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피데페디피와 요술반지 ㅣ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 6
고미솔 지음, 남강한 그림 / 북극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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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보다 글이 많은 본격 어린이 동화를 읽어본 게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페피데페디피와 요술반지'는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았는데 페피데페피데로 자꾸 읽히기에 억지로 채찍질하며 고쳐읽다가 '아니, 이건 작가의 상상력인가, 실제로 존재하는 단어인가?' 불현듯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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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찾아보니 진짜 있는 말이었어! '여기는 저기이다, 이것은 저것이다'라는 남태평양의 어느 오지섬에서 사용하는 말이라고 작가 인터뷰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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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알고나니 속이 다 시원했고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주인공 이름이기에 감탄했다. 어린이책이라도 모든 것은 작가의 치밀한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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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은 단출하다. 주인공 소녀 페피데페디피와 그의 늙은 농부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선량한 아버지 밑에서 무럭무럭 자란 페피데페디피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특이한 것을 갖고 싶어한다. 방물장수의 이야기에 홀려 소원을 들어준다는 요술반지에 꽂힌 것이다. 차라리 요즘말로 지름신이면 돈을 모아서라도 사주고 말겠는데 늙은 아버지가 어디 가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요술반지를 얻을 수 있겠는가?

 

 

 

아이는 반지를 얻기 위해 상인을 기다리고 어느날 진짜 요술반지에 대해 알고 있는 상인이 나타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요술 반지를 얻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페피데페디피는 연약하고 착한 아이인데 이상한 데서 고집을 꺾지 않는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세간살림 다 팔아서 여비와 옷 등을 마련해주는 가여운 아버지...

 

이 동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기도 하고 여타 모험 동화와 맥락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품고 있는 주제는 좀 더 심오하다. 주인공 소녀의 용기와 모험, 고생담까지는 비슷할 수 있는데 원하던 반지를 손에 얻은 후에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반지 그 자체는 소원을 이뤄주면 원주인인 난쟁이 왕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페피데페디피가 반지를 손에 넣고도 끝에 끝까지 소원을 빌지 않아서 영원히 구리반지를 가진 채 세상을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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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걱! 이렇게 끝이 날수도 있구나!! 집도 돈도 건강도 빌지 않다니! 심지어 눈이 잘 안보이는 소녀의 아버지조차 딸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요술반지의 소원은 널 위해 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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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피데페디피의 가족들은 아무도 요술반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페피데페디피는 그저 열심히 일해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고 아버지를 모시다가, 나이가 차자 스스로 남편을 얻고 자식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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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가져야만 소원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 요술반지를 얻기 위해 고난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아래 3가지를 깨닫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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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데 말을 하는 존재"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모두와 모두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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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있다면 용기있게 모험을 떠나는 것,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생각하지 말 것.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라는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가치와 물질의 소유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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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돈이란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데다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돈을 넘겨주는 과정도 필요하다. 페피데페디피도 노파, 거인, 왕자님에게 무언가 얻을 때마다 자기 것을 내줘야만 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함부로 소원을 빌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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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문학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비록 어린이들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페피데페디피의 소신과 진짜 좋은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은연중에 알려주는 것 같아 참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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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3 ㅣ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3
고은문화사 편집부 지음 / 고은문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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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 오면 엉덩이 탐정을 애니메이션으로만 봤는데 이렇게 학습만화책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홀로그램 카드까지 부록으로 같이 줘서 서로 갖겠다고 난리가 났다. 아이들은 참 이상한 데 꽂히는데 역시 만화는 부록의 힘이 크다.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3권의 부록은 왔다갔다 방향에 따라 엉덩이 탐정이 됐다가 그 아버지인 엉덩이 댄디가 됐다가 얼굴이 바뀌는 홀로그램 카드이다.

