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2
토미 드 파올라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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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드파올라의 "우리는 최고야!"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그의 두 번째 책으로 "고요히"를 읽었습니다. 표지를 보자마자 특유의 아름다운 화풍에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이나 아픈 우리 고양이를 간호하느라 밤에도 잠을 설치기 일쑤이고 뭔가 바쁘게 하루가 지나가지만 돌아보면 잡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인생이 마치 뜬구름 같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림책은 사실 조카들을 위해 읽는 것인데 보면 볼수록 어른인 내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책은 펼치자마자 대자연의 향연입니다. 글자가 많은 책도 아니고 줄거리가 또렷한 것도 아니지만 곱씹을수록 의미가 배가 됩니다.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림책 270권을 만든 작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온 노작가의 푸근함이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위해 그린 것처럼 그렇게 묻어납니다.

"아이쿠! 다들 무척 바쁘구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p중.

할아버지와 꽃동산이라도 놀러온 걸까요? 손녀, 손자, 귀여운 애견까지 한 마리 온 가족이 붕붕거리는 벌, 활짝 핀 빨간 꽃과 나무들, 풍뎅이와 각종 곤충, 심지어 보이지 않는 굴에서 자기 새끼들을 품고 있는 여우까지 다채롭게도 그려졌습니다.



이 책은 자연의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서두르지 말고, 고요히 그저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 그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자세히 보면 자연은 참 바쁘고 활기차지만 인간세상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저 이렇게 넓은 공원에 산책을 나와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함께 의자에 앉아 고요히, 바람을 느끼는 풍경을 그림으로나마 바라봅니다.



자연이 바쁜 모습은 인간에게는 휴식이 됩니다. 희한하게도 잠자리가 물 위를 날고, 새가 나무 사이로 날아가는 그림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요즘은 아주 어린아이들까지 스마트폰에 익숙해져 빠르고, 급하고, 자극적인 삶에 길들여졌습니다. 하지만 부질없이 눈만, 마음만 바쁘다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나무들은 나뭇잎을 흔들고, 새는 날아가지만 우리는 서둘지 말고 여기 함께 앉자고 하시는 할아버지.

발밑에 강아지가 누워서 잠을 청하고 그저 오롯이 자연을 관찰하며 명상을 하듯 그렇게 눈을 감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고요한 아름다움을 함께 느껴봅니다.



정말 굉장한 책입니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건 마치 미션 임파서블 같지만 토미 드파올라의 "고요히"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마음으로 같이 자주 읽고 싶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울림과 평온함이 담긴 책이라 이것이 바로 대작가의 힘인가 놀랐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히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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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고야!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1
토미 드 파올라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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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독특한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제목은 "우리는 최고야!", 저자는 '토미 드파올라'라는 미국 할아버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2020년 3월에 별세하셨네요.

그림풍만 봤을 때는 배경이 멕시코 가정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클래식한 느낌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재미있는 게 이 책이 나올 당시는 1979년이었는데 무려 42년쯤 지난 지금도 이 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소수에 대한 다수의 편견과 따돌림 등은 거의 변하지 않았네요.



"우리는 최고야"에서 주인공 이름은 우리인데요. 처음에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we를 뜻하는 우리 모두가 최고라는 뜻인가 했다가 금방 주인공 이름이 우리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 단순하지 않구나, we의 의미도 있는 함축적인 이름이네' 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임팩트있는 첫 장입니다.

"아이들은 '우리'를 여자애라고 놀려요.

우리는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본문 1p 중에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도대체 원제는 무엇이고 주인공 남자아이의 본래 이름은 뭐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찾아보니 원제는 "Oliver Button is a Sissy". 아, 우리의 진짜 이름은 올리버 버튼이었네요.

그리고 sissy 라는 단어가 중요한데 영어사전에 의하면 "계집애 같은 사내(애)"라고 나옵니다. 계집애라니.. 이 번역은 언제쯤 고쳐질 런지.. 혀를 끌끌 찼지만 비하의 의미라는 건 그래서 더 잘 느껴졌습니다.





강요된 성역할이라고 해야 하나요? 21세기에도 여자아이들 장난감 이름은 엄마놀이, 아기 돌보기, 부엌놀이 등에 주된 색깔은 핑크이고 남자아이들 장난감은 로봇, 공룡 등에 파란색이 주로 쓰인다는 뉴스가 바로 얼마 전 어린이날에도 나왔습니다.

