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너머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49
마리아 굴레메토바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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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너머'는 애완돼지 소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독특한 그림책이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저자 마리아 굴레메토바는 예술가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덕분에 그림에 대한 소양이 어릴 때부터 풍부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정물화를 그리거나 산으로 소풍을 다니는 등 산으로 여행을 많이 다닌 경험이 이 책의 배경이 되었다. 덕분에 '울타리 너머'에는 그리운 자연 풍광이 넘쳐난다. 끝이 안 보이는 푸른 들녘, 같은 풍경이 저녁 무렵에는 황금빛으로 바뀌는 것까지 책장을 넘길수록 어딘가 머나먼 이상향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자연 풍경만 감상하는 그림책이 아니다. 주인인 소년 안다와 그의 애완돼지 소소의 관계는 일견 단순해보이지만 삶에 필수적인 고민을 담고 있기에 책을 읽는 아이에게 가치있는 물음을 던진다. 갇혀사는 소소에게 자유란 무엇인지, 어떤 편리함을 희생해야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 또 안다가 소소에게 자기의 의견과 취향만을 강요하는 게 소소에게 있어서 얼마나 폭력적인지 등등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소소의 표정 변화와 상황만으로 깊이있게 와닿는다. 

그저그런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보내도 어떤 계기가 없이는 미처 느끼지 못한 채 적응해버릴 때가 있다. 소소 역시 거대한 저택에서 안다라는 도련님의 애완돼지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산책을 나갔다가 야생 맷돼지 '산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울타리 너머로는 갈 수 없다', 즉 집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하던 소소는 점점 산들이 있는 대자연을 갈망하게 된다. 또 산들이는 안다처럼 소소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법이 없이 소소의 뜻에 따라 그를 만나러 와준다. 인간 안다와 맷돼지 산들의 태도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진정한 우정이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고, 내 의견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안다는 소소를 마치 장난감처럼 다루며 자기가 좋아하는 옷만 입히거나 놀이의 상대로만 대했지만 산들은 울타리 너머로 갈 수 없다는 소소를 배려해서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얘기나 하러 다시 올게"라고 쿨하고 다정하게 말해준다. 그는 소소의 입장을 이해하고 헤아려주며 약속을 지키는 멋진 맷돼지이다.

 

 소소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다. 그림책에서 소소와 안다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안다는 말하고 소소는 듣기만 한다. 안다는 소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보다보면 슬퍼진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단어가 바뀌었지만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소소의 마음으로 인간의 집에서 살아갈까 마음이 아프다. 

클라이맥스 페이지에는 노을이 지는 울타리 너머를 달려가는 집돼지 소소와 야생돼지 산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자유를 갈망하는 소소가 드디어 결정을 내리고 인간이 만들어준 답답한 옷을 벗어던지고 산들과 함께 돼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들판을 달려가는 모습은 아름답고도 감동적이다. 어떻게 30페이지 남짓한 그림책에 이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책장을 덮는다. 멀리 보이는 산과 들판의 풍경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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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만큼 위험한 곳이 없다 - 나를 확장시키는 제3의 공간을 찾아라!
김동현 지음 / 북스토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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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니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이다. 두 책 모두 자기 취미나 하고 싶은 일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소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김정운 교수는 이 책에서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야 한다고 '슈필라움'이란 독일어를 강조하는데 놀이와 공간을 합친 의미라고 한다. 김동현 저자도 제1공간을 집, 제2공간을 회사라고 한다면 제3공간을 퀘렌시아로 설정하고 있다. 퀘렌시아는 스페인어로 투우사와 싸운 소가 숨을 고르는 공간을 뜻한다고 한다. 피난처, 안식처의 의미로 평화와 회복의 장소로써 어쩌면 집보다 더 중요하고 자주 집에서 나올 것을 권하고 있다. 왜냐하면 집이 편한만큼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쉽고 너무 오래 집에 머물다보면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적어지는 자폐적 증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이 다소 극단적이지만 '집만큼 위험한 곳이 없다'가 된 것이다.

