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민감자입니다 - 지나친 공감 능력 때문에 힘든 사람을 위한 심리치료실
주디스 올로프 지음, 최지원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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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주디스 올로프라는 사람이 쓴 '나는 초민감자입니다'는 기존의 내성적, 내향적, 예민한 사람, 민감한 사람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사람들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나도 민감한 경향의 사람이라 주제가 흥미로웠는데 박사가 말하는 초민감자는 남의 감정뿐 아니라 신체적인 증상까지 받아들여서 감각의 과부하를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은 부작용이 있는데 불면증이나 소화불량은 아주 흔한 케이스이고 부신피로 증후군, 자가면역질환, 만성 우울증, 만성 피로, 공황발작 등을 앓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람 많은 곳에 간다거나 사교활동이 과하면 금새 피로해지는 등 정신적 부작용은 예상이 가능한 내용이어서 지나가고 이런 육체적 질병까지 나타나는 심각한 상황일 때는 어떻게 치료하나 궁금했는데 박사는 주류 의학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어딘가 '시크릿' 스타일의 요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초민감자들이 병원에 가서 자기 증상을 말한들 원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처방을 받아도 신경안정제 계통의 우울증 약을 처방받는 게 고작일 것 같다. 주변에 말을 해도 너무 예민해서 그렇다고 타박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니 자신이 초민감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책에서 나온 치료법을 한번쯤 따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초민감자가 겪는 각종 질환 중에서는 부신피로증후군이 가장 흔한데 피로와 신체 통증, 불안증 등을 복합적으로 호소한다고 한다. 원인은 부신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호르몬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초민감자는 타인의 스트레스까지 흡수하니 당연히 쉽게 지치고 피곤할 수밖에 없다. 박사는 생활습관과 식생활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꽤 호전될 것이라 자신한다. 당연히 건강한 생활법이니 따라할 만하다. 자연식 식사, 운동과 명상, 충분한 휴식, 비타민 B,C섭취, 삶에서 에너지 뱀파이어로 불리는 해로운 인간들 제거 등. 초민감자가 아니더라도 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의 특이점은 이런 예상 가능한 치료법 외에 정신적인 요법도 몇 가지 추가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가 따로 있는 분들이라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저자는 인도나 중국의 명상법, 요가, 수련 등에 조예가 깊고 믿음도 상당한 사람 같다. 명상법, 호흡법, 주문을 외는 법, 타인과 나를 잇는 끈을 자르는 상상하는 법, 맨발로 걸으며 땅의 힘을 느끼는 어싱 등 동양 철학적인 수련법 몇 가지를 소개한다. 사람은 정신과 육체의 결합물인데 스트레스에 특히 취약한 초민감자들이 심리적으로 쉽게 지치거나, 육체적으로도 병을 얻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민감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받으면 병이 나지 않는가. 박사는 이럴 경우 정신과에 가서 약을 먹을 게 아니라 스스로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초민감자는 과도한 자극에 의한 불안 때문에 술이나 약물, 음식 등에 중독되기도 쉬운데 나를 치유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자가 치료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정신 치유법은 다소 갸우뚱하게되는 내용도 있지만 치료에 임하는 자세에는 동의한다. 모든 질병 치료에 첫걸음은 본인이 심각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병원 다녀도 스스로 낫고자 마음 먹지 않으면 하찮은 병도 쉽게 낫지 않는다.

 

