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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가, 알프레드!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59
카트린 피네흐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0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동화책 보다가 쓸쓸해지기는 또 오랜만이다. "저리 가, 알프레드!"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것처럼 미운 오리 새끼같은 알프레드 군이 오늘의 주인공. 연필에 색연필로 간단히 그렸는데 작가의 오랜 그림 내공이 느껴진다.

소, 닭, 거위로 둘러싸인 벨기에 시골에서 가족과 사는 작가라는데 오리인지 거위로 보이는 알프레드나 전깃줄에 매달린 새 등, 주로 조류를 무척 사실적이고 예쁘게 그렸다. 실은 그림 자체가 아름답다보니 왕따 당하는 알프레드가 더욱 슬프게 보인다.
알프레드는 의자 하나만 덜렁 들고 집에서도 쫓겨나고, 동료들에게도 저리 가란 소리만 듣는다. 몇 페이지 없는 동화책 내내 왕따를 당하니 얼마나 불쌍한지 말도 못 한다.

어린 조카도 친구들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동화 속 새들은 알프레드를 조금 다르게 생겼다고 멀리한다. "다르다"가 "틀리다"는 아닐 진데 마음이 아프다. 공감능력.. 이심전심 이런 걸 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어릴 때 아이들은 다 착하고 동물을 사랑하는데 왜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왕따가 생기는 걸까?

조카에게도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알려줘야겠다. 사실 아이들은 벌써 형제와 싸우고 또 화해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알프레드를 쫓아내는 이유도 참 가지가지다. "다르게 생겨서, 여기도 좁아서, 엄마가 안 된다고 해서.. 넌 너무 무거워서" 등등. 부리로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알프레드. 처음에는 웬 의자 하나를 덜렁 들고 나와서 외국 작가는 참 상상력도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의자가 알프레드를 더 처량맞아보이게 하는 장치가 된다.

단순한 그림이 이렇게나 슬프고 정교하고 아름답다니!! 이야기도 그렇지만 꽤 어른 취향의 동화가 아닐 수 없다. 부리의 음영인지 모르겠으나 저 약하게 한 줄 간 연필선이 눈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쨍하고 볕 뜰 날도 있게 마련이다. 떠돌던 알프레드가 깊은 숲 속 나무 위 오두막에 혼자 사는 소니아를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활짝 피니까 미리 좌절할 필요는 없다!

소니아는 알프레드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겁이 나서 문들 닫고 방안을 서성인다. 밤사이 알프레드가 집에 갔을 것이라 생각한 소니아는 다음날 아침 아직도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꿔먹고 집안으로 초대해 둘이 커피를 마신다. 나를 알아주는 단 한명의 친구만 있어도 인생은 이렇게나 아름다워지는 것을!

여전히 별 표정은 없지만 색감과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크하,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커피를 마시는 설정이다!! 어른스러운 소니아와 알프레드!! 정말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컷이다.
심지어 알프레드의 그 놈의 의자도 집안까지 따라와서 커피포트를 얹고 있다. 정말 기가 막히다. 이렇게 짧은 동화가 이렇게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다니! 결말까지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읽기가 아까울 정도로 수작인 그림책이다. 애들보다 읽어주는 어른이 더 좋아한다는 게 유일한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