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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로 대학 가다 - 세계적 명문대에 진학한 남매와 제자들의 확실한 성공 비결
이미영 지음 / 학지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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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로 대학을 가다>(이미영, 학지사, 2025)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문제점을 짚어내면서 대안으로서 IB 교육의 철학과 기본 개념, 실제 경험 담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수능 언어영역 전문 강사였지만 사교육 현장에서 공부 기계가 되어갈 아이들이 걱정되어 싱가포르로 유학을 떠난다. 그 곳에서 "옆자리 친구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함께 성장할 협력의 동반자"라는 교육 철학에 매료되어 IB 한국어 교사가 된다. 15년 동안 전세계 학생들을 만나며 IB 교육의 실제적인 효과를 경험하고 그 의미와 노하우를 책에 담아 내고 있다.

" 문득, '아들이 이제 학교에 입학했으니, 한국에서 입시 전쟁을 치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아들을 이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유치원과 초등학교 생활은 입시를 떠나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살던 지역이 사교육이 치열한 곳이라, 나와 아들도 휩쓸려 떠밀릴 것만 같았다. 물론 나도 아들이 좋은 대학을 가고, 싱가포르에 사는 조카들처럼 영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p.83)

저자가 조기유학을 선택하는 순간에 복잡한 심정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인간적인 어려움이 느껴진다. 입시전쟁 한 가운데서 강사로 활동하지만 자식은 그런 교육 현장에 일찍 들여다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로서 간절함과 욕심도 보인다. 이런 모순과 불편함이 한국 교육의 현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휘둘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우물 안에 있으면 그게 전부이며 어쩔 수 없이 체념하게 되지만 우물 밖으로 나가게 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른 모습과 대안들을 발견하게 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저자는 그 기회를 선택했고 IB라는 시스템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IB 교육은 학생 스스로 사고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글로벌 역량과 공동체 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며 평생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도록 이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때 더 요구되는 교육 체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단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원리를 이해해서 사고력을 향상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IB는 이미 60년간 이러한 비판적・창의적 사고와 사회적 책임을 중점을 둔 국제적으로 공인된 교육 방법이다"(p.123)

끝없는 경쟁과 서열화 중심의 한국 교육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학생들에게 더 많이 외우고, 더 빨리 문제를 푸는 것을 강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다. 저자도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IB 교육의 특징과 장점과 대비하여 서술하니 원래 알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 심각성이 더 크게 다가온다.

"몇 가지만 말하면, 우선 수능은 객관식 평가이기에 암기에 크게 의존해서 창의적인 사고를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수능에 맞춰 공부하면 학생이 실제 학습한 지식을 응용하는 능력을 키우기 어렵다. 또 수능은 상대평가를 기반으로 하기에 학생 간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 단 하루의 시험 결과로 대학교 입학이 결정되기 때문에 학생에게도 매우 큰 부담을 준다. (...) 어디서 공부하든 그냥 혼자 성적을 얻는 시스템이다. 이런 평가 시스템에서는 협력하여 성과를 내는 가치를 배우기 어렵고, 오로지 상대방과 경쟁하는 구도에서 살아남는 법만 중요하게 된다. (...) 이러한 사교육의 성행은 지역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교육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문제를 초래해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p.130-131)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수능 시험 제도를 유지할지 의문이 든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IB를 포함해서 다른 대안들을 알아보고, 변화를 위해 시도해야한다. 많은 갈등과 시행착오, 실패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수능 시험으로 초래되는 위의 문제점과 실패들 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학생들을 대하는 저자의 마음과 태도이다. 저자가 전 세계에 있는 제자들과 맺었던 끈끈한 관계성은 지식만 주고 받는 딱딱한 사제 관계를 넘어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IB 교육의 실질적 열매로 보인다. 스스로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협업을 중시 여기며 다양성을 존중하며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주는 데 주력했던 IB 교육. 이는 교사와 학생 모두 서로에게 깊은 신뢰가 없다면 이런 능력을 제대로 키워질 수 없을 것이다. IB로 좋은 대학을 가고 입시 결과가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내용보다 더 와닿는 부분이다.

