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보물들 - 이해인 단상집
이해인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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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보물들- 단상집이라 하지만 깊이가 있는 시어들로 가득 찬 영혼의 노래. 이해인 수녀님만의 소중한 보물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보물이 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수녀님 살아생전에 찾아뵐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니 자꾸 부산으로 마음이 움직인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독자가 한·둘이 아닐 터 나까지 민폐를 끼쳐선 안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수녀님의 한 평생 일생을 만나보고 싶다. 어찌되었던 수녀님의 현재 일상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겠다.

 

거의 우리 부모님 세대에 속하는 수녀님의 단상집은 소녀다움이 있다. 일 평생 수행을 하시면서 얻은 삶의 노하우들을 단상집을 통해 풀어 내고 계신다. 연배가 있으시다보니 삶을 마감해 가는 여정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잔잔히 깔려 있다. 모든 인간에게 닥칠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 말이다. 영원의 삶이 있고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도 현세의 삶을 마무리해 가는 과정은 그리움과 아쉬움만 남는다. 책속에 나오는 하와이의 한 소녀가 선물해 주었다는 새소리 시계가 갖고싶다. 쿠팡에서 팔려나?

 

수녀님은 작고 사소한 물건들도 허투로 하지 않는다. 일반 사람들은 그냥 툭 버릴 조개껍데기도 시인에게는 사랑의 언어를 담은 매개체이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큰일에도 충성한다는 성경말씀이 떠오른다. 보통사람들은 거들떠 보지 않는 조개껍데기 , 돌멩이도 시인을 만나면 멋진 보물로 변신해 버린다. 시인의 마법이다. 글로 표현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단상집이다. 왜냐하면 시이기 때문이다. 직접 읽어 보고 느끼시길 바란다. 부록으로 열 편의 시가 실려있다. 이는 우리에게 주는 보너스 선물이다.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 인용]

 

나도 지혜의 심지를 지닌 작은 초가 되고 싶다고, 세상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고 싶다고 (23p)

 

하와이에 사는 한 소녀가 준 시계가 글방 창쪽 벽면에 걸려 있다. 매시 정각마다 글방에 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 시에는 북부흉내지빠귀, 두 시에는 검은머리박새, 세 시에는 북부홍관조, 네 시에는 솜털 딱딱구리, 다섯 시에는 캐나다거위 여섯 시에는 집굴뚝새, 일곱 시에는 미국자빠귀, 여덟 시에는 멧종다리, 아홉 시에는 아메리카뿔호반새, 열 시에는 댕기박새, 열한 시에는 아메리카꾀꼬리, 열두 시에는 미국 수리부엉이가 지저귄다. 오늘 나는 창 안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풀밭에 앉은 새 한 마리를 바라본다. 흰 구름도 새처럼 보고 또 본다. (27p)

 

"낯선 이를 냉대하지 말라, 천사일지 모르니."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 (29p)

 

식물을 공유하는 것은 생명을 공유하는 것, 갖는 기쁨보다 선물하는 기쁨이 더 크다. (45p)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살며시 행복이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49p)

 

"부품을 오래 쓰면 낡고 고장이 나는 게 당연하지" 하시던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54p)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들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들을 잘 분별할 용기를 주소서." 기도 하는 마음으로 하루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57p)

 

작은 위로와 작은 사랑이 민들레 솜털처럼 날아가 누군가의 마음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65p)

 

밭에서 나오는 것은 흙이 쓰는 시다. (71p)

 

참지 않으면 십중팔구 인간관계를 그르친다. (83p)

 

꽃향기를 맡으면 꽃사람이 되지 (91p)

 

"위대한 사랑의 실습장인 가정은 첫 번째 학교다. 가정이야말로 사람들이 생생하게 경험하며 사랑을 배우는 영구적 학교다"라고 역설한 고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어록도 되새김한다. (98p)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던 내일"이었음을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시간들의 첫 시간"임을 잊지 않으면서 겸허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두 손 모은다 (101p)

 

모든 인간관계에도 서로를 잘 이어주는 지혜의 다리가 필요하다. (113p)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이 순간이 영원 속 한 점이다. (117p)

 

오늘도 서로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면서 사랑의 성숙을 도와주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자 이름이 불리는 것임을 다시금 생각하며 이렇게 읊어본다.