 

 

 

 

이 책은 시리즈라 앞서 1, 2권이 출간되었고 벌써 3권째이다. 학습만화이다보니 그냥 코믹북이 아니고 중간중간 문제를 풀어야한다. 난도는 그렇게 높지 않아서 5살 짜리 조카도 약간만 힌트를 주면 재미있게 볼 정도였다. 스토리가 크게 2가지가 들었는데 "함정이 가득한 정글"이라고 태고의 잠을 깨우는 지팡이를 찾아나선 모험과 후속인 "가방을 찾아라"가 있다. 그러고보니 둘 다 찾는 거네.

 

 

 

 

 

 

굳이 1, 2권을 찾아읽지 않아도 TV애니메이션을 본 독자라면 따라가기가 쉽고 아예 사전지식이 없어도 캐릭터 소개를 읽어보고 시작하면 간단히 이해가 된다. 주인공은 엉덩이 탐정과 그의 아버지 엉덩이 댄디. 처음에는 유전자 변형 인간인가 왜 얼굴에 엉덩이가 달려있나 의아했는데 어차피 이 만화에 사람은 없는 것을 곧 눈치채고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어린이 만화는 깊이 생각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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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장점은 다채로운 성격의 캐릭터!

 

 

 

 

일본 만화가 원작인 것은 처음 알았는데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라이선스판이었다. 선한 인물부터 악당까지 캐릭터가 전부 귀엽고 중간쯤 어딘가 일본만화같다고 여기면서 봤는데 딱 맞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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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3인조로 등장하는 고양이 누님과 남동생! 애들은 전혀 신경도 안 썼지만 이 고양이 캐릭터 너무나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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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양이 3인조 남매가 지팡이를 훔쳐갔기에 이들을 쫓아 밀림탐험에 나선 엉덩이 탐정 일행들의 모험이 첫번째 이야기이다. 중간에 이렇게 "미로를 빠져나가는 법"이라는 문제를 풀어야 하고 다음 장에 바로 답이 나온다. 문제는 전부 어렵지 않은데 아이 나이가 아주 어리면 부모가 좀 도와줘야 한다.

 

 

 

 

엉덩이 탐정의 조력자 방울씨도 역시 고양이!! 고양이 좋아하는 일본인답게 캐릭터에 벌써 고양이가 총 4마리(?)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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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을 잘 잡았고 전체적으로 컬러링이 아주 좋다. 초반에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구성이라 초등학생은 되야 이해를 할 거 같았는데 일단 그림의 매력이 커서 더 어린 아이들도 아주 좋아했다. 어린이집 다녀오면 자꾸 TV만 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코믹북으로 책에 취미를 들이는 훈련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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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문제로 나온 하늘색 엉덩이 찾기!

뜬금없는 장소에 슬쩍 놓여진 이 엉덩이를 찾는 건데 완전 꿀잼이다.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이런 숨은그림찾기를 아이들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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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와 연관성은 하나도 없지만 애들은 엉덩이 방석 같은 그림을 찾느라 여념이 없고 어른이 볼 때는 뜬금없어서 웃는다. 파란색 엉덩이는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장소에 몰래 놓여져있다.

 

 

 

 

엉덩이 탐정은 위기의 순간 사건 해결을 위해 비장의 무기를 사용한다. 처음에 봤을 때는 얼굴이 터질 것 같고 엉덩이 모양이라 응아를 하는 줄 알았는데 어린이 만화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냥 방귀였네. 너무 나갔나..

 

 

 

엉덩이인가 얼굴인가.. 어쩐지 어처구니가 없지만 아이들은 방귀 이런 걸 너무나 재밌어한다. 아마도 강렬한 경험이라 그렇겠지. 순수의 시대를 만끽하는 학습만화, 엉덩이 탐정!! 방귀대장 뿡뿡이도 그런 맥락으로 엄청 인기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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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스토리는 태양과 꽃순의 가방을 찾으면 된다. 어떤 이야기인가가 내용이 중요하기보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코믹북이다. 너무 어려우면 퀴즈를 못 맞힐 수도 있는데 옆에서 어른이 힌트를 알려주면 스스로 찾고 무척 뿌듯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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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를 인지한 후, 스토리를 따라가다가 중간중간 문제를 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는 책 엉덩이 탐정 코믹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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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식 이별 - KBS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 시 작품집
김경미 지음 / 문학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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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식 이별"은 김경미 시인이 "김미숙의 가정음악"이라는 한 FM라디오 프로그램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시를 한 편씩 적어서 방송한 것을 엮어서 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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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디오를 안 들은지가 꽤 오래되어서 김미숙씨가 정말 라디오 진행을 오래하는구나 정도밖에 감흥이 없었는데 자기 전에 이 시집의 시를 한 편씩 읽다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침방송 특유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시가 많았고 시인은 애초에 시집으로 묶을 생각도 없었다는데 사장되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싶었다.