주인공 소년 '우리'는 다른 남자애들이 하는 축구, 야구 같은 공놀이는 관심이 없고 혼자 숲 속을 산책하거나 책 읽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요. 심지어 종이 인형 만들기나 다양한 옷을 입고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하네요. 이른바 다수의 남자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취향입니다.



이런 우리를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자애처럼 집에서 놀지 말고 밖에 나가 공놀이를 하라고 종용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놀이를 못하기도 하지만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남자애들은 이런 우리를 따돌리고 벽에 대놓고 "우리는 여자애야(Oliver button is a sissy)"라는 인신공격적 낙서를 써놓지만 누나들은 보듬어주죠.

이 동화책에서 인물들 표정은 상당히 부드럽고 은근한데 낙서 앞에 서있는 우리의 어두운 얼굴과 입을 막은 손, 음영이 짙은 그림자는 얼마나 소년이 상처받았는지 나타냅니다. 너무 가여워서 이 망할 친구 녀석들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네요.




아버지는 아들이 춤에 관심있는 게 못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막지는 않습니다. "운동 때문에 특별히 허락해 주는 거야"라면서 좋아하는 무용 학원에 다니게 허락해주셨어요.

"우리는 최고야"에서 가장 마음에 든 인물이 바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공놀이보다 춤을 좋아하고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아들의 취미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존중해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춤 좋아하는 우리가 계속 무용학원 다니고 탭댄스 하는 걸 막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춤을 연습할 수 있었고 학교에서 열리는 장기 자랑 대회에도 나가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 있었죠.




장기자랑에서 상을 탔냐 못 탔냐는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애들이 괴롭히는 와중에도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연습에 매진했고 훌륭하게 무대를 마무리했습니다. 아이를 지지해주는 어른들의 역할도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우리 멋진 무용수에게 최고의 피자를 사줄게,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선생님과 엄마도 칭찬하시고 우리는 행복한 하루를 보냅니다. 아버지가 더 멋있네요.




물론 모두의 앞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후에는 학교에서의 괴롭힘도 없어져서 참 다행입니다. 원서를 찾아보니 "Oliver Button is a sissy"라는 벽의 낙서에서 sissy를 찍 긋고 "star"로 바뀌었습니다. 라임도 맞고 참 재밌네요. Oliver Button is a star라니! 캬~.

여자같은 남자애에서 스타로 불리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였지만 우리는 자기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남과 다른 나의 개성, 재능, 취미 이 모든 것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 갈 길을 가야 한다는 거겠죠. 책을 읽고나니 토미 드파올라는 작가 개인에게도 관심이 생겨 좀 더 뒤져봤는데 이 양반도 아주 어릴 때부터 탭댄스를 배웠고 매일 책을 읽어주던 어머니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으셨네요. 그 결과? 이렇게 세계적으로 훌륭한 동화작가가 되어서 200권이 넘는 그림책을 냈다니 왠지 뿌듯합니다.

그림도 귀엽고 내용은 더 좋고 여운이 깊게 남는 좋은 동화책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히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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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모그!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0
주디스 커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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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깜박 고양이 모그"가 주디스 커 모그 시리즈의 첫번째였다면 이번 "안녕, 모그!" 는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모그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삶이 있으면 당연히 죽음도 있는 건데 가족들, 특히 아이들이 누군가 죽어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걸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첫 장에 바로 시작되는 모그의 죽음 그러나 다행히 어둡게 다루지 않았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다정하고 따뜻한 서사이다.

"모그는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어요.

머리가 너무나 무거웠어요.

발도 무겁고 꼬리조차 무거웠어요.

'이제 영원히 잠들고 싶어.'

모그는 생각했어요." -본문 1p 중.



사랑스러운 모그가 이제 그 늙은 몸을 떠나 영혼이 둥실 떠오른다. 모그의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살아있다. 고양이의 영혼은 아직 엄마, 아빠, 다비, 이지가 있는 집에 머물며 가족들을 지켜보고 있다. 죽어서도 귀여운 옅은 색의 모그가 슬퍼하는 가족을 지켜보는 모습이라니..