'이름 부르기는 존재의 확인!' (139p)

 

2021년 가을, 연필 닮은 나무토막에 내가 명심해야 할 네 가지를 썼다. 듣기, 읽기, 쓰기, 그리고 사랑하기 (143p)

 

나는 좋은 말을 키우고

좋은 말은 나를 키운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알아만 주기에도 인생이 모자란다 (155p)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실천해 옮기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마더 테레사] (195p)

 

언제나 만남은 짧고 이별은 길다. (197p)

 

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수행하듯 꾸준히 시를 쓰다가 그대로 한 편의 씨가 될 작은 수녀! 그 수녀가 바로 나였으면 한다. (2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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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공학 - 불확실한 세상에서 최선의 답을 찾는 생각법
빌 해맥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윌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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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공학- 공학이 어떻게 인류발전에 기여했는지에 대해 사례를 통해 알려주는 책. 공학도로서 자부심 뿜뿜나는 책이지만 난이도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례 위주로 나오기 때문에 그러한 에피소드들은 재미있다. 한국 사회도 공학도들의 기여에 맞게 사회적인 대우가 주어진다면 미래적으로 분명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외국 작가의 책을 번역한 것인데, 난도를 좀 더 평이하게 잡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중간중간에 요약된 문장들이, 중요한 메시지로 강조되고 노출되어 있어 독자들에게 편안한 길잡이를 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전구의 발명자가 에디슨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기존의 상식이 하얗게되는 충격이다. 물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널리 퍼진 것이 맥심이 발명한 전구이고 전구의 발명 과정에 루이스 레티머,윌리엄 쿨리지같은 공학도들이 중간중간의 과정에서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것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이다. 8장 챕터의 제목을 한 번의 발명이 세상을 바꾼다는 착각으로 정한 이유가 이러한 작가의 생각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전자레인지에 적용된 기술이 레이더에 사용되었던 군사기술이었던 사실과 전자레인지가 개발되는 과정 또한 매우 흥미롭다. 마이크로파를 방출하는 자전관[자기장 속에서 극초단파를 내도록 한 진공관 : 네이버 국어사전 인용]이 열을 만들어냈고, 우연히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캔디바가 녹아내리는 현상을 보고 전자레인지를 발명했다는 유래는 공학의 사례를 너무 단순화했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이러한 영감이 발명으로 곧바로 이어진다는 환타스틱한 이야기가 공학도의 숨은 노력이 내재해 있는 공학적인 방법을 가려버린다고 했다. (261p)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 인용]

 

과학적 방법은 우주에 관한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반면 공학적 방법은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37p)

 

공학적 방법을 문제 해결 철학이라 부르는 것은 함축도 아니고 무의미한 묘사도 아니다. 공학적 방법은 그 자체로 근본적 마음가짐을 묘사하는 하나의 형용사다 (44p)

 

컬러 필름의 이런 결함은 공학자가 말하는 최고 개념이란 주류 문화의 내재한 하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공학의 결과물은 과학 이론과는 달리 인간 세계 안에 맞춰 들어가도록 설계된 것임을 반영한다. (71p)

 

이는 공학적 방법과 공학의 최고 관념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관측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불공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공학적 방법뿐이다. 공학자가 말하는 최고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72p)

 

테리가 재설계한 자전거를 타본 어느 여성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내 엉덩이 밑바닥에서 우러난 진심 어린 감사를 드려요.” (74p)

 

역설적으로, 공학계가 가진 이러한 맹점을 해결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것은 공학적 방법뿐이다. (75p)

 

과학적 방법은 우주에 관한 진실을 드러내려 애쓰지만, 공학적 방법은 현실 세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추구한다. (92p)

 

