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고야!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1
토미 드 파올라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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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독특한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제목은 "우리는 최고야!", 저자는 '토미 드파올라'라는 미국 할아버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2020년 3월에 별세하셨네요.

그림풍만 봤을 때는 배경이 멕시코 가정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클래식한 느낌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재미있는 게 이 책이 나올 당시는 1979년이었는데 무려 42년쯤 지난 지금도 이 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소수에 대한 다수의 편견과 따돌림 등은 거의 변하지 않았네요.



"우리는 최고야"에서 주인공 이름은 우리인데요. 처음에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we를 뜻하는 우리 모두가 최고라는 뜻인가 했다가 금방 주인공 이름이 우리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 단순하지 않구나, we의 의미도 있는 함축적인 이름이네' 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임팩트있는 첫 장입니다.

"아이들은 '우리'를 여자애라고 놀려요.

우리는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본문 1p 중에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도대체 원제는 무엇이고 주인공 남자아이의 본래 이름은 뭐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찾아보니 원제는 "Oliver Button is a Sissy". 아, 우리의 진짜 이름은 올리버 버튼이었네요.

그리고 sissy 라는 단어가 중요한데 영어사전에 의하면 "계집애 같은 사내(애)"라고 나옵니다. 계집애라니.. 이 번역은 언제쯤 고쳐질 런지.. 혀를 끌끌 찼지만 비하의 의미라는 건 그래서 더 잘 느껴졌습니다.





강요된 성역할이라고 해야 하나요? 21세기에도 여자아이들 장난감 이름은 엄마놀이, 아기 돌보기, 부엌놀이 등에 주된 색깔은 핑크이고 남자아이들 장난감은 로봇, 공룡 등에 파란색이 주로 쓰인다는 뉴스가 바로 얼마 전 어린이날에도 나왔습니다.

주인공 소년 '우리'는 다른 남자애들이 하는 축구, 야구 같은 공놀이는 관심이 없고 혼자 숲 속을 산책하거나 책 읽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요. 심지어 종이 인형 만들기나 다양한 옷을 입고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하네요. 이른바 다수의 남자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취향입니다.



이런 우리를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자애처럼 집에서 놀지 말고 밖에 나가 공놀이를 하라고 종용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놀이를 못하기도 하지만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남자애들은 이런 우리를 따돌리고 벽에 대놓고 "우리는 여자애야(Oliver button is a sissy)"라는 인신공격적 낙서를 써놓지만 누나들은 보듬어주죠.

이 동화책에서 인물들 표정은 상당히 부드럽고 은근한데 낙서 앞에 서있는 우리의 어두운 얼굴과 입을 막은 손, 음영이 짙은 그림자는 얼마나 소년이 상처받았는지 나타냅니다. 너무 가여워서 이 망할 친구 녀석들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네요.




아버지는 아들이 춤에 관심있는 게 못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막지는 않습니다. "운동 때문에 특별히 허락해 주는 거야"라면서 좋아하는 무용 학원에 다니게 허락해주셨어요.

"우리는 최고야"에서 가장 마음에 든 인물이 바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공놀이보다 춤을 좋아하고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아들의 취미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존중해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춤 좋아하는 우리가 계속 무용학원 다니고 탭댄스 하는 걸 막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춤을 연습할 수 있었고 학교에서 열리는 장기 자랑 대회에도 나가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 있었죠.




장기자랑에서 상을 탔냐 못 탔냐는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애들이 괴롭히는 와중에도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연습에 매진했고 훌륭하게 무대를 마무리했습니다. 아이를 지지해주는 어른들의 역할도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우리 멋진 무용수에게 최고의 피자를 사줄게,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선생님과 엄마도 칭찬하시고 우리는 행복한 하루를 보냅니다. 아버지가 더 멋있네요.




물론 모두의 앞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후에는 학교에서의 괴롭힘도 없어져서 참 다행입니다. 원서를 찾아보니 "Oliver Button is a sissy"라는 벽의 낙서에서 sissy를 찍 긋고 "star"로 바뀌었습니다. 라임도 맞고 참 재밌네요. Oliver Button is a star라니! 캬~.

여자같은 남자애에서 스타로 불리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였지만 우리는 자기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남과 다른 나의 개성, 재능, 취미 이 모든 것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 갈 길을 가야 한다는 거겠죠. 책을 읽고나니 토미 드파올라는 작가 개인에게도 관심이 생겨 좀 더 뒤져봤는데 이 양반도 아주 어릴 때부터 탭댄스를 배웠고 매일 책을 읽어주던 어머니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으셨네요. 그 결과? 이렇게 세계적으로 훌륭한 동화작가가 되어서 200권이 넘는 그림책을 냈다니 왠지 뿌듯합니다.

그림도 귀엽고 내용은 더 좋고 여운이 깊게 남는 좋은 동화책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히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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