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3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3
고은문화사 편집부 지음 / 고은문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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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 오면 엉덩이 탐정을 애니메이션으로만 봤는데 이렇게 학습만화책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홀로그램 카드까지 부록으로 같이 줘서 서로 갖겠다고 난리가 났다. 아이들은 참 이상한 데 꽂히는데 역시 만화는 부록의 힘이 크다.

 

 

 

 

엉덩이 탐정 애니메이션 코믹북 3권의 부록은 왔다갔다 방향에 따라 엉덩이 탐정이 됐다가 그 아버지인 엉덩이 댄디가 됐다가 얼굴이 바뀌는 홀로그램 카드이다.

 

 

 

 

이 책은 시리즈라 앞서 1, 2권이 출간되었고 벌써 3권째이다. 학습만화이다보니 그냥 코믹북이 아니고 중간중간 문제를 풀어야한다. 난도는 그렇게 높지 않아서 5살 짜리 조카도 약간만 힌트를 주면 재미있게 볼 정도였다. 스토리가 크게 2가지가 들었는데 "함정이 가득한 정글"이라고 태고의 잠을 깨우는 지팡이를 찾아나선 모험과 후속인 "가방을 찾아라"가 있다. 그러고보니 둘 다 찾는 거네.

 

 

 

 

 

 

굳이 1, 2권을 찾아읽지 않아도 TV애니메이션을 본 독자라면 따라가기가 쉽고 아예 사전지식이 없어도 캐릭터 소개를 읽어보고 시작하면 간단히 이해가 된다. 주인공은 엉덩이 탐정과 그의 아버지 엉덩이 댄디. 처음에는 유전자 변형 인간인가 왜 얼굴에 엉덩이가 달려있나 의아했는데 어차피 이 만화에 사람은 없는 것을 곧 눈치채고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어린이 만화는 깊이 생각하면 안된다.

또 하나의 장점은 다채로운 성격의 캐릭터!

 

 

 

 

일본 만화가 원작인 것은 처음 알았는데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라이선스판이었다. 선한 인물부터 악당까지 캐릭터가 전부 귀엽고 중간쯤 어딘가 일본만화같다고 여기면서 봤는데 딱 맞췄네.

악당 3인조로 등장하는 고양이 누님과 남동생! 애들은 전혀 신경도 안 썼지만 이 고양이 캐릭터 너무나 귀엽다!

 

 

 

 

이 고양이 3인조 남매가 지팡이를 훔쳐갔기에 이들을 쫓아 밀림탐험에 나선 엉덩이 탐정 일행들의 모험이 첫번째 이야기이다. 중간에 이렇게 "미로를 빠져나가는 법"이라는 문제를 풀어야 하고 다음 장에 바로 답이 나온다. 문제는 전부 어렵지 않은데 아이 나이가 아주 어리면 부모가 좀 도와줘야 한다.

 

 

 

 

엉덩이 탐정의 조력자 방울씨도 역시 고양이!! 고양이 좋아하는 일본인답게 캐릭터에 벌써 고양이가 총 4마리(?)나 등장!

특징을 잘 잡았고 전체적으로 컬러링이 아주 좋다. 초반에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구성이라 초등학생은 되야 이해를 할 거 같았는데 일단 그림의 매력이 커서 더 어린 아이들도 아주 좋아했다. 어린이집 다녀오면 자꾸 TV만 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코믹북으로 책에 취미를 들이는 훈련도 될 것 같다.

다음 문제로 나온 하늘색 엉덩이 찾기!

뜬금없는 장소에 슬쩍 놓여진 이 엉덩이를 찾는 건데 완전 꿀잼이다.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이런 숨은그림찾기를 아이들이 좋아한다.

 

 

줄거리와 연관성은 하나도 없지만 애들은 엉덩이 방석 같은 그림을 찾느라 여념이 없고 어른이 볼 때는 뜬금없어서 웃는다. 파란색 엉덩이는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장소에 몰래 놓여져있다.

 

 

 

 

엉덩이 탐정은 위기의 순간 사건 해결을 위해 비장의 무기를 사용한다. 처음에 봤을 때는 얼굴이 터질 것 같고 엉덩이 모양이라 응아를 하는 줄 알았는데 어린이 만화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냥 방귀였네. 너무 나갔나..

