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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 쓴 평범한 에세이
한관희 지음 / 하움출판사 / 2019년 10월
평점 :
나이들수록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손이 많이 간다. tv프로그램을 볼 때도 다큐, 관찰 예능이 좋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가상의 어떤 것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의 이야기, 삶 그 자체에 관심이 가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 한관희 씨는 30대 중반의 청년이다. 마치 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글은 소박하고 따뜻하다.

책 중반까지만 해도 제목처럼 참으로 평범한 사람이 쓴 평범한 에세이구나 조금은 지루하게 생각했는데 부모님은 물론 자신까지 신용불량자였다는 고백을 읽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글은 조금 다르게 읽혔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30여 년간의 삶과 현실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살아온 삶은 무게감이 다르다. 그는 이런 가족사를 책에다 쓰면 어머니가 특히 싫어하실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저자의 가난 고백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무려 20년에 걸쳐 빚을 갚고 신용불량자를 탈출한 이야기라면 오히려 무특징에 가까운 평범을 뚫고 나온 플러스이다. 아마 평범한 글이 좋아서 이 책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 사건도 없이 그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만 250페이지를 채웠다면 끝내 실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인간극장'조차 매회 끝날 때는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며 끝이 나는 마당에 아무 매력도 특징도 없는 글을 누가 읽겠는가?
저자의 가난 고백 외에도 내 흥미를 자극한 것은 그의 건강한 자신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산 도매시장에서 혹독한 사회 신고를 치루고 뒤늦게 유한대학교라는 2년제에 들어간 저자는 자신이 얼마나 대학교에 가고 싶었는지, MT를 비롯한 대학생들의 생활에 상당한 로망을 가졌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인서울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그 사실에 감사한 적도, 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기뻐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MT는 어쩔 수 없이 가야했던 1학년 OT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 이름값에 좌우되지 않고 다니는내내 열심히 공부하고 120% 얻어간 저자의 대학생활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사람은 쉽게 얻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르는 모양이다. 이제는 대학생활도 저 멀리 기억의 저편에 자리한 지금, 왜 그 때 좀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더 열심히 놀지 않았을까 후회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따뜻해진 것은 아버지와 저자의 따뜻한 부자관계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 지극히 어려웠던 가정형편상 차마 부모님께 PC방 갈 돈을 못 타고 몰래 장사하는 앞치마에서 몇 푼씩 훔치던 저자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딱 걸린다. 아마 이런 경험은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대개는 날아오는 회초리나 야단을 상상할 텐데 내 기대(?)와 달리 저자의 아버지는 오히려 사과를 하셨다. 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유일하게 눈물이 난 부분이다. "가난 때문에 착한 아들이 돈에 욕심내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아버지. 아마도 왜 아빠 돈을 말도 없이 훔쳤냐고 회초리를 드셨을 때보다 더욱 가슴 아픈 말씀이었을 것이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라 그런가 저자는 참으로 씩씩하고 건강하다. 세상을 조금 살아본 지금, 평범이 가장 어렵다고 느낀다. 평범하게 자라서 평범하게 남들 다 가는 대학 나오고, 남들 다 가는 시집 장가 가고, 남들 다 가는 회사 다니는 그런 생활. 과연 이것이 쉽게 얻을 수 있는 '평범'일까?

평범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요즘, 평범한 사람이 썼다는 에세이는 전혀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일단 책을 2권씩 내지 않으며, 20년씩 빚을 갚아 신용불량자를 탈출할 수 없을 것이기에 저자는 이미 특별해졌다. 되고 싶다고 다 될 수는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은 즐기라는 그. 중압감을 내려놓고 마음껏 꿈을 꿀 자유, 동시를 쓰고 싶으면 써보는 자유, 글을 써서 작가가 되고 싶으면 일단 쓰는 자유를 외친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평범하다는 것인지 슬며시 웃으며 저자가 마치 하루키처럼 설파한 내 취향이 아닌 음악을 예의상 1~2곡 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