"그 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만나게 됐다. 학생마다 문화적 배경과 사고방식이 달라, 나 역시 새로운 시각을 배우게 됐다. '이 나라의 학생은 이렇게도 생각하는구나'라며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도 좀 더 관용적으로 변해 감을 느꼈다. (...) 친구의 학교에서 한국어 교사가 갑자기 그만 두었다며, IB 한국어 수업을 맡아 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다. 처음엔 인정이 너무 바빠 고민했지만, 머릿속에 한국 학생들이 자꾸 떠올랐다. 몇 달 동안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한밤에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비록 밤늦게 진행된 수업이었지만, 학생들은 무사히 과정을 마치고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에 합격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제자들을 보며,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p.69)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먼저 각 나라의 문화적 배경을 알아보거나, 수업 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단순히 동영상 강의처럼 지식을 전달하려 하면, 생각만큼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IB 문학 수업은 학생이 스스로 읽고, 생각하며, 쓰는 자기주도학습을 강조한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학생이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p.70)

이 책은 IB 교육에 대한 기본 개념과 교육 철학, 구체적인 커리큘럼, 학생들의 성장 사례 등 IB 전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유익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저자의 교육관과 인생의 태도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다시 돌아보고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출판사 제공 도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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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사랑하게 된 날들 - 아이와 내 삶의 레시피
춤추는바람 지음 / 르비빔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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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세심한 시선에 위로받게 됩니다. 결핍과 실패의 연속이더라도 쓰면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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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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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작가정신, 2024)은 작가 백수린의 독서에세이다. 동시에 책 감상과 잘 어울리는 빵도 소개해준다. 작가는 매일 요동치는 삶의 여울 속에서 자신을 좀 더 다정하게 만들어준 책과 빵 이야기를 친절하게 나누어준다. 나도 좀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한껏 부풀어오른다.

백수린 작가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이다. 2011년 데뷔하여 소설집 <여름이 빌라>,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 등 출간하고 프랑스 작가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이 산문집에서 밝히듯 그녀는 제빵사이기도 하다. "빵을 핑계 삼아 책을 소개하는 서평집"(p.6)이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다.

작가에게 빵 만드는 것은 세상에 온기를 전하는 소설쓰기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작가는 제일 처음 소개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자식을 잃은 부부에게 빵 한 덩이를 건네며 위로와 용서를 구하는 빵집 주인을 보여준다. 작가는 온기를 전하는 빵집 주인의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있노라 말한다. 실제로 그녀의 소설에는 사회적 약자나 이방인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어떤 의미에게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빵을 건네는 이의 마음으로 허공에 작은 빵집을 짓는다. 젊은 부부에게 온기를 전하는 빵집 주인의 마음으로. 어딘가 있을 당신에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들을 건네기 위해서."(p.29)

책에는 소설가로서 자신을 향한 시선과 고민, 사유가 담긴 문장이 담겨 있다. 백수린 작가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의 저자를 애정하는데, 그 이유는 "서사가 중단되고 찢겨져나가는 그 순간에 주목하는 사람"(p.97)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소수자들의 인생 이야기를 경청한 '기시 마사히코'처럼, 작가 자신도 "서사의 매끄럽지 않는 부분,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마음을 주는 사람"(p.98)이라고 말한다. 또한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을 품은 이상 우리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단지 기록하는 일뿐이라는 설터의 말"(p.111)을 빌어 자기 글에 실망하더라도 계속 쓰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가 매일매일 다정한 마음으로 빵을 굽고 소설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기 위해서이다. 이 다정한 마음은 어디에서 나올까 생각해본다. <나무수업>을 소개한 작가의 글에서 허약한 구성원을 돌보는 너도밤나무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허약한 이를 돌보는 일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너무도 자연스러운, 자연적인 이치가 아닌가 싶다. 모두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나무들은 서로가 비슷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이 가진 나무가 허약한 나무에 양분을 공급해준다. 허약한 구성원을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이롭다는 삶의 지혜를 너도밤나무는 알고 있는 것이다. 만일 경쟁에 뒤처진 너도밤나무가 죽어버린다면 숲에는 빈자리가 생겨버릴 것이고, 숲의 기후나 일조량, 습도는 엉망이 되어버릴 거라는 진실 말이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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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 -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브렉시트까지, 하룻밤에 읽는 교양 세계사 인생 처음 시리즈 2
톰 헤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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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톰 헤드, 현대지성, 2024)은 세계사 기본 상식을 얻고 균형있는 시각으로 세계사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교양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주요 사건에 대한 개요 뿐만 아니라 지구 전 지역에 대한 역사를 골고루 다루고 있다. 혼자 읽기에 벅차다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매일 두 챕터씩 읽으면 한달 안에서 완독할 수 있다. 퀴즈도 만들어서 서로 공유하여 풀어보면 더 흥미로울 수 있겠다.

