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쉬는 날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54
차야다 지음 / 북극곰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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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야다란 작가의 '아빠 쉬는 날'은 너무나 예쁜 그림책이다. 동물 주인공도 그렇고 화사하고 세련된 그림체 때문에 혹시 외국작가인가 했는데 프로필을 읽어보니 한국사람이다. 궁금해서 찾아본 작가 인터뷰에 이름인 '야다'는 히브리어로 보다, 깨닫다라는 뜻이라고 나와있다. 본명이라면 참 특이하고 좋은 이름이다. 부산 국제 어린이 청소년 영화제에서 미술감독도 하고, 지금은 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인가보다.

 

 

그림책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많았다. 어른이 2번을 읽어도 새로운 게 보이고 재미있다. 오랜만에 아빠가 쉬는 날, 아들은 아빠와 놀고 싶은 마음에 학교에서도 집중이 안 된다. 시간은 더디 흐르고 머릿 속엔 온통 집에 가서 아빠랑 놀 생각뿐이다. 그런데 아빠는 눈 떠보니 오전 11시, 침 흘리며 깜짝 놀라는 표정이 웃기다. 아이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때도, 청소를 할 때도, 드디어 일과가 끝나서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갈 때도 내내 아빠 생각뿐이다. 그런데 집에 있는 아빠는 나름 바쁘고 또 느긋한 휴일을 만끽중이다. 두 사람의 대조된 하루 일과와 생각에 위트가 넘친다. 애완동물로 보이는 곤충들도 집에서 나름대로 자기 생활을 하고 있고 벽에는 아빠와 아들의 다정한 사진 뿐 아니라 그 애완곤충 사진까지 붙어있다. 깨알 설정이 너무 웃기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다.

 

 아이는 아빠 생각 별로 안 한다고 말은 하면서 집에 가는 버스 유리창에 아빠랑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린이들의 좋으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좋은 이중심리가 잘 나타나있다. 아빠가 바빠서 충분히 놀아주지 않는 서운함이 비오는 날 풍경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책이 큰 편이라 펼친 그림이 아주 시원시원하고 비오는 날 강하게 부는 바람이 세차게 흔들리는 나무를 통해 여실히 느껴진다. 그래도 오늘은 아빠가 쉬는 날, 아이는 오늘만은 아빠가 자신과 놀아줄 거라며 잔뜩 기대를 하고 돌아가는 중이다. 비오는 날 버스 정류장은 지붕만으로, 아빠가 마중오는 장면은 우산만으로 위에서 헬리켐을 띄운 듯 감각적인 연출을 했다. 작가의 이력이 새삼 떠오르는 멋진 씬이자 이제 동화는 클라이막스로 가고 있다. 다음장에는 풀페이지로 부자 상봉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우산 들고 마중나온 아빠에게 와락 안기는 아들! 반달이 된 눈, 웃느라 벌린 입, 아이 특유의 가늘고 고운 머리가 결결히 살아있다. 살짝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 비오는 날 부모님이 마중나와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반가움, 고마움, 사랑하는 마음이 그 한 씬에 다 들어있다.

 

그 다음 장면은 비오는 날이라는 설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아빠가 쉬는 날에는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어디 가지 않아도 둘이서 보내는 일상으로도 충분하다는 작가의 메세지가 전해진다. 직장 다니는 바쁜 아빠를 둔 아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을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5살 조카도 아주 좋아하면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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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안녕하신가요? - 열여덟 살 자퇴생의 어른 입문학 (入文學)
제준 지음 / 센세이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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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청년 제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당신의 꿈은 안녕하신가요?'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청춘이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에세이집이기도 하고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본인의 생각과 의지를 담은 청춘을 위한 자기계발서라고도 볼 수 있다. 책 표지에는 18세 소년이라는데 사실 소년이라기엔 좀 많은 나이이고 19세부터는 대학을 가는게 보통이므로 내 느낌상 청년으로 해둔다.