저자는 3장 이후에서 초민감자가 배우자나 파트너를 찾는 법, 직장에서 번아웃 되지 않는 법, 민감한 자녀를 키우는 법, 또 민감함을 받아들임으로써 얻는 이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초민감자는 너무 예민해서 힘든 점이 분명 있지만 여러 훈련법을 통해 자가치유를 하면 그 예민하고 뛰어난 지각능력으로 얻는 장점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민감함 덕분에 친절하고 여리며 동정심이 뛰어나고 강렬한 열정과 기쁨을 경험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약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 많은 아티스트나 전문가 집단이 초민감자일 가능성은 당연히 매우 크다. 그러므로 자신이 초민감자라면 둔감해지려 애쓰고 각종 중독에 빠지기 보다는 저자가 소개한 방어전략 중 자기에게 맞는 것을 취해서 연습을 거듭하고 본인의 민감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면 남과 다른 가치를 가진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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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 우아하고 지혜롭게 세월의 강을 항해하는 법
메리 파이퍼 지음, 서유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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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된 것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이 작가는 해냈다. 저자 메리 파이퍼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열권의 책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주로 여성, 가족 문제인데 이 책에서도 주로 다루는 내용은 여성이 잘 늙는 법 같다. 메리 파이퍼의 주요 의견은 또 다른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스과 궤적이 일치한다. 나이들수록 분노와 불안이 줄어들고 노인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이 든 이들이 덜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불행에도 더 나은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 병을 선고받는 등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즐거운 일에 더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하지만 의미를 추구하는 이들은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책의 이런 논조는 최근에 읽은 김천균 작가의 '나는 행복을 포기했다'와도 일맥상통한다. 행복은 순간적인 감정인데 이를 추구해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행복하기를 포기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때 오히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은 가까이에 와있기도 하다. 나 역시 서양인들이 말하는 I'm happy의 행복은 잘 모르겠다. 그들은 사소한 일에도 행복하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동양권에서 말하는 행복과 일치하는 감정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 순간 기분이 좋다는 뜻인지 참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도 사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행 속에서도 자신이 취해야할 태도만은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24시간 감시가 돌아가는 수용소라지만 동료를 대하는 태도, 작업을 할 때의 태도, 삶의 의지와 목적 등 다같이 죽을 운명인 그곳에서조차 우리 각자는 삶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고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로 수용소 생존률까지 갈라졌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작가의 일관적인 '노인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사람은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같은 심리학자 남편과 45년째 사이좋게 사는 중이다. 이런 사람이 아무리 심리상담을 통해 객관적으로 불행한 다양한 계층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지만 진짜 불행한 노인의 삶에 대해 알까 싶은 마음도 든다. 왜냐하면 사람은 남의 얘기는 쉽게 해도 자기가 그런 불행을 겪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이제 할머니들이 많아졌다. 그분들은 사람만 만나면 어디가 아프다고 하소연하시고, 자식들은 이미 장성해서 가정을 꾸렸지만 문제없는 집이 하나도 없으며 본인들도 체력이 많이 저하되어서 식사 준비조차 곤란을 겪고 있다. 통계적으로도 나와있듯이 여자가 월등히 오래 사니 배우자들도 많이 세상을 떠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옆에서 볼 때는 당연히 우울하다. 노인의 우울은 이유가 있으며 상황이 개선되긴커녕 앞으로 꾸준히 악화될 일만 남아보인다. 메리 파이퍼가 말하는 노년이 더 행복하고 배우자를 잃는 등의 불행에도 적응할 거란 기색은 요만큼도 안 보인다. 그럼에도 그분들도 자기 삶에서 매일 할일을 찾아 묵묵히 수행하고 있고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산 분들이라는 것도 틀림없다.


