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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깜박 고양이 모그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69
주디스 커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4월
평점 :
동화 작가 주디스 커의 대표작인 '깜박깜박 고양이 모그'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깜박깜박 뒤에 동사가 없어서 잘 까먹는다는 소리인지 자주 존다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전자임을 금방 알게 되었네요. 모그 시리즈가 무려 17권이나 있다는데 그만큼 주디스 커는 고양잇과 동물에게 무척 익숙하다는 거겠죠? 대표작인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역시 크게 보면 고양잇과니까요.

진짜 모그를 안고 '깜박깜박 고양이 모그'를 그리는 작가의 모습을 보자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르네요. 작가들은 반려묘,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으니 부럽습니다.

이 책의 스토리는 참 단순합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으니 작가가 얼마나 고양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충분히 관찰을 한 끝에 그린 책인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모그는 잘 잊어버리는 설정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고양이들은 뭔가 까먹는 법이 없죠. 나이가 꽤 많이 들지 않고서야 좀처럼 실수라는 것도 없고 굉장히 영리합니다. 밥을 먹다가도 깜박해서 또 먹고, 다리를 핥다가고 잊었다는데 어쩐지 그런 허술한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더욱 친밀하게 다가올 것 같아요.

엄마 모자를 깔고 앉는다거나 식구들이 밥먹는 식탁 위로 올라와 아이의 달걀을 먹어치우는 것도 깜박이라기보다는 그냥 동물적 본성이겠지만 사람 눈에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죠. 분명 알려줬는데도 같은 말썽을 또 피우니까요. 그래도 사랑스러운 건 변함이 없어서 엄마, 아빠가 모그를 야단치면 이지(아들)와 다비(딸)는 모그를 감싸주기에 여념없네요.
삽화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꾸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지가 잠자는 모그를 번쩍 안아서 귀여워하는 장면인데 당연히 갑자기 깬 모그는 좋을 리 없지만 잠든 고양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는 없죠. 저희집 고양이 젊었을 때는 저도 딱 저런 모습으로 고양이 등에 볼을 부비곤 했는데 동화 속에서 같은 장면을 보니 반갑네요.

모그는 통통하게 살이 찌고 털이 복슬복슬한 녀석이라 자꾸 쓰다듬고 싶게 생겼거든요. 저런 통통한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은 한번씩 안아보거나 쓰다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죠. 아래 장면은 야단을 맞고 오밤중에 정원으로 달려나간 모그가 시무룩해서 서있는 씬인데 푸짐한 몸매가 그저 귀엽기만 합니다. 모그 녀석 밥을 얻어먹어야 할 텐데.. 괜히 걱정되네요.

반려묘를 키우는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고양이란 녀석은 맨바닥에 앉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방석이 되었든 주인이 보는 신문이 되었든 꼭 그 위에 앉는 법이니까요. 엄마 모자를 깔고 앉은 모그는 또 "내가 모그 때문에 못 살겠다"라는 짜증섞인 푸념을 듣고, 꽃밭을 망쳐놓는 등 꾸준히 사소한 말썽을 부려 아빠의 원성도 사지만 따지고 보면 대단한 말썽도 아닙니다.

딸 다비가 잠든 틈에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핥는 바람에 다비가 깜짝 놀라 울면서 깨기도 했는데 저는 그 장면을 보고 웃고 말았습니다. 저희집 고양이도 젊은 시절에는 똑같이 제 머리카락이나 손을 자신의 털처럼 핥아주었는데 이런 그루밍은 고양이들의 습성이자 주인에 대한 애정표현이라고 하죠. 다비도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고양이와 사람은 이렇게 표현방식이 다르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작가가 그린 모그는 그저 깜박깜박 잘 잊기만 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던 셈이죠. 일종의 작가적 해석일 뿐 고양이 행동방식을 꿰고 있는 분이라 여러 번 읽을수록 새록새록 재밌었습니다. 조카들도 모그 귀엽다고 좋아했구요.
직접 키우지 않아도 이렇게 강아지나 고양이가 나온 책을 읽으며 동물에 대한 친밀감을 익히고 그들 역시 보호해줘야 할 작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은연 중에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은근히 고양이 무서워하는 첫째 조카가 고양이와 더욱 친해지는 계기가 되면 기쁘겠더라구요.
큰 사건 없이 잔잔히 흘러가는 듯 하지만 모그 역시 중간에 크게 한 건 하구요. 이 사건은 책을 아직 안 읽은 분들을 위해 남겨놓습니다. 그야말로 장님 문고리 잡는 격으로 장한 일을 하고, 상으로 얻은 계란을 앞에 둔 의기양양한 표정이라니 마무리는 참 코믹하네요.
사랑스러운 고양이 모그가 왜 오랜 시간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동화가 되었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출간한지 세월이 꽤 지났지만 그래서인지 내용과 그림체가 더욱 클래식하고요. 요즘 젊은 작가들의 동화책과는 또 다른 푸근하고 다정한 맛이 있어서 오래 두고 보고 싶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