 

 

 

엉덩이인가 얼굴인가.. 어쩐지 어처구니가 없지만 아이들은 방귀 이런 걸 너무나 재밌어한다. 아마도 강렬한 경험이라 그렇겠지. 순수의 시대를 만끽하는 학습만화, 엉덩이 탐정!! 방귀대장 뿡뿡이도 그런 맥락으로 엄청 인기가 있지..

두 번째 스토리는 태양과 꽃순의 가방을 찾으면 된다. 어떤 이야기인가가 내용이 중요하기보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코믹북이다. 너무 어려우면 퀴즈를 못 맞힐 수도 있는데 옆에서 어른이 힌트를 알려주면 스스로 찾고 무척 뿌듯해한다.

캐릭터를 인지한 후, 스토리를 따라가다가 중간중간 문제를 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는 책 엉덩이 탐정 코믹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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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식 이별 - KBS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 시 작품집
김경미 지음 / 문학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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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식 이별"은 김경미 시인이 "김미숙의 가정음악"이라는 한 FM라디오 프로그램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시를 한 편씩 적어서 방송한 것을 엮어서 낸 시집이다.

나는 라디오를 안 들은지가 꽤 오래되어서 김미숙씨가 정말 라디오 진행을 오래하는구나 정도밖에 감흥이 없었는데 자기 전에 이 시집의 시를 한 편씩 읽다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침방송 특유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시가 많았고 시인은 애초에 시집으로 묶을 생각도 없었다는데 사장되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싶었다.

 

 

 

오히려 오래 고민하고 쓴 시보다 더 좋게 느껴지는 것도 많았다. 김경미 시인은 매일 한 편의 시를 써서 발표하는 것이 부담되어서 심유리 같은 가명을 쓸까 고민할 정도였다는데 그 즉흥시(?)가 마치 새로 데뷔한 젊은 시인의 작품처럼 풋풋하게 느껴지니 참 예술작품이란 알 수가 없구나 싶고 오래 고민하고 쓴다고 꼭 좋은 시를 쓰는 것도 아니오, 하루 만에 썼다고 시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다.

물론 아무리 시인이 겸양의 말을 했어도 나는 그가 오랫동안 시작을 한 중견 시인이기에 애초에 학생들이 백일장 가서 머리 쥐어뜯으면서 쓰는 시와 전문 시인의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질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함을 알고 있다.

 

 

 

 

시인은 더 이상 고치지 않기 위해 시집을 낸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읽다보니 고치기 전이 더 좋았던 작품도 있고 고친 후라고 밝힌 게 더 좋았던 작품도 있다. 어느 게 정답이란 것은 있을 수 없나보다. <청춘, 삼십 분>이란 제목의 시를 읽어보면 주인공이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 상대를 30분 단위로 연장해가며 기다리는 게 나온다. 삼십 분은 다들 의리로 기다려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연락도 안 되는 늦는 친구를 30분 기다리고 또 곧 오겠지 하면서 기어코 1시간을 채웠는데 그 후에는 화가 나서 집에 가버렸다.

하지만 이 시의 주인공은 찻집 종업원이 대걸레로 마감청소를 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더 기다릴지 말지 나가서 결정하기로 한다. 너무나 미련하지만 그만큼 꼭 만나고 싶고 그의 어떤 사정이라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시인은 원래 이 시의 첫줄을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기다릴 생각은 아니었다>로 하려다가 지금의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 사람>으로 바꾼 듯하다. 나는 수정 전인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기다릴 생각은 아니었다>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이 말이 꼭 들어가줘야 주인공이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랑의 마음이 미련하다는 게 더 전달이 잘 되는 것 같아서이다.

이렇게 시는 수정 전후의 느낌이 독자에게 무척 다르게 와닿는데 그 때문에 시인들은 고치고 또 고치고 하나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도 시를 고치는 어려움을 후배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그의 평전을 20년 전에 읽어서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김경미 시인처럼 고쳐쓰는 시에 대해 적은 글이 있다.

