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집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68
코알라 다방 지음 / 북극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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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 구하러 다니는 예능이 있을 정도로 전국민에게 집이 화두인데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귀여운 그림책을 만났다.





인형가게에서 꼬미라는 생쥐 인형을 사온 꼬마. 꼬마는 꼬미를 상자에 담았는데 그 옆에는 터줏대감 곰인형 곰곰이가 놓여있다. 생쥐인형 꼬미는 이 귀여운 친구의 소개로 밤이 되면 여는 상가에 가서 집을 소개받는다.

"꼬미야! 이곳은 처음이지? 상가에 가면 집을 소개해주는 가게가 있어."

아, 이 때 눈치챘어야 하는데!! 이 멋진 동화책에는 비밀이 숨겨져있다. 무려 3번이나 읽고 발견한 눈이 어두운 나.

꼬미는 상가에서 오래 전에 헤어진 이모를 만나 같이 살고 싶은 집 투어를 떠난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간만에 만난 이모에게 치즈 케이크에 음료수 한 잔 얻어마시고 마치 이모가 공인중개소 소장님처럼 꼬미에게 멋진 집을 하나씩 보여준다. 전망좋은 집을 찾고 있다는 꼬미에게 다리 아플 정도로 계단을 올라 풀빌라도 보여주고 두 번째 집은 무려 아파트!!

세상에 이 아파트.. 어디서 봤는데? 곳곳에 있는 힌트를 둔감하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이런 깜찍한 작가를 봤나? 이제야 작가 연보를 읽어본다.





코알라 다방님은 대학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고 애니메이터로 일했구나. 감탄한다, 애니메이터라.


따뜻한 상상의 세계를 그림책에 담아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이 분은 성공한 작가님이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조카에게 선물한 다른 동화책은 표지가 무섭다고 여태 포장지를 풀러보지도 못했다는데 이건 분명 조카집에 가서 사랑받을 것이다. 마치 꼬마에게 사랑받는 꼬미처럼.

세 번째 집은 머그 하우스, 네 번째 집은 화분처럼 생겼는데 옥상에 서재가 있다. 하나같이 너무나 멋지고 환상적인 집이라 쉽게 고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같이 보는 어른도 동화속 세계로 푹 빠지게 만들 정말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푸른색 밤이 배경이라 불빛도 은은하고 낯선 사람이 아닌 이모와 함께 상가를 거닐고 집을 보러 다니는 설정도 참 예쁘다. 이제 집을 다 보여주고 꼬미에게 살고 싶은 집을 물어보는 이모.

과연 꼬미는 어디를 선택했을까? 마지막 그림에 꼬미가 가장 살고 싶은 집 정답이 나와있지만 이건 책을 산 독자들을 위해 아껴둬야 할 것만 같다. 나는 꼬미가 선택한 곳을 보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기절하고 말았다. 아.. 생각해보니 인형이 가장 살고 싶은 집? 당연히 거기지..

집 투어의 비밀은 마지막장과 면지에 밝혀진다. 그것도 대놓고가 아니라 은밀하게. 이 동화가 제5회 상상만발 책그림전 수상작이란 사실을 간과하고 읽었다가 무릎을 탁 친다. 무릎팍 무릎팍팍. 아이들과 어른 모두 만족시키고 특히 어린이들을 기분 좋은 꿈나라로 인도할 밤풍경이 멋스럽다. 아이들 잠투정하면 자기 전에 머리맡에서 읽어주고 싶은 동화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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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K-포엣 시리즈 13
이영주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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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일상적으로 읽지는 않지만 휴가철에는 꼭 시를 읽고 싶네요. 제목도 아름다운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는 올 여름 휴가 저의 원픽 시집이 되었습니다.

출판사 아시아는 K포엣과 K픽션 시리즈를 내고 있는데 정말 좋은 한국 현대시와 소설을 외국 독자를 위해 번역도 해서 영문판을 동시에 출간하고 있어요. 저는 K포엣은 처음이지만 K픽션은 몇 권 읽어봐서 자연히 관심이 갔습니다. 이래서 시리즈를 내는 건 중요해요.