이 책은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역사 이야기를 사진과 지도 그림 등 이해 쉽게 전달하고 있다. 오늘날 논쟁이 되는 이슈와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세계사 책에서 놓치고 있는 관점도 제안한다. 특히 유럽과 미국 중심의 서술이 아니라 여러 대륙의 역사를 균형있게 보여준다.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해당 지역과 용어를 차근차근 풀어주고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 '톰 헤드'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사 스토리텔러 중에 한 명이다. 역사, 사상, 철학 등 수십권의 인문학 책을 출간했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서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독자들에게 역사를 재미있게 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이 책에는 저자의 필력과 이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그동안 몰랐던 세계사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책은 고대 문명부터 시작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수메르 왕들 이름을 설형 문자로 기록한 점토판에는 '쿠바바'라는 한 여성이 나온다. 그녀는 수메르에서 가장 좋은 맥주를 팔아 유일하게 여성으로서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당시에도 정통성을 거치지 않고 특유한 사유로 왕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특정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그 명성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오늘날 정치 형태와 비슷하다. 그 명성이 좋은 맥주를 만드는 능력에 기인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또한 이집트를 20년 동안 통치한 파라오 중에 '핫셉수트'도 여성이었고 매우 혁신적인 인물로서 자신의 모습을 조각상이나 그림에 직접 등장시키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데 적극적이었다. 전혀 몰랐던 고대 역사 속 여성의 다채로운 활약상이 흥미롭다.

저자는 현재 일반 상식처럼 사용하는 개념의 출처와 역사적 배경을 알려준다.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는 '인종'이라는 개념은 신대륙 발견과 노예 제도라는 배경에서 시작된다. 최초로 인종을 4-5가지로 구분한 사람은 프랑스 의사 '프랑수아 베르니에'이며, 그는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을 동물로 묘사하는 행태를 보였다. 오늘날 게놈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모든 인종의 DNA는 99.9 퍼센트 일치하며 호모 사피엔스 단일종에 속한다. 생물학적 개념으로는 의미가 없고 사회문화학적 개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현대 사회에 큰 이슈인 인종 문제를 접근할 때 이와 같은 배경과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은 실제 사진과 함께 격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제시된다.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 틈에서 큰 좌절을 겪은 나라인 이란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1951년 민족주의자인 '모사데크'가 총리가 되지만 미국은 이에 반대하여 이란의 쿠테테 세력 지원하여 ' 팔레비'가 다시 왕이 된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고 팔레비 왕이 물러나자, 이슬람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한때 대통령과 국회가 있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이란은 호메이니의 독재와 이슬람 원리주의로 인해 민주주의는 퇴보되었고 여성과 반체제 인사를 향한 핍박이 심해졌다. 이란의 민주주의 퇴보 역사를 보면서 어떤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 권력을 민주적으로 감시하는 체제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는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고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의 원인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시간의 흐름대로 서술되어 있지만 자신의 관심 주제나 분야, 나라에 대한 키워드가 있는 챕터부터 읽어봐도 좋다. 읽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 다음 이슈와 지역으로 넘어가 읽게 될 것이다. 세계사 입문서로서 손색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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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일기 : 영원한 여름편 -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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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란 얄팍한 겉모습에 불과하고, 우리 저 안쪽 알맹이는 여전히 여름이다. 까마귀가 울고 수탉이 홰치는 소리, 등허리에서 내리쬐는 따스한 햇발이 바로 그 여름이다."(p.13) 


이 문장 하나를 건진 것만으로 <소로의 일기:영원한 여름편> 책의 소임은 다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글귀다. 추운 겨울 아침에 두텁게 쌓인 눈을 바라보며 '여름'을 기억하다니, 대단한 관찰력과 상상력이 아닌가. 우리라면 추워서 나갈 엄두도 내지 않겠지만, 소로는 겨울 아침 풍경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세하고 애정있게 표현하며 현존하는 성자처럼 자연과 일상을 누리고 있다. 


