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피데페디피와 요술반지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 6
고미솔 지음, 남강한 그림 / 북극곰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보다 글이 많은 본격 어린이 동화를 읽어본 게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페피데페디피와 요술반지'는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았는데 페피데페피데로 자꾸 읽히기에 억지로 채찍질하며 고쳐읽다가 '아니, 이건 작가의 상상력인가, 실제로 존재하는 단어인가?' 불현듯 궁금해졌다.

세상에 찾아보니 진짜 있는 말이었어! '여기는 저기이다, 이것은 저것이다'라는 남태평양의 어느 오지섬에서 사용하는 말이라고 작가 인터뷰에 나왔다.

뜻을 알고나니 속이 다 시원했고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주인공 이름이기에 감탄했다. 어린이책이라도 모든 것은 작가의 치밀한 장치였다.

 

 

등장인물은 단출하다. 주인공 소녀 페피데페디피와 그의 늙은 농부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선량한 아버지 밑에서 무럭무럭 자란 페피데페디피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특이한 것을 갖고 싶어한다. 방물장수의 이야기에 홀려 소원을 들어준다는 요술반지에 꽂힌 것이다. 차라리 요즘말로 지름신이면 돈을 모아서라도 사주고 말겠는데 늙은 아버지가 어디 가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요술반지를 얻을 수 있겠는가?

 

 

 

아이는 반지를 얻기 위해 상인을 기다리고 어느날 진짜 요술반지에 대해 알고 있는 상인이 나타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요술 반지를 얻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페피데페디피는 연약하고 착한 아이인데 이상한 데서 고집을 꺾지 않는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세간살림 다 팔아서 여비와 옷 등을 마련해주는 가여운 아버지...

 

이 동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기도 하고 여타 모험 동화와 맥락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품고 있는 주제는 좀 더 심오하다. 주인공 소녀의 용기와 모험, 고생담까지는 비슷할 수 있는데 원하던 반지를 손에 얻은 후에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반지 그 자체는 소원을 이뤄주면 원주인인 난쟁이 왕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페피데페디피가 반지를 손에 넣고도 끝에 끝까지 소원을 빌지 않아서 영원히 구리반지를 가진 채 세상을 떠나버린다!

 

 

허걱! 이렇게 끝이 날수도 있구나!! 집도 돈도 건강도 빌지 않다니! 심지어 눈이 잘 안보이는 소녀의 아버지조차 딸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요술반지의 소원은 널 위해 쓰라고 한다.

페피데페디피의 가족들은 아무도 요술반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페피데페디피는 그저 열심히 일해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고 아버지를 모시다가, 나이가 차자 스스로 남편을 얻고 자식도 키운다.

뭘 가져야만 소원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 요술반지를 얻기 위해 고난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아래 3가지를 깨닫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데 말을 하는 존재"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모두와 모두의 것"

소망이 있다면 용기있게 모험을 떠나는 것,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생각하지 말 것.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라는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가치와 물질의 소유 개념.

사실 돈이란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데다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돈을 넘겨주는 과정도 필요하다. 페피데페디피도 노파, 거인, 왕자님에게 무언가 얻을 때마다 자기 것을 내줘야만 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함부로 소원을 빌지 않았던 것이다.

 

훌륭한 문학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비록 어린이들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페피데페디피의 소신과 진짜 좋은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은연중에 알려주는 것 같아 참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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