을 적었다. 그 세세한 내용이야 책을 읽은 게 나을 것 같고 아버지가 가르쳐주는 삶의 잔꾀 부분이 마음에 든다. 말이 잔꾀이지 요즘같은 세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언이다.


그는 싫은 사람을 상대하는 법, 왕따를 당했을 때 대처법, 꿈과 일과 돈이란 어떤 것인지(먹고 살기 위해 돈벌이로 하는 일과 꿈을 위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분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왜 혼자하는 여행이 좋은지, 배우자는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남들이 부정적인 말을 쏟아낼 때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등 아버지가 곁에 있다면 아들에게 당연히 해주었을, 혹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주었을 지혜를 꼼꼼히 적어두었다. 그 따뜻한 부정에 가슴이 아파오는 에세이다. 그러나 저자는 건강했을 적 사냥을 즐기던 터프가이였고, 몸이 많이 아픈 지금도 남이 자신을 동정하는 것을 끔찍히 싫어한다. 어머니가 울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무쇠같이 단단한 아버지가 가슴에 사랑을 숨기고 담담히 전하는 말이라 더욱 깊은 울림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