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분 생활자 -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입니다
김혜지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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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사는 사람이 특이하지 않은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이 책은 90년대생인 저자의 일인 라이프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에세이다. 어찌보면 '나혼자 산다'의 진지한 여성 생활 버전 같다. '나혼자 산다'가 연예인의 화려한 싱글 라이프라면 '일인분 생활자'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 고군분투하는 20대 여성의 짠내나는 실생활이란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저자 김혜지는 90년대생이다. 그녀는 고시원, 원룸을 거쳐 컨테이너를 반으로 나눈 옥탑방에도 살았는데 옆방에 사는 노인이 끼는 방귀 소리를 듣는다던가, 저자에게 애인이 놀러왔을 때 그 노인에게 오지랖 넓은 잔소리 폭격을 당한 고충 등을 이야기한다. 고시원에 고시생이 안 살듯이 옥탑방에서 혼자 사는 것도 실제로는 사치인가 보다. 그리고 여전히 오래된 세대의 가치관은 단단해서 젊은 세대가 이만큼 변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분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보다 방을 빼는 게 현실적으로 더 빠르고 간단한 길이다. 저자 역시 이사를 간다.


저자는 집을 구하면서도 부동산 실장이란 작자에게 은근히 성희롱을 당하고, 여행을 가서도 역시 현지인에게 기분 나쁘고도 애매한 일을 당한다. 즉 여성은 상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젊은 여자라는 그 자체만으로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한국 여성이라면 젊은 시절 성추행을 단 한번도 당하지 않고 사회생활 해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말로든 눈으로든 혹은 회사내 암묵적 조직 문화로도 얼마든지 불쾌한 일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열거한 불쾌한 경험은 주로 나이든 남자들이, 혹은 데이트 상대였던 젊은 남자 등 어떤 남자들의 집단이지 가해자에 여자는 없다. 아마도 저자는 여자들만으로 이뤄진 집단이 군대보다 더한 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을 지 모르겠다. 나는 모든 종류의 성범죄는 그 기반에 권력이 교묘히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인식을 못하더라도 그들은 분명히 힘이나 나이 혹은 지위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남자, 여자라는 성별의 차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나 절대 다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범죄이고 뿌리 깊은 가부장적 관행이 이를 방조하기에 세월이 흘러도 범죄는 진화가 될 뿐 별반 변화가 없어보인다. 90년대생인 저자도 이런 구시대적인 일을 여전히 겪고 있지 않은가?

 

 

 

그럼 혼자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나? 사온 식재료를 제 때 못먹어 썩는다든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여자는 어쩌구 처신에 관한 잔소리를 듣는 건 애교 수준이지만 '타인은 지옥이다'에 나온 고시원처럼 범죄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 않나. 저자는 혼자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붙은 습관을 소개한다. 문을 이중으로 잠그거나 외부인을 극도로 조심하고 배달음식은 현관 밖에서 받거나 집안에 남자 신발을 놓는 등 나름의 팁이 있다. 하지만 더 집다운 집으로, 더 치안이 나은 동네로 이사가는 것 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어보이는 게 문제다. 이도저도 안되면 건장한 남자친구라도 있어야 할 판인데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혼자 사는 사람이 위험하다지만 혼자 사는 남자도 이렇게 동일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외로움이나 식사마련에 겪는 어려움은 범죄 노출에 비교하면 그 정도가 너무 차이난다.

그러므로 일인분 생활자는 혼자녀가 혼자남보다 더욱 공감할 만한 글이고 20~30대 청년이 겪는 주거 불안정이 주된 주제라고 보여진다. 취미생활이나 다양한 부가직업을 갖는 것도 나이든 집안 어른들의 답답한 편견도 그닥 큰 문제로 보이진 않지만 수입이 별로 없는 젊은 세대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원룸, 고시원, 지하방 등 사람 살라고 만든 게 맞나 의심스러운 공간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많이 필요해보인다. 내가 책을 읽으며 분노한 것은 2~5평을 가지고 세를 주는 빈곤 비즈니스이다. 가난한 청년들에게 월세에 관리비까지 받으면서도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곳을 세주는 인간들에게 적절한 규제와 단속이 들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혼자 사는 게 죄는 아니지 않나? 특히 이 모든 불편함과 현실적 문제는 가난할 때 가중되는 것이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젊은 사람이 혼자 살 때는 그만큼 편한 생활이 없다는 것도 씁쓸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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