 

제준은 자퇴가 꽤 큰 고민이었던 것 같다. 여러차례 이 이야기가 나온다. 내 개인적으로는 자퇴가 크게 문제될 것도 없지만 또 어떤 자랑거리도 아니라고 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끝없이 다니는 학교생활은 지겨웠고 수업시간에는 졸기 일쑤였고 지각하지 않으려 쏟아지는 잠을 참고 억지로 일어나야했다. 제준이 말한 학교가기 싫은 이유나 느낌은 우리나라 청소년이라면 거의 다 느낄 그저 평범하고 똑같은 마음이다. 다만 그래도 대부분은 학교에 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게 성실함의 문제라고도 생각한다. 30분 일찍 가는 것보다 10분 지각하는게 더 쉽다, 학교가기 싫을 때 꾀병을 부려서라도 안 가는 게 너무나 가기 싫은 날 참고 가는 것보다 백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의지이다. 학교 교육이 어느 부분에선 부질없고 실용성 면에서 큰 쓸모가 없지만 한 편으로는 그럼에도 학교라는 게 각 나라마다 있고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꾸역꾸역 다니는 것은 나름의 역할과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만난 친한 친구들을 평생 만난다. 그 때 그 치열한 시기, 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집단 속에서 배우고 느낀 것에 때로 불만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다. 한 반에 수십명이 섞이면 분명 싫은 애가 있다. 선생님도 각 과목마다 얼마나 많이 계신가? 내 마음에 드는 선생님도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응축된 사회를 가장 예민한 시기에 미리 겪는다. 그러나 내가 그렇다고해서 남도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제준을 통해 지금 딱 이 시대의 청소년 마음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제준은 자퇴를 하긴 했지만 소속감이 없어서 불안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게 병이 되어서 공황장애를 얻기도 했다. 심지어 소개를 받기로 한 새로운 친구가 제준이 자퇴생이란 얘기를 듣고 안 나오기로 했단 소리에 상처도 받는다. 또 아직까지 학벌위주의 우리나라에서 자퇴생이 흔한 존재는 아니기에 친구들의 수군거림이나 어른들의 짖꿎은 질문에 무작정 노출되기도 한다. 자퇴가 본인이 선택이었다고는 하나, 자기에게는 어려운 결정을 남들이 쉽게 들춰내는 게 기분 좋을리 없다. 하지만 그는 그런 안 좋은 경험들을 통해서도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나이보다 성숙해보이는 이유기도 하다.

제준은 학교를 그만두고 마냥 놀지 않았다. 대안학교를 가서 1년을 다니고 덴마크로 단체 견학도 가고 독서 모임에 참가하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는 등 나름대로 바쁜 10대의 생활을 이어간다. 물론 시간이 많으니 초반에는 게임도 하고 놀기도 실컷 논 것 같다. 고등학교에 계속 다녔다면 누리지 못할 호사이다. 가정형편도 남들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용돈이 150만원이라니.. 용돈이 월급 수준인데 나중에 예상 연봉을 1억 잡고도 부족할 거 같다는 글을 보고 웃고 말았다. 이 청년은 대졸자 사회 초년생이 연봉 1억은커녕 3~4000만원도 겨우 받는다는 걸 알까? 그나마도 매해 몇 프로라도 올라가거나 안 짤리면 다행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 다르게 사는 이런 사람이 성공하면 좋겠다. 똑같이 학교 나와서, 죽어라 공부해서 인서울 4년제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니면 좋겠는데 이미 좋은 대학 나와도 들어갈 직장이 얼마 없다. 직장 들어가도 많이들 그만둔다. 아침에 출근하는 화이트칼라도 이제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도 않다.

그래서 더 이 팍팍한 한국사회에서는 제준처럼 꿈을 다양하게 가지면 좋겠다. 작가될 꿈을 꾸고, 예술가가 될 꿈을 꾸고, 돈을 많이 벌어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할 꿈을 꾸고, 그렇게 자기 꿈을 당당하게 실천하는 사람 제준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행복은 찰나의 감정이지만 그 중심에는 역시 '나'란 존재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면 굳이 평범해질 이유가 없다. 자퇴가 큰 일이긴하나 대학도 원하면 그 때가서 가면 그만인 세상이다. 인생을 길게 보면 그보다 큰 일은 차고 넘친다. 실상은 내 궁금증은 자퇴생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 이후가 궁금했을 뿐. 나 학교 다닐 때는 퇴학생도 있었다. 다만 그 친구를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등교길 교문에서 봤는데 학교에 들어가는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을 뿐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본인의 몫이다. 제준은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써서 책을 냈다. 머리로 생각만 하고 전혀 실천하지 않았다면 그저 자퇴생으로 끝났을 것이다. 제준은 자퇴생 그 이후를 쓰고 있다.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청년 작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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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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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이력의 작가라 책을 읽기 전부터 관심이 갔다. 서울대를 졸업했고 교사를 하다가 몇 년만에 그만두고 낮에는 복싱을 하고 밤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라니? 단편마다 페미니즘의 진한 향기가 나고 소재도 참으로 다양하다. SF요소가 섞인 '내가 만든 여자들', 성소수자인 두 엄마 아래서 자란 '나'가 주인공인 엔드 오브 더 로드웨이, 요즘 유행인 주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나는 '회송'도 있다. 어떤 단편은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이라 추측되고 어떤 단편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분명히 섞였을 거 같은 내용도 있다. 또한 게 중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을 때처럼 정신이 아득해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삼백칠십오 년의 라벤더, 그리고 남아프리카 원산지의 크크크'같은 실험적인 단편도 있다. 무려 12편의 단편소설이다.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초콜릿 상자를 여는 것처럼 다양한 소설을 실컷 읽는 기분에 신이 난다.