 

저자는 서울대 졸업후 30년여년의 직장생활을 했는데 30대에 잠시 개인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이후 계속 외국계 기업에 다녔다고 한다. 오랜 직장 생활 동안 여러차례 회사를 옮겨봤고 해외지사에서도 12년을 일하는 등 세일즈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이 분은 지금 정년퇴직을 한 상태이지만 본인이 정한 제3의 공간, 마을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글을 쓰는 활동을 통해 작가로 변신하고 그 경력을 살려서 출판업계에 재취업도 했다. 정년퇴직 전까지 계속 외국계 기업에서 세일즈를 한 셈이니 지금의 경력은 180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이렇다. 일이 잘 안 될 때는 국면전환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판을 정면돌파만이 아니라 측면돌파도 하고 상대방에게 한걸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서 판을 흔들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상황이 내게 유리하게 바뀌기도 하고 운이 따르기도 한다고 일단 행동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공부 많이 한 모범생 타입들은 준비가 완벽하기 전에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준비보다 더 중요한 때를 놓치는 우를 범한다. 저자는 삼성이 반도체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일본도 뛰어넘은 쾌거를 이룬 것은 일단 시작해서 빠르게 헤쳐가는 속도전에 능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삼성은 일본이 추구하는 완벽함보다는 목표를 저 멀리 앞에 던져놓고 간극을 메워나가는 전략을 시도한 것이다. 준비를 다 하고 하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준비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고 그 사이 더 중요한 타이밍을 놓쳐서 아예 시작도 하기 전에 주저앉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저자는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첫걸음으로 공간에 변화를 줄 것을 주문한다. 익숙한 집에서 판을 바꿀 정도의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을 뿐더러 나태해지기 쉬우니 여행도 가고, 또 집을 떠나 이동에 조금 시간이 걸리는 장소를 하나 마련해서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간과 장소의 전환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고 생각과 사고의 입체화를 통해 발전과 도약을 끌어낼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제3의 공간을 찾아 자꾸 집을 떠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재택근무를 하거나 취준생으로 오래 집에 머무르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공감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하지만 계속 있으면 휴식이 아니라 그저 게으름의 공간으로 전락하는 집. 사람들이 때로는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새로운 인연이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을 볼 때, 또 발전없이 괴롭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해서 성공하는 경우를 봐도 익숙함을 버리고 떠나는 용기가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음을 실감한다.

 

다양한 공간의 경험치를 늘리는 것이 인생전환의 키가 될 수 있다니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제3의 공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지금 하는 일이 잘 안되서 국면돌파를 해야 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독자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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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밥의 교과서 - 기본 육수로 손쉽게 만드는 행복 밥상
효오모리 도모코 지음, 박진희 옮김 / 레드스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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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견 건강식 전문가가 쓴 강아지 수제 밥 만드는 법을 읽었다. 개밥이라고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사람 식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완성된 요리의 플레이팅 사진도 화려하고 개의 연령, 건강상태, 계절에 따라서도 어떤 식재료를 써야할지 어떤 음식이 좋은지 참으로 자세하고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어서 놀랐다. 

 

동물도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저자가 말했듯이 그 구조가 좀 다를 뿐 가공식품만 먹어서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동물병원에 가면 대부분의 의사선생님은 사료만 정량을 줄 것을 권하지 간식조차 필요악으로 본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드라이푸드라고 불리는 건사료에만 반려견 식사가 한정되어 온 셈이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밥에 국 말아주는 곳이 드물다. 편리함을 이유로 개는 십수년째 사료와 통조림 몇 가지를 주로 먹는 셈인데 노령견을 키워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동물이라고 만날 똑같은 거만 주면 점점 식욕이 떨어진다. 그러다가 늙으면 병도 오고, 없던 식욕은 더 떨어지고 악순환이다. 책을 읽으며 느낀 거지만 저자는 분명 사람 음식도 잘 할 사람이다. 10분만에 뚝딱이라고 적혀있긴 한데 저자의 내공이 장난이 아니므로 평범한 독자들이 10분만에 이 정도 퀄리티의 강아지 밥을 만드는 것은 "참 쉽죠잉~?"처럼 약간의 허구라고 본다. 그러나 저자가 애초에 반려견에게 손수 만든 음식을 주기로 결정한 이유에는 깊이 공감한다. 강아지 밥은 맛과 모양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주인이 매번 시간을 들여서 만들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우리가 먹을 밥을 매번 짓듯이 반려견을 위해서도  아주 짧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신선한 식재료를 쓴 음식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사람도 매끼니 정찬을 먹는 것은 아니니 상황이 허락하는대로 있는 식재료로 조합을 해보자는 취지이다.