실은 읽기 전에 어딘가 로맨틱한, 그러면서도 작품 분위기는 '무슨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같은 걸 상상했으나 불경한 저의 기대는 왕장창 무너졌네요. 역시 책을 펼치기 전에 함부로 상상은 금물인가봐요.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는 심지어 시의 제목도 아니고 "순간과 영원"이라는 시의 일부 내용에 불과했으니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다음 구절은 '불탄 얼굴로 왔다' 입니다. 아.. 시에 익숙치 않은 초보 독자는 조금 좌절합니다. 멋대로 상상하면 안되겠다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읽어갔습니다.

앞으로의 글은 순전히 개인적인 저의 감상일 뿐이니 전문적인 시 해석을 원하시는 분은 출판사 소개나 다른 서평을 읽어보시는 게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제가 느낀 이영주 시인의 세계관은 꽤 어두운 편입니다. 죽음과 악몽, 노동, 고통 이런 단어가 떠오르는 내용이 상당히 많아서 읽는 내내 울적해졌어요. 심지어 밤에 보기에는 조금 무서운 부분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꼭꼭 씹어먹듯이 시집을 읽어갔습니다.

실린 시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시 몇 편이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의 경험과 독자의 경험이 어딘가에서 만나는 지점에서 대화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60페이지의 시인노트를 보면 아래와 같은 제주 공항에서의 일화가 실렸습니다. 비오는 제주에 시인은 혼자 갔나봅니다. 어지러웠고 그 때문에 무서웠고 삶이 어색해서 공항에서 조금 울었다라고 적혀있죠.


저는 이 시를 읽으며 20년도 전에 일본에 혼자 유학간 둘째날이 떠올랐어요. 혼자 공항에서 픽업을 온 낯선 사람을 따라 이미 으슥해진 밤시간에 역시 처음 본 여럿이 봉고차에 실려 기숙사로 갔죠. 첫날은 벌벌 떨면서 겨우 잠들었는데 다음날 해가 말짱하게 뜨자 집에 보고를 하러 슬리퍼 질질 끌고 공중전화로 갔습니다. 수화기를 들어 동전을 넣은 그 순간 웬지 눈물이 왈칵 쏟아져 전화는 하지 못했네요.

그 때 분명히 어지럼증을 느꼈어요. 설명하기는 어렵네요. 삶이 어색해서 공항에서 울었다는 기분을, 내가 원해서 간 거지만 시인이 말한 따뜻한 몰락을 꿈꾸고 있었다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는 시인이 슬프게 노래한 제주 4.3사건이나 저 먼 곳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외국인 염료공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또 어느 지점에서는 무척 공감하게 됩니다.

"열대 식당"이란 시입니다. 이미 죽은 작은 아버지와 맵고 뜨거운 국수를 먹는 열대 식당을 읽다보면 몽환적인 환상의 세계로 빠져드네요.



까맣고 긴 손가락을 드는 조금 젊어진 작은 아버지. 왜 꿈에서는 죽은 사람이 더 젊게 나오잖아요? 어떻게 이런 지점을 섬세하게 짚었는지 감탄하고 맙니다. 그것도 대부분의 독자에게 현실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계시다면 조금 뜬금없는 작은 아버지 얘기가 더 실감나게 다가올 것 같네요. 작은 아버지란 아주 멀지도 않지만 어딘가 남 얘기 같잖아요?

저는 저 열대 식당을 읽으며 작년에 읽었던 SF소설이 떠올랐는데 안타깝게도 제 뇌가 제목과 작가를 기억하지 못하는군요. 그 때도 필리핀이나 그 비슷한 이국의 어느 열대 지방에서 맞으면서 고된 노동을 하던 소년과 엄마를 찾아 온 소녀의 이야기였는데 이 시에서도 그 소설과 똑같이 도마뱀 꼬리가 나옵니다.

나는 가 본 적도 없는 어느 더운 섬나라, 출몰하는 도마뱀, 기침을 하며 먹는 맵고 뜨거운 국수, 익숙치 않는 향, 퉁퉁 불어나 그릇 밖으로 흘러넘치는 국수.