 

 

 

오히려 오래 고민하고 쓴 시보다 더 좋게 느껴지는 것도 많았다. 김경미 시인은 매일 한 편의 시를 써서 발표하는 것이 부담되어서 심유리 같은 가명을 쓸까 고민할 정도였다는데 그 즉흥시(?)가 마치 새로 데뷔한 젊은 시인의 작품처럼 풋풋하게 느껴지니 참 예술작품이란 알 수가 없구나 싶고 오래 고민하고 쓴다고 꼭 좋은 시를 쓰는 것도 아니오, 하루 만에 썼다고 시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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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무리 시인이 겸양의 말을 했어도 나는 그가 오랫동안 시작을 한 중견 시인이기에 애초에 학생들이 백일장 가서 머리 쥐어뜯으면서 쓰는 시와 전문 시인의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질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함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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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더 이상 고치지 않기 위해 시집을 낸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읽다보니 고치기 전이 더 좋았던 작품도 있고 고친 후라고 밝힌 게 더 좋았던 작품도 있다. 어느 게 정답이란 것은 있을 수 없나보다. <청춘, 삼십 분>이란 제목의 시를 읽어보면 주인공이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 상대를 30분 단위로 연장해가며 기다리는 게 나온다. 삼십 분은 다들 의리로 기다려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연락도 안 되는 늦는 친구를 30분 기다리고 또 곧 오겠지 하면서 기어코 1시간을 채웠는데 그 후에는 화가 나서 집에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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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시의 주인공은 찻집 종업원이 대걸레로 마감청소를 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더 기다릴지 말지 나가서 결정하기로 한다. 너무나 미련하지만 그만큼 꼭 만나고 싶고 그의 어떤 사정이라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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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원래 이 시의 첫줄을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기다릴 생각은 아니었다>로 하려다가 지금의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 사람>으로 바꾼 듯하다. 나는 수정 전인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기다릴 생각은 아니었다>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이 말이 꼭 들어가줘야 주인공이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랑의 마음이 미련하다는 게 더 전달이 잘 되는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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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는 수정 전후의 느낌이 독자에게 무척 다르게 와닿는데 그 때문에 시인들은 고치고 또 고치고 하나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도 시를 고치는 어려움을 후배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그의 평전을 20년 전에 읽어서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김경미 시인처럼 고쳐쓰는 시에 대해 적은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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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식 이별"이란 제목이 무슨 뜻인지는 책 속에 나와있지만 쉽게 찾을 수 있고 너무나 예민한 카프카가 한 이별이 내게는 그닥 와닿지 않았서 굳이 적지 않으련다. 사랑이나 이별의 시보다는 작가가 해외여행 가서 겪은 감상, 일상에서 느끼는 후회, 계절의 변화 이런 소박하고 다정한 주제가 어쩐지 더 사랑스러웠다. 이 시는 애초에 아침 라디오의 애청자들을 위해 쓴 시다. 아침에 듣기에는 <월요일을 위한 '아무 말 대잔치'>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애청자들과의 호흡이 느껴지는 시가 이미 죽고 없는 카프카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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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왼쪽에는 시 한편, 오른쪽에는 시인의 설명이나 첨언이 덧붙여있는데 이 시도가 너무나 좋았다.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시집을 많이 읽지 않는다. 1년에 한 권꼴로 읽는 것 같다. 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도움닫기를 할 장치가 필요하다. 그냥 시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되어있으면 멀리뛰기 하기도 전에 포기할 지도 모른다. 앙드레 지드가 했다는 저 지옥의 벌, 너무나 멋지다. "지옥에는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끝내지 못한 일들을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 말고 다른 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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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벌이자 슬프도록 아름답다. 저 말을 한 사람이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이기 때문이다. 좁은문의 주인공은 결혼할 수도 없는 사촌누이 알리샤를 사랑했는데 자세한 것은 잊었지만 앙드레 지드의 사생활과 오버랩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앙드레 지드에게 살아있는 동안 끝내지 못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죽어서 시도라도 다시 할 수 있다면 그건 축복일까 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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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 시집은 시인이 던지는 짧은 화두와 설명이 오른쪽에 공존하며 독자와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자기 전에 이 그립감 좋은 양장본의 시집을 손에 쥐고 몇 장씩 넘겨보다 무척 꿀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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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빛나는 순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윤예지 그림, 박태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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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신작인 "내가 빛나는 순간"은 그림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나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연금술사"는 너무 오래 되어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이 말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작가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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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니, 뭐 이런 글자도 몇 개 없고 당연한 말만 늘어놓는 작가가 뭐가 대단하다고 이게 베스트셀러란 말인가? 