  

 

저자가 일본인이다보니 나는 평소 거의 쓰지 않고 잘 모르는 큰실말, 괭생이모자반, 오크라, 갈분, 말고기, 참마 등의 식재료도 등장하지만 대체 재료도 있으므로 모르거나 없는 것은 빼고 구하기 쉽고 현재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도 대략 조리가 가능하다. 목차의 내용 중 내가 ​특히 유심히 본 파트는 먹여서는 안 될 식재료이다. EBS의 개, 고양이 솔루션 프로그램에서 비만 반려견 특집방송을 본 적이 있다. 하루에 계란을 몇 개씩 먹이고 심지어 매일 커피를 주는 다소 무식한 주인까지 봤다. 다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개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셈이다. 커피나 차 등의 카페인은 중독 증상을 일으켜 질식의 위험이 있다고 적혀있다. 이렇게 카페인이나 파, 고추 등 상식적으로 동물에게 주면 안되는 것은 왠만한 동물 키우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외에 토마토나 가지의 꼭지, 알로에, 갑각류도 줘서는 안되고 흰자는 반드시 익혀줘야 한다는 것은 이런 책을 읽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오랫동안 키우던 반려견이 아프자 매번 다니던 병원말고 친구에게 소개받은 병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생소고기와 고구마로 만든 수제 식사가 나온 것을 보게 된다. 아픈 아이가 달려들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건사료만 고집했나 그 어리석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의사 선생님이 좋다니까 열심히 골라서 공장에서 만들어진 사료와 통조림만 사다 날랐는데 주면서도 뒷면 가득히 쓰인 각종 인공향료나 가공재료에 찜찜함을 느끼던 터였다. 비만이 될 때까지 정신없이 사람 먹는 음식을 먹여서도 안되지만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공장에서 나온 사료만 먹이다가 보내는 것도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한 번 읽으면 정보의 방대함과 다양성에 만족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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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 생활자 -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입니다
김혜지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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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사는 사람이 특이하지 않은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이 책은 90년대생인 저자의 일인 라이프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에세이다. 어찌보면 '나혼자 산다'의 진지한 여성 생활 버전 같다. '나혼자 산다'가 연예인의 화려한 싱글 라이프라면 '일인분 생활자'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 고군분투하는 20대 여성의 짠내나는 실생활이란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저자 김혜지는 90년대생이다. 그녀는 고시원, 원룸을 거쳐 컨테이너를 반으로 나눈 옥탑방에도 살았는데 옆방에 사는 노인이 끼는 방귀 소리를 듣는다던가, 저자에게 애인이 놀러왔을 때 그 노인에게 오지랖 넓은 잔소리 폭격을 당한 고충 등을 이야기한다. 고시원에 고시생이 안 살듯이 옥탑방에서 혼자 사는 것도 실제로는 사치인가 보다. 그리고 여전히 오래된 세대의 가치관은 단단해서 젊은 세대가 이만큼 변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분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보다 방을 빼는 게 현실적으로 더 빠르고 간단한 길이다. 저자 역시 이사를 간다.