이 쯤 되면 일개 독자인 저도 참을 수 없이 열대의 어느 식당에서 퉁퉁 불은 국수를 먹으며 아직 죽지도 않은 나의 작은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식당 밖에서 작은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실제 저의 시퍼렇게 살아계시는 작은 아버지가 들으면 기함할 소리겠지만..

다소 어려운 현대시의 허들을 넘으면 시인이 직접 쓴 에세이가 선물처럼 거의 마지막에 실려있습니다. 무척 재밌게 읽었던 "안경을 썼지". 안경 쓰는 사람이라면 두려워하며 볼 내용입니다.



한쪽 시력을 상실하게 된 너무나 리얼한 이야기기에 화들짝 놀라고 그 섬세한 묘사에 한 번 더 질려버리네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영주 시인은 정말이지 본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모르는 세계를 최대한 가깝게 느끼기 위해서 자세히 보는 습관이 있고, 자세히 쓰는 습관도 생겼다"고 합니다. 이건 시집을 읽어보면 무슨 소리인지 금방 알게 됩니다.


시가 소설이나 설명문은 아니기에 시인의 의도나 내용을 백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척 세세하고 섬세한 묘사에 섬뜩 놀라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 따뜻한 한 줄 글에 안심하기도 했거든요.

"P60. 하지만 다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불행을 밀어낸다. 중략..

P61. 전광수커피에서 커피 마시던 시절 생각이 났다. 그 날 우리, 살짝 들떴고 행복했어. 울지 말자, 친구야. 삶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닐 거야"

위와 같은 싯구를 시인의 시집에서 더 많이 보고 싶네요. 그냥 그렇다구요. 다 읽고 나니 괜시리 제주 공항도 가고 전광수커피도 가고 싶어진 어느날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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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자란다
박현주 지음 / SISO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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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력이 독특해서 선택한 책이다. 아버지와의 의견충돌을 겪으면서까지 19살이란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가 무려 6년을 살다가 예술이 하고 싶어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난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부모가 반대하거나 혹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남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할 때는 상당히 주저한다. 그런데 저자는 어린 나이에도 불도저같은 힘이 있었다. 뭔가를 이렇게 강렬하게 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부럽다. 요즘 청소년들은 꿈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 역시 학창시절에 생활을 위한 직업이 아니라 무엇이 하고 싶다라는 꿈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싶다.

예상보다 책 속에서 수도원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분량이 적어서 아쉽다. 아무래도 아직 그곳에 계신 분들에 대한 배려같기도 하다. 어린 나이의 수도원 생활은 어땠을까 좀 더 궁금했지만 수도원을 나오고부터가 이야기의 시작이다.

예술은 특정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자라듯이 고민과 방황이라는 우리 삶의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목적지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스페인의 1000km가 넘는 순례길을 한 달 동안 걸어도 보고 서산에서 대천 앞바다까지 도보로 4박 5일을 걸어본 사람. 저자 박현주씨 뿐만 아니라 산티에고 순례길 경험을 쓴 다른 작가들의 책도 많이 읽어봤지만 모두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오래 걷는데서 오는 통증, 그럼에도 목적지까지 가는 인내, 중간에 본 대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얘기했을 뿐 무슨 큰 깨달음을 얻거나 목적지에 도착한 후 삶이 바뀐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찌보면 결말은 그냥 허무했다. 마치 산이 거기서 있어서 오른다는 등산가들의 말처럼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도 과정 자체에 의미를 뒀을 뿐이다.

 

 

 

 

 

하지만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려면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처럼 일단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 저자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에 들어갔고, 6년을 보낸 후에는 다시 세상에 나와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에 또 돈도 벌고 유학도 떠난다.

지금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 혹은 다른 길을 가보고 싶다고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살라는 메세지가 가장 강렬하게 남는다.

에세이란 결국 진솔한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사는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책에도 정답은 없다.

