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 어떡해!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7
토니 퍼실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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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너무 귀엽고 동시에 불쌍해보이는 눈큰 강아지 루리가 주인공인 "루리, 어떡해!"는 표지부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가뜩이나 눈이 큰 견종인 치와와 루리가 10년은 늙어보이는 근심어린 얼굴로 오밤중에 홀로 짐을 싸는 걸로 시작된다.




동화책이 아니라 마치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한편을 보는 것처럼 기승전결은 물론 짜릿한 반전까지 아이들도 너무나 좋아하면서 읽은 코믹 동화책인데 어찌보면 이게 정말 개의 이야기인가 싶다. 우리 조카를 봐도 둘째가 생긴 이후로 동생이 좋았다 싫었다 난리도 아닌데 이 책을 보면 동생을 보게 된 첫째의 마음이 그냥 여실히 느껴진다.

작가는 토니 퍼실로 애니 "라이언킹" ,"인사이드 아웃"에 그림을 그리고 "인크레더블"에서는 에니메이터들의 감독을 했다고 한다. 만화에 정통한 분이라 그런가 캐릭터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반려견 표정이 그야말로 사람이다. 고양이도 그렇지만 강아지 역시 오래 키우면 얼굴이 점점 사람 얼굴이 된다. 지금은 그냥 표정만 봐도 기분을 알 정도다.



루리의 인생은 그야말로 퍼퍽트한 견생. 이렇게만 살면 굳이 사람과 개의 구별이 무의미할 정도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매일 좋아하는 산책을 하고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고 쇼핑도 하고 그냥 누구네 귀동아이와 똑같은 삶을 산다.


하지만 루리의 완벽한 인생에 걱정이 생긴 건 엄마가 임신한 후부터이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만난 남의 집 애기들이 귀도 잡아당기고 배도 막 만지는 통에 아기에 대해 두려움이 생긴 루리. 이미 엄마, 아빠랑 셋이 사는 일상이 충분히 행복한데 우리집에도 이런 녀석들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 생긴다고? 엄마, 아빠가 준비하는 건 전부 2개. 그럼 쌍둥이가 태어난다는 건데 루리의 상상은 최악으로 치닫고 걱정을 하다못해 결국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사실 반려동물 키우는 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함께 살면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한다. 밥을 식탁에서 같이 안 먹어도 주인 먹을 때 반려견, 반려묘 밥상도 먼저 차려주고, tv도 같이 보고 잠도 같이 자는 등 자식이나 다름없다. 얘들도 그렇게 사랑을 혼자 독차지 하다가 누군가 경쟁자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루리처럼 싫을 것 같다.




좁게 보면 루리같은 반려견에게 주인집 아이들이 태어나는 거겠지만 넓게 보면 첫째만 있던 집에 둘째, 셋째 동생들이 태어난다거나 나 외에 사랑을 나눠야 할 상대가 생긴다는 거겠지. 아이들은 "루리, 어떡해!"를 읽으며 동생을 대하는 자세와 동생이 태어나도 나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뺏기는 게 아니라 그저 같이 나눌 뿐, 행복은 더 커진다는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려움과 쓸데없는 걱정은 루리의 왕방울만한 눈에 너무나 여실히 나타나있어서 폭소를 자아낸다. 다행이라면 루리가 폭풍 걱정한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 반전매력이 있는 책이라 굳이 밝히지 않지만 상황이 너무 웃겨서 참을 수 없다. 집 나가려다가 출산하러 간 엄마 대신 집을 봐주던 할머니에게 붙들려서 되돌아오는 것도 그렇고 설정이 너무 사실적이고 사랑스럽다. 심지어 할머니는 자기가 문을 열어둔 걸로 착각한다.



"CBC 어린이가 뽑은 최고의 그림책"이라는데 코믹함과 따뜻함에 약간의 교훈까지 빠지는 데가 없어서 가족 모두 즐겁게 읽었다. 사랑스러운 루리는 아기가 생겨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가족의 사랑은 나누면 뺏기는 게 아니라 커지는 거니까. 외동인 아이는 물론 갑자기 동생이 생겨 심통이 난 첫째에게도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동화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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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브루너 일러스트레이터 2
브루스 잉먼 외 지음, 황유진 옮김 / 북극곰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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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에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시리즈가 나오는데 이번 책 '딕 브루너'는 주디스 커에 이어 2번째다. 작가의 일생, 작품 세계, 당시 시대상 등 폭넓은 배경지식은 물론 작가의 어린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사진, 작가의 일러스트 116컷까지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다 있다.