저자는 집을 구하면서도 부동산 실장이란 작자에게 은근히 성희롱을 당하고, 여행을 가서도 역시 현지인에게 기분 나쁘고도 애매한 일을 당한다. 즉 여성은 상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젊은 여자라는 그 자체만으로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한국 여성이라면 젊은 시절 성추행을 단 한번도 당하지 않고 사회생활 해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말로든 눈으로든 혹은 회사내 암묵적 조직 문화로도 얼마든지 불쾌한 일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열거한 불쾌한 경험은 주로 나이든 남자들이, 혹은 데이트 상대였던 젊은 남자 등 어떤 남자들의 집단이지 가해자에 여자는 없다. 아마도 저자는 여자들만으로 이뤄진 집단이 군대보다 더한 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을 지 모르겠다. 나는 모든 종류의 성범죄는 그 기반에 권력이 교묘히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인식을 못하더라도 그들은 분명히 힘이나 나이 혹은 지위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남자, 여자라는 성별의 차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나 절대 다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범죄이고 뿌리 깊은 가부장적 관행이 이를 방조하기에 세월이 흘러도 범죄는 진화가 될 뿐 별반 변화가 없어보인다. 90년대생인 저자도 이런 구시대적인 일을 여전히 겪고 있지 않은가?

 

 

 

그럼 혼자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나? 사온 식재료를 제 때 못먹어 썩는다든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여자는 어쩌구 처신에 관한 잔소리를 듣는 건 애교 수준이지만 '타인은 지옥이다'에 나온 고시원처럼 범죄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 않나. 저자는 혼자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붙은 습관을 소개한다. 문을 이중으로 잠그거나 외부인을 극도로 조심하고 배달음식은 현관 밖에서 받거나 집안에 남자 신발을 놓는 등 나름의 팁이 있다. 하지만 더 집다운 집으로, 더 치안이 나은 동네로 이사가는 것 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어보이는 게 문제다. 이도저도 안되면 건장한 남자친구라도 있어야 할 판인데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혼자 사는 사람이 위험하다지만 혼자 사는 남자도 이렇게 동일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외로움이나 식사마련에 겪는 어려움은 범죄 노출에 비교하면 그 정도가 너무 차이난다.

그러므로 일인분 생활자는 혼자녀가 혼자남보다 더욱 공감할 만한 글이고 20~30대 청년이 겪는 주거 불안정이 주된 주제라고 보여진다. 취미생활이나 다양한 부가직업을 갖는 것도 나이든 집안 어른들의 답답한 편견도 그닥 큰 문제로 보이진 않지만 수입이 별로 없는 젊은 세대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원룸, 고시원, 지하방 등 사람 살라고 만든 게 맞나 의심스러운 공간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많이 필요해보인다. 내가 책을 읽으며 분노한 것은 2~5평을 가지고 세를 주는 빈곤 비즈니스이다. 가난한 청년들에게 월세에 관리비까지 받으면서도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곳을 세주는 인간들에게 적절한 규제와 단속이 들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혼자 사는 게 죄는 아니지 않나? 특히 이 모든 불편함과 현실적 문제는 가난할 때 가중되는 것이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젊은 사람이 혼자 살 때는 그만큼 편한 생활이 없다는 것도 씁쓸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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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다리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8
천선란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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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비티 북스의 SF시리즈는 신선한 감각을 지닌 젊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엄선해서 출판하고 있다. 외국의 SF소설과는 그 결이 다르고 등장인물이 한국인, 한국이 배경인 것도 SF소설을 읽는 색다른 매력이 된다. 대개의 SF소설이 그렇듯 "무너진 다리"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도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다. 기술은 발달에 발달을 거듭해 인간같은 로봇보다 한층 더 나아간 휴론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휴론은 휴먼과 클론의 합성어로 신체배양 기술을 적용해서 다리를 잃은 사람에게는 휴론이 배양한 다리를 떼어주고, 팔이 없는 사람은 팔을 길러서 가져가는 식이다. 무척 잔인한데 로봇이 아무 의사도 감각도 없다고 생각하면 마치 지금 돼지에서 인간으로 장기 이식을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로봇이 인간을 닮으면 닮을수록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데 이는 일본의 로봇 공학자가 말한 '불쾌한 골짜기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로봇이 사람의 모습과 비슷해질수록 인간이 로봇에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지만 그 유사성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오히려 강한 거부감을 유발하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은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인데 사실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었다. 매일 열심히 읽어도 초반에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빛반사가 심한 흰종이라서 시력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계속 각도를 조절해가면서 봐야했다. 또 내가 SF장르에 익숙치 않은 초보 독자이기도 했지만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주인공인 아인과 동생인 아라, 엄마인 임교수, 친구인 마티아스, 중요 휴론인 카인과 아벨 외에는 읽어도 그닥 기억에 남지 않는 조연이나 엑스트라급의 등장인물도 꽤 많은 편이다. 만약 나처럼 처음 100페이지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초보 SF독자라면 본문을 읽기 전에 맨 앞에 나온 등장인물 소개를 꼼꼼히 읽고 진행할 것을 권한다. 아니면 읽으면서 등장인물 메모를 하면 여기저기 시간과 장소를 옮겨 넘나드는 이야기를 따라잡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간단히 줄거리를 말하자면 주인공인 우주비행사 아인은 새로운 행성 가이아를 개척해서 지구인을 이주시킬 계획을 가지고 동료들과 우주선 펄서를 타우주로 간다. 그러나 갑자기 등장한 유성을 피하지 못해 우주선이 유성과 충돌하고 동료 둘을 잃고 아인만 가까스로 탈출선을 타고 오랜 시간만에 지구로 오는데 오는 사이 몸은 다 상하고 뇌만 살아남는 처참한 지경이 된다. 그에게는 단 하나뿐인 남동생 아라가 있는데 지구에 남았던 아라는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었고 자신의 대체 다리를 배양하는 휴론을 스스로 풀어준 후 자살을 한다. 동생의 자살 소식은 우주 비행중인 아인에게 큰 충격이었고 감당할 수 없는 충격 탓에 운전을 동료들이 맡아서 한 것이다. 그 사이 사고가 났기 때문에 아인은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인이 혼자 이런 시련을 겪으며 탈출선을 타고 지구로 귀환하는 동안, 지구에서는 제2의 지구인 가이아로 가기 위해 쏜 핵엔진이 폭발해서 아메리카 반도로 추락했고 그 결과 지구 절반이 사라진다. 남은 사람들은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고 다치고 아비규환이고 세계의 멸망이란 어떤 모습인가 익숙한 모습의 암울한 미래가 펼쳐진다.