 

 제목으로 선택된 '내가 만든 여자들'도 그렇고 몇몇 작품은 단편이라는 틀에 갖혀있기엔 아쉬운 분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인 거 같은데 급하게 끝을 내버린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기 좋은 소재이기도 한데 짧아도 너무 짧다. 왜 부장의 D데이는 나오질 않는지, 어떻게 그 인조 인간들이 감쪽같이 살인을 하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방법은 안 그린 건지, 좋은 커피 한 잔 얻어마셨다고 살인행각에 훌렁 동조해버리는 신입이라니 그저 자세한 뒷이야기가 궁금하기만 하다.

'회송'이란 단편의 지하철 소재도 참으로 자세하고 신선했으며 혁진과 진아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 작품이다. 이들은 다음에 중편이상의 분량으로 재탄생하면 좋겠다. 신붓감 일순위라는 한 줄로 대변되는 여교사와 대기업 남직원의 지겨운 연애는 마치 교사란 직업이 상징하는 것처럼 안정적이지만 지루한 현실을 상징하고 독특한 취미를 가진 혁진과의 대학시절 연애는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너무나 소중한 꿈과 이상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동대문역사공원역, 노원역, 홍대입구역은 다 내가 가 본 역이자 익숙한 곳이라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다.

또 '바지락 봉지' 에 나오는 음식묘사는 얼마나 찰지고 맛있던가? 이 작가는 음식에 보통 조예가 깊은 것이 아니다. 맛있는 녀석들의 김준현만큼이나 제대로 먹고 맛을 아는 게 분명하다. 이 작품 외에도 거의 모든 단편에 음식이 나오는데 내용에 관계없이 침이 고인다. 코코넛 냄새가 나는 알록달록한 떡, 끈끈하고 달달한 육수에 말아낸 갈비국수, 팔뚝만한 러시아 양꼬치에 발티카 맥주, 꽃향기가 나고 초콜릿 맛을 품고 볶은 견과류의 고소함이 감도는 커피, 너무 추운 날에 먹는 바지락 칼국수에 소주 한 잔.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 맛있는 음식 속에 묻어있는 추억을 못 잊어서 웃고 운다.

권투를 하는 소설가라면 맷집도 좋을 것이다. 감칠맛 나는 단편을 읽어나가며 다음에는 이 작가의 중편이나 장편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끝까지 주인공들을 몰아붙여도 좋지 않을까? 마치 시나리오의 시놉시스만 읽고 책장을 덮는 것처럼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많았다. 출판사에서 등단도 하지 않는 작가의 작품을 책으로 엮어줬다고 하는데 그 안목에 감탄한다. 충분한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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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을 포기했다
김천균 지음 / 책들의정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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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역설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행복을 포기했다'는 정말 행복을 포기하란 소리가 아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포기하면 진정한 성공이 다가오듯이 행복 추구를 포기하면 역설적으로 행복이 다가온다는 의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소확행이란 말이 유행한지 오래이다. 작고 확실한 행복을 누리자는 뜻인데 이는 소비성향과도 맞물려서 불경기로 많은 비용이 드는 소비를 할 수 없으니 작은 소비를 통해서라도 확실한 행복을 느끼자라고 발전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꾸준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든, 고급 빵집의 빵을 사먹든 소비를 통한 행복은 찰나적이다. 아주 잠깐 왔다가 휘발성으로 사라진다. 오히려 불행을 느끼는 게 더 꾸준하고 오래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꾸준하고 확실한 행복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 강사로 지낸 사람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 위인들의 사례가 참으로 많이 소개되었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한 사람, 빅터 프랭클을 보니 반가웠다. 나는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감명깊게 읽었다.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데 유대인이란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고 거기서 누이를 제외한 가족 모두를 잃었다. 그 끔찍한 수용소 생활을 겪으면서도 인간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 곳을 벗어나면 삶의 의미에 관해 책을 쓰리라 마음먹고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반드시 살아서 나가려는 의지를 다졌다. 수용소에서 관찰한 동료 유대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고 사실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불행하고 끔찍한 상황에 놓여있어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비율로 살아남았다. 빅터 박사는 '인간의 주요 관심사는 자기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만족감과 사명감이다'라고 말했다.

