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 안전가옥 앤솔로지 2
시아란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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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에 이어 안전가옥의 두 번째 앤솔로지 시리즈 '대멸종'을 읽었다. 앤솔로지란 말이 좀 어려운데 찾아보니 선집이란 뜻이란다. 엔솔로지의 어원이 꽃다발이라는데 이 단편집은 대멸종이란 다소 어려운 주제로 쓴 단편을 꽃다발처럼 모은 것이었다. 사실 대멸종은 종이 멸망한다는 뜻이니까 인류도 하나도 동물군으로 봐서 나머지는 살아있고 인류만 망한다고 본 것인지 모르겠으나 소설을 다 읽고나면 제목은 대멸망이 더욱 타당하다는 느낌이다. 싹 스며드는 소설집 제목은 아니다.

 

 

각설하고 총 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작가 이력이 특이하다. 웬 공학박사 연구원에 심리학 전공자, 직장인까지 다양하고 전작인 냉면에서 본 작가가 또 보여서 반갑기도 하다. 다양한 작가의 단편집인만큼 소설의 개성도 강하고 작품성도 다소 들쑥날쑥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개인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첫번째 소개된 시아란 작가의 '저승 최후의 날의 기록'은 윤회나 저승사자 등 다소 식상한 주제를 리포트처럼 풀어낸 것이라 나는 좀 지루했다. 기본적으로 판타지물도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을 좋아하기에 섞어찌개식의 사후세계가 잘 납득이 가지 않고 아예 죽은 뒤라면 그 후의 상상은 아무려면 어떠랴는 생각도 있었다. 저승이 망하는 걸 걱정하는 건 저승사자뿐일지도?

 

 

 

두번째 작품은 심너울 작가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인데 나같이 현실기반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 강추다. 작년에 열심히 본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오버랩 되면서 게임, 가상현실, 버그 등의 소재를 실감나게 다뤘다. 이 정도 지식은 그냥 사전조사만으로는 나올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 후기를 보니 코딩을 1년 배웠다고! 이 작가는 대학 때 마침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있었고 코딩 열풍이 불 때 직접 수강한 학생이 아닌가. 마구 웃음이 나는 순간이다. 캐릭터가 65,536번 점프를 하면 버그가 나서 서버가 터진다. 그 오류를 막기 위해 투입된 신규 프로그래머인 주인공은 원개발자가 의도적으로 심은 버그를 막기 위해서 그를 찾아야 한다! 게임회사 사장인 현빈이 버그 수정을 위해 개발자 찬열을 찾아가면서 모험이 시작되는 장면이 연상되면서 히죽거리며 읽게 되었다. 결말이 다소 황망한 것까지 둘은 닮았지만 물론 스토리상에 다른 공통점은 전혀 없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작가의 경험을 독자 자신의 경험과 비추어 어떤 점접이 있을 때 더 사실감을 느끼는 거라 내 취향은 제대로 저격이다. 게임알못이지만 개발자가 만들어놓은 던전이라든가 숨겨진 코드를 해석해서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재미있다. 이 작품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작품은 그 소재의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빛을 다 발하지 못한 느낌마저 든다. 왜냐하면 다른 작품은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 너무 가버린 판타지의 세계라서 완전히 푹 빠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냉면도 그렇지만 대멸종도 실험적인 단편선임에는 확실하다. 더운 여름, 뱃살 사이로 땀이 흐를 때 딱 읽기 좋은 판타지 선집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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