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 우아하고 지혜롭게 세월의 강을 항해하는 법
메리 파이퍼 지음, 서유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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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된 것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이 작가는 해냈다. 저자 메리 파이퍼는 임상심리학자이자 열권의 책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주로 여성, 가족 문제인데 이 책에서도 주로 다루는 내용은 여성이 잘 늙는 법 같다. 메리 파이퍼의 주요 의견은 또 다른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스과 궤적이 일치한다. 나이들수록 분노와 불안이 줄어들고 노인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이 든 이들이 덜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불행에도 더 나은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 병을 선고받는 등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즐거운 일에 더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하지만 의미를 추구하는 이들은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책의 이런 논조는 최근에 읽은 김천균 작가의 '나는 행복을 포기했다'와도 일맥상통한다. 행복은 순간적인 감정인데 이를 추구해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행복하기를 포기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때 오히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은 가까이에 와있기도 하다. 나 역시 서양인들이 말하는 I'm happy의 행복은 잘 모르겠다. 그들은 사소한 일에도 행복하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동양권에서 말하는 행복과 일치하는 감정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 순간 기분이 좋다는 뜻인지 참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도 사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행 속에서도 자신이 취해야할 태도만은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24시간 감시가 돌아가는 수용소라지만 동료를 대하는 태도, 작업을 할 때의 태도, 삶의 의지와 목적 등 다같이 죽을 운명인 그곳에서조차 우리 각자는 삶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고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로 수용소 생존률까지 갈라졌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작가의 일관적인 '노인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사람은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같은 심리학자 남편과 45년째 사이좋게 사는 중이다. 이런 사람이 아무리 심리상담을 통해 객관적으로 불행한 다양한 계층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지만 진짜 불행한 노인의 삶에 대해 알까 싶은 마음도 든다. 왜냐하면 사람은 남의 얘기는 쉽게 해도 자기가 그런 불행을 겪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이제 할머니들이 많아졌다. 그분들은 사람만 만나면 어디가 아프다고 하소연하시고, 자식들은 이미 장성해서 가정을 꾸렸지만 문제없는 집이 하나도 없으며 본인들도 체력이 많이 저하되어서 식사 준비조차 곤란을 겪고 있다. 통계적으로도 나와있듯이 여자가 월등히 오래 사니 배우자들도 많이 세상을 떠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옆에서 볼 때는 당연히 우울하다. 노인의 우울은 이유가 있으며 상황이 개선되긴커녕 앞으로 꾸준히 악화될 일만 남아보인다. 메리 파이퍼가 말하는 노년이 더 행복하고 배우자를 잃는 등의 불행에도 적응할 거란 기색은 요만큼도 안 보인다. 그럼에도 그분들도 자기 삶에서 매일 할일을 찾아 묵묵히 수행하고 있고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산 분들이라는 것도 틀림없다.


책만 읽으면 늙어가는 게 두렵지 않을 것 같고 늙으면 늙은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인층을 보면 얼굴에는 생기가 하나도 없고 지하철에서는 노약자석에 젊은 여자라도 앉아있으면 난리가 난다.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주변에서 노년층인데 돈을 편안히 쓸 수 있는 분들은 많이 못 봤다. 저자는 배우자를 잃은 슬픔도 결코 끊나지 않지만 개선될 수는 있다고 한다. 바쁜 일상과 창조적인 활동, 적극적인 인간관계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맞는 말도 아닌 것 같다. 배우자를 잃은지 3년이나 된 분을 봤지만 여전히 눈물을 흘리거나 큰 상실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평생을 옆에 붙어있다시피 사셨기에 더한 것 같다. 세상 슬픔이나 고통은 일률적이지 않다. 노인이 되면 관절염등으로 걷기가 힘들어지고 당연히 사회활동도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말처럼 친구들끼리 오가고 가족들이 수시로 왕래하며 동네에서도 각종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건 어느 정도 건강과 경제력이 허락을 할 때의 이야기이다. 책에서처럼 암에 걸려도 긍정적인 태도로 극복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내 지인의 어머니처럼 암선고를 받고 순식간에 하늘나라에 가셔서 남은 가족들이 10년 지난 지금도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에 극기만 하면서 살 수 있으랴하는 게 나이가 좀 든 지금의 솔직한 생각이다.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고, 배우자나 가까운 가족이 있어서 마음을 기대고, 오래된 친구들이 있어서 힘들 때는 알아서 도와주고, 연금도 나오고 이 정도의 보호막이 없이 행복한 노년은 몽상에 가까운 소리이다. 젊어서 아무리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몸이 약해지는 60~70대부터는 우울감이 찾아온다. 나는 저자와 반대로 나이들어서 우울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늙을수록 분노와 불안이 줄어들고 행복해진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그야말로 case by case일 뿐이다. 다만 어려운 때일수록 헤쳐나갈 의지를 다지고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시키려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저저와 같다. 변화가 될 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악화될 뿐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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