"카프카식 이별"이란 제목이 무슨 뜻인지는 책 속에 나와있지만 쉽게 찾을 수 있고 너무나 예민한 카프카가 한 이별이 내게는 그닥 와닿지 않았서 굳이 적지 않으련다. 사랑이나 이별의 시보다는 작가가 해외여행 가서 겪은 감상, 일상에서 느끼는 후회, 계절의 변화 이런 소박하고 다정한 주제가 어쩐지 더 사랑스러웠다. 이 시는 애초에 아침 라디오의 애청자들을 위해 쓴 시다. 아침에 듣기에는 <월요일을 위한 '아무 말 대잔치'>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애청자들과의 호흡이 느껴지는 시가 이미 죽고 없는 카프카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 왼쪽에는 시 한편, 오른쪽에는 시인의 설명이나 첨언이 덧붙여있는데 이 시도가 너무나 좋았다.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시집을 많이 읽지 않는다. 1년에 한 권꼴로 읽는 것 같다. 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도움닫기를 할 장치가 필요하다. 그냥 시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되어있으면 멀리뛰기 하기도 전에 포기할 지도 모른다. 앙드레 지드가 했다는 저 지옥의 벌, 너무나 멋지다. "지옥에는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끝내지 못한 일들을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 말고 다른 벌은 없다,"

무시무시한 벌이자 슬프도록 아름답다. 저 말을 한 사람이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이기 때문이다. 좁은문의 주인공은 결혼할 수도 없는 사촌누이 알리샤를 사랑했는데 자세한 것은 잊었지만 앙드레 지드의 사생활과 오버랩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앙드레 지드에게 살아있는 동안 끝내지 못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죽어서 시도라도 다시 할 수 있다면 그건 축복일까 벌일까?

이렇게 이 시집은 시인이 던지는 짧은 화두와 설명이 오른쪽에 공존하며 독자와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자기 전에 이 그립감 좋은 양장본의 시집을 손에 쥐고 몇 장씩 넘겨보다 무척 꿀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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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빛나는 순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윤예지 그림, 박태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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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신작인 "내가 빛나는 순간"은 그림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나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연금술사"는 너무 오래 되어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이 말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작가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아주 오래 전에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니, 뭐 이런 글자도 몇 개 없고 당연한 말만 늘어놓는 작가가 뭐가 대단하다고 이게 베스트셀러란 말인가? 정말 돈 벌기 쉽군.' 이게 나의 솔직한 감상이었고 그닥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다시 이 신간을 잠 안 오는 밤에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읽다보니 '어라? 형식은 똑같은데 받아들이는 마음이 그새 바뀐 걸까?' 당연한 말이 처음 듣는 진리처럼 느껴지며 싸악 스며들었다.

 

아마도 그림의 공도 큰 것 같다. 주인공 소녀 옆에 딱 붙어 등장하는 이 검은 고양이, 우리집 고양이 젊은 시절과 쏙 빼닮은 데다가 그림작가가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 같다. 고양이의 행동이나 동작이 너무나 애묘인이라 내 마음에 그야말로 찰떡처럼 들러붙어 나같은 냉혈인에게도 드디어 파울료의 글이 와닿았다. 하하하.. 물론 십년새 나도 많이 세상에 치인 데다가 나이를 먹어서 이제야 파울료의 마법이 통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길 원한다면 우선 내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간결한 조언과 고양이의 초집중 도움닫기! 고양이란 동물은 뭔가 타겟을 정하면 몇날 며칠이고 포기를 모른다. 벌레 한 마리도 최선을 다해 노려보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궁둥이를 몇 번 흔든 후에 도움닫기를 해서 날아올라 기어코 덮치고야 마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그 귀여운 사냥놀이에 흠뻑 빠지게 되는데 작가의 글과 그림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목표 설정, 끈기, 집중. 이 세 가지를 하지 않고 실패를 말하기에는 너무 면목이 없다.

초반에는 책을 읽기에 바빠 번역서이니 당연히 그림도 외국작가 것을 계약해서 고스란히 실었겠지 했다가 윤예지라는 한국작가이고 "마당을 나온 암탉"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러스트레이터 소개를 보고 깜놀. 책을 끝까지 읽고 덮고나니 글과 그림의 조화가 너무나 훌륭해서 브라질 원작에 외국 작가의 그림이 실렸다해도 윤예지 작가의 그림만큼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성인을 위한 마법 같은 동화이다. 사회생활도 좀 해보고, 사랑에 울어도 보고, 미워하는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그럼에도 인정하기 싫고, 시기 질투도 다 겪어본 인생의 단짠을 다 아는 사람이 읽으면 더욱 좋을 책이다.