"밤사이 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오전 7시인 지금까지도 내리퍼부으면서 젖은 땅을 10센티 높이로 뒤덮는다. 비 섞인 축축한 눈, 즉 진눈깨비로 거센 북서풍에 휘날리며 나무와 담벼락에 들러붙는다. 이렇게 축축하고 어두운 아침에 세찬 바람을 맞으며 철로를 따라 걸어내려간다. 눈보라가 휘몰아쳐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어두운 폭풍설 한가운데에서도 여느 때보다 밝은 푸른빛이 아른거리며 우리 안에 아직 천상의 빛깔이 남아 있음을 알려준다."(p.14)


일기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일기가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소로를 통해 배운다. 일기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소로는 일기에 날씨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그 안에 깃든 아름다움을 언어로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오랫동안 애정있게 관찰하며 사색한 결과이다. 날씨에 집중하고 제대로 느낀다는 건 현재에 집중하고 몰두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순간의 찬란함을 붙잡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상을 찬란함을 아는 사람은 내면이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를 둘러싼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 안에 이걸 바라보는 안목을 가진 자신이 얼마나 뿌듯할까. 


나의 일기는 어떤가. 누군가에게 쏟아붓지 못하는 감정을 마구 휘갈려 쓸 때도 많고, 오늘 못한 일을 반성하거나 내일 할 일을 다짐하는 용도로 자주 사용한다. 가끔 감사 제목을 적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도 날씨와 자연에 대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해보지 못했다. 나를 둘러싼 이 풍경에 온전히 마음을 쏟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기에도 써볼 생각 자체를 못했다. 


나에게 일상이란 무엇인가. 매일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로 구분했고 그 일의 수행 여부에 따라 하루를 평가하기 바빴다. 일상을 둘러싼 수많은 환경 중에 오로지 일과 관련된 것만 시선을 두고 있다. 사실 일만 하기도 시간이 부족하다. 일상을 돌아보며 일기를 쓸 여력도 별로 없다. 나의 내면은 점점 쪼그라든다. 일상 안에 자연 관찰 일기 쓰기와 같은 이벤트를 넣어야겠다. 한달에 1-2시간이라도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한 줄, 한 문장만 쓰더라도 나를 둘러싼 풍경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소로의 일기에는 가난과 관계에 대한 통찰도 담겨 있다. 자연과 달리 돈과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어렵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움과 깨달음이 있고 자기만의 삶의 태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로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월든 호수에서 집을 지어 2여년의 은둔 생활을 한다. 이는 돈과 관계에서 거리를 둔 삶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소로는 이 생활이 "더 높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전한 피조물"로 자라도록 만들고 "값어치 있는 일에 온 힘을 쏟는 삶"(p.237)을 살도록 했다고 강조한다. 


"추위에 증기와 물이 얼어붙듯이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비결이다. 가난은 힘과 기운과 흥을 끌어온다. 순결은 천지만물의 영원한 벗이다. 흩어진 안개 같았던 내 삶이 잡풀, 그루터기, 활엽과 침엽 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겨울 아침의 서리가 되었다. 은둔 생활이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다고들 여기지만 나는 고독 속에서 비단결같이 보드라운 막이 번데기를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애벌레처럼 더 높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전한 피조물로 활짝 피어날 것이다. 전에는 어수선하고 아둔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난이라 부르는 단순함 덕에 마음을 가다듬고 값어치 있는 일에 온 힘을 쏟는 삶을 살 수 있었다."(p.237)


<소로의 일기:영원한 여름편>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일상의 쉼과 사색의 시간을 얻게 된다. 이 책 자체가 일상을 누리는 일이며 가치 있는 일에 힘을 쏟는 게 아닐까 싶다. 자연과 날씨를 묘사한 생동감 넘치는 문장들과 자신의 신념을 담은 담백한 글귀, 크고 작은 에피소드까지 소로만이 풀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풍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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