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브루너 일러스트레이터 2
브루스 잉먼 외 지음, 황유진 옮김 / 북극곰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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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에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시리즈가 나오는데 이번 책 '딕 브루너'는 주디스 커에 이어 2번째다. 작가의 일생, 작품 세계, 당시 시대상 등 폭넓은 배경지식은 물론 작가의 어린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사진, 작가의 일러스트 116컷까지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다 있다.



딕 브루너는 바로 대표작 '미피'로 알려진 작가인데 어떻게 단순한 선의 대가가 되었는지 그 여정이 흥미롭다. '어떤 작가도 쉽게 탄생하지 않는구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데는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축약된 책으로 잘 보여준다. 그는 책 표지 디자이너이자 포스터 작가이기도 하다.

표지 디자인을 해준 작가들 중에는 딕의 표지를 사랑해서 팬레터를 보내기도 했는데 그 중 심농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심농은 딕에게 피카소의 말을 전했습니다. 피카소는 딕의 책 표지를 보고 꼭 포스터 같아서 매우 효과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지요. 딕은 이 말을 자신이 받은 최고의 찬사 중 하나라고 여겼습니다." -P.61

거장 피카소에게 찬사를 받은 작가가 바로 딕 브루너이다.



미피의 주요내용은 기억이 안 나도 이 토끼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무려 32권의 미피 그림책은 전세계 85개국에서 사랑을 받고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미피 박물관을 비롯, 작가의 작업실, 평소 쓰던 필기구까지 사진이 나오는데 정말 흥미로웠다.



작가들은 실제로 이렇게 작업하는구나, 미피 그림은 저런 식으로 그렸구나 마치 실사 영화를 보는듯한 즐거움도 있었다.



"딕 브루너" 뿐만 아니라 북극곰에서 나오는 이 일러스트레이터 시리즈 자체의 장점이기도 하다. 작가의 일생은 물론 독자들이 궁금할 법한 개인사까지 방대한 사진자료와 함께 되도록 샅샅히 싣고 있다.

딕 브루너는 네덜란드의 유명 출판사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그가 사업을 물려받길 바랬지만 본인은 어릴 때부터 예술가외에 꿈꿔본 게 없었다. 그래서 출판 사업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쏟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 즉 장인이 딸과 결혼하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랬고 그렇게 아버지가 운영하는 A.W. 출판사의 정식 표지 디자이너가 된다.

일이 참 재미있다. 억지로 아버지가 출판사를 물려주려 했을 때는 안하겠다고 서로 대립했는데, 결혼을 위해서는 자기 발로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다니!

하지만 정직원 디자이너 일은 안정감과 동시에 실험적인 일도 가능해서 책 표지 디자이너 시절이 결과적으로 딕 브루너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검은곰 시리즈를 비롯 다양한 실험적인 디자인이 등장하고 초창기 딕 브루너가 디자인한 표지를 보면 나중에 미피가 나온 게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딕은 편집부 요약본이 아니라 자신이 디자인할 책을 원고더미 상태로 다 읽은 후 직접 분위기를 확인하고 연상작업을 통해 색채와 형상을 그렸다고 한다.

또한 책표지 디자인에도 독자의 상상력을 방해하면 안된다는 원칙이 있어서 선정적 요소를 빼고 추리소설 같은 것도 분위기로만 묘사했다.

딕 브루너를 단순히 어린이책만 만든 작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굉장히 성인 취향의 고급스럽고 강렬한 표지 디자인도 많았고 포스터 작업도 많이 했다. 그저 대중들에게는(나를 비롯) 미피 시리즈의 작가로만 알려져있는데 막상 작품 세계를 처음부터 보니 작가로서 정점에 올라선 후에 탄생한 미피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지만 그 전의 표지 디자인이나 포스터도 굉장히 훌륭했다.

단순하고도 강렬하다. 딕 브루너는 색을 많이 쓰는 작가도 아니고 선이 복잡하지도 않지만 아주 간결하게 압축해서 분위기를 전달하고 캐릭터를 완성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눈과 입밖에 없는 미피의 얼굴에 무슨 표정이 있나 싶겠지만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얼마든지 표정이 느껴진다. '미술관에 간 미피'를 보면 저 뒷짐지고 있는 미피의 뒷통수만 봐도 놀랍다.

선 하나 그었지만 저게 미술관 벽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피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뒷짐진 토끼의 짧은 팔다리가 우스우면서도 선 몇 개 만으로 완벽하게 동물의 자세를 그려내는 재주에 다시금 감탄한다.

이 할아버지는 2017년에 돌아가셨다. 무려 60년간 일주일에 6~7일 작업실에 머무르며 성실하게 일한 딕. 매일 아침 5시 30분이면 일어나 사랑하는 아내 이레네에게 오렌지 쥬스를 한잔 짜주고 아내를 위해 작은 그림을 그려줬다고 한다. 첫사랑이자 유일한 여인인 이레네는 그가 그려준 모든 그림을 간직하고 있다고.

로맨티스트로서의 면모 뿐 아니라 일생을 관통하는 극도의 성실함이 무섭기까지 하다. 그는 그림책 124권을 남겼고 죽음 후에도 책, 영화, 뮤지컬, 전시, 각종 캐릭터 상품까지 작가의 유산은 영원하다. 개인적으로도 예술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란 이런 것이란 표본을 보는 듯 자신만만하고 영민해보이는 그의 노년시절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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