정말 돈 벌기 쉽군.' 이게 나의 솔직한 감상이었고 그닥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다시 이 신간을 잠 안 오는 밤에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읽다보니 '어라? 형식은 똑같은데 받아들이는 마음이 그새 바뀐 걸까?' 당연한 말이 처음 듣는 진리처럼 느껴지며 싸악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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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림의 공도 큰 것 같다. 주인공 소녀 옆에 딱 붙어 등장하는 이 검은 고양이, 우리집 고양이 젊은 시절과 쏙 빼닮은 데다가 그림작가가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 같다. 고양이의 행동이나 동작이 너무나 애묘인이라 내 마음에 그야말로 찰떡처럼 들러붙어 나같은 냉혈인에게도 드디어 파울료의 글이 와닿았다. 하하하.. 물론 십년새 나도 많이 세상에 치인 데다가 나이를 먹어서 이제야 파울료의 마법이 통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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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성취하길 원한다면 우선 내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간결한 조언과 고양이의 초집중 도움닫기! 고양이란 동물은 뭔가 타겟을 정하면 몇날 며칠이고 포기를 모른다. 벌레 한 마리도 최선을 다해 노려보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궁둥이를 몇 번 흔든 후에 도움닫기를 해서 날아올라 기어코 덮치고야 마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그 귀여운 사냥놀이에 흠뻑 빠지게 되는데 작가의 글과 그림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목표 설정, 끈기, 집중. 이 세 가지를 하지 않고 실패를 말하기에는 너무 면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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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책을 읽기에 바빠 번역서이니 당연히 그림도 외국작가 것을 계약해서 고스란히 실었겠지 했다가 윤예지라는 한국작가이고 "마당을 나온 암탉"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러스트레이터 소개를 보고 깜놀. 책을 끝까지 읽고 덮고나니 글과 그림의 조화가 너무나 훌륭해서 브라질 원작에 외국 작가의 그림이 실렸다해도 윤예지 작가의 그림만큼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성인을 위한 마법 같은 동화이다. 사회생활도 좀 해보고, 사랑에 울어도 보고, 미워하는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그럼에도 인정하기 싫고, 시기 질투도 다 겪어본 인생의 단짠을 다 아는 사람이 읽으면 더욱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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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이 와도 읽기 편하게 글자가 몇 개 없지만 그림으로 많은 경우의 수를 설명하고 있으며 밤에 읽으면 꿀잠 잘 수 있고 반대로 지난 일이 떠올라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시간낭비 하느니 돈을 낭비하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말에는 무릎을 탁 쳤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되돌려 받길 바라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는 코엘료 작가의 말. 할아버지의 인자한 인생경험을 듣다보면 그렇지, 그렇지 전에 없이 동의하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처럼 원초적으로 살고 싶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그 여정을 즐기는 것. 목표를 정하면 달려가고 열심히 해야겠지만 그래도 실패했다면 졌다고 받아들일 것.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람은 이렇게 짧고 담백하게 써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구나 이제야 작가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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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살아왔다
샤를 와그너 지음, 이정은 옮김 / 크레파스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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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샤를 와그너는 프랑스 사람으로 1852년에 태어난 소위 옛날 사람이다. 이 책은 저자가 1895년에 쓴 "단순한 삶"을 새롭게 출판한 것인데 사실 이름만 다를 뿐 다른 출판사에서도 "단순한 삶", "단순하게 살기" 등으로 제목만 다르게 꾸준히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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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인 와그너는 단순한 삶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설파하고 있다. 언뜻 읽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뿐이라 처음에는 다소 지루했지만 과연 이 당연한 이야기를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염두에 두니 참으로 대단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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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단순한 삶은 본질에 충실한 삶을 말한다. 본인 자체가 허례허식을 미워하고, 허풍과 과장을 싫어하는 담백한 사람이라 그런 솔직한 삶을 남들에게도 지향하도록 권하고 있다. 그는 무턱대고 부자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오, 가난뱅이를 동정하고 있지도 않다. 부자라고 남을 깔볼 것도 없고 가난하다고 옆 사람의 부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면 그것도 옳지 않다고 한다. 즉 중용이나 정도를 지키라는 뜻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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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가정과 사회, 직장에서 각자 자기의 의무와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단순한 삶이자 건강하게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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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의무는 매력적이라 이것에 온통 정신이 팔려 가까운 의무를 깨닫지도 못한다."

