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우스가 오리게네스를 스승으로 모셨던 흥미로운 이야기 한 토막,

˝스승의 모범, 우정의 끈, 소통과 실천˝

˝처음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자신을 바꾸려는)이 화살처럼 찔려서 저항하고 주저했다.
대신 `논쟁과 지적 토론을` 원했다.

하지만 스승은, `똑똑함과 말재주` 이상의 것을 기대했고, 그의 목적은 `제자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것`이었다.

마음을 열고 `선으로 의지가 형성되게 하라`고 도전했다.

두 사람은 일상적인 인간관계 이상의 친교(신뢰 관계가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거라 추측된다)를 통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법을 나누었다.

스승인 오리게네스를 `말씀의 친구요 해석자`라 부르며 진한 우정의 관계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오리게네스는 자신의 행동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제자들이 자신의 `성품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말보다 행동으로 더 많은 것을 가르쳤다.

스승은 제자들을 교화하기 전에 그들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
스승은 제자들의 습관, 태도, 욕망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교정하고 꾸짖고 권면하고 용기를 북돋기 위해서다.

가장 내적인 것을 깊이 파고 검토함으로써, 질문하고 생각을 서술하고 그들의 반응에 주목함으로써 과제를 수행하도록 도왔다.

무엇보다 자기의 영혼에 주목할 것과 성품을 형성하고 통제되지 않는 열정을 진정시키는 덕스러운 삶의 요소를 놓치지 않도록 격려했다.

`거룩한 덕`은, 신중, 정의, 용기, 절제요, 거기에 모든 덕의 어머니인 `경건`을 덧붙였다. 덕은 오직 하나님이 자신의 권능을 불어넣는 사람 안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297-302, 기독교 사상의 정신)



사제간의 사랑과 교제를 보면서, 좋은 친구, 믿음의 동역자, 목사와 성도, 평생동반자로서의 부부(파트너) 간의 관계들을 생각하며 소망한다.

단지 교육하거나 정보만 제공하는 아니라, 영혼의 성장을 위해 서로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하고 협력하는 마음이 최우선임을 되새긴다.

그럴 때, 각 사람의 기술과 관심을 교정하고 교육하고 권면하는 것이 인격적이며 순서다.

#믿음의 #동역자 #매일 #기도해 #황홀한 #선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존하는 은총˝

초대교회에서 설교는 성경적이었다.
설교는 성경에서 선택한 한 본문을 주해하는 형태를 취했다.

성경 말씀은 초기 기독교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의 깊은 곳에 하나의 성전을 만들었다.

설교뿐 아니라, 신학서적들, 서신들, 영적저서들에서 교부들은 성경의 대부분을 경탄할 정도로 암기해 자유롭게 사용한다.

근대 신학서적들과 달리, 초대교회에서 성경 말씀은 사상의 주해를 위한 언어학적 뼈대였다.

가장 철학적인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의 저서에도 그들의 사상은 성경의 언어로 표현되었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예배는 일종의 기독교 연설의 문법을 제공했다. 즉, 어떻게 성경 말씀이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다.

설교에서 설교자는 말씀을 설명할 뿐 아니라, 말씀을 사용하여 회중들을 그 실재 자체, 곧 그리스도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도록 초청했다.(71-72)


#제발 #주해 #설교 #현존하는 #은총 #예배의 #선물 #갈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정한 `정당함`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정당함에 대해, 기관으로서의 정의가 아닌, 이념으로서 또는 이상으로서의 정의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법을 넘어서는 정의 개념으로써, 법 안에 갇힐 수 없는, 즉 모든 법을 넘어서는 정의의 개념을 말한다.

법 이상이라 하고, 법과 다른 무엇이라고 하는 정의의 원리란 무엇일까?

힘이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닌, 무엇보다도 각자(각 사람은 평등하고 고유한 차별성이 있으므로)에게 주어져야 하는 몫이 있다는 것이다.

정의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한다. 개인만의 고유한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자에게 정당함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권리들이 있지만, 각자에게 주어져야 할 한 가지는 바로 `사랑`이다.

사실상 #사랑만이 각자에게 우선시되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결국 정당하다는 것은 각자가 인정받을 자격이 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사랑(감성적이고 혼돈스러울 수 있지만)이라 말하고 싶고, 바로 #제약을 #갖지 #않는 #인정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실제로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정당하다는 말의 뜻은 정당한 것을 안다고 자신하는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정당하다는 것은 여전히 더 찾아내고 납득할 수 있는 정당함이 있어야 하고, 더 많이 기대하고 앞서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정당하다 함은, 정당하다는 입장에서 #각자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던 #몫까지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저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고, 절대적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71-90, 어설픈 요약)



인간에 대한 존중과 뼈 속까지 죄인인 인간에 대한 이해 사이에서 사랑과 정의의 윤곽과 긍휼이 동시에 작동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타인을 통해서 절대적인 유일함을 인식하는 것입니다.˝(30)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하죠. 부모는 아이들이 예쁘기 때문에, 착하기 때문에, 또는 호감이 가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계로 왔을 때, 아직 그런 장점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그들을 사랑합니다.˝(31)

한편, 이보다 더 거대하고 끝없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묵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자가 `여호수아`를 통해서 본,
`지도자의 자질은 무엇인가` 들여다 보기~


1. 여호수아는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목표를 보았다.
(바로 앞의 성과를 기대하며 조급하게 일하기보다 길게 보는 안목을 키우며, 주의 명령만을 기다렸다.)

2. 여호와는 전투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이해했다.
(지도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동역자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함께 가기로 한 사람들의 삶의 정황을 읽으려고 노력하며 격려하고 인정하며 신뢰해야 한다.)

3. 여호수아는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단계적인 전진을 하며 전투를 수행했다.
(어떤 특별한 비법이나 프로그램에 의존하려는 우리네의 세태와 반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관한다.)

4. 여호수아는 초기에 실패했던 경험을 토대로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다.

5.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무조건 믿고 완전하게 순종하였다. (여호수아의 신앙과 인격을 말하는 대목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수11: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