6년이 아니라 10년을 있었어도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나와도 되고, 대학갈 나이가 지났어도 더 공부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외국어 한마디 못해도 유학가고 싶으면 갈 수 있다. 물론 가서 고생은 참 되게 하지만 어쨌든 이탈리어로 듣고 말하고 친구도 사귀고 그림 공부도 신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뿌듯해진다.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소식이 너무나 많다. 안 맞는 회사 생활 억지로 하다가 우울증 걸리는 사람이나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마찬가지로 너무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기회비용을 들였기에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이 책을 한번 읽어봤으면 싶었다.

세상에는 다른 길도 있다는 것. 90살에 미술을 시작해도 유명해진 할머니가 있다. 설사 유명해지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다. 우리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 삶을 즐기고 하고 싶은 일은 하다가려고 사는 것이니까.

중간 중간 이렇게 저자가 스케치 하듯이 그린 흰둥이 3마리 그림이 등장한다. 나는 이게 이탈리아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이 그릴 정도의 그림인지는 문외한이라 알 수 없고 조금 갸우뚱하지만 쓱쓱 그린 듯 보이는 이 단순한 선 몇 개 가지고도 강아지의 표정과 자세는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런 게 내공인가 보다.

 

 

 

결국 저자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때가 다 똑같지 않다는 말. 꽃마다 꽃이 피는 계절이 다 다르듯이 사람에게도 때가 다르다. 남의 때도 기다려줘야겠지만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지금 일이 안 풀려도 조바심을 내지 말고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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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가, 알프레드!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59
카트린 피네흐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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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동화책 보다가 쓸쓸해지기는 또 오랜만이다. "저리 가, 알프레드!"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것처럼 미운 오리 새끼같은 알프레드 군이 오늘의 주인공. 연필에 색연필로 간단히 그렸는데 작가의 오랜 그림 내공이 느껴진다.

 

 

 

소, 닭, 거위로 둘러싸인 벨기에 시골에서 가족과 사는 작가라는데 오리인지 거위로 보이는 알프레드나 전깃줄에 매달린 새 등, 주로 조류를 무척 사실적이고 예쁘게 그렸다. 실은 그림 자체가 아름답다보니 왕따 당하는 알프레드가 더욱 슬프게 보인다.

알프레드는 의자 하나만 덜렁 들고 집에서도 쫓겨나고, 동료들에게도 저리 가란 소리만 듣는다. 몇 페이지 없는 동화책 내내 왕따를 당하니 얼마나 불쌍한지 말도 못 한다.

 

어린 조카도 친구들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동화 속 새들은 알프레드를 조금 다르게 생겼다고 멀리한다. "다르다"가 "틀리다"는 아닐 진데 마음이 아프다. 공감능력.. 이심전심 이런 걸 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어릴 때 아이들은 다 착하고 동물을 사랑하는데 왜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왕따가 생기는 걸까?

 

조카에게도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알려줘야겠다. 사실 아이들은 벌써 형제와 싸우고 또 화해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알프레드를 쫓아내는 이유도 참 가지가지다. "다르게 생겨서, 여기도 좁아서, 엄마가 안 된다고 해서.. 넌 너무 무거워서" 등등. 부리로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알프레드. 처음에는 웬 의자 하나를 덜렁 들고 나와서 외국 작가는 참 상상력도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의자가 알프레드를 더 처량맞아보이게 하는 장치가 된다.

단순한 그림이 이렇게나 슬프고 정교하고 아름답다니!! 이야기도 그렇지만 꽤 어른 취향의 동화가 아닐 수 없다. 부리의 음영인지 모르겠으나 저 약하게 한 줄 간 연필선이 눈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쨍하고 볕 뜰 날도 있게 마련이다. 떠돌던 알프레드가 깊은 숲 속 나무 위 오두막에 혼자 사는 소니아를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활짝 피니까 미리 좌절할 필요는 없다!

 

소니아는 알프레드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겁이 나서 문들 닫고 방안을 서성인다. 밤사이 알프레드가 집에 갔을 것이라 생각한 소니아는 다음날 아침 아직도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꿔먹고 집안으로 초대해 둘이 커피를 마신다. 나를 알아주는 단 한명의 친구만 있어도 인생은 이렇게나 아름다워지는 것을!

