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싸랑한 거야 특서 청소년문학 12
정미 지음 / 특별한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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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문학을 오랜만에 읽어봐서 풋풋했다. 주인공 자매의 집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사채업자들에게 쫒기는 신세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는 내가 가끔 차 마시러 가는 드라이브 코스라서 웃음이 났다. 거기는 경치 좋고 한적한 곳인데 내 기억에는 좋은 카페가 많았다. 주인공 또래의 고등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실생활이 이뤄진다기보다 경기도 외곽의 관광지 느낌이 강했는데 사채업자에 쫒기는 지원이가 머리 싸매고 돌아다니는 풍경이 되니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도 했다. 경기도면 사채업자를 피해 도망갔다는 서울에서 너무 가깝지 않나? 아무튼 소설은 고등학생 아이들이 중심인데 카톡이 아닌 문자를 주고 받고 취미는 줌이 지잉 늘어나는 카메라로 사진찍기라니 이게 요즘 얘기인가 년도를 확인해보기도 했다. 

 

약간은 거슬리는 몇 가지 설정을 넘어서 100p가 지나가자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달린다. 주인공 소녀 어지원은 사채업자를 피해 도망간 아빠를 빼고 엄마, 언니와 함께 친할아버지가 계신 두물머리 지역으로 내려오는데 마침 자매가 이 동네로 이사온 것은 방학 때이다. 학교에 정식으로 전학 신고도 안하고 숨어지내는 처지이지만 동네를 왔다갔다 하면서 한 눈에 반하는 찬혁 오빠를 만나고, 그의 사촌동생 찬진이와는 친구가 된다. 집이 망해가는 어지러운 상황이지만 지원이는 멋진 대학생 오빠 찬혁을 보고 홀린듯 사랑에 빠지고 자신보다 훨씬 예쁜 지혜 언니와 그가 사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게다가 늘 두려워하던 사채업자들 대신 엄마가 안 계신 대낮에 사채업자들의 돈을 대신 받아준다는 해결사 강철이 집으로 찾아온다. 지원이네 채권자인 사채업자들이 직접 찾아다니기도 귀찮았는지 채권 추심업체를 다시 고용했나보다.

여기서부터 또 이해가 안 가는데 두 소녀는 사채업자들의 해결사 강철이 집으로 찾아와 노래방 알바를 제안한 것을 엄마나 할아버지에게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어른들에게 얘기를 했다면 저런 불법 알바를 시킬 리도 없고 그걸로 이야기는 끝이겠지. 아이들은 반협박이자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강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노래방 주점에 도우미로 나가게 되는데 심지어 강철은 꽃 같이 막 피어나는 언니에게 눈독을 들인다. 이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재밌어지며 동시에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이 등장한다. 노래방에서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미모의 여고생 지혜 언니, 뚱뚱해서 도우미라기보다 청소가 더 어울리는 통감자 동생 지원이, 두 자매와 업장에서 다시 마주치는 멋진 오빠 찬혁, 그리고 늘 언니를 노리는 깡패 강철까지. 4명이 각각 사랑의 화살을 이리 저리 날리며 한 편의 청춘 드라마가 펼쳐진다. 서브 남주로는 찬혁이만큼 멋진 동생 찬진이, 조연은 지원이의 친구 도희가 있다.

 

 