노안이 와도 읽기 편하게 글자가 몇 개 없지만 그림으로 많은 경우의 수를 설명하고 있으며 밤에 읽으면 꿀잠 잘 수 있고 반대로 지난 일이 떠올라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시간낭비 하느니 돈을 낭비하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말에는 무릎을 탁 쳤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되돌려 받길 바라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는 코엘료 작가의 말. 할아버지의 인자한 인생경험을 듣다보면 그렇지, 그렇지 전에 없이 동의하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처럼 원초적으로 살고 싶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그 여정을 즐기는 것. 목표를 정하면 달려가고 열심히 해야겠지만 그래도 실패했다면 졌다고 받아들일 것.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람은 이렇게 짧고 담백하게 써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구나 이제야 작가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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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살아왔다
샤를 와그너 지음, 이정은 옮김 / 크레파스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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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샤를 와그너는 프랑스 사람으로 1852년에 태어난 소위 옛날 사람이다. 이 책은 저자가 1895년에 쓴 "단순한 삶"을 새롭게 출판한 것인데 사실 이름만 다를 뿐 다른 출판사에서도 "단순한 삶", "단순하게 살기" 등으로 제목만 다르게 꾸준히 나온 책이다.

목사인 와그너는 단순한 삶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설파하고 있다. 언뜻 읽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뿐이라 처음에는 다소 지루했지만 과연 이 당연한 이야기를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염두에 두니 참으로 대단해보였다.

그가 말하는 단순한 삶은 본질에 충실한 삶을 말한다. 본인 자체가 허례허식을 미워하고, 허풍과 과장을 싫어하는 담백한 사람이라 그런 솔직한 삶을 남들에게도 지향하도록 권하고 있다. 그는 무턱대고 부자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오, 가난뱅이를 동정하고 있지도 않다. 부자라고 남을 깔볼 것도 없고 가난하다고 옆 사람의 부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면 그것도 옳지 않다고 한다. 즉 중용이나 정도를 지키라는 뜻으로 읽힌다.

특히나 가정과 사회, 직장에서 각자 자기의 의무와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단순한 삶이자 건강하게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멀리 있는 의무는 매력적이라 이것에 온통 정신이 팔려 가까운 의무를 깨닫지도 못한다."

"사람이 활동해야 할 자리는 그 사람 가까이에 있는 의무의 공간이다."

 

  

 

 

 

 

나는 이 문구를 읽고 주변의 여러 명을 떠올리며 웃고 말았다. 독거노인이나 불우이웃 등은 열심히 도우러 다니면서 정작 자기 식구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가장, 멀리서 혼자 사는 늙은 어머니는 굶고 있는데 자기랑 상관없는 시위현장에 데모를 도우러 나가는 아들도 봤다. 그들 모두 나름대로는 분명 훌륭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인데 과연 누구를 위한 봉사이고 희생인가? 그 모든 훌륭한 일은 자신의 가정을 먼저 돌본 후에 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던가?

 

 

 

 

샤를 와그너가 봤다면 이 사람들은 모두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 자들이자 단순한 삶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다. 본인의 명예나 자아실현 욕구에 사로잡혀 가까운 가족의 경제적 궁핍은 나몰라라 하는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와그너는 삶을 단순하게 봤다. 복잡할 이유가 없다. 엄청나게 많은 일에 관여하면서 정작 자기 의무를 게을리 하는 사람, 자기 자리에 있지 않고 자기 직업을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삶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고 주장한다.

 

"각자 자기가 챙겨야 할 일을 하면 모든 것이 너무도 단순할 텐데."

 

이 한 줄에 100년 후라도 바뀌지 않을 명제가 담겨있다.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단순한 삶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면 된다는 게 핵심이다.


 

단순한 삶이란 가장 인간다운 삶을 말한다. 이웃과 나눌수록 더 기쁨이 커지고 선한 일은 아무도 모르게 할 때 가장 보람되다는 등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영혼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지고 작은 일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자녀를 키울 때에도 응석을 다 받아주어서 부모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또 부모의 소유물이 되지 않도록 아이는 그의 삶 자체를 위해 키울 것을 권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100년도 전에 대중에게 권한 책. 고전은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에 변함이 없듯이 삶의 모습이 100년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단순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100년전보다 지금 더 많아졌을 것이다. 돈에 함몰되지 않는 삶, 욕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기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소박하게 사는 삶, 단란한 가정에서 오는 행복, 자신의 의무와 역할에 충실한 삶, 또한 남일이라고 외면하지 않고 불행에 빠진 타인을 돕는 이타주의 등 인간답게 잘사는 법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천천히 읽어보면 사람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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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 조현병을 이겨낸 심리학자가 전하는 삶의 찬가
아른힐 레우벵 지음, 손희주 옮김 / 생각정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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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근래에 읽은 책 중 가장 충격적이고 사실적인 심리학 책을 읽었다. 저자가 무려 조현병 환자로 10년을 앓다가 나은 후 대학에서 석사, 박사를 따고 심리학자가 된 인간승리의 산증인이다.