우리 세기에 들어서 과학 이해와 기술이 놀라우리만치 발전하면서 과거에 공학자를 괴롭히던 불확실성이 없어지리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과학 지식이 발전하는 동안 공학자는 그 지식을 넘어서서 일하기 때문이다. (101p)

 

아널드의 연구 이후 수십 년 동안 통제된 진화를 통해 만들어낸 갖가지 요소가 질병을 진단, 치료했고 농장 폐기물을 줄였다. 그뿐만 아니라 직물 품질을 향상했고, 산업 및 제약 화학물질을 합성했으며, 세탁용 세제를 강화했다. 유단백질을 분해하는 그 효소가 얼룩도 분해하는 것이다. (106p)

 

한정된 자원이란 조건은 공학자가 자신의 설계를 실행하고 불확실성을 극복하여 긴급한 사항에 대응하는 방식을 세밀하게 드러내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117p)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적재물이 제대로 동작하는 가운데 위성이 마침내 궤도에 올랐을 때 내가 통제실에 있었다는 사실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은 없었다.” 그녀의 설계는 최초 상업 위성 200기 정도에 사용되었다. (135p)

 

잘되지 않는 법을 알아야 잘되는 법을 알게 된다. (147p)

 

그의 혁신 즉 얇은 바깥층을 만들어내기 위한 이 담그기는 공학자가 사용하는 세 가지 전략 중 마지막인 절충을 설명해 준다.

 

공학 설계에는 항상 한계가 있고, 그래서 제품을 설계할 때 공학자는 사물의 특정 특성의 균형을 얼마나 맞출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최고관념과 밀접하게 연결된 균형이다. 절충할 때 공학자는 사물의 두 가지 양보할 수 없는 측면 사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둘 모두를 완전히 다 갖출 수는 없다. (163p)

 

 

과학은 최고의 경험칙을 만들고, 공학은 그것을 적용하여 세계를 바꾼다. (1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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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 강인욱의 처음 만나는 고고학이라는 세계
강인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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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고고하게 고고학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입문서.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고고학 가이드. 툼 레이더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고고학자를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그렇게 멋있고 폼나는 모습은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일 뿐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호미와 같은 트라울을 가지고 흙구덩이에서 하루 종일 쪼그리고 작업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은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최근 읽은 유홍준 교수의 책 국토박물관 순례1에 선사시대 이야기가 나와서 보았기에 이 책이 더욱 친근하고 어색하지 않았다. 유물들을 통해 과거의 삶과 생활을 유추한다는 사실이 아주 매력적으로 비춰진다. 기록물에 의존하는 역사에 비해 유물을 통한 유추는 사실적이라 더 신뢰가 간다. 인간이 들추어 내지 못한 기록물의 역사 이전의 삶도 고고학과 연대기측정법의 발달로 인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유물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의 가설과 유추된 사실이 뒤집어진다는 사실도 무척 재미있다. 보물창고에서 보물을 하나하나 꺼내어 보는 그런 느낌? 단편적인 유물이 그 당시의 모든 생활상을 담아낼 순 없지만 고고학의 발달로 어렴풋이 상상되고 유추되었던 인류의 생활상이 하나씩 밝혀진다는 사실은 정말 짜릿한 전율이 돋게 만든다.

 

고고학에서 밝혀낸 여러 가지 이색적인 에피소드도 이 책을 몰입하게 만드는 숙명적인 이유다. 그동안 몰랐던 고고학적인 용어 트라울, 삼시기법 등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쁨과 매한가지다. 베네치아가 유명도시로 변신하게 된 에피소드 또한 아이러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 기술을 중시했던 우리나라의 시대상도 그립고, 거대한 건축물은 없지만 다뉴세문경이라는 아주 세밀한 유물이 반도체 웨이퍼와 오버랩 되는 것도 이미 앞을 내다본 선조들의 혜안이 아니었을까?