딕 브루너는 바로 대표작 '미피'로 알려진 작가인데 어떻게 단순한 선의 대가가 되었는지 그 여정이 흥미롭다. '어떤 작가도 쉽게 탄생하지 않는구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데는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축약된 책으로 잘 보여준다. 그는 책 표지 디자이너이자 포스터 작가이기도 하다.

표지 디자인을 해준 작가들 중에는 딕의 표지를 사랑해서 팬레터를 보내기도 했는데 그 중 심농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심농은 딕에게 피카소의 말을 전했습니다. 피카소는 딕의 책 표지를 보고 꼭 포스터 같아서 매우 효과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지요. 딕은 이 말을 자신이 받은 최고의 찬사 중 하나라고 여겼습니다." -P.61

거장 피카소에게 찬사를 받은 작가가 바로 딕 브루너이다.



미피의 주요내용은 기억이 안 나도 이 토끼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무려 32권의 미피 그림책은 전세계 85개국에서 사랑을 받고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미피 박물관을 비롯, 작가의 작업실, 평소 쓰던 필기구까지 사진이 나오는데 정말 흥미로웠다.



작가들은 실제로 이렇게 작업하는구나, 미피 그림은 저런 식으로 그렸구나 마치 실사 영화를 보는듯한 즐거움도 있었다.



"딕 브루너" 뿐만 아니라 북극곰에서 나오는 이 일러스트레이터 시리즈 자체의 장점이기도 하다. 작가의 일생은 물론 독자들이 궁금할 법한 개인사까지 방대한 사진자료와 함께 되도록 샅샅히 싣고 있다.

딕 브루너는 네덜란드의 유명 출판사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그가 사업을 물려받길 바랬지만 본인은 어릴 때부터 예술가외에 꿈꿔본 게 없었다. 그래서 출판 사업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쏟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 즉 장인이 딸과 결혼하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랬고 그렇게 아버지가 운영하는 A.W. 출판사의 정식 표지 디자이너가 된다.

일이 참 재미있다. 억지로 아버지가 출판사를 물려주려 했을 때는 안하겠다고 서로 대립했는데, 결혼을 위해서는 자기 발로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다니!

하지만 정직원 디자이너 일은 안정감과 동시에 실험적인 일도 가능해서 책 표지 디자이너 시절이 결과적으로 딕 브루너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검은곰 시리즈를 비롯 다양한 실험적인 디자인이 등장하고 초창기 딕 브루너가 디자인한 표지를 보면 나중에 미피가 나온 게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딕은 편집부 요약본이 아니라 자신이 디자인할 책을 원고더미 상태로 다 읽은 후 직접 분위기를 확인하고 연상작업을 통해 색채와 형상을 그렸다고 한다.

또한 책표지 디자인에도 독자의 상상력을 방해하면 안된다는 원칙이 있어서 선정적 요소를 빼고 추리소설 같은 것도 분위기로만 묘사했다.

딕 브루너를 단순히 어린이책만 만든 작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굉장히 성인 취향의 고급스럽고 강렬한 표지 디자인도 많았고 포스터 작업도 많이 했다. 그저 대중들에게는(나를 비롯) 미피 시리즈의 작가로만 알려져있는데 막상 작품 세계를 처음부터 보니 작가로서 정점에 올라선 후에 탄생한 미피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지만 그 전의 표지 디자인이나 포스터도 굉장히 훌륭했다.

단순하고도 강렬하다. 딕 브루너는 색을 많이 쓰는 작가도 아니고 선이 복잡하지도 않지만 아주 간결하게 압축해서 분위기를 전달하고 캐릭터를 완성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눈과 입밖에 없는 미피의 얼굴에 무슨 표정이 있나 싶겠지만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얼마든지 표정이 느껴진다. '미술관에 간 미피'를 보면 저 뒷짐지고 있는 미피의 뒷통수만 봐도 놀랍다.

선 하나 그었지만 저게 미술관 벽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피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뒷짐진 토끼의 짧은 팔다리가 우스우면서도 선 몇 개 만으로 완벽하게 동물의 자세를 그려내는 재주에 다시금 감탄한다.

이 할아버지는 2017년에 돌아가셨다. 무려 60년간 일주일에 6~7일 작업실에 머무르며 성실하게 일한 딕. 매일 아침 5시 30분이면 일어나 사랑하는 아내 이레네에게 오렌지 쥬스를 한잔 짜주고 아내를 위해 작은 그림을 그려줬다고 한다. 첫사랑이자 유일한 여인인 이레네는 그가 그려준 모든 그림을 간직하고 있다고.