얼마나 묘사가 생생한지 읽으면서 때로는 두렵고 끔찍한 생각도 들었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정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데(엄마가 운전하는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차도로 뛰어내림) 그 순간 그녀가 느낀 충동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런 일을 저지를 때조차 완전히 미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일을 저지르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 누가 좋아서 자살을 밥 먹듯 시도하고 벽지를 뜯어먹을까?

 

 

 

저자는 10대 시절부터 조현병이 시작되었는데 그 어떤 병도 초기에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다. 따돌림이 이유였는지 아님 10대 특유의 외로움 때문인지 몰라도 환각과 환청이 나타나는데 특히 선장의 목소리가 그녀를 괴롭힌다.


그 선장은 저자에게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이래라, 저래라' 갖은 명령하며 괴롭히고 따르지 않으면 때린다. 물론 자기 손으로 뺨을 때리거나 허벅지를 찌르는 식인데 안 할 수 없게 괴롭히는 목소리로 등장한다.


알고 보면 선장은 그녀의 또 다른 자아일 뿐이다. 넌 밥 먹을 가치도 없으니 조금씩만 먹으라고 명령해서 점점 줄이다가 일주일에 3회를 먹는다니 기가 차지 않는가? 다한 숙제를 밤새도록 다시 하고 그럴 가치도 이유도 없는 단순한 숙제일 뿐인데.. 명령을 듣지 않으면 또다시 때린다. 물론 자기 손으로 자기 뺨을..

조현병은 분리된 감각을 뜻하는데 그녀가 들은 강압적인 선장의 목소리는 내면의 또 다른 나에 지나치 않지만 겪을 당시에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선장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하는 "편집증적인 조현병" 진단 범주에 딱 맞는다.


"환청"에는 명령도 들어간다. 저자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TV 드라마에도 조현병 환자들은 늘 어떤 소리를 듣거나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혼자 놀라기도 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안절부절못하는 경우를 자주 보여줬다.

그녀가 겪는 고통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어떤 사람의 완벽주의 성향도 그 조현병이란 것과 만나면 저런 식으로 발현될 수 있구나 알게 되었다. 상당히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적고 있어서 영상으로 봤다면 잠도 못 잘 기겁할 내용인데도 꽤 차가운 눈으로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또한 선장으로 대표되는 환청 말고 환시도 겪는다. 늑대나 악어로 대표되는 징그러운 동물 외에도 외로움이 인격화되어서 동경하던 발레 선생님의 모습으로 푸른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은 한편의 아름다운 소설처럼 슬펐다. 세상에 얼마나 외로웠고 또 예민한 시기였으면 외로움도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올까?


그녀는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굉장히 뛰어난 문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녀가 심리학자가 아니라 소설가로 데뷔했어도 대성할 것임을 그냥 알 수 있다. 뷰티플 마인드의 천재 수학자 존 내쉬처럼 뭐라고 되었을 것이다. 물론 조현병으로 병원에 갇혀 지내던 어두운 시기에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랴..

이 책을 읽으면서 슬프면서도 가슴이 뜨거워진 건 그 누구라도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해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시기를 겪더라도 방향을 잡고 기회를 노리면 반드시 역전의 순간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인생에 정말 아무 희망이 없다면 살고 싶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저자는 고집도 세고 열정도 강한 인물이라 그 고통을 겪으면서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놀라운 강인함이다. 결국 그 강인함 때문에 남보다 더 고생하지만(폐쇄병동에서 환자가 말을 안 들으면 무려 10주간이나 고무로 만든 독방에 혼자 갇힐 수 있다), 자신이 납득한 바가 아니면 쉽게 인정하지 않는 그 투철한 반항정신 덕에 수면제나 굴리는 단순노동에서 벗어나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단순노동에 흥미를 느끼지 않아, 나는 내 꿈이 있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때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희망을 잃지 않았고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또 하나, 스콧이라는 학자의 연구 결과를 보면 시력이 9% 남은 사람과 11% 남은 사람은 단 2%라는 미미한 차이밖에 없는데도 의사의 진단에 따라 향후 인생이 확 달라지는 게 연구결과 밝혀졌다고 한다.