 

또한, 복제품을 전시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동아시아 인류의 기원을 밝혀주었던 베이징원인도 진품은 잃어버렸고 연구자가 자세히 떠 놓은 복제품을 통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웃픈 사연도 아쉽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 인용]

 

과거에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넓게 본다면 역사학도 될 수 있고, 인류학도 될 수 있다. (18p)

 

바로 과거를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인류의 진화라는 숙명에 기인한다. (23p)

 

그럼에도 고고학이 미래 지향적인 학문인 이유는 바로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동과 생존을 위한 방법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43p)

 

고고학은 그 시간과 공간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지만 어쨌든 기본으로 하는 데이터가 인간이 직접 남긴 물질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44p)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실상 (53p)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실상이라는 말만큼 고고학의 발굴을 잘 표현한 것이 있을까? 고고학 발굴의 원리는 그야말로 땅을 파서 유물을 찾아내고, 그 유물이 나오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직접 발굴해서 땅속에 숨어 있는 여러 자료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56p)

 

트라울 : 정원에서 쓰는 꽃삽류를 통칭하며 용도에 따라 모양새가 다양한데, 고고학자가 쓰는 것은 마름모꼴로 그 끝이 뾰족해서 포인팅 트라울(pointing trowel)이라고 한다.(60p)

 

현대 고고학자의 임무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남겨서 후대에 이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누구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작업이 바로 발굴이다. (74p)

 

유물 자체보다는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에 대한 관심이 이러한 고고학자의 연구 방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80p)

 

중심과 변방으로만 인식되었던 기존의 선사시대에 대한 인식은 바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개발로 무너지게 되었다. (93p)

 

우리 삶과 고고학에서 나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그 하나하나의 숫자에는 영겁의 세월 동안 쌓여온 인류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97p)

 

그렇게 수십명의 고고학자가 수십년 고생을 해서 쌓아 올린 역사가 바로 당신이 읽고 있는 고고학 책의 한 줄인 셈이다. (114p)

 

석기, 청동기, 철기에 따라 삼시기법으로 하는 분류도 결국은 우리가 각 시대의 지혜를 동원해서 만들어 온 도구의 재질에 따른 분류이다. (117p)

 

흔히 한국 사람은 전통 사회를 쌀농사에 기반을 두고 기술을 경시했던 사회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조선시대 이후의 일이며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과 그것을 계승한 남한의 삼한은 누구보다도 기술을 존중했던 사회였다. (138p)

 

한국은 거대한 건축이나 문명은 없지만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기술이 있으니 바로 다뉴세문경이다. 마치 반도체의 웨이퍼를 연상시키는 외형처럼 다뉴세문경에는 지금도 완벽히 풀리지 않은 고대 문명의 첨단 기술이 들어있다. 시퍼렇게 생긴 청동기에 그렇게 고고학자가 열광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가! (141p)

 

유라시아 초원지대에도 신석기혁명에 비견할 만한, 가히 초원의 혁명이라고 할 사회변화가 이루어진다. 바로 목축(pastoralism)의 등장이다. (169p)

 

이렇게 농경과 마을로 대표되는 온대의 정착 생활과 반대가 되는 생계인 유목이 탄생했다. 이는 동물이 인류의 역사에 들어오면서 발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2p)

 

거대한 석조 기념물로 유명하여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튀르키예 괴베클리 테페에서는 재단에 걸었던 해골이 발견되었다. (184p)

 

하지만 그런 해골 숭배의 결과로 도시가 만들어진 경우가 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는 828년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골을 훔쳐왔고, 이를 기점으로 베네치아는 크게 흥성하여 수많은 교회 건물과 광장이 지어졌다.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산마르코 광장도 바로 마르코 성인(마가복음의 저자)의 유골을 기념하여 지어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성인의 유골이 세계적인 도시를 탄생시킨 격이다. (186p)

 

하지만 무덤은 보통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부활에 대한 염원으로 가득하다. 무덤 안에 많은 유물은 사실 부활을 위한 상징이다. (186p)


그럼에도 농사라는 것이 없었다면 인간은 글자도, 도시도, 어떠한 기술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인간의 위기를 대처하는 지혜를 모으고 서로 논의하는 것도 결국 농사라는 시스템에서 더욱 발달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215p)