로맨티스트로서의 면모 뿐 아니라 일생을 관통하는 극도의 성실함이 무섭기까지 하다. 그는 그림책 124권을 남겼고 죽음 후에도 책, 영화, 뮤지컬, 전시, 각종 캐릭터 상품까지 작가의 유산은 영원하다. 개인적으로도 예술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란 이런 것이란 표본을 보는 듯 자신만만하고 영민해보이는 그의 노년시절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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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하루 - 두려움이라는 병을 이겨내면 선명해지는 것들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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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니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아진다. 이건 마치 재미없는 드라마보다 일반인이 나오는 다큐를 더 보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파리에서 사는 이화열 작가는 어느날 갑자기 직장암 3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암이란 단어가 여전히 생소하다. 나는 모르는 범죄 조직에 가담한 것처럼. 나는 모범시민이다"

이 문장처럼 암이란 진단명에 대해 느끼는 당혹스러움을 잘 표현한 말을 여태 들어본 적이 없다.


"건강하다는 건 질병에 저항해서 몸이 이기고 있는 일시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50년 동안 그 저항에서 이겼다고 오늘 혹은 내일도 이길 거라는 건 어리석은 믿음이다"

세상에.. 이 문장을 읽은 40대 이상은 절대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자면서도!! 나는 이렇게 섬뜩함과 문장이 주는 묘한 쾌감을 동시에 느끼며 한 페이지씩 읽어내려갔다.

세상 심각한 병이자 누구라도 그 단어만 들으면 몸서리치는 게 암이다. 아무리 셋 중 하나가 걸릴 정도로 흔한 병이 되었다지만 진단명을 듣고 절망하지 않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인데 작가는 작전상 병과 거리를 둔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마치 아버지 자동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어딜 가는 느낌이다. 절대 부모의 허락없이 떼어놓을 수 없는 불편한 친구같은 존재.

책 표지에 "오늘도 절망과 싸우는 이들에게 이화열 작가가 전하는 영리한 행복"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행복의 수식어가 영리함이 될 수 있다니.. 기발한데 좀처럼 매치가 안 된다. 나는 철학적인 말에 약하다.



안타깝지만 이 홍보 문구보다 작가 글재주가 훨씬 좋아서 내내 깜짝 놀란다. 어휘력이 좋다는 건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지 않는 하루" 에세이를 읽으며 느낀 건 작가의 병은 어찌보면 그저 하나의 좋은 소재에 불과할 뿐, 원래 엄청난 글재주를 갖고 있다. 단어의 조합이 예사로운 게 하나도 없었다.



제목의 뜻이 뭘까 책을 다 읽고 퍼뜩 생각해본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끝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는 뜻일수도 있겠다. 영원한 상태는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는 뜻일까? 중의적인 제목과 유화같은 표지, 석양을 닮은 자주색 박을 입힌 제목 글씨까지 아름답다.



작가 같은 사람이 암이라니 어째 운명의 장난 같기도 하다. 마치 '이렇게 심각하고 불행한 일이 바로 너에게 닥쳤는데 아직 웃을 수 있겠니?'라고 놀리는 것만 같다.



"저녁 식탁에서 구역질 때문에 식사를 멈추는 걸 보고 올비(작가의 남편)가 말한다. "6개월 뒤에 출산하는 거야. 이번에는 아기가 아니라 새로운 자신을."



아.. 항암제 부작용으로 식사 중 구토를 하는 부인을 보고 하는 남편의 말도 새롭지만 병에 걸렸다고 병적일 필요는 없다는 작가의 씩씩함은 그저 멋있다. 왜 우리는 문병을 가거나 환자를 대할 때 늘 어둡고 진지한 얼굴로 쾌유를 빈다느니 하는 식상한 말만 하다 오는 걸까?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싱싱한 생명력과 큰 웃음인데...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고 병이란 본체와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지켜보는 작가의 영혼이 있다. 이건 마치 적군에게 사로잡혀간 특공대원이 고문을 견디는 것과 흡사하다. 그녀는 그렇게 암에게 잡혀먹히지 않도록 살짝 거리를 둔다.



이 책은 작가가 암환자이기 때문에 투병생활을 주제로 쓴 글이 아니다. 그보다는 갑작스러운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하나의 선택지를 엿보는 기분이다.