실명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그는 진짜 눈이 안 보이게 된다고 한다. 그를 돕는 의료체계나 지원도 시력상실에 맞춰서 제공되고 눈이 안 보이는 생활에 적응하도록 강요받는다고.. 징그럽다.


그럼 11% 보이는 사람은? 그 사람은 저시력자에 맞춘 안경, 돋보기, 사회서비스를 받고 계속 시력 유지 또는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결국 죽을 때까지 볼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이진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그 어떤 의사도 한 사람에게서 시력을 빼앗아 갈 권리는 없다. 아마 실명 선고를 하는 의사도 원칙에 따라 9% 면 실명, 11% 면 시각장애 정도로 판단을 내리겠지만 그 후의 환자 인생이 저렇게 극명하게 갈린다면 그렇게 간단히 "당신은 앞으로 눈이 멀 테니 각오하시오"라는 취지의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인 아른힐 레우뱅에게도 조현병이란 평생 가는 병이고 치료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의사나 간호사가 없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녀는 늘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준 어머니, 언니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른힐이 도자기 잔이나 깨지는 물건만 보면 충동적으로 집어서 깨뜨리고 결국 손목을 긋고 만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른힐이 집에 온 날 아끼는 꽃무늬 도자기 잔을 또 내어주었다. 너는 아름다움을 아는 아이이니 이걸 깨지 않을 거라 믿는다며. 당연히 그녀는 마음속 충동을 이겨내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그녀는 환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딸이자 집으로 돌아올 자식일 뿐이었다.

언니에게도 항상 동생은 먼 길을 돌아갈지언정 집으로 언젠가 올바른 길로 돌아올 사랑하는 동생이다. 대학 학위를 받는 날 언니가 그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와 축하해 준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다.


사람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단 한 명만 있어도 비뚤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른힐이 치료가 어려운 조현병 환자에서 이제는 그 모든 일을 과거로 흘려버리고 당당히 심리학자가 되어 아픈 이들을 돕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물론 이 세상에는 사악한 인간이 셀 수 없이 많다. 아른힐이 만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경찰, 간호사, 간병인, 의사는 10년의 투병생활 동안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잘 대해준 한 명의 간호사, 네 명의 간병인, 두 명의 경찰, 한 명의 의사를 잊지 않고 그들에게 집중했다.


양준일 씨도 그의 책 '너와 나의 암호말'에서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고들 하지만 경험 역시 내게는 쓰레기다. 경험이란 내가 겪고, 내 눈으로 본 것일 뿐 진실이 아니다. 과거가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못하도록 나는 오늘도 머릿속 쓰레기를 비우며 그 속에 숨은 보석을 찾는다."라고. 나쁜 경험을 곱씹으며 과거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그런 건 쓰레기처럼 자꾸 치워야 한다.

그녀는 독방에 10주나 갇혀 대화를 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고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몰래 십자말풀이를 가져다준 간병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도 말했듯이 조현병이 있다고 그녀의 모든 부분이 100% 미쳐있는 게 아니다. 어떤 부분은 당연히 너무나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느끼는데 환자라면 으레 모든 부분이 미쳤으리라 가정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동안 조현병은 얼마 전까지 정신분열증으로 불리는 무서운 병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사회와 격리되어야 하며 그런 환자들은 평생 낫지 않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통계적으로도 1/3은 완치가 되고 1/3은 약이나 치료로 조절이 되며 1/3만 차도가 없이 나아지지 않는다니 그럼 역시 이 세상은 살 만한 것이 아닌가?


아까의 9%, 11% 시력의 경우처럼 환자 스스로가 포기하면 안 될 일이다. 어떤 조현병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그는 자기 나머지 인생을 구원할 기회를 잃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은 스스로 구해야 한다. 단 2% 차이는 의학상으로도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미미하다. 그런 차이조차 믿음에 의해 누구는 평생 보고, 누구는 완전 실명한다니 이보다 극명한 실험이 있을 수 있나?


조현병 환자였던 사실을 숨기지 않고 떳떳이 드러냄으로써 다른 조현병 환자들도 희망을 가질 것이다. 모든 정신질환은 나을 수 있다. 늑대가 발목 뼈를 보일 정도로 뜯어먹는 환시를 보면서도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국 그 어떤 끔찍한 경험도 과거로 흘러갔다. 그녀는 이제 성공한 심리학자로 책도 쓰고 강연도 다니는 등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인생에 몇 년, 혹은 10년을 허비해도 남들보다 많이 늦는 것도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많은 다른 독자들도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참 따뜻하고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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