책만 읽으면 늙어가는 게 두렵지 않을 것 같고 늙으면 늙은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인층을 보면 얼굴에는 생기가 하나도 없고 지하철에서는 노약자석에 젊은 여자라도 앉아있으면 난리가 난다.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주변에서 노년층인데 돈을 편안히 쓸 수 있는 분들은 많이 못 봤다. 저자는 배우자를 잃은 슬픔도 결코 끊나지 않지만 개선될 수는 있다고 한다. 바쁜 일상과 창조적인 활동, 적극적인 인간관계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맞는 말도 아닌 것 같다. 배우자를 잃은지 3년이나 된 분을 봤지만 여전히 눈물을 흘리거나 큰 상실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평생을 옆에 붙어있다시피 사셨기에 더한 것 같다. 세상 슬픔이나 고통은 일률적이지 않다. 노인이 되면 관절염등으로 걷기가 힘들어지고 당연히 사회활동도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말처럼 친구들끼리 오가고 가족들이 수시로 왕래하며 동네에서도 각종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건 어느 정도 건강과 경제력이 허락을 할 때의 이야기이다. 책에서처럼 암에 걸려도 긍정적인 태도로 극복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내 지인의 어머니처럼 암선고를 받고 순식간에 하늘나라에 가셔서 남은 가족들이 10년 지난 지금도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에 극기만 하면서 살 수 있으랴하는 게 나이가 좀 든 지금의 솔직한 생각이다.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고, 배우자나 가까운 가족이 있어서 마음을 기대고, 오래된 친구들이 있어서 힘들 때는 알아서 도와주고, 연금도 나오고 이 정도의 보호막이 없이 행복한 노년은 몽상에 가까운 소리이다. 젊어서 아무리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몸이 약해지는 60~70대부터는 우울감이 찾아온다. 나는 저자와 반대로 나이들어서 우울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늙을수록 분노와 불안이 줄어들고 행복해진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그야말로 case by case일 뿐이다. 다만 어려운 때일수록 헤쳐나갈 의지를 다지고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시키려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저저와 같다. 변화가 될 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악화될 뿐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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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해도 너무하시네요 - 상처받지 않고 웃으면서 써먹는 진상 격퇴술
엔카와 사토루 지음, 서라미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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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직 경찰관이자 현직 고객 불만 대응 컨설턴트인 저자가 각종 고객 불만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일본인이 쓴 책이라 배경이 일본이다보니 어떤 사례는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하고 어떤 사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갑질 고객이 인터넷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든지, 교환이나 반품 같은 정당한 보상요구 외에 금품요구나 담당 직원을 무릎 꿇리는 등 억지를 부리는 것은 한국과도 비슷하고 담당자가 고객의 집으로 찾아와서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노인들이 집요하게 클레임을 거는 실버 몬스터 등은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재밌는 게 실버 몬스터였는데 일본은 단카이 세대라고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있다. 그들이 은퇴하고 나서 겪는 소외감, 고독감, 초조함이 분노의 화약고가 되어서 갑질을 일삼는 괴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몸에 익힌 협상력으로 상대방을 논파하려는 것이 특징이니 잘잘못을 따지고 들면 말을 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고령자 분들은 한 말 또하고 또하는 성향이 있는데 일본의 경우를 보니 이게 갑질과 합쳐지면 무서울 정도로 집요해져서 담당자의 혼을 쏙 빼놓게 된다고. 읽기에는 재밌었지만 정작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 싶다. 외로움에 자꾸 전화를 해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가 큰 것 같고 저자는 대응책으로 경찰이나 영업직에서 은퇴한 실버 인재를 고용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실버 몬스터에게는 실버 인재로 대응할 것. 좋은 아이디어이다.

 

 

저자가 책 앞에 '불만 고객 응대시 해서는 안 되는 일' 체크리스트가 있어서 시험삼아 풀어봤는데 거의 맞히는 게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맞다고 한 일이 오히려 불만 고객의 화를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이 리스트는 좀 슬픈 일인데 '고객 제일주의를 습관화한다', '갑질 고객도 고객이므로 고객 만족의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등등은 다 틀린 말이었다. 저자의 설명을 읽어보니 성실한 직원일수록 갑질 고객의 먹잇감이 되기 쉬웠고 고객은 왕이라는 태도가 오히려 갑질을 불러오는 주요 원인이 될 뿐이었다. 그냥 정한대로 해야했다. 일단 사과하고 고객의 화를 진정시켜야 하지만 담당자 차원에서 혹은 회사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나 보상을 했는데도 무리한 요구가 이어질 때는 방치가 답이었다.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면 그건 고객님 마음이니 우리가 말릴 수 없다, 마음대로 하시라고 하는 것이고 식품에 이물질이 나왔다고 할 때는 식약처에 신고하고 조사한 후에 결과에 따라 대응하면 되었다. 다 차근차근하면 풀 수 있는 일이다. 책에는 비슷비슷한 사례가 끝도 없이 나와있는데 내 결론은 저자와 같다. 상식선에서 그리고 회사의 방침 안에서 최선을 다해 보상할 건 하고, 사과할 것은 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불만이 잦아들지 않고 끊임없이 요구를 하면 그 때는 우리는 여기까지 할 수 있다, 이제는 끝이다하고 방치를 하면 된다. 이 '방치'는 내가 행정학 책에서도 읽은 고전적 수법이다. 관공서에서 민원인이 미어터져도 사람을 더 배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왠만큼 급한 사람 아니면 잘 안 오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급한 쪽은 고객이다. 선량한 고객이라면 이런 저급한 서비스를 베풀면 안 되지만 악성 고객일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므로 예외적으로 방치라는 방법을 쓰면 될 것이다.