모그가 잠들자, 가족들은 모그를 앞마당에 묻어주고 추모의 시간을 가진다. 아이들은 모그가 왜 죽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모그는 정말 나이가 많았단다."라는 짧은 대사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안녕, 모그!"에서 죽음은 그렇게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그려진다. 늙으면 사람도 동물도 떠나야 한다.

모그는 가족의 사랑 속에서 오랜 시간 행복하게 살았고 어쩔 수 없는 이별 안에는 슬픔도 있지만 함께 오래도록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추억도 존재한다.

고양이가 죽고 난 후에도 아이들은 모그를 떠올린다. tv위에 올라가 꼬리를 늘어뜨리고, 침대 위에 올라왔던 모습 등등. 그러다가 다비네 집에 새로운 아기 고양이가 등장하고 너무 어려서 좀처럼 새집에 적응을 못하는 아기 고양이를 모그의 영혼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돌봐준다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안녕, 모그!"는 어린이들이 읽는 다른 그림책처럼 줄거리가 중요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다루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동화이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동물들은 사람처럼 오래 살 수 없다. 개, 고양이, 새, 그 어떤 종류라도 얼마나 사랑스럽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해도 언제가는 먼저 떠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순리이다.



고양이의 시간은 사람보다 5배 빨리 간다고 한다. 우리집에도 19살 늙은 고양이가 살고 있지만 보고 있자면 젊은 시절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아 예전에 찍어놓은 사진을 볼 때면 놀라고 한다.

우리 고양이에게도 모그가 젊었을 때처럼 통통하고 건강하고 털에 윤기가 흐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늙어서 작가가 묘사한 대로 자기 꼬리를 들기조차 힘겨워보일 때가 있다. 동물은 아무리 나이들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그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을 안아볼 때면 더욱 슬프지만 "안녕, 모그!" 를 읽으며 죽음이 곧 영원한 이별은 아니라는 점, 우리에게는 좋은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기쁨도 있고 서로의 모습을 기억할 거라는 믿음도 있다.

아이들이 "안녕, 모그!" 를 읽으며 반려동물이 죽는 걸 너무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모그는 죽은 후에도 일정 시간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물며 새로운 식구가 된 아기고양이의 적응을 돕는다.

물론 자기 밥그릇에서 새식구가 우유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잠깐 섭섭해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모그를 기억할 거라는 다비의 말에 만족스럽게 떠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그려졌다. 지금 반려동물을 키우는 아이들에게는, 언젠가 나이든 동물이 우리를 두고 먼저 떠나더라도 죽음이 곧 영원한 이별은 아니라는 걸 따뜻하게 전해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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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깜박 고양이 모그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69
주디스 커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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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작가 주디스 커의 대표작인 '깜박깜박 고양이 모그'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깜박깜박 뒤에 동사가 없어서 잘 까먹는다는 소리인지 자주 존다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전자임을 금방 알게 되었네요. 모그 시리즈가 무려 17권이나 있다는데 그만큼 주디스 커는 고양잇과 동물에게 무척 익숙하다는 거겠죠? 대표작인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역시 크게 보면 고양잇과니까요.



진짜 모그를 안고 '깜박깜박 고양이 모그'를 그리는 작가의 모습을 보자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르네요. 작가들은 반려묘,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으니 부럽습니다.






이 책의 스토리는 참 단순합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으니 작가가 얼마나 고양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충분히 관찰을 한 끝에 그린 책인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모그는 잘 잊어버리는 설정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고양이들은 뭔가 까먹는 법이 없죠. 나이가 꽤 많이 들지 않고서야 좀처럼 실수라는 것도 없고 굉장히 영리합니다. 밥을 먹다가도 깜박해서 또 먹고, 다리를 핥다가고 잊었다는데 어쩐지 그런 허술한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더욱 친밀하게 다가올 것 같아요.




엄마 모자를 깔고 앉는다거나 식구들이 밥먹는 식탁 위로 올라와 아이의 달걀을 먹어치우는 것도 깜박이라기보다는 그냥 동물적 본성이겠지만 사람 눈에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죠. 분명 알려줬는데도 같은 말썽을 또 피우니까요. 그래도 사랑스러운 건 변함이 없어서 엄마, 아빠가 모그를 야단치면 이지(아들)와 다비(딸)는 모그를 감싸주기에 여념없네요.

