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해도 너무하시네요 - 상처받지 않고 웃으면서 써먹는 진상 격퇴술
엔카와 사토루 지음, 서라미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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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직 경찰관이자 현직 고객 불만 대응 컨설턴트인 저자가 각종 고객 불만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일본인이 쓴 책이라 배경이 일본이다보니 어떤 사례는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하고 어떤 사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갑질 고객이 인터넷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든지, 교환이나 반품 같은 정당한 보상요구 외에 금품요구나 담당 직원을 무릎 꿇리는 등 억지를 부리는 것은 한국과도 비슷하고 담당자가 고객의 집으로 찾아와서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노인들이 집요하게 클레임을 거는 실버 몬스터 등은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재밌는 게 실버 몬스터였는데 일본은 단카이 세대라고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있다. 그들이 은퇴하고 나서 겪는 소외감, 고독감, 초조함이 분노의 화약고가 되어서 갑질을 일삼는 괴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몸에 익힌 협상력으로 상대방을 논파하려는 것이 특징이니 잘잘못을 따지고 들면 말을 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고령자 분들은 한 말 또하고 또하는 성향이 있는데 일본의 경우를 보니 이게 갑질과 합쳐지면 무서울 정도로 집요해져서 담당자의 혼을 쏙 빼놓게 된다고. 읽기에는 재밌었지만 정작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 싶다. 외로움에 자꾸 전화를 해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가 큰 것 같고 저자는 대응책으로 경찰이나 영업직에서 은퇴한 실버 인재를 고용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실버 몬스터에게는 실버 인재로 대응할 것. 좋은 아이디어이다.

 

 

저자가 책 앞에 '불만 고객 응대시 해서는 안 되는 일' 체크리스트가 있어서 시험삼아 풀어봤는데 거의 맞히는 게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맞다고 한 일이 오히려 불만 고객의 화를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이 리스트는 좀 슬픈 일인데 '고객 제일주의를 습관화한다', '갑질 고객도 고객이므로 고객 만족의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등등은 다 틀린 말이었다. 저자의 설명을 읽어보니 성실한 직원일수록 갑질 고객의 먹잇감이 되기 쉬웠고 고객은 왕이라는 태도가 오히려 갑질을 불러오는 주요 원인이 될 뿐이었다. 그냥 정한대로 해야했다. 일단 사과하고 고객의 화를 진정시켜야 하지만 담당자 차원에서 혹은 회사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나 보상을 했는데도 무리한 요구가 이어질 때는 방치가 답이었다.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면 그건 고객님 마음이니 우리가 말릴 수 없다, 마음대로 하시라고 하는 것이고 식품에 이물질이 나왔다고 할 때는 식약처에 신고하고 조사한 후에 결과에 따라 대응하면 되었다. 다 차근차근하면 풀 수 있는 일이다. 책에는 비슷비슷한 사례가 끝도 없이 나와있는데 내 결론은 저자와 같다. 상식선에서 그리고 회사의 방침 안에서 최선을 다해 보상할 건 하고, 사과할 것은 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불만이 잦아들지 않고 끊임없이 요구를 하면 그 때는 우리는 여기까지 할 수 있다, 이제는 끝이다하고 방치를 하면 된다. 이 '방치'는 내가 행정학 책에서도 읽은 고전적 수법이다. 관공서에서 민원인이 미어터져도 사람을 더 배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왠만큼 급한 사람 아니면 잘 안 오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급한 쪽은 고객이다. 선량한 고객이라면 이런 저급한 서비스를 베풀면 안 되지만 악성 고객일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므로 예외적으로 방치라는 방법을 쓰면 될 것이다.

  

이 책은 고객상담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 분명하지만 주로 서비스를 받는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안타까운 점도 있다. 이 세상에는 갑질 고객만 있는 게 아니라 갑질 서비스원, 갑질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나 은행에 전화해보면 통화가 연결되기까지 컴퓨터 기계음만 줄창 듣거나 지루할 정도로 대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 다 까먹고 연결 직전에 '상담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니 폭언은 하지 말아달라'는 안내멘트를 들으면 그 순간 화가 난다. 폭언, 폭행이 나가지 않게 미리 좋은 서비스를 베풀 생각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객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마인드가 있는 기업이라면 주요 시간대에 상담원을 더 써야 맞다. 인터넷 서비스 역시 해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전화 걸어보면 안다. 나는 해지방어팀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작년에 모 인터넷사에 전화 걸어보고 알았다. 인터넷 해지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고 무수한 전화를 받고 끊지 않으려는 통화를 억지로 끝내야했다. 내가 당한 것이 서비스사의 갑질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직업이 고객 불만 대응 전문 컨설턴트이니 갑질 고객에 대해서만 주로 썼지만 중립적인 내 입장에서는 갑질은 고객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가전제품 사러 가면 판매원이 거의 설명을 해주지 않아 홀대를 당한다고 한다. 노인분들은 돈도 없고 어차피 사지도 않을 테니 대충 응대한다는 것이다. 갑질 고객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만약 100% 확실한 갑질 고객이 아니라면, 또 조금의 영리한 말솜씨도 상대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베푸는 쪽에서도 조금은 섬세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 이게 바로 서비스직의 어려운 점이지만 저자가 말한 대응법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미리부터 악질로 단정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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