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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맛대로 살아라 - 틀에 박힌 레시피를 던져버린 재야 셰프, 전호용의 맛있는 인생잡설
전호용 지음 / 북인더갭 / 2017년 7월
평점 :
재야 세프가 요리하는 인생 이야기, 못나도 사랑스러워 -‘네 맛대로 살아라’를 읽고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방송을 통해 각양각색 레시피들이 등장하고 멋진 스타 세프들도 자주 나온다. 눈을 현혹하는 화려한 쇼처럼 음식들이 꾸며지고 유명 연예인들이 그것을 먹고 즐기는 모습을 통해 일반인들이 대리만족을 느낀다. 또한 세프가 제안하는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보고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드는 한 재야 세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와 나의 밥을 지어먹는 '삶'이라는 행위에 정확한 레시피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제시한 어느 요리의 레시피는 대략적인 방향을 안내하는 이정표일 뿐이다."(43쪽)
"레시피에는 정답이 담겨 있을지 모르지만 그 레시피를 참고해 만든 당신의 음식은 정답도 오답도 아닌 당신의 음식이다"(41쪽)
현재 전주에서 심야식당을 운영하는 저자의 필력은 진보잡지에 글을 기고했던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타세프와 그 이름의 레시피로 무장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 비판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너와 나의 밥을 지어먹는 삶’에 대한 깊이 있고 정감 어린 글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해준다. 특히 ‘못난 것’을 향한 애정이 인상 깊었다.
“주변에 차고 넘치는 그 못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라도 기록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7쪽)
책 서문에서도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바로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못난 것들, 나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마트에 가면 몇 천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콩나물이나 미나리, 늙은 호박 등 흔한 음식 재료들이 돈이 되기 위해 매겨지는 가격과 달리 얼마나 많은 정성의 손길로 자라는지 옛 추억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 알 듯이 상품이 되는 것만이라도 제값 주고 팔기 위해 못난 열매는 다 버린다. 당연하지 않는가? 하지만 저자는 "나무가 맺어준 귀한 열매마저도 돈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 안으로 밀어넣었기에 그 올곧은 존재 자체의 가치가 사람으로 하여금 상실된 것은 아닐는지"(131쬭) 라며 못난 것을 못난 대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어떤 제주 농민은 감귤을 선과나 세척작업 없이 손 가는 대로 따서 귤을 따서 상자 안에 크고 작은 것 신 것 단 것 섞어서 판다고 한다. 만약에 내가 그 귤을 구매해서 시고 못난 귤을 발견했다면 왜 이런 것을 파느냐고 따지고도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신맛을 음미(?)하면서 맛있게 먹어보고 싶다. 오로지 돈이 되는지 안되는지 그 기준에 따라 열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열매 자체를 보고 인정하는 것, 땀과 수고의 대가로 열린 열매 혹은 어떤 결과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저자를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삶을 바라보는 깊이도 남다르다. 통증과 죽음에 대하여 풀어놓는 글과 문장 하나하나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현실적이어서 마음이 약간 불편하기까지 했다.
"다만 오늘의 통증이 내일까지 이어진다고 해도 내일은 그 통증을 견뎌낼 만큼의 에너지가 몸 안에 다시 생겨난다고 믿게 되었다....이 통증이 팔꿈지에 늘어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지만 너에게 주는 밥과 내가 먹을 밥 모두를 끊을 수 없어 통증을 견디며 일을 한다"(54쬭)
"사람은 죽어 사라지고 죽음의 냄새만 남아 있지만 그 방은, 그 집은 생로병사가 끊이지 않았던 '집'이었으므로 죽음의 냄새 또한 들숨으로 호흡되는 삶의 이유가 된다...여기에 계속해서 다양한 음식 냄새를 덧칠하고 서로의 날숨을 불어넣고 삶의 찌꺼기들이 말라붙으면 그 고단함을 잠재우는 집이 될 것이다...그녀가 임종을 맞을 공간이 두 사람의 희로애락과 체취가 짙게 밴, 두 사람만이 편안할 수 있는 '집'이기를 바란다."(80~86쪽)
통증을 견디며 일을 해야 하는 고난단 삶, 죽음의 냄새도 호흡이 되는 왠지 잔인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진한 감성적인 글은 아니지만 생기발랄한 기운이 마음에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못난 것들을 투박하고 거칠게 기록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라도 권고할 수 있는 인생관을 설파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는 이 책이 교훈을 위한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교훈적이었다. 생각의 범위를 넓히고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과 함께 밥을 해서 같이 먹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