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밤
정은이 지음 / 봄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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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에세이를 읽었다. 글이 솔직하고 따뜻하다. 저자는 30대의 직장여성으로 성인 ADHD를 앓고 있는 사람이다. 난 사실 요즘 흔히 듣는 정신질환을 10~15년 전쯤에는 거의 못 들었기 때문에 공황장애와 마찬가치로 ADHD도 마치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몸의 질병처럼 마음의 병에도 어떤 유행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한 사례를 읽고 나니 아마도 내가 어린 시절에는 아직 연구가 활발하지 않아서 병명을 붙이지 못했을 뿐 오래 전부터 계속 있었던 병은 아닐까 추측한다.

사실 이 책은 ADHD환자인 저자가 쓴 것이지만 병 자체가 큰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물론 본인은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이고 처음 진단받고 나서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제3자이고 완전 타인인 독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거의 모든 남의 고백이 그러하듯이 크게, 대단하게, 엄청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니 작가님도 안심하시길 바란다. 진짜로 세상 사람들은 남일에 별 관심이 없고 또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도 않는다는 걸. 도리어 '아, 저런 감정은 나도 느끼고 옆집 사람도 느낄 거 같은데...'싶은 부분은 너무나 많았다.

제목이 참 특이하고 이상적이라고 느꼈는데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밤'은 방송에서 홍진경씨가 말한 행복의 의미란다. 나야말로 자려고 누우면 별의별 걱정, 오늘 하루 다 못한 일, 각종 후회가 밀려와서 여러 번 뒤척이곤 한다. 아무 걱정없이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밤이 과연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저자는 불안 증세가 너무 심해져서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상담 내용이 인상적이다. 그녀가 겪는 고민이 과연 ADHD환자만의 고민인가 의아할 정도로 내 눈에는 지극히 정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부딪히는 나와 다른 남, 열심히 사는 사람 특유의 강박과 불안 심리, 이제 처음 엄마가 된 워킹맘의 고민 등 아마 저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부지기수일 것이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저자가 자기 탓할 때, 대부분은 남탓을 하고, 저자가 자기를 괴롭힐 때 절대 병원에 오지 않는 진짜 환자들은 남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이 책 읽으면서 완전히 동의한 내용은 회사에 정말 착하고 일 잘하고 섬세한 사람은 상처를 받아 못견디고 퇴사하고 그 반대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내가 회사 다니면서 느낀 바가 딱 그렇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 중에 얼마나 많은 수가 무능한데 아부를 잘해서, 라인을 잘 타서인가, 반대로 독한 상사나 동료의 뒷담화 등 등쌀에 못이겨 그만두거나 다른 직장으로 이직한 사람 중에는 얼마나 아까운 사람이 많았던가.

 

책 중반으로 가면 어떻게 저자가 ADHD를 이겨냈는지 그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읽다보면 그녀가 완치 판정을 받는다면 그건 약발(?)이 아니라 순전히 본인의 용기와 노력 때문임을 알게 된다. 결국 모든 마음의 병이 그렇듯이 일단 과거의 상처를 온전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누구나 너무 고통스러워서 영원히 봉인하고 싶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게 비밀이라면 비밀이 하나도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어릴 때이든 커서든 겪게 되는 안 좋은 일을 두려움없이 마주보고 그 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또 책 속 상담사의 조언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정신과 상담료는 한 시간에 99,000원이고 그것도 한달치를 선결제해야 한다는데 이 책을 읽으면 왠지 가벼운 증상은 자가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 ㅋㅋ 불안증을 줄이는 방법으로 본인과 주변사람이 잘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볼 것, 지옥은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지 않는 한 계속된다는 것 등이 소개되었다.

 

저자는 사랑하는 딸과의 행복을 위해 불행의 사슬을 끊어버렸다. 그녀에게는 다행히 밝고 건강한 남편이 있어서 조력자가 되어 주었고 예쁘고 착한 딸아이도 늘 빛이 되어주었다. 번듯한 타이틀을 가진 박사나 교수들이 쓴 심리학서도 여러 권 읽었지만 그분들의 책은 이성적이고 피상적인 사례 모음집 같은 느낌이었다. 저자는 한동네에 사는 30대 주부같이 친근하고, 또 솔직하다. 요즘 나오는 일반인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지들에게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나도 힘내서 살고 있으니 여러분도 힘을 내세요' 같은 따뜻한 응원의 마음. 병명이 ADHD이건, 공황장애이건, 흔한 우울증이건 뭐가 중요할까. 이겨내려는 의지, 행복해지려는 마음을 잃지 말고 모두들 밝은 미래를 끈질기게 상상했으면 한다. 참 좋은 책을 읽어서그런가 오늘은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을 거 같다. 어차피 세상일이란 게 마음에 걸리든 안 걸리든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게 되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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