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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기대한 걸까 - 누구도 나에게 배려를 부탁하지 않았다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이은혜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8월
평점 :
'나는 뭘 기대한 걸까'는 조금 쓸쓸한 에세이이다. 요즘 유행하는 화두 내성적인 사람, 초민감자 등과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이다. 저자 네모토 히로유키는 대인 관계 전문 심리상담사인데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늘 손해만 보고 살거나 심지어 피해의식까지 갖게 된 사람들을 돕고자 이 책을 썼다. 이 에세이를 읽으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친척 중 한 분인데 그 분은 너무나 성실하고 친절하고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가? 그 분은 수십년째 똑같은데 남편도 그렇고 주위 분들 중에서도 그 분의 그런 마음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어서 내가 옆에서 볼 때는 화가 난다.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케이스와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본인은 무리할 정도로 가족 뒷바라지를 하고 심지어 동네 할머니도 돕고 있는데 그분의 도움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이 꼭 그녀에게 감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실 잘 모른다. 늘 한결같이 받기만 하니 10을 주다가 9만 줘도 화를 낸다. 지금은 그분도 좀 지친 상태이고 우리 모두 그만하라고 조언한다. 하고 싶은대로 하고 할 말 다하고 살아도 괜찮다고, 그렇게까지 안해도 그들은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이다.

저자도 조언도 다르지 않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능력이 바로 당신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남들은 이렇게 민감하지도 않고 말로 안하면 이쪽의 배려와 마음 같은 것은 잘 모른다. 그저 받는 데만 익숙해져서 더욱 더 착취하려 들지도 모른다. 이 책의 일본어 원제를 직역하면 '남을 위해 너무 노력해서 피곤할 때 읽는 책'이다. 딱 답이 나온다. 사실 내용은 중복되는 부분도 많고 목차만 봐도 대략 짐작이 가는데 끝까지 읽은 것은 나 역시 이런 타입이어서 초년기에 회사 다닐 때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이다. 남에게 과도하게 신경을 쓰면 정작 자신에게는 신경을 안 쓰게 된다. 또한 무신경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기 딱 좋다. 대개는 내성적이고 예민한 사람들이 이런 타입이기 때문에 생색을 내는 일도 없다. 그저 묵묵히 무리한 요구까지 받아들이고 봉사하기 십상인데 그렇다고 이런 타입들이 바보는 아닌지라 슬슬 부아가 치민다거나 회사 가기 싫어지거나 가정이라면 남편이 싫어지는 등 부작용이 생기게 되어있다. 인간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가 이뤄져야 한다. 주기만 하는 사랑, 받기만 하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이에 대해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남의 기준에 맞추지 말고 자신의 기준에 맞추라는 것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귀울여서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하라고 말한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저자는 상사의 무리한 요구는 이러저러해서 안 된다, 지금 내 일도 많으니 거절해도 된다, 회식 후 노래방이 가기 싫으면 노래방을 안 좋아하니 가지 않겠다고 솔직히 말해도 된다고 한다. 사실은 이렇게 솔직히 말하고 싫은 거 다 빠져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건지 개인적으로는 확신이 없다. 그러나 무리를 해서 회사를 더 다닌들 건강만 해칠 뿐이니 맞지 않는 곳이라면 이직이나 전업도 고민해 볼 만하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저자가 말한대로 자기 기준에 맞춰야지 남의 기준에 맞추다보면 언제부터인가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하는 사람이나 진상까지도 저 사람 말이 맞는 건가 헷갈릴 때가 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에게서 억지로 혹시 내 잘못은 아닌가 모든 원인을 내게서 찾고 있을 때도 있다. 이런 지경은 정신적으로 위험하다.

저자는 몇 가지 주문같은 방법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다 해보면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 일단 '나는 하나도 안 괜찮다'고 외치는 것이다. 이런 상태의 사람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고 오랜기간 남의 눈치를 보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실을 직시해서 자신이 실은 무리하고 있고 무척 피곤한 상태라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저자는 계속 '헤아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남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사람이 더 정확한 표현같다. 우리 모두는 남 눈치보기 전에 자기 눈치부터 봐야한다. 내 마음은 내가 챙겨야 하고, 내 몸도 내가 챙겨야 한다. 책에 나온 각종 사례를 봐도 이런 분들 주변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먼저 '아, 난 참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고 있구나, 참 고맙다'하고 알아주는 경우란 없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만 잘못인 것도 아니다.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먼저 알겠는가? 저자 말대로 얘기를 해야 한다. 뭐가 필요한지, 뭐가 서운한지,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지 등등. 그리고 저자는 '나는 나, 너는 너' 라고 혼잣말을 반복하라고 한다. 즉 상대와의 사이에 선을 그으란 것이다. 상대방과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휘둘리는 경우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족 같이 유착 관계가 심한 사이에는 좀 더 훈련이 필요한데 주어를 넣어서 얘기하란 것이다. 유착 관계가 형성되면 타인의 일이 자기 일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하루 동안 하는 모든 행동에 '나는', '어머니는', '남편은' 이렇게 반드시 주어를 넣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주어를 의식해서 얘기하면 나와 상대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영역까지 파고들어 이것저것 살피고 배려하는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고 헤아리는 사람은 따뜻하고 정이 많은 타입이다. 이런 긍정적인 마음이 자신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다. 배려가 지나쳐서 무신경한 사람들에게 호구잡히는 타입이 되고, 가족에게도 너무 봉사만 해서 이제는 그런 노력이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진다면 본인은 행복할까? 아마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는 자기 긍정, 편지쓰기, 좋고 싫은 것 파악하기 등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남에게 기대하지 않고 조금 차가운 사람이 되어볼 것을 주문한다. 남의 마음에 너무 신경쓰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팁을 몇 가지 따라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