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식 이별 - KBS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 시 작품집
김경미 지음 / 문학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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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식 이별"은 김경미 시인이 "김미숙의 가정음악"이라는 한 FM라디오 프로그램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시를 한 편씩 적어서 방송한 것을 엮어서 낸 시집이다.

나는 라디오를 안 들은지가 꽤 오래되어서 김미숙씨가 정말 라디오 진행을 오래하는구나 정도밖에 감흥이 없었는데 자기 전에 이 시집의 시를 한 편씩 읽다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침방송 특유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시가 많았고 시인은 애초에 시집으로 묶을 생각도 없었다는데 사장되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싶었다.

 

 

 

오히려 오래 고민하고 쓴 시보다 더 좋게 느껴지는 것도 많았다. 김경미 시인은 매일 한 편의 시를 써서 발표하는 것이 부담되어서 심유리 같은 가명을 쓸까 고민할 정도였다는데 그 즉흥시(?)가 마치 새로 데뷔한 젊은 시인의 작품처럼 풋풋하게 느껴지니 참 예술작품이란 알 수가 없구나 싶고 오래 고민하고 쓴다고 꼭 좋은 시를 쓰는 것도 아니오, 하루 만에 썼다고 시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다.

물론 아무리 시인이 겸양의 말을 했어도 나는 그가 오랫동안 시작을 한 중견 시인이기에 애초에 학생들이 백일장 가서 머리 쥐어뜯으면서 쓰는 시와 전문 시인의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질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함을 알고 있다.

 

 

 

 

시인은 더 이상 고치지 않기 위해 시집을 낸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읽다보니 고치기 전이 더 좋았던 작품도 있고 고친 후라고 밝힌 게 더 좋았던 작품도 있다. 어느 게 정답이란 것은 있을 수 없나보다. <청춘, 삼십 분>이란 제목의 시를 읽어보면 주인공이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 상대를 30분 단위로 연장해가며 기다리는 게 나온다. 삼십 분은 다들 의리로 기다려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연락도 안 되는 늦는 친구를 30분 기다리고 또 곧 오겠지 하면서 기어코 1시간을 채웠는데 그 후에는 화가 나서 집에 가버렸다.

하지만 이 시의 주인공은 찻집 종업원이 대걸레로 마감청소를 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더 기다릴지 말지 나가서 결정하기로 한다. 너무나 미련하지만 그만큼 꼭 만나고 싶고 그의 어떤 사정이라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겠지.

시인은 원래 이 시의 첫줄을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기다릴 생각은 아니었다>로 하려다가 지금의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 사람>으로 바꾼 듯하다. 나는 수정 전인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기다릴 생각은 아니었다>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이 말이 꼭 들어가줘야 주인공이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랑의 마음이 미련하다는 게 더 전달이 잘 되는 것 같아서이다.

이렇게 시는 수정 전후의 느낌이 독자에게 무척 다르게 와닿는데 그 때문에 시인들은 고치고 또 고치고 하나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도 시를 고치는 어려움을 후배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그의 평전을 20년 전에 읽어서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김경미 시인처럼 고쳐쓰는 시에 대해 적은 글이 있다.

"카프카식 이별"이란 제목이 무슨 뜻인지는 책 속에 나와있지만 쉽게 찾을 수 있고 너무나 예민한 카프카가 한 이별이 내게는 그닥 와닿지 않았서 굳이 적지 않으련다. 사랑이나 이별의 시보다는 작가가 해외여행 가서 겪은 감상, 일상에서 느끼는 후회, 계절의 변화 이런 소박하고 다정한 주제가 어쩐지 더 사랑스러웠다. 이 시는 애초에 아침 라디오의 애청자들을 위해 쓴 시다. 아침에 듣기에는 <월요일을 위한 '아무 말 대잔치'>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애청자들과의 호흡이 느껴지는 시가 이미 죽고 없는 카프카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 왼쪽에는 시 한편, 오른쪽에는 시인의 설명이나 첨언이 덧붙여있는데 이 시도가 너무나 좋았다.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시집을 많이 읽지 않는다. 1년에 한 권꼴로 읽는 것 같다. 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도움닫기를 할 장치가 필요하다. 그냥 시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되어있으면 멀리뛰기 하기도 전에 포기할 지도 모른다. 앙드레 지드가 했다는 저 지옥의 벌, 너무나 멋지다. "지옥에는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끝내지 못한 일들을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 말고 다른 벌은 없다,"

무시무시한 벌이자 슬프도록 아름답다. 저 말을 한 사람이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이기 때문이다. 좁은문의 주인공은 결혼할 수도 없는 사촌누이 알리샤를 사랑했는데 자세한 것은 잊었지만 앙드레 지드의 사생활과 오버랩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앙드레 지드에게 살아있는 동안 끝내지 못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죽어서 시도라도 다시 할 수 있다면 그건 축복일까 벌일까?

이렇게 이 시집은 시인이 던지는 짧은 화두와 설명이 오른쪽에 공존하며 독자와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자기 전에 이 그립감 좋은 양장본의 시집을 손에 쥐고 몇 장씩 넘겨보다 무척 꿀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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