 

가장 좋은 고고학자는 발굴을 하지 않는 것이다. (220p)

 

현대 박물관은 가급적이면 장벽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정책이 대세이다. 배리어프리는 고압적인 배치로 관람자를 소외시켰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보는 사람이 박물관의 전시를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것을 강조하는 전시 기법이다. 반달리즘과 배리어프리는 서로 모순적이다. (230p)

 

고고학자도 배설물을 통해 고대인에 대한 정보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한다면 당신이 누군지를 알 수 있다.” 는 유명한 말을 남긴 적이 있다. (254p)

 

고고학의 목적은 과거 사람의 삶을 밝혀내는 것이다. 겉보기엔 흉해도 과거 인간의 삶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미라는 무엇보다 소중한 유물이다. 저주 같은 이야기에 현혹되기에는 미라가 알려주는 생생한 삶이 우리 눈앞에 있다.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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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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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무렵 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흥미로운 단편 소설 모음집.

 

오래간만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동네 독립서점에서 구입한 지 1년 정도 지난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됐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 더글라스 케네디, 히가시노 게이고, 기욤 뮈소 내가 좋아하는 최애 작가 톱 쓰리다. 그 중 일본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게 된 것은 우연히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나면서 부터다. 코난 도일의 명탐정 홈즈 시리즈를 읽고 자란 나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추리소설 작가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특히, 전문작가도 아닌 전기공학 전공자가가 이렇게 글을 잘 쓸수 있다는 말인가? 언빌리버블!

 

이 책은 8개의 단편을 묶었다. 주로 그의 장편만 골라 보았는데 그의 단편집은 흥미롭다. 히가시노 작품의 마성은 읽기 시작하면 궁금해서 끝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 페이스를 조절해서 읽기 어렵고 폭독하게 된다.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추리소설의 최대 매력이다.

 

 

■ 「자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짧은 단편인데 찝찝하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결말이다. 어중간하게 끝나는 것 말이다. 그러나 한 작품 정도는 이렇게 찝찝함을 남겨둔 것도 그의 작품 속 장치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던, 난 확실한 결말 그리고 가급적 해피엔딩이 좋다.

 

■ 「20년 만에 지킨 약속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겠다. '약속을 잘 지켜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그런 비극적인 사건의 굴레를 객관적이고 직접적인 판단으로 본인의 탓이 아니라고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죄의식을 가지고 속죄하며 산다는 주인공의 심리상태 자체가 안쓰럽다. "네가 행복하길 빌겠어!" 하며 헤어지는 연인의 마음도 이런 걸까? 나와 관계를 맺고 연락도 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해 본다. 그들의 좋지 않은 결말은 마치 내가 도덕적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유산의 상속을 둘러싼 수수께끼가 가득은 첫 단편으로 몰입감 있고 충분한 읽을거리를 제공해 주어서 1번 타자로는 적격이었다.

 

■ 「재생 마술의 여인죄를 짓고는 못 산다는 교훈. 자신의 죄책감으로 자살을 선택한 비운의 남자. 조강지처 버리고 잘 되는 놈 못 봤다는 교훈이 딱 맞는 스토리.

 

■ 「아빠, 안녕은 정말 일본적인 이야기다. 아내의 영혼이 딸에게 들어갔다는 황당한 이야기. 딸의 육체, 아내의 영혼, 아내인 딸을 사위에게 보내는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휘두르지도 못하고 울고 말았다. 사위에게 한 방 먹이지도 못하고 쭈그려 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216P)

 

■ 「명탐정의 퇴장- 명탐정을 감쪽같이 속여 자기 가문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스토리는 어딘지 모르게 짠하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잊어 주기를 바란다. 잊혀야 될 권리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이야기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건의 트라우마에 고통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 망각의 능력을 신이 주신 이유는 아마도 적절히 잊고 살아가도 좋다는 뜻이리라! 남의 흉사에 너무 관심 갖지 말고 세상의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미담을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자!