큰 축은 지원이의 첫사랑이지만 사실 찬혁이와는 거의 접점도 없고 둘 사이에 드라마틱한 사건은 더더구나 없다. 대부분은 지원의 상상이고 오빠를 왜 좋아하는지 그 계기조차 선명하지 않다. 아마도 청소년기의 사랑이 외모 위주이고 자신의 상상 속에 이뤄지는 게 태반이기 때문에 사랑을 싸랑한 거라는 소설 제목처럼 사랑에 빠진 자기 감정을 사랑한 것 뿐이다. 소설 속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솔로몬의 문구가 여러 번 나오는데 작가는 지원이가 겪는 어려운 현실도, 혼자만의 어설픈 짝사랑도, 또 그 사랑이 와장창 깨진 아픔도 결국 지나가고 주인공은 성장할 것이라는 암시로 쓰인 것 같다. 지원이가 자라는 데는 오히려 찬혁 오빠보다 악역 역할의 해결사 강철이 더 도움을 준 거 같아 아이러니하지만.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두 물줄기가 합쳐져서 그리 불린다고 한다. 아름다운 경기도 모처에서 사채업체에게 쫒기는 두 소녀와 가냘픈 엄마, 또 집나간 아빠를 찾으러 떠난 할아버지까지. 동화 속 얘기 같기도 하고 첫사랑이니만큼 오글거리는 대사도 많지만 그 시절 순수했던 청춘의 열병이 느껴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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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
브로니 웨어 지음, 홍윤희 옮김 / 트로이목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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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브로니 웨어는 젊은 시절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호스피스 간호사로 직업을 전향, 죽음을 앞둔 이들을 돕는 생활을 하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첫번째 책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을 쓰게 된다. 이 책은 그의 후속작으로 1년동안 읽을 수 있도록 한 주에 1편씩 에세이를 구성하여 총 52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하지만 나는 거의 이틀에 걸쳐 다 읽었으니 실제로 독자들이 책 한 권을 52주 동안 아껴가며 읽을 지는 미지수이다;) 

이 에세이는 저자가 만난 죽음을 앞둔 사람들, 새나 동물과의 교감, 자연에 대한 감상, 일상생활 중 얻은 지혜 등 어느 신문 칼럼에서 만나는 잔잔한 에세이를 연상하게 하는 글이 많다. 추운 겨울, 따뜻한 차를 한 잔 앞에 두고 읽기 좋은 편안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삶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 특히 감사하는 마음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직업상 완화치료(고통이나 통증을 완화하는데 목적이 있는 치료)를 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거의 거동을 못하고 침대에 누워지내는 환자들을 볼 때 그 누구라도 현재의 삶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어린시절 겪은 학대로 인해 마음에 그늘이 있었지만 그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와 친절한 마음으로 극복했음을 고백한다. 신기할 정도로 이 몇 줄 외에는 개인사가 그닥 나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학대라는 단어 외에 구체적인 묘사는 전혀 없다. 저자의 나이나 과거 이야기, 현재 어떤 생활을 하는 지 등은 모두 베일에 쌓여있다. 왜일까?

이렇게 비밀이 많은 신비로운 저자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어렴풋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26주 주차장에서의 교훈'편을 읽어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어느날 저자는 과일시장으로 차를 몰고 후진 주차를 하던 중, 어떤 여자가 자기 10대 딸을 칠 뻔했다고 소리치며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저자는 운전 베테랑으로 지시등과 후진등을 켰고 그 여자아이 역시 사리분별을 못 할 정도로 어린이가 아니었다고. 그저 그 가족은 지나치게 방어적이며 딸아이의 실수를 온통 저자에게 뒤집어씌우고 득달같이 화를 낸 것 뿐이다. 저자는 이 상황에서 그저 참고 넘어가지 않고 나 자신을 변호하기로 작정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동감했다. 우리는 흔히 싸우기 싫어서, 문제를 크게 만들기 싫어서 상대가 잘못한 상황에서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연 나의 내면은 그런 상황을 납득했을까? 저자 역시 공감을 통해 타인이 한 행동을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 주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공감과 친절을 우선시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라고 한다. 어렵게 돌려말했으나 내가 이해하기로는 남보다 내가 먼저라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내 이익만 생각하는 것은 이기주의이다. 그러나 당연히 상대가 잘못한 것인데도 상대의 분노나 위력이 두려워서 물러서는 것은 잘하는 행동일까? 그것은 이기주의보다 더 나쁜 굴욕이라고 본다. 어릴 때는 그걸 몰라서 이유없는 타인의 분노로 나 자신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 저자 역시 그 점을 염려하여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데도 그 소녀의 엄마, 아빠에게 가서 잘잘못을 지적한다. 주차장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지만 주변인이 그녀 편을 들었냐 말았냐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남이 편들어주면 기쁘고 힘이 된다. 그러나 설사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도 나만은 내 편을 들어야한다. 이 선택은 늘 어렵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대와 나의 위치, 힘의 차이, 주변 상황을 토대로 싸울지 말지를 순식간에 결정한다. 물러서지 말아야 할 때 물러서고, 양보해줘야 할 때 싸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저자는 침착하게 대응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침착한지 아닌지 역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내가 내 편 들어주지 않으면 남도 내 편을 안 들어주는 게 세상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가 자기 개인사를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자기애의 발현이라고 본다.