 

 

남은 절반의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암흑의 땅이 된 아메리카 대륙으로 휴론을 보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려고 하고, 이상하게도 보낸 족족 연락이 두절되자 마지막 수단으로 아인의 뇌를 이식한 안드로이드를 만들어서 정찰을 보낸다. 이후의 이야기는 지나친 스포라서 생략하고 또 줄거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니다. 아포칼립스 소설이 그렇듯이 지구 대멸망이 진행되는 동안 그곳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인간이 더이상 인간의 모습을 한 게 아니어도 어디까지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스스로 감정과 생각을 가진 휴론 같은 로봇이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과연 기계로만 취급할 수 있는가하는 윤리의 문제가 등장한다. 지금도 인공지능을 가진 기기와 대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기계가 인간을 닮아갈 때 우리는 그들을 어디까지 로봇으로, 어디부터는 인간처럼 대하게 될까? 미래에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인류가 생존할지도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고, 그 때에도 우리가 이런 모습의 인간으로만 살게 될지는 또 모르는 일이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면 로봇과 다를 게 없듯이 로봇도 진화를 거듭해 인간과 같아지거나 그 이상이 된다면 어떤 대접을 받고 싶어할지 모를 일이다.

 

 아인이 휴머노이드의 몸에 갇힌 잔인한 시절에도 카인이라는 휴론과 함께 희망의 씨앗을 뿌리듯이 익숙한 지구가 멸망해도 그것이 인류의 끝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휴론을 개발한 임교수가 본인은 췌장암으로 죽는 것을 선택한 반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신체를 배양해 삶을 연장하는 모습이 참으로 추해보였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세월이 변해도 사람이 사람다울 때 그 고유의 가치가 있다. 아마도 두뇌로도 신체 능력으로도 로봇에게 인간은 곧 따라잡힐 것이지만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야 인류의 미래가 있다고 믿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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