 

 

박사와 같은 사람이 소확행이 있어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삶의 목표의식, 사명감에서 나온다는 확신이 드는 내용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부모와 형, 아내와 아이들까지 잃은 사람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을 느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더 차원높은 목표의식이 있었기에 자살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았다. 의미 치료를 창시했고 정신의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행복은 주변사람과 비교해서 얻는 것도 아니고 물질적인 풍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300페이지가 넘게 사례를 들고 분석한 내용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행복은 사랑을 통해서만 온다'라는 것이다. 빅터 박사도 수용소를 나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소망을 품지 않았더라면, 수용소에서 나와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과 의사로 공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 생활을 견딜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원시림의 성자라 불린 슈바이처 박사의 헌신도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말씀에 감명을 받아 안락한 생활을 포기, 늦은 나이에 의사가 된다. 슈바이처 박사는 자신만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서는 안되고 모든 인간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 생명 경외 사상이 있었기에 날벌레가 타죽을까봐 밤에는 창을 닫고 불을 켜지 않았고 나뭇가지 한 개도 함부로 꺾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분은 사람만이 아니라 동식물까지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불쌍히 여기고 아꼈던 것이다.

목적있는 삶, 남을 위한 삶을 살 때 내 삶이 더 가치있어지고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게 아이러니다. 나만을 위한 행복추구를 단순히 생각하면 먹고 싶은 음식을 한계치를 갱신해가며 먹고, 하고 싶은 게임을 실컷 한다거나 tv를 종일 본다거나, 오직 소비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 우울증의 위험만 높일 뿐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타적인 사랑을 할 때 찾아오는 행복, 이 책은 행복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생의 목적의식은 그리 쉽게 찾을 수 없고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매일 생계걱정을 하며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쩐지 먼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므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사랑을 하면 행복은 애써 찾지 않아도 옆에 와있을 것 같다. 16가지나 되는 지혜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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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제국주의 - 누가 블록체인 패권을 거머쥘 것인가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40
한중섭 지음 / 스리체어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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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을 때 비트코인에 투자하거나 혹은 암호화폐 전반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 박상기의 난으로 불린 대폭락 사태를 겪고 대다수의 불나방 같은 투자자들은 판돈만 잃고 떠났다. 나는 그 후에도 카페를 들락거리면서 추이를 지켜보았는데 비트코인 뿐 아니라 다양한 알트코인이 생겨나고 사그러지고 또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지금 같은 과도기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도 리브라라고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한다고 하는 뉴스를 봤다. 이런 시기에 딱 맞춰 좀 더 학문적으로 비트코인을 들여다봐도 되지 않을까 싶을 때 나온 책이 '비트코인 제국주의'다. 이 책은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에 투자를 하냐 마냐하는 투자서가 아니다. 비트코인을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풀어낸 경제/경영서이다. 현대사회는 무력이 아닌 돈으로 전쟁을 한다고 한다. 오늘도 미국과 중국은 관세문제를 놓고 한판 붙었고 우리나라와 일본도 경제 전쟁을 하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주의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과거의 전쟁이 땅따먹기 양상이었다면 현대의 전쟁은 무역으로 대변되는 돈으로 이뤄진다. 또한 이미 유럽은 미국에게 졌고 세계는 미국과 중국 이 두 나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있기는 하나 내가 보기에도 중국쪽에 붙기 보다는 미국쪽으로 돌아설 것 같다. 역사적으로 미국에 반기를 들고 살아남은 국가가 없다. 미국의 무역제재가 한 번 들어가면 그 나라 경제는 파탄이 난다. 그렇다면 미국은 비트코인에 대해 어떤 생각일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국이다. 이 사실만 보면 미국은 비트코인에 반대할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이 오히려 비트코인을 달러의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금 같은 대체 자산으로 생각한다는 것이고 새로운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미래 화폐가 될지도 모르는 비트코인을 선점하고 있다. 미국 유수의 기업들, 스타벅스나 페이스북, 월마트, IBM같은 곳들도 이미 암호화폐의 미래 가치에 대해 연구하고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는 팩트가 놀랍다.

