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
브로니 웨어 지음, 홍윤희 옮김 / 트로이목마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저자 브로니 웨어는 젊은 시절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호스피스 간호사로 직업을 전향, 죽음을 앞둔 이들을 돕는 생활을 하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첫번째 책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을 쓰게 된다. 이 책은 그의 후속작으로 1년동안 읽을 수 있도록 한 주에 1편씩 에세이를 구성하여 총 52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하지만 나는 거의 이틀에 걸쳐 다 읽었으니 실제로 독자들이 책 한 권을 52주 동안 아껴가며 읽을 지는 미지수이다;) 

이 에세이는 저자가 만난 죽음을 앞둔 사람들, 새나 동물과의 교감, 자연에 대한 감상, 일상생활 중 얻은 지혜 등 어느 신문 칼럼에서 만나는 잔잔한 에세이를 연상하게 하는 글이 많다. 추운 겨울, 따뜻한 차를 한 잔 앞에 두고 읽기 좋은 편안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삶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 특히 감사하는 마음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직업상 완화치료(고통이나 통증을 완화하는데 목적이 있는 치료)를 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거의 거동을 못하고 침대에 누워지내는 환자들을 볼 때 그 누구라도 현재의 삶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어린시절 겪은 학대로 인해 마음에 그늘이 있었지만 그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와 친절한 마음으로 극복했음을 고백한다. 신기할 정도로 이 몇 줄 외에는 개인사가 그닥 나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학대라는 단어 외에 구체적인 묘사는 전혀 없다. 저자의 나이나 과거 이야기, 현재 어떤 생활을 하는 지 등은 모두 베일에 쌓여있다. 왜일까?

이렇게 비밀이 많은 신비로운 저자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어렴풋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26주 주차장에서의 교훈'편을 읽어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어느날 저자는 과일시장으로 차를 몰고 후진 주차를 하던 중, 어떤 여자가 자기 10대 딸을 칠 뻔했다고 소리치며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저자는 운전 베테랑으로 지시등과 후진등을 켰고 그 여자아이 역시 사리분별을 못 할 정도로 어린이가 아니었다고. 그저 그 가족은 지나치게 방어적이며 딸아이의 실수를 온통 저자에게 뒤집어씌우고 득달같이 화를 낸 것 뿐이다. 저자는 이 상황에서 그저 참고 넘어가지 않고 나 자신을 변호하기로 작정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동감했다. 우리는 흔히 싸우기 싫어서, 문제를 크게 만들기 싫어서 상대가 잘못한 상황에서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연 나의 내면은 그런 상황을 납득했을까? 저자 역시 공감을 통해 타인이 한 행동을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 주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공감과 친절을 우선시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라고 한다. 어렵게 돌려말했으나 내가 이해하기로는 남보다 내가 먼저라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내 이익만 생각하는 것은 이기주의이다. 그러나 당연히 상대가 잘못한 것인데도 상대의 분노나 위력이 두려워서 물러서는 것은 잘하는 행동일까? 그것은 이기주의보다 더 나쁜 굴욕이라고 본다. 어릴 때는 그걸 몰라서 이유없는 타인의 분노로 나 자신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 저자 역시 그 점을 염려하여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데도 그 소녀의 엄마, 아빠에게 가서 잘잘못을 지적한다. 주차장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지만 주변인이 그녀 편을 들었냐 말았냐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남이 편들어주면 기쁘고 힘이 된다. 그러나 설사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도 나만은 내 편을 들어야한다. 이 선택은 늘 어렵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대와 나의 위치, 힘의 차이, 주변 상황을 토대로 싸울지 말지를 순식간에 결정한다. 물러서지 말아야 할 때 물러서고, 양보해줘야 할 때 싸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저자는 침착하게 대응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침착한지 아닌지 역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내가 내 편 들어주지 않으면 남도 내 편을 안 들어주는 게 세상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가 자기 개인사를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자기애의 발현이라고 본다.

저자는 주차장 사건을 통해 "공감과 연민을 통해 자아를 내려놓는 것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 미세한 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둘 다 추구해야 하지만 나 자신 또한 사랑과 연민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만약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다면 후자를 택해야 함도 암시하고 있다.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좋은 글이다.

소소한 일상을 거쳐 마지막에 다다르면 저자는 자기 삶에 후회란 없다고 한다. 저자 역시 과거의 불행을 돌아보고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과거의 자신을 비난하기보다 수용, 친절, 사랑의 마음으로 인생이 끝없는 배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전한다. 또한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용기있게 나아갈 때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내가 바란 소원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 신비로우면서도 깊게 와닿았다. 연말만 되면 올해도 아무 것도 한 게 없이 보낸 것 같아 후회와 실망으로 뒤숭숭한데 브로니의 책을 읽으니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행운을 기대하면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