물론 프랑스에서 암에 걸리면 어떤 의료 서비스를 받는지,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지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최소한 미국에서처럼 치과 치료 하나 못 받아서 거리를 떠돌지는 않을 듯한 묘한 기대감마저 든다. 예를 들어 암환자에게 의사가 가발 처방전을 써주는 대목을 읽자면 그렇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병에 걸리기도 하고, 여기 작가의 시누이 안느처럼 이혼하기도 하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거의 모든 에세이가 그렇듯이 책장을 덮고나면 내용을 세세하게 기억하긴 어렵지만 안느의 우울증이 사라진 건 암에 걸린 뒤라는 말을 듣고 이것이 진짜 블랙 코미디라며 나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다. 우리의 자잘한 병을 고치는 건 더 큰 병이라고!!

이 말에 백퍼센트 동의한다.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지. "누구나 그럴 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친구의 카톡 프사에 오래 걸려있던 말인데 으흠..하고 헛기침을 한번 하고 읽은 후로 잊지 않고 있다. 부디 우리 모두 쳐맞은 후에도 계획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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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하루 - 두려움이라는 병을 이겨내면 선명해지는 것들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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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암치료를 받았다는 흔치 않는 경험에 끌려 책을 읽었지만 오히려 암보다 일상의 아름다움만 잔뜩 발견하고만 반짝거리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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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여우 - 숫자로 만든 스릴러 그림책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66
케이트 리드 지음, 이루리 옮김 / 북극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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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여우"라는 기발한 숫자 스릴러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눈을 사로잡을 강렬한 색감과 상상을 뛰어넘는 전개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요.



처음에는 소제목으로 달려있는 "숫자로 만든 스릴러 그림책"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앞에 두어 장 넘겨보고 무릎을 탁 쳤네요.




1이란 숫자와 함께 등장한 한 마리 배고픈 여우.

붉은여우인가요? 여우의 표정과 색감, 종이를 여러번 오려서 붙인 듯한 독특한 콜라주 기법까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2.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아하.. 이런 식으로 숫자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네요.

지금 막 숫자를 배우는 4~6살 조카들에게 최적일 것 같습니다.

아주 당돌하고 영특해보이는 여우의 표정이 너무 멋집니다. 왜 스릴러인지는 좀 더 넘겨보면 알게 되는데요.

이 한 마리 여우가 곧 닭장 속 닭들을 습격할 거거든요.



세상에.. 오동통한 닭들이 다섯개의 따뜻한 알을 품고 있네요. 다 보여드릴 수는 없어서 중간은 생략합니다. ㅎㅎ

암탉의 특징도 무척 잘 잡았어요. 저는 모 프로그램에서 방송해준 "삵"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딱 이런 식으로 닭들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으면 숲에서 배고픈 삵이 내려와서 졸고 있는 닭의 가장 맛있는 부위를 먹어치우는 그런 흉흉한..

아무튼 그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작가 케이트 리드는 닭과 여우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 독특한 발상의 그림책이 데뷔작이라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숫자로 그림책을 만들면 보통 1, 2, 3, 4 기타 등등 수의 나열에 그치는 지루한 전개가 이어져서 기본 숫자를 익히기도 전에 흥미를 잃곤 하는데 한밤중 농장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이라는 줄거리를 가지고 숫자 공부를 녹이다니 발상이 너무나 기발하다고 여겼거든요.



이 대담한 전개를 좀 보자면 당돌한 여우 한 마리가 마치 암탉이 자는 축사 전체를 휘감은 양 휘영청 달밤에 크고 멋진 붉은 꼬리로 닭장 전체를 휘감은 듯 보입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연출이 훌륭해서 감탄하면서 읽었네요. 달밤의 분위기에 슬금슬금 다가오는 여우와 닭들의 추격전.. 어린이 책에 스릴러란 주제가 흔하지도 않을 뿐더러 거기다 자연스럽게 숫자를 버무리다니 기가 막힙니다.

그럼에도 어린이 그림책이라 제가 본 삵 다큐멘터리 같은 엄청난 희생은 하나도 없이 유쾌하게 마무리가 되네요. 이 책으로 작가는 에즈라 잭 키츠 신인 작가상을 수상했다는데 상을 타고도 남을 만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별 다섯개 만점 드리고 싶은 훌륭한 숫자 그림책이었고 숫자에 막 눈을 뜬 조카들에게도 정말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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