 

나는 스타벅스의 리워드 제도, 스벅의 어플 등에 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스타벅스앱에 돈을 예치한 고객들의 예치금이 12억 달러로 미국 웬만한 중소 은행보다 많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뿐만 아니라 미국내 스타벅스 모바일 페이 사용자수가 구글 페이나 삼성 페이의 두 배가 넘는다니 스타벅스가 글로벌 비트코인 은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정말 자사의 시스템을 잘 이용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전세계 17억명은 은행계좌가 없고 그 중 67퍼센트는 모바일 기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들이 스타벅스 은행의 고객이 되기란 너무 쉬운 일 아닌가?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는 정치 경제적 낙후성 때문에 비트코인의 인기가 많은 나라인데 은행 계좌가 없어도 금융수요는 충분하므로 비트코인이 좀 더 활성화되면 가치가 없는 자국의 돈 대신 안정화된 비트코인을 이용하고도 남을 것이다. 돈다발을 수북히 가져가도 햄버거 하나 사먹을 수 없고 오늘 우유값과 내일 우유값이 다르다는 얘기는 뉴스에서도 봤다. 아.. 이 얘기는 참 가슴 아프다. 일본의 경제 침략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환율이 급등하고, 동시에 주가는 내려간 오늘만 봐도 하나의 국가가 이루는 화폐 가치란 결국 달러 대 자국 통화인데 우리나라 돈이 가만히 있어도 대외적으로 한국돈의 가치를 낮게 쳐주면 내 노동력이나 자산은 어이없이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비트코인 역시 강자독식이라는 제국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먹이감이 될 거라는 게 이 책의 우울한 전망이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살아남으려면 비트코인을 투기와 암호기술로 이분화하지 말고 그 자체로 들여다보고 다른 선진국처럼 빠르게 선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신뢰를 얻으면 그 때부터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니 서두르라는게 저자의 조언이다. 나 역시 이제는 현금을 거의 들고 다니지 않는다. 몇 년부터는 신용카드만 지갑에 있고 그나마 신용카드도 없이 각종 페이나 어플만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마차에서 자동차로의 변화, 현금에서 신용카드로의 변화 모두 처음에는 신뢰를 얻지 못했고 규제가 심했다.

 

투기 광풍 세력에는 단호히 대처해야겠지만 세계화폐가 될지도 모르는 암호화폐 세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민 개개인은 물론, 국가차원에서의 투자와 연구가 더 필요해보인다. 지금 우리나라는 우버 같은 차량공유 제도를 택시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막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게 얼마나 갈까 싶다. 마치 에어비앤비나 다른 공유서비스처럼 어느날 전세계인이 거의 다 쓰는 일상 서비스가 되고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는 날 분명 규제는 바뀔 것이고 그 때는 너무 늦어 글로벌 기업에 잠식당할 위험이 크다.

 

다른 책에서도 봤는데 달러의 가치는 이미 5%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미국이 달러를 대신하는 미래의 화폐로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준비한다면 우리나라 역시 늦지 않게 대처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의 무역전쟁을 보면서 상상력이 전혀 없는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가 실감한다. 수많은 소재와 기술을 일본에 의지하고 대체재도 없이 공장과 설비를 늘리고 장미빛 미래만 생각했다면 무서운 일이 아닌가? 강대국은 언제고 우리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미국, 중국은 미래의 화폐 패권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 국가가 신기술에 둔감하면 국민들의 재산권과 주요기업이 다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은행계좌가 없는 17억명의 인구, 그 중 3분의 2는 모바일 기기를 사용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타벅스 및 몇몇 미국기업은 세계의 은행이 되고자 움직이는 세상이다. 나도 스타벅스 커피 마시지만 삼성을 응원하고 싶다. 빨리 뭐라도 개발해서 뒤처지지 않길 바란다. 물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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