저자는 주차장 사건을 통해 "공감과 연민을 통해 자아를 내려놓는 것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 미세한 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둘 다 추구해야 하지만 나 자신 또한 사랑과 연민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만약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다면 후자를 택해야 함도 암시하고 있다.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좋은 글이다.

소소한 일상을 거쳐 마지막에 다다르면 저자는 자기 삶에 후회란 없다고 한다. 저자 역시 과거의 불행을 돌아보고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과거의 자신을 비난하기보다 수용, 친절, 사랑의 마음으로 인생이 끝없는 배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전한다. 또한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용기있게 나아갈 때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내가 바란 소원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 신비로우면서도 깊게 와닿았다. 연말만 되면 올해도 아무 것도 한 게 없이 보낸 것 같아 후회와 실망으로 뒤숭숭한데 브로니의 책을 읽으니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행운을 기대하면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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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판다 체조 세트 - 전2권 판다 체조
이리야마 사토시 지음, 이지혜 옮김 / 북극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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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 귀여운 판다 체조 책을 만났다. 추운 겨울, 방에서만 생활하기 쉬운 아이들에게 간단한 체조 동작을 따라할 수 있는 재밌는 그림책이다. 무려 시리즈인데 친구끼리 판다 체조와 엄마랑 아빠랑 판다 체조, 총 2권 구성이다. 작가 이리야마 사토시가 자기 아이 운동회에 따라갔다가 아이들끼리 하는 단체 체조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1: 엄마랑 아빠랑 판다 체조

3~5세 어린이들도 따라해볼 수 있을 정도로 동작의 난도가 더 쉽다. 판다의 성별은 엄마인지 아빠인지 언급이 없고 아이 역시 마찬가지지만 부모로 보이는 커다란 판다가 아기 판다를 배에도 얹고 등에도 얹고 시계추처럼 팔을 잡아서 흔들흔들해주는 등 동작의 진폭이 어느 정도 있어서 힘있는 아빠가 놀아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물론 힘있는 요즘 엄마도 가능하다. ㅋㅋ

 

 

이 책은 별 대사도 없고 색도 거의 안 쓰고 흑백으로만 판다의 단순하고 귀여운 동작을 표현했는데 그래서 더욱 아이들이 싫증을 안 내고 여러번 본다. 당연히 동작을 엄마나 아빠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가벼운 운동도 되고 놀이도 된다. 우리 조카는 주로 앉아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정적인 놀이만 했는데 이 책을 가지고 체조를 같이 하니 몸으로 하는 놀이라 그런가 훨씬 즐거워했다. 아이랑 친밀한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책을 보며 체조를 따라하면 책과 친해지는 효과도 있고 몸으로 하는 운동 겸 놀이도 되어서 좋은 것 같다.   

 

특히 저 '커다란 배에 살짝 올라' 체조는 동생이 조카들과 놀아줄 때 아기 때부터 하던 동작이라 애들이 더욱 좋아하고 익숙함을 느낀다.

 

 

2. 친구끼리 판다 체조

 

친구끼리 판다 체조는 여러 명이 합동으로 책 속의 단체 체조를 따라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보는 그림책에 충실하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주먹밥이나 검정 뿔테 안경, 오뚝이 인형 등 어린이들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를 여럿의 판다가 모여서 모양을 만든다. 언뜻보면 잘 모를 수도 있지만 1~2초 가만히 들여다보면 익숙한 모양이 알아보고 웃게 된다. 아이의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책이다. 배 나오고 다리 짧고 마치 어린이의 몸과 같은 판다 친구들이 모여 사이좋게 둘이 만나면 주먹밥, 셋이 모이면 뿔테 안경, 넷이서는 오뚝이, 마지막장에는 판다 동산까지 만드는데 귀여움을 참을 수 없다. 판다 그림이 아이들만큼이나 사랑스럽고 유아들도 흥미롭게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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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이유 없이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 양보만 하는 사람들을 위한 관계의 기술
다카미 아야 지음, 신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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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해도 인간관계는 어렵다. 하지만 되돌려 생각해보면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은 남의 마음을 도통 알지 못해서 회사생활이 더욱 어려웠다. 의무교육을 비롯해 20년 넘는 학창시절을 보내며 그렇게 단체생활을 했어도 사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한 반 수십명과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이 4~5명 소규모의 팀원과 잘 지내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소규모 집단 중 싫은 사람이 있으면 피할 곳이 없어서 괴로웠다. 이 책은 다카미 아야라는 일본인이 쓴 인간관계 기술에 관한 책인데 저자는 심리 카운슬러로 활동중이다. 조직 내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밝혔듯이 회사 생활 중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 많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자꾸 남의 눈치를 보며 거절을 못하고 이용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 많은데 읽다보면 심리학서에 가깝다. 주된 내용은 양보하지 않고 내 뜻대로 하는 법, 거절의 기술, 도가 지나치게 참견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처법 등 주로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방어력을 키울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가장 첫 페이지를 펼치면 색면지 안에 저렇게 한 줄 주요 내용이 요약되어 있어서 다음에 펼쳐질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책을 다 읽어도 저 말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은 내가 먼저 행복해지는 게 중요하다. 주위 사람은 그 다음 순위다. 이렇게 살아야 일상이 즐겁고 인간관계도 순조롭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나를 지키며 나답게 살 수 있는 걸까?

