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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자란다
박현주 지음 / SISO / 2020년 6월
평점 :
저자 이력이 독특해서 선택한 책이다. 아버지와의 의견충돌을 겪으면서까지 19살이란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가 무려 6년을 살다가 예술이 하고 싶어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난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부모가 반대하거나 혹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남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할 때는 상당히 주저한다. 그런데 저자는 어린 나이에도 불도저같은 힘이 있었다. 뭔가를 이렇게 강렬하게 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부럽다. 요즘 청소년들은 꿈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 역시 학창시절에 생활을 위한 직업이 아니라 무엇이 하고 싶다라는 꿈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싶다.
예상보다 책 속에서 수도원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분량이 적어서 아쉽다. 아무래도 아직 그곳에 계신 분들에 대한 배려같기도 하다. 어린 나이의 수도원 생활은 어땠을까 좀 더 궁금했지만 수도원을 나오고부터가 이야기의 시작이다.
예술은 특정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자라듯이 고민과 방황이라는 우리 삶의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목적지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스페인의 1000km가 넘는 순례길을 한 달 동안 걸어도 보고 서산에서 대천 앞바다까지 도보로 4박 5일을 걸어본 사람. 저자 박현주씨 뿐만 아니라 산티에고 순례길 경험을 쓴 다른 작가들의 책도 많이 읽어봤지만 모두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오래 걷는데서 오는 통증, 그럼에도 목적지까지 가는 인내, 중간에 본 대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얘기했을 뿐 무슨 큰 깨달음을 얻거나 목적지에 도착한 후 삶이 바뀐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찌보면 결말은 그냥 허무했다. 마치 산이 거기서 있어서 오른다는 등산가들의 말처럼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도 과정 자체에 의미를 뒀을 뿐이다.

하지만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려면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처럼 일단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 저자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에 들어갔고, 6년을 보낸 후에는 다시 세상에 나와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에 또 돈도 벌고 유학도 떠난다.
지금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 혹은 다른 길을 가보고 싶다고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살라는 메세지가 가장 강렬하게 남는다.
에세이란 결국 진솔한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사는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책에도 정답은 없다.
6년이 아니라 10년을 있었어도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나와도 되고, 대학갈 나이가 지났어도 더 공부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외국어 한마디 못해도 유학가고 싶으면 갈 수 있다. 물론 가서 고생은 참 되게 하지만 어쨌든 이탈리어로 듣고 말하고 친구도 사귀고 그림 공부도 신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뿌듯해진다.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소식이 너무나 많다. 안 맞는 회사 생활 억지로 하다가 우울증 걸리는 사람이나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마찬가지로 너무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기회비용을 들였기에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이 책을 한번 읽어봤으면 싶었다.
세상에는 다른 길도 있다는 것. 90살에 미술을 시작해도 유명해진 할머니가 있다. 설사 유명해지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다. 우리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 삶을 즐기고 하고 싶은 일은 하다가려고 사는 것이니까.
중간 중간 이렇게 저자가 스케치 하듯이 그린 흰둥이 3마리 그림이 등장한다. 나는 이게 이탈리아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이 그릴 정도의 그림인지는 문외한이라 알 수 없고 조금 갸우뚱하지만 쓱쓱 그린 듯 보이는 이 단순한 선 몇 개 가지고도 강아지의 표정과 자세는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런 게 내공인가 보다.

결국 저자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때가 다 똑같지 않다는 말. 꽃마다 꽃이 피는 계절이 다 다르듯이 사람에게도 때가 다르다. 남의 때도 기다려줘야겠지만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지금 일이 안 풀려도 조바심을 내지 말고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