삽화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꾸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지가 잠자는 모그를 번쩍 안아서 귀여워하는 장면인데 당연히 갑자기 깬 모그는 좋을 리 없지만 잠든 고양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는 없죠. 저희집 고양이 젊었을 때는 저도 딱 저런 모습으로 고양이 등에 볼을 부비곤 했는데 동화 속에서 같은 장면을 보니 반갑네요.




모그는 통통하게 살이 찌고 털이 복슬복슬한 녀석이라 자꾸 쓰다듬고 싶게 생겼거든요. 저런 통통한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은 한번씩 안아보거나 쓰다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죠. 아래 장면은 야단을 맞고 오밤중에 정원으로 달려나간 모그가 시무룩해서 서있는 씬인데 푸짐한 몸매가 그저 귀엽기만 합니다. 모그 녀석 밥을 얻어먹어야 할 텐데.. 괜히 걱정되네요.



반려묘를 키우는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고양이란 녀석은 맨바닥에 앉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방석이 되었든 주인이 보는 신문이 되었든 꼭 그 위에 앉는 법이니까요. 엄마 모자를 깔고 앉은 모그는 또 "내가 모그 때문에 못 살겠다"라는 짜증섞인 푸념을 듣고, 꽃밭을 망쳐놓는 등 꾸준히 사소한 말썽을 부려 아빠의 원성도 사지만 따지고 보면 대단한 말썽도 아닙니다.



딸 다비가 잠든 틈에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핥는 바람에 다비가 깜짝 놀라 울면서 깨기도 했는데 저는 그 장면을 보고 웃고 말았습니다. 저희집 고양이도 젊은 시절에는 똑같이 제 머리카락이나 손을 자신의 털처럼 핥아주었는데 이런 그루밍은 고양이들의 습성이자 주인에 대한 애정표현이라고 하죠. 다비도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고양이와 사람은 이렇게 표현방식이 다르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작가가 그린 모그는 그저 깜박깜박 잘 잊기만 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던 셈이죠. 일종의 작가적 해석일 뿐 고양이 행동방식을 꿰고 있는 분이라 여러 번 읽을수록 새록새록 재밌었습니다. 조카들도 모그 귀엽다고 좋아했구요.

직접 키우지 않아도 이렇게 강아지나 고양이가 나온 책을 읽으며 동물에 대한 친밀감을 익히고 그들 역시 보호해줘야 할 작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은연 중에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은근히 고양이 무서워하는 첫째 조카가 고양이와 더욱 친해지는 계기가 되면 기쁘겠더라구요.

큰 사건 없이 잔잔히 흘러가는 듯 하지만 모그 역시 중간에 크게 한 건 하구요. 이 사건은 책을 아직 안 읽은 분들을 위해 남겨놓습니다. 그야말로 장님 문고리 잡는 격으로 장한 일을 하고, 상으로 얻은 계란을 앞에 둔 의기양양한 표정이라니 마무리는 참 코믹하네요.

사랑스러운 고양이 모그가 왜 오랜 시간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동화가 되었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출간한지 세월이 꽤 지났지만 그래서인지 내용과 그림체가 더욱 클래식하고요. 요즘 젊은 작가들의 동화책과는 또 다른 푸근하고 다정한 맛이 있어서 오래 두고 보고 싶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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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대작전 이야기강 시리즈 1
은나래 지음, 차야다 그림 / 북극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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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대작전"은 글을 쓴 은나래 작가의 첫 작품이자 그림을 그린 차야다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차야다 작가의 "아빠 쉬는 날"을 재밌게 읽어서 기대가 컸는데 역시나 삽화 비중이 높은 책이 아니었지만 중간 중간 한 장의 그림도 임팩트가 강렬했다!



"만우절 대작전"은 어린이들이라면 항상 기대하는 그 4월 1일에 한 거짓말과 관련된 해프닝이다. 요즘은 맞벌이 가정이 워낙 흔해서 더욱 공감이 갈 만한 내용인데 나 때는 이 정도까지 심하지 않았기에 정말 뉴스에서나 보던 생활을 초딩들이 하고 있구나 싶다.