 

여전히 별 표정은 없지만 색감과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크하,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커피를 마시는 설정이다!! 어른스러운 소니아와 알프레드!! 정말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컷이다.

심지어 알프레드의 그 놈의 의자도 집안까지 따라와서 커피포트를 얹고 있다. 정말 기가 막히다. 이렇게 짧은 동화가 이렇게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다니! 결말까지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읽기가 아까울 정도로 수작인 그림책이다. 애들보다 읽어주는 어른이 더 좋아한다는 게 유일한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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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피데페디피와 요술반지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 6
고미솔 지음, 남강한 그림 / 북극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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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보다 글이 많은 본격 어린이 동화를 읽어본 게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페피데페디피와 요술반지'는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았는데 페피데페피데로 자꾸 읽히기에 억지로 채찍질하며 고쳐읽다가 '아니, 이건 작가의 상상력인가, 실제로 존재하는 단어인가?' 불현듯 궁금해졌다.

세상에 찾아보니 진짜 있는 말이었어! '여기는 저기이다, 이것은 저것이다'라는 남태평양의 어느 오지섬에서 사용하는 말이라고 작가 인터뷰에 나왔다.

뜻을 알고나니 속이 다 시원했고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주인공 이름이기에 감탄했다. 어린이책이라도 모든 것은 작가의 치밀한 장치였다.

 

 

등장인물은 단출하다. 주인공 소녀 페피데페디피와 그의 늙은 농부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선량한 아버지 밑에서 무럭무럭 자란 페피데페디피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특이한 것을 갖고 싶어한다. 방물장수의 이야기에 홀려 소원을 들어준다는 요술반지에 꽂힌 것이다. 차라리 요즘말로 지름신이면 돈을 모아서라도 사주고 말겠는데 늙은 아버지가 어디 가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요술반지를 얻을 수 있겠는가?

 

 

 

아이는 반지를 얻기 위해 상인을 기다리고 어느날 진짜 요술반지에 대해 알고 있는 상인이 나타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요술 반지를 얻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페피데페디피는 연약하고 착한 아이인데 이상한 데서 고집을 꺾지 않는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세간살림 다 팔아서 여비와 옷 등을 마련해주는 가여운 아버지...

 

이 동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기도 하고 여타 모험 동화와 맥락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품고 있는 주제는 좀 더 심오하다. 주인공 소녀의 용기와 모험, 고생담까지는 비슷할 수 있는데 원하던 반지를 손에 얻은 후에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반지 그 자체는 소원을 이뤄주면 원주인인 난쟁이 왕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페피데페디피가 반지를 손에 넣고도 끝에 끝까지 소원을 빌지 않아서 영원히 구리반지를 가진 채 세상을 떠나버린다!

 

 

허걱! 이렇게 끝이 날수도 있구나!! 집도 돈도 건강도 빌지 않다니! 심지어 눈이 잘 안보이는 소녀의 아버지조차 딸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요술반지의 소원은 널 위해 쓰라고 한다.

페피데페디피의 가족들은 아무도 요술반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페피데페디피는 그저 열심히 일해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고 아버지를 모시다가, 나이가 차자 스스로 남편을 얻고 자식도 키운다.

뭘 가져야만 소원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 요술반지를 얻기 위해 고난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아래 3가지를 깨닫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데 말을 하는 존재"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모두와 모두의 것"

소망이 있다면 용기있게 모험을 떠나는 것,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생각하지 말 것.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라는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가치와 물질의 소유 개념.

사실 돈이란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데다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돈을 넘겨주는 과정도 필요하다. 페피데페디피도 노파, 거인, 왕자님에게 무언가 얻을 때마다 자기 것을 내줘야만 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함부로 소원을 빌지 않았던 것이다.

 

훌륭한 문학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비록 어린이들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페피데페디피의 소신과 진짜 좋은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은연중에 알려주는 것 같아 참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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