여러 기술이 소개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자기 신뢰감이 높은 사람은 간섭하기 어렵다고 한다. 내가 먼저 나를 믿고 나를 칭찬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 바탕이 흔들리면 쉽게 나의 영역에 남이 흙발을 들여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게 하루 아침에 쌓이는 기술이 아닌 게 문제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남은 나의 흔들리는 눈빛 하나 만으로도 내 연약함을 간파해서 공격에 들어간다. 쉽게 속여지지가 않는다. 껄끄러운 상대와는 거리를 유지하며, 되도록 사생활 이야기를 하지 말고, 강한 모습을 보이라는 식인데 만약 이 '거리두기'에 실패했을 경우 책에는 그 다음 대처법이 없다. 직속 상사나 같은 직급의 동료라면 '거리두기'가 좀처럼 먹히지 않는다. 회사 생활을 해 본 분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거의 집에서 잠만 자다시피 하고 1년 내내 붙어있는데 사생활 이야기를 아예 안 할 수도 없고 매번 긴장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순식간에 간파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어떤 사람인지 나 역시 그들 속속들이 알게 된다. 여기서 조금 한숨이 나온다. 싫어도 내년을 기대할 수 있는 학교 생활과 달리 소규모 회사 생활은 멤버 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결론은 '만만한 사람이 되지 말자'이다.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다. 처음에 '거리두기'에 실패했더라도 이번에 쉽게 보여서 양보해줬더라도 다음에도 내내 쉬운 사람이 되어줄 필요는 없다.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유연한 마인드로 살고 있다. 이미 회사라는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정 싫으면 이직이든 뭐든 방법이 있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면 좋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마인드 컨트롤을 잊지 말고 바닥에 발을 딱 붙이고 내 기준에 맞춰서 사는 '그라인딩'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싫으면 싫다, 못하면 못한다라고 거절을 해야 내가 살 수 있다. 그들은 내 요구를 안 들어주는데 왜 나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까? 뭐든 일이 잘못되면 내 탓부터 하는데 과연 내 잘못인가? 화살을 자꾸 나에게 돌리는 나쁜 버릇이 있는 분들은 이 책을 꼭 읽기 바란다. 세상에는 성격 파탄자들이 은근히 많다. 그들은 늘 '니 탓이오'를 외치므로 자꾸 그 사람들 기준에 나를 맞춰서 못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또한 친구관계에 대한 조언도 나와있는데 자꾸 불행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 '내가 더 불행해' 배틀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인간관계가 바뀐다는 신호라고 한다. 좋을 일을 나눌 수 없고 불행한 이야기만 하게 된다면 관계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거리를 두거나 멀어져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어질 인연이라면 수년 후에 또 친해질 수도 있으니 쿨한 자세를 취하라고 조언한다.