학교 가기 직전에 일어나서 5분만을 외치다가 지각하는 건 주인공 공상태 군 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어린이들 심지어 어른들까지도 아침풍경은 똑같지만 학교 끝나고 학원 4군데 뺑뺑이라니 이건 좀 심하다. 상태의 엄마는 늘어난 학원비를 메우기 위해 콜센터 일에 보험일까지 시작했고 트럭을 모는 아빠는 한 달에 몇 번 집에 오는 날이 손에 꼽힌다.

상태를 포함한 이 가족의 모든 고생이 의미있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정작 주인공인 상태는 학교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학원은 정말 가기 싫어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학원만 다닌다면 이렇진 않을 텐데 엄마에게 해서는 안 될 거짓말까지 해가며 빠지려 들 정도라면 아이가 받은 스트레스도 상당할 것이다.

처음에는 갑자기 등장한 탈북자 아저씨 때문에 당황했는데 읽다보니 발상이 참 기발하다. 4월 1일 만우절에 늦게 일어나 학교에 지각한 상태는 길거리에서 불량한 형들을 만나 돈을 뜯길 위기에 처하고 걔네들을 피하려다 트럭에 치일 뻔한다. 그 때 트럭에서 내려서 상태를 구해준 아저씨가 낯빛이 좋지 않았던 새터민인데 둘이 서로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우정이 싹트고 가족의 사랑까지 느낀다는 이야기이다.



이 새터민 아저씨의 사정을 듣고 보니 낯선 한국에서 정착금도 사기로 다 날리고 다니던 공장은 문을 닫고 며칠째 돈이 없어 밥도 굶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달리기 시작하는데 상태 엄마가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게 중요한 복선이 된다. 상태가 겨우 학원을 빠지기 위해 꾸민 만우절 거짓말은 사실 정도가 너무 심해서 이거 범죄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영악한 아이의 거짓말에 못미치는 어수룩한 새터민 아저씨의 조합은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상태 엄마 역시 사회 생활을 많이 한 본격 어른이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만우절 대작전은 상태의 거짓말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그보다 새터민 아저씨와 상태의 처지를 번갈아 보여주며, 철부지 공상태가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탈북자 아저씨만큼 힘들 리도 없고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심정과 비할 바도 아니라 어린애 상태의 거짓말에 억지로 동조할 수 밖에 없었던 아저씨의 처지가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갈 곳이 있는 상태와 집에 가도 아무 가족도 없는 새터민 아저씨. 상태는 소설 말미에 가면 귀찮게만 느껴졌던 엄마의 잔소리속에 담긴 아들에 대한 사랑을 드디어 깨닫는다.

엄마가 투잡을 뛰면서까지 일하는 이유는 아들을 잘 뒷바라지해서 자신은 가보지도 못한 대학에 보내고 성공시키기 위해서인데 그 노력을 어린 아들은 모르고 그저 인스턴트나 먹으며 잡초처럼 방치되었다고 생각할 뿐이라니 도대체 누굴 위한 맞벌이인가 생각하게 된다.

부모은 아이를 위해 둘 다 밤낮없이 일하지만 정작 그 빈자리 때문에 아이는 소외감을 느낀다. 혼자 일어나서 양치도 안하고 늦는 둥 마는 둥 학교에 갔다가 학원 다 돌고 집에 와서 혼자 밥먹야 하는 상태를 보니 이게 과연 이 집만의 문제일까 싶다.

이 책에서는 똑같은 하루, 평온한 일상이 주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새터민 아저씨의 숙제도 공상태 어린이의 학원 문제도 결국 만우절 거짓말 한 번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다. 애나 어른이나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거겠지만 현실이 피곤해도 늘 곁을 지켜주는 가족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 일인가.

새터민 아저씨의 순수함과 공상 좋아하는 공상태 군의 엉뚱함이 묘한 콜라보를 이루며 이야기를 따뜻하게 마무리지어서 좋았다. 이 책에서는 상태네서 밥을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선 아저씨의 미래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잘 될 것이라는 희망적 분위기를 풍긴다. 웃기다가 화도 났다가 다행스럽다가 마지막에는 찡하기까지, 어른 독자도 재밌게 읽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어린이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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