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유정식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확히 어떤 책인지 제목만 보고 와닿지는 않았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을 위한 길잡이가 되겠구나 싶은 마음에 책을 들었다.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미국의 작가이며 마케터이고 베스트셀러를 여러권 썼다고 소개되어 있다. 무려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까지 되었다는데 솔직히 말하면 목차에 따라 분명히 내용이 진행됨에도 다소 산만하고 마치 인공지능이 책을 쓴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한 페이지에 적어도 3명 이상의 유명인이 한 말, 각종 사례가 줄줄히 나오는데 처음에는 아는 작품이나 작가가 나오면 유심히 봤지만 너무 많은 인용이 이뤄져서 이 책을 작가가 스스로 자기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쓴 것인지 흔한 미국식 베스트셀러로 급조하기 위해 유명인 기사나 짜깁기를 한 것인지 의아한 기분마저 들었다. 여기 소개된 각종 인사와 사례의 갯수를 세면 수백건은 될 듯 하다. 그러나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지나친 인용과 참고 자료를 따라가다보면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어지러운 느낌도 들었다. 

 

 

일단 책은 크게 네 챕터로 이뤄져 있다. 창조의 과정, 포지셔닝 하기, 마케팅의 기술, 플랫폼 만들기이다. 그러나 내가 정작 궁금한 어떻게 창작을 하는지 어떻게 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은 없다. 여기서 저자가 마케터인 점에 주목하게 된다. 진정한 내용은 두번째 챕터부터 나온다. 이 사람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어차피 자기가 줄 수 있는 답이 아니므로 패스한 듯 하다. 잘 만든 다음에 어떻게 팔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오래 살아남고 사랑받는 작품을 쓰라고 하는데 이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조언이다. 심지어 며칠, 혹은 길어야 한 달 멜론 차트에 올라가는 유행가를 만드는 사람들도 그렇게 금방 자리를 내주고 잊혀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판매에 관한 상세한 기술도 몇 가지 안내하고 있다. 요즘 창작은 단순한 글쓰기만이 아니라 작곡, 영상물 제작, 음악가, 유튜버 등 그 종류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창작자들이 오래 살아남을 작품을 일단 만들면 어떻게 홍보를 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팀을 구성해야 하며, 그래서 어떻게 팔아야 한다라는 것을 순차적으로 알려준다. 예를 들어 공짜를 활용하라 같은 기술인데 아마존 전자책, 블로그 마케팅, 넷플릭스 같은 유료 채널이 처음에는 진입 장벽을 낮춰서 무료 혹은 그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팬을 확보하고 그 후에 기막히게 좋은 기능을 얹은 프리미엄 버전에는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식이다. 또 이메일 마케팅이 무엇이고 어떻게 할 것인지 이것이 왜 플랫폼이라는 일종의 판매 체계와 연결이 되는지 설명도 나와있다. 마찬가지로 단순한 팬에 그치지 말고 중독자를 만들어서 기능에 상관없이 애플처럼 충성적인 고객을 만들어라 같은 조언도 들어있다. 문제는 이런 방법이 이미 알려진 기술이란 것이고 여전히 나는 눈이 번쩍뜨일만큼 잘 만든 작품이 우선이지 그 후에 어떤 마케팅 방식을 택할지가 더 중요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크리에이터가 스스로 감추는 게 아니라면 작품을 만든 후에는 공모전이든, 유튜브이든, 본인의 블로그이든 적당한 마케팅 방식이 있을 것이고 인터넷이 있는데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저자가 중시한 이메일 마케팅에도 고개를 갸우뚱한 것이 요즘 무슨 제품이 나왔다거나 어떤 알고 지낸 업체에게서 홍보 메일을 받고 '아, 참 반갑다'라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싶다. 나같은 경우는 스팸메일함에서 안 찾으면 다행이고 예전에는 단체 메일도 많이 보내봤지만 처음 한 두번이면 모를까 확인해보면 일단 받은 사람이 수신거부하거나 차단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다 올드하고 식상한 것은 아니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돈을 벌라는 조언 등은 참고가 된다. 작가의 주요 수익이 로열티나 매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설, 강의, 컨설팅에서 나온다라니. 요즘 작가들은 진짜 그렇지 않은가? 책을 내고 유명해진 사람도 있고 유명해진 후에 책을 낸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책을 팔아서 돈을 벌기란 웬만한 베스트셀러로는 어림도 없다. 실리콘벨리 기업가들은 친구 회사에 투자를 더 잘한다던가, 뮤지션들에게 수익은 음반이 아닌 순회공연, 광고, 티셔츠 같은 굿즈판매에서 나온다니 웃프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자의 대다수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이만한 조언도 없는 셈이다. 한개의 작품만 쓰고 사라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음 작품을 만들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저자는 잠재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기꺼이 탐색하려는 열의가 중요하다고 한다. 어차피 작품은 어떻게든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 그런 방법이 나온 책은 아직까지 못 봤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다고 작가가 되는 게 아니며 심지어 그 책 제목은 그닥 내용과 관계도 없다. 책 제목 자체가 일종의 마케팅 수법이었던 셈이다. 창작에 쉬운 길은 없다는 것이 "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를 읽고 똑같이 또 내린 결론이다. 그저 방법은 방법일 뿐 방법을 써먹을 뭔가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당연한 결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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