  

이 책은 고객상담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 분명하지만 주로 서비스를 받는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안타까운 점도 있다. 이 세상에는 갑질 고객만 있는 게 아니라 갑질 서비스원, 갑질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나 은행에 전화해보면 통화가 연결되기까지 컴퓨터 기계음만 줄창 듣거나 지루할 정도로 대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 다 까먹고 연결 직전에 '상담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니 폭언은 하지 말아달라'는 안내멘트를 들으면 그 순간 화가 난다. 폭언, 폭행이 나가지 않게 미리 좋은 서비스를 베풀 생각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객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마인드가 있는 기업이라면 주요 시간대에 상담원을 더 써야 맞다. 인터넷 서비스 역시 해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전화 걸어보면 안다. 나는 해지방어팀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작년에 모 인터넷사에 전화 걸어보고 알았다. 인터넷 해지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고 무수한 전화를 받고 끊지 않으려는 통화를 억지로 끝내야했다. 내가 당한 것이 서비스사의 갑질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직업이 고객 불만 대응 전문 컨설턴트이니 갑질 고객에 대해서만 주로 썼지만 중립적인 내 입장에서는 갑질은 고객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가전제품 사러 가면 판매원이 거의 설명을 해주지 않아 홀대를 당한다고 한다. 노인분들은 돈도 없고 어차피 사지도 않을 테니 대충 응대한다는 것이다. 갑질 고객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만약 100% 확실한 갑질 고객이 아니라면, 또 조금의 영리한 말솜씨도 상대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베푸는 쪽에서도 조금은 섬세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 이게 바로 서비스직의 어려운 점이지만 저자가 말한 대응법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미리부터 악질로 단정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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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기대한 걸까 - 누구도 나에게 배려를 부탁하지 않았다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이은혜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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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기대한 걸까'는 조금 쓸쓸한 에세이이다. 요즘 유행하는 화두 내성적인 사람, 초민감자 등과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이다. 저자 네모토 히로유키는 대인 관계 전문 심리상담사인데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늘 손해만 보고 살거나 심지어 피해의식까지 갖게 된 사람들을 돕고자 이 책을 썼다. 이 에세이를 읽으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친척 중 한 분인데 그 분은 너무나 성실하고 친절하고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가? 그 분은 수십년째 똑같은데 남편도 그렇고 주위 분들 중에서도 그 분의 그런 마음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어서 내가 옆에서 볼 때는 화가 난다.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케이스와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본인은 무리할 정도로 가족 뒷바라지를 하고 심지어 동네 할머니도 돕고 있는데 그분의 도움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이 꼭 그녀에게 감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실 잘 모른다. 늘 한결같이 받기만 하니 10을 주다가 9만 줘도 화를 낸다. 지금은 그분도 좀 지친 상태이고 우리 모두 그만하라고 조언한다. 하고 싶은대로 하고 할 말 다하고 살아도 괜찮다고, 그렇게까지 안해도 그들은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이다.

 

 

