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 조현병을 이겨낸 심리학자가 전하는 삶의 찬가
아른힐 레우벵 지음, 손희주 옮김 / 생각정원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근래에 읽은 책 중 가장 충격적이고 사실적인 심리학 책을 읽었다. 저자가 무려 조현병 환자로 10년을 앓다가 나은 후 대학에서 석사, 박사를 따고 심리학자가 된 인간승리의 산증인이다.
얼마나 묘사가 생생한지 읽으면서 때로는 두렵고 끔찍한 생각도 들었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정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데(엄마가 운전하는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차도로 뛰어내림) 그 순간 그녀가 느낀 충동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런 일을 저지를 때조차 완전히 미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일을 저지르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 누가 좋아서 자살을 밥 먹듯 시도하고 벽지를 뜯어먹을까?

저자는 10대 시절부터 조현병이 시작되었는데 그 어떤 병도 초기에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다. 따돌림이 이유였는지 아님 10대 특유의 외로움 때문인지 몰라도 환각과 환청이 나타나는데 특히 선장의 목소리가 그녀를 괴롭힌다.
그 선장은 저자에게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이래라, 저래라' 갖은 명령하며 괴롭히고 따르지 않으면 때린다. 물론 자기 손으로 뺨을 때리거나 허벅지를 찌르는 식인데 안 할 수 없게 괴롭히는 목소리로 등장한다.
알고 보면 선장은 그녀의 또 다른 자아일 뿐이다. 넌 밥 먹을 가치도 없으니 조금씩만 먹으라고 명령해서 점점 줄이다가 일주일에 3회를 먹는다니 기가 차지 않는가? 다한 숙제를 밤새도록 다시 하고 그럴 가치도 이유도 없는 단순한 숙제일 뿐인데.. 명령을 듣지 않으면 또다시 때린다. 물론 자기 손으로 자기 뺨을..
조현병은 분리된 감각을 뜻하는데 그녀가 들은 강압적인 선장의 목소리는 내면의 또 다른 나에 지나치 않지만 겪을 당시에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선장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하는 "편집증적인 조현병" 진단 범주에 딱 맞는다.
"환청"에는 명령도 들어간다. 저자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TV 드라마에도 조현병 환자들은 늘 어떤 소리를 듣거나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혼자 놀라기도 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안절부절못하는 경우를 자주 보여줬다.
그녀가 겪는 고통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어떤 사람의 완벽주의 성향도 그 조현병이란 것과 만나면 저런 식으로 발현될 수 있구나 알게 되었다. 상당히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적고 있어서 영상으로 봤다면 잠도 못 잘 기겁할 내용인데도 꽤 차가운 눈으로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또한 선장으로 대표되는 환청 말고 환시도 겪는다. 늑대나 악어로 대표되는 징그러운 동물 외에도 외로움이 인격화되어서 동경하던 발레 선생님의 모습으로 푸른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은 한편의 아름다운 소설처럼 슬펐다. 세상에 얼마나 외로웠고 또 예민한 시기였으면 외로움도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올까?
그녀는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굉장히 뛰어난 문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녀가 심리학자가 아니라 소설가로 데뷔했어도 대성할 것임을 그냥 알 수 있다. 뷰티플 마인드의 천재 수학자 존 내쉬처럼 뭐라고 되었을 것이다. 물론 조현병으로 병원에 갇혀 지내던 어두운 시기에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랴..
이 책을 읽으면서 슬프면서도 가슴이 뜨거워진 건 그 누구라도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해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시기를 겪더라도 방향을 잡고 기회를 노리면 반드시 역전의 순간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인생에 정말 아무 희망이 없다면 살고 싶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저자는 고집도 세고 열정도 강한 인물이라 그 고통을 겪으면서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놀라운 강인함이다. 결국 그 강인함 때문에 남보다 더 고생하지만(폐쇄병동에서 환자가 말을 안 들으면 무려 10주간이나 고무로 만든 독방에 혼자 갇힐 수 있다), 자신이 납득한 바가 아니면 쉽게 인정하지 않는 그 투철한 반항정신 덕에 수면제나 굴리는 단순노동에서 벗어나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단순노동에 흥미를 느끼지 않아, 나는 내 꿈이 있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때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희망을 잃지 않았고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또 하나, 스콧이라는 학자의 연구 결과를 보면 시력이 9% 남은 사람과 11% 남은 사람은 단 2%라는 미미한 차이밖에 없는데도 의사의 진단에 따라 향후 인생이 확 달라지는 게 연구결과 밝혀졌다고 한다.