 


이런 책을 진작에 읽었더라면 내가 구하는 답의 100%를 얻지 못했을지라도 분명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남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알기 위해 노력하다가도 지긋지긋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상대의 기분, 상대의 의도 이전에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반성해본다. 왜 항상 나만 남을 맞춰야 하는가? 내가 굳건하고 멋진 사람이 되면 남이 나를 맞춰줄 날도 올 것이다. 우리 모두 나에게 좋은 일을 먼저 하고, 남들의 간섭에 휘둘리지 말자. 요즘 나이 어린 여자 연예인들의 안 좋은 소식을 들으며, 악플에도 끄덕없는 정신력을 먼저 갖추고 연예계에 데뷔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해봤다.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정신적인 면역력을 먼저 갖추고 전투에 나선다면 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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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 쓴 평범한 에세이
한관희 지음 / 하움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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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수록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손이 많이 간다. tv프로그램을 볼 때도 다큐, 관찰 예능이 좋아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가상의 어떤 것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의 이야기, 삶 그 자체에 관심이 가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 한관희 씨는 30대 중반의 청년이다. 마치 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글은 소박하고 따뜻하다. 

책 중반까지만 해도 제목처럼 참으로 평범한 사람이 쓴 평범한 에세이구나 조금은 지루하게 생각했는데 부모님은 물론 자신까지 신용불량자였다는 고백을 읽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글은 조금 다르게 읽혔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30여 년간의 삶과 현실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살아온 삶은 무게감이 다르다. 그는 이런 가족사를 책에다 쓰면 어머니가 특히 싫어하실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저자의 가난 고백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무려 20년에 걸쳐 빚을 갚고 신용불량자를 탈출한 이야기라면 오히려 무특징에 가까운 평범을 뚫고 나온 플러스이다. 아마 평범한 글이 좋아서 이 책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 사건도 없이 그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만 250페이지를 채웠다면 끝내 실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인간극장'조차 매회 끝날 때는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며 끝이 나는 마당에 아무 매력도 특징도 없는 글을 누가 읽겠는가?

 

 

저자의 가난 고백 외에도 내 흥미를 자극한 것은 그의 건강한 자신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산 도매시장에서 혹독한 사회 신고를 치루고 뒤늦게 유한대학교라는 2년제에 들어간 저자는 자신이 얼마나 대학교에 가고 싶었는지, MT를 비롯한 대학생들의 생활에 상당한 로망을 가졌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인서울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그 사실에 감사한 적도, 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기뻐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MT는 어쩔 수 없이 가야했던 1학년 OT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 이름값에 좌우되지 않고 다니는내내 열심히 공부하고 120% 얻어간 저자의 대학생활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사람은 쉽게 얻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르는 모양이다. 이제는 대학생활도 저 멀리 기억의 저편에 자리한 지금, 왜 그 때 좀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더 열심히 놀지 않았을까 후회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따뜻해진 것은 아버지와 저자의 따뜻한 부자관계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 지극히 어려웠던 가정형편상 차마 부모님께 PC방 갈 돈을 못 타고 몰래 장사하는 앞치마에서 몇 푼씩 훔치던 저자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딱 걸린다. 아마 이런 경험은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대개는 날아오는 회초리나 야단을 상상할 텐데 내 기대(?)와 달리 저자의 아버지는 오히려 사과를 하셨다. 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유일하게 눈물이 난 부분이다. "가난 때문에 착한 아들이 돈에 욕심내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아버지. 아마도 왜 아빠 돈을 말도 없이 훔쳤냐고 회초리를 드셨을 때보다 더욱 가슴 아픈 말씀이었을 것이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라 그런가 저자는 참으로 씩씩하고 건강하다. 세상을 조금 살아본 지금, 평범이 가장 어렵다고 느낀다. 평범하게 자라서 평범하게 남들 다 가는 대학 나오고, 남들 다 가는 시집 장가 가고, 남들 다 가는 회사 다니는 그런 생활. 과연 이것이 쉽게 얻을 수 있는 '평범'일까?  

 

평범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요즘, 평범한 사람이 썼다는 에세이는 전혀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일단 책을 2권씩 내지 않으며, 20년씩 빚을 갚아 신용불량자를 탈출할 수 없을 것이기에 저자는 이미 특별해졌다. 되고 싶다고 다 될 수는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은 즐기라는 그. 중압감을 내려놓고 마음껏 꿈을 꿀 자유, 동시를 쓰고 싶으면 써보는 자유, 글을 써서 작가가 되고 싶으면 일단 쓰는 자유를 외친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평범하다는 것인지 슬며시 웃으며 저자가 마치 하루키처럼 설파한 내 취향이 아닌 음악을 예의상 1~2곡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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