저자도 조언도 다르지 않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능력이 바로 당신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남들은 이렇게 민감하지도 않고 말로 안하면 이쪽의 배려와 마음 같은 것은 잘 모른다. 그저 받는 데만 익숙해져서 더욱 더 착취하려 들지도 모른다. 이 책의 일본어 원제를 직역하면 '남을 위해 너무 노력해서 피곤할 때 읽는 책'이다. 딱 답이 나온다. 사실 내용은 중복되는 부분도 많고 목차만 봐도 대략 짐작이 가는데 끝까지 읽은 것은 나 역시 이런 타입이어서 초년기에 회사 다닐 때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이다. 남에게 과도하게 신경을 쓰면 정작 자신에게는 신경을 안 쓰게 된다. 또한 무신경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기 딱 좋다. 대개는 내성적이고 예민한 사람들이 이런 타입이기 때문에 생색을 내는 일도 없다. 그저 묵묵히 무리한 요구까지 받아들이고 봉사하기 십상인데 그렇다고 이런 타입들이 바보는 아닌지라 슬슬 부아가 치민다거나 회사 가기 싫어지거나 가정이라면 남편이 싫어지는 등 부작용이 생기게 되어있다. 인간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가 이뤄져야 한다. 주기만 하는 사랑, 받기만 하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이에 대해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남의 기준에 맞추지 말고 자신의 기준에 맞추라는 것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귀울여서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하라고 말한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저자는 상사의 무리한 요구는 이러저러해서 안 된다, 지금 내 일도 많으니 거절해도 된다, 회식 후 노래방이 가기 싫으면 노래방을 안 좋아하니 가지 않겠다고 솔직히 말해도 된다고 한다. 사실은 이렇게 솔직히 말하고 싫은 거 다 빠져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건지 개인적으로는 확신이 없다. 그러나 무리를 해서 회사를 더 다닌들 건강만 해칠 뿐이니 맞지 않는 곳이라면 이직이나 전업도 고민해 볼 만하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저자가 말한대로 자기 기준에 맞춰야지 남의 기준에 맞추다보면 언제부터인가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하는 사람이나 진상까지도 저 사람 말이 맞는 건가 헷갈릴 때가 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에게서 억지로 혹시 내 잘못은 아닌가 모든 원인을 내게서 찾고 있을 때도 있다. 이런 지경은 정신적으로 위험하다.

 

저자는 몇 가지 주문같은 방법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다 해보면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 일단 '나는 하나도 안 괜찮다'고 외치는 것이다. 이런 상태의 사람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고 오랜기간 남의 눈치를 보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실을 직시해서 자신이 실은 무리하고 있고 무척 피곤한 상태라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저자는 계속 '헤아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남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사람이 더 정확한 표현같다. 우리 모두는 남 눈치보기 전에 자기 눈치부터 봐야한다. 내 마음은 내가 챙겨야 하고, 내 몸도 내가 챙겨야 한다. 책에 나온 각종 사례를 봐도 이런 분들 주변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먼저 '아, 난 참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고 있구나, 참 고맙다'하고 알아주는 경우란 없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만 잘못인 것도 아니다.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먼저 알겠는가? 저자 말대로 얘기를 해야 한다. 뭐가 필요한지, 뭐가 서운한지,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지 등등. 그리고 저자는 '나는 나, 너는 너' 라고 혼잣말을 반복하라고 한다. 즉 상대와의 사이에 선을 그으란 것이다. 상대방과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휘둘리는 경우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족 같이 유착 관계가 심한 사이에는 좀 더 훈련이 필요한데 주어를 넣어서 얘기하란 것이다. 유착 관계가 형성되면 타인의 일이 자기 일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하루 동안 하는 모든 행동에 '나는', '어머니는', '남편은' 이렇게 반드시 주어를 넣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주어를 의식해서 얘기하면 나와 상대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영역까지 파고들어 이것저것 살피고 배려하는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고 헤아리는 사람은 따뜻하고 정이 많은 타입이다. 이런 긍정적인 마음이 자신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다. 배려가 지나쳐서 무신경한 사람들에게 호구잡히는 타입이 되고, 가족에게도 너무 봉사만 해서 이제는 그런 노력이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진다면 본인은 행복할까? 아마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는 자기 긍정, 편지쓰기, 좋고 싫은 것 파악하기 등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남에게 기대하지 않고 조금 차가운 사람이 되어볼 것을 주문한다. 남의 마음에 너무 신경쓰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팁을 몇 가지 따라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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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써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 더 이상 충고라는 이름의 오지랖은 사절합니다
유민애(미내플)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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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 이름에 유민애 괄호치고 미내플이라고 되어있어서 필명인가 했는데 이 분도 유튜버였다. 제목이 다소 공격적이고 메인카피도 '내 인생에 간섭하는 참견러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법'이라고 되어 있기에 책을 읽기 전에 '아, 대충 처세술이나 고민상담 이런 것이겠구나' 짐작하고 들어갔다. 초반은 역시 사회생활하면서 만날 수 있는 온갖 가면을 쓴 인간들을 알아보는 법, 적을 퇴치하는 법, 나를 지키는 법 등이 나와있다. 저자는 조언이라는 선량한 허울을 쓰고 상대의 자존감을 건드리고 호구잡는 인간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사례별로 정리해서 꼼꼼히 일러준다. 경험에서 우러난 너무나 적나라하고 사실적인 조언들이라 두루뭉실한 옛날 심리서는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가 다녔다는 그 대형 언론사가 도대체 어디인지 마구 궁금해지지만 계속 대형 언론사로만 나오니 그냥 넣어두고 아무리 화려하고 좋은 직장도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다면 계속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데 동의한다. 저자는 용기있게 사표를 던졌지만 10만에 가까운 구독자를 둔 유튜버로 거듭나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저자가 말한 무기력증이 요새 말하는 우울증과 증상이 비슷하다. 다만 미내플은 자기 의지가 있고 멘탈이 무척 강하다는 것을 책 곳곳에서 느꼈다.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를 알아야 연애도 일도 잘 풀린다 등 당연한 말 같지만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모르는가. 내가 공감한 챕터는 이제 더 이상 사회생활 만렙이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저런 민폐 인간들을 많이 겪여봤고 안타깝게도 계속 회사를 다니려면 마음 속에서는 끊임없이 부딪혀도 어느 정도는 상사, 동료를 맞춰줘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이 쉽게 터치할 수 없는 직급까지 올라가는게 최선인데 현실적으로 신입이 부장에게 할 말 다하고 다니는 회사는 없다. 미내플의 처방이 시원하면서도 다 따라할 수 없는 것은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고 다 똑부러진 인간형은 아닌데다 실제로는 말도 많이 막히기 때문에 연습과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