 

인간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갈림길에서 한 번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것과 관련된 짧은 단편인데 주인공은 3가지의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3번째의 선택지가 나쁜 경우의 두 개를 모아 놓은 상황이었으니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주인공에게 더 좋았을까? 속는 셈 치고 속아준 3번째 선택의 이야기 여자도, 호랑이도. 짧지만 강렬한 번민과 상념을 주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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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리커버)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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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시를 잊은 그대에게- 당장 시집을 펼쳐 읽어야 될 것 같은 당위성을 부여해 주는 시 해설 책이다. 문화 혼융의 시 읽기란 교양과목으로 대학에서 실제로 강의가 이뤄진 내용을 담았다. (작가 소개 인용)

 

이런 내용의 강의가 있었다면 나 또한 수강 신청을 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그런 명강의를 이렇게 책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회사 후배의 추천으로 받은 책이다. 본인이 학창 시절 수강했던 것 같다. 스승의 책이라 추천을 받아 읽었는데 워낙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다 보니 문화 혼융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린다. 하여튼, 같은 시라도 해설을 들으며 배경을 알고 나서 읽게 되니 또 달리 보인다. 대중가요라 치부하며 약간은 무시했던 노래 가사들이 위대한 시였음을 다시 한 번 각성하게 된다.

 

또한, 시의 해석은 정답이 없다는 사실, 감상하는 자에 따라 해석이 바뀌고 감동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시야 말로 살아있는 생물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그만 이 책을 덮고 부디 시집을 펼치시라, 시를 잊은 그대여(299p)이 말을 좀 일찍 해주시지, 책을 다 읽고 난 마지막 줄에 이 문장을 쓰시다니 어차피 이 책을 덮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 읽었으니까요!

 

이젠 시집을 읽고 느끼고 감동해야 하는 의무는 나와 독자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다양하게 녹아 있는 시를 잊지 말고 늘 감상하고 즐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책 속의 좋은 글귀와 나의 감상]

우리 역시 만인의 스타가 될 수는 없지만 부모의, 자식의, 친구의, 연인의 스타는 될 수 있다. 가까이에서 서로를 비춰주는 그런 존재, 우린 그것 하나를 갖고 싶은 것이다. (53p)

 

돈 매클레인의 명곡이자 고흐에게 바친 빈센트(Vincent)의 가사를 음미해 볼 것(56p)

자신을 태워 우리를 비춘 그야말로 저 하늘의 별인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분명히 그는 신의 메시지를 해독하였으리라. 별은, 밤하늘의 쓴 신의 시니까. (57p)

 

남이 떠나야 할 때는 알아도 자신이 떠나야 할 때는 잘 모르는 법이다.(62p)

 

안도현이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며 <너에게 묻는다.>에서 하잘것없어 뵈는 연탄재를 옹호했던 것처럼(69p)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중에서(75p)

 

박수칠 때 떠나라 하지 말자. 떠나는 모든 이에게 박수를 보내자. 다만 박수칠 때 떠나는 자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자. 그게 마치 싶다.(79p)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 <다시>(95p)

 

인생 역전 오페라 가수 폴 포츠 스토리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98p)

카니발의 이적이 먼저 발표했지만 인순이가 더 히트시킨 거위의 꿈은 가사와 인순이의 삶이 동일시되는 면이 극대화된 결과이리라(99p)

 

정지원 시인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라는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부쳤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의 애창곡이었는데 말이다. (101p)

 

두부 장수의 핑경타이탄 트럭의 핸드마이크 소리전자가 은근히 기다려지는 그러나 효율이 낮은 종소리라면, 후자는 짜증이 나 피하고 싶은 소음이지만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데는 제격인 매체인 것이다.(137p)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230p)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252p)

 

시와 노래가 본디 하나이던 것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279p)

 

축제는 소란스럽고 시끄러워야 제격이다. 축제답게 서로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고, 동시에 다양한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듣고 전하는 생동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하나의 목소리가 전체를 제압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284p) - 시 해석의 여러 가지 의견이 정상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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