"사람이 활동해야 할 자리는 그 사람 가까이에 있는 의무의 공간이다."

 

  

 

 

 

 

나는 이 문구를 읽고 주변의 여러 명을 떠올리며 웃고 말았다. 독거노인이나 불우이웃 등은 열심히 도우러 다니면서 정작 자기 식구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가장, 멀리서 혼자 사는 늙은 어머니는 굶고 있는데 자기랑 상관없는 시위현장에 데모를 도우러 나가는 아들도 봤다. 그들 모두 나름대로는 분명 훌륭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인데 과연 누구를 위한 봉사이고 희생인가? 그 모든 훌륭한 일은 자신의 가정을 먼저 돌본 후에 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던가?

 

 

 

 

샤를 와그너가 봤다면 이 사람들은 모두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 자들이자 단순한 삶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다. 본인의 명예나 자아실현 욕구에 사로잡혀 가까운 가족의 경제적 궁핍은 나몰라라 하는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와그너는 삶을 단순하게 봤다. 복잡할 이유가 없다. 엄청나게 많은 일에 관여하면서 정작 자기 의무를 게을리 하는 사람, 자기 자리에 있지 않고 자기 직업을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삶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고 주장한다.

 

"각자 자기가 챙겨야 할 일을 하면 모든 것이 너무도 단순할 텐데."

 

이 한 줄에 100년 후라도 바뀌지 않을 명제가 담겨있다.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단순한 삶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면 된다는 게 핵심이다.


 

단순한 삶이란 가장 인간다운 삶을 말한다. 이웃과 나눌수록 더 기쁨이 커지고 선한 일은 아무도 모르게 할 때 가장 보람되다는 등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영혼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지고 작은 일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자녀를 키울 때에도 응석을 다 받아주어서 부모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또 부모의 소유물이 되지 않도록 아이는 그의 삶 자체를 위해 키울 것을 권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100년도 전에 대중에게 권한 책. 고전은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에 변함이 없듯이 삶의 모습이 100년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단순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100년전보다 지금 더 많아졌을 것이다. 돈에 함몰되지 않는 삶, 욕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기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소박하게 사는 삶, 단란한 가정에서 오는 행복, 자신의 의무와 역할에 충실한 삶, 또한 남일이라고 외면하지 않고 불행에 빠진 타인을 돕는 이타주의 등 인간답게 잘사는 법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천천히 읽어보면 사람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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