 

내가 특히 재밌게 읽은 부분은 연애 얘기였다. 모태솔로 탈출법이 특히 공감이 갔다. 요즘은 뭐든 인터넷이나 영상물로 배우는 세대라지만 인간관계만큼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 헤쳐나갈 수가 없다. 남자가 아닌 남자사람으로 보기, 맞는 말이다. 스스로 '을'을 자처하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 그대로를 드러낼 것, 그래도 이어지지 않는다면 깨끗하게 다음 사람으로 넘어간다 등등 참으로 멋진 조언이다. 시행착오로 이루어지는 연애를 20대에 하지 않으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30대, 40대 나이만 먹게되고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결혼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게 연애다. 그러니 실패하려면 지금 실패해야 한다. 저자는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이겨내겠다는 의지로 계속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할 것을 주문한다. 연애는 단순히 연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므로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한번도 겪여보지 않은 종류의 시행착오를 가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한다.

 

 

저자의 나이는 이제 30대인데 그녀의 조언은 깊이가 있다. 꾸밈없고 시원하다. 누구에게나 잘 안 되는 부분이 한 가지는 있을 것이다. 학교생활일 수도 있고, 직장생활일 수도 혹은 연애나 방청소, 자기 꾸미기 등 다양한 고민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을 잘 알아보려면 역시 치여보는 게 좋다. 다 겪어보기엔 이 쪽의 데미지도 크므로 미리 겪어본 저자의 조언을 흡수하고 나서 보면 상대가 어떤 유형인지 더 쉽게 감이 올 것 같다.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쉽다. 대개는 나와 상극인 사람과도 적당히 잘 지내는 게 어려워서 문제가 생긴다. 책을 읽어도 아마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결국 대처는 자기 몫이겠지만 스스로 상처받지 않도록, 저자처럼 적당한 선을 긋고 자신을 지켜가면서 생활하는 자세는 참 중요하다. 그러려면 복기를 해야한다. 시험 오답노트 만들고, 바둑 두듯이 복기가 필요하다. 이번에 당했어도 다음에는 할 말 다할 수 있다. 이번에 연애에 실패했어도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다. 모든 관계 이전에 자신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볼 것. 저자의 긴 경험과 조언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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