실명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그는 진짜 눈이 안 보이게 된다고 한다. 그를 돕는 의료체계나 지원도 시력상실에 맞춰서 제공되고 눈이 안 보이는 생활에 적응하도록 강요받는다고.. 징그럽다.
그럼 11% 보이는 사람은? 그 사람은 저시력자에 맞춘 안경, 돋보기, 사회서비스를 받고 계속 시력 유지 또는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결국 죽을 때까지 볼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이진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그 어떤 의사도 한 사람에게서 시력을 빼앗아 갈 권리는 없다. 아마 실명 선고를 하는 의사도 원칙에 따라 9% 면 실명, 11% 면 시각장애 정도로 판단을 내리겠지만 그 후의 환자 인생이 저렇게 극명하게 갈린다면 그렇게 간단히 "당신은 앞으로 눈이 멀 테니 각오하시오"라는 취지의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인 아른힐 레우뱅에게도 조현병이란 평생 가는 병이고 치료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의사나 간호사가 없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녀는 늘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준 어머니, 언니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른힐이 도자기 잔이나 깨지는 물건만 보면 충동적으로 집어서 깨뜨리고 결국 손목을 긋고 만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른힐이 집에 온 날 아끼는 꽃무늬 도자기 잔을 또 내어주었다. 너는 아름다움을 아는 아이이니 이걸 깨지 않을 거라 믿는다며. 당연히 그녀는 마음속 충동을 이겨내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그녀는 환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딸이자 집으로 돌아올 자식일 뿐이었다.
언니에게도 항상 동생은 먼 길을 돌아갈지언정 집으로 언젠가 올바른 길로 돌아올 사랑하는 동생이다. 대학 학위를 받는 날 언니가 그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와 축하해 준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다.
사람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단 한 명만 있어도 비뚤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른힐이 치료가 어려운 조현병 환자에서 이제는 그 모든 일을 과거로 흘려버리고 당당히 심리학자가 되어 아픈 이들을 돕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물론 이 세상에는 사악한 인간이 셀 수 없이 많다. 아른힐이 만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경찰, 간호사, 간병인, 의사는 10년의 투병생활 동안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잘 대해준 한 명의 간호사, 네 명의 간병인, 두 명의 경찰, 한 명의 의사를 잊지 않고 그들에게 집중했다.
양준일 씨도 그의 책 '너와 나의 암호말'에서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고들 하지만 경험 역시 내게는 쓰레기다. 경험이란 내가 겪고, 내 눈으로 본 것일 뿐 진실이 아니다. 과거가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못하도록 나는 오늘도 머릿속 쓰레기를 비우며 그 속에 숨은 보석을 찾는다."라고. 나쁜 경험을 곱씹으며 과거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그런 건 쓰레기처럼 자꾸 치워야 한다.
그녀는 독방에 10주나 갇혀 대화를 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고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몰래 십자말풀이를 가져다준 간병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도 말했듯이 조현병이 있다고 그녀의 모든 부분이 100% 미쳐있는 게 아니다. 어떤 부분은 당연히 너무나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느끼는데 환자라면 으레 모든 부분이 미쳤으리라 가정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동안 조현병은 얼마 전까지 정신분열증으로 불리는 무서운 병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사회와 격리되어야 하며 그런 환자들은 평생 낫지 않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통계적으로도 1/3은 완치가 되고 1/3은 약이나 치료로 조절이 되며 1/3만 차도가 없이 나아지지 않는다니 그럼 역시 이 세상은 살 만한 것이 아닌가?
아까의 9%, 11% 시력의 경우처럼 환자 스스로가 포기하면 안 될 일이다. 어떤 조현병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그는 자기 나머지 인생을 구원할 기회를 잃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은 스스로 구해야 한다. 단 2% 차이는 의학상으로도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미미하다. 그런 차이조차 믿음에 의해 누구는 평생 보고, 누구는 완전 실명한다니 이보다 극명한 실험이 있을 수 있나?
조현병 환자였던 사실을 숨기지 않고 떳떳이 드러냄으로써 다른 조현병 환자들도 희망을 가질 것이다. 모든 정신질환은 나을 수 있다. 늑대가 발목 뼈를 보일 정도로 뜯어먹는 환시를 보면서도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국 그 어떤 끔찍한 경험도 과거로 흘러갔다. 그녀는 이제 성공한 심리학자로 책도 쓰고 강연도 다니는 등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인생에 몇 년, 혹은 10년을 허비해도 남들보다 많이 늦는 것도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많은 다른 독자들도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참 따뜻하고 좋은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