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드림 창비청소년문학 130
강은지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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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드 드림(Lucid Dream)- 자각몽 : 꿈을 꾸는 중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는 상태에서 꾸는 꿈(출처:우리말샘). 루시드 드림이라는 용어를 알아야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잠들게 하는 바이러스다. 어른들이 먼저 잠들기 시작한다. 삶에 스트레스가 있거나 우울증이 심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잠이 든다. 이젠 남겨진 아이들이 이들을, 잠든 자기 가족을 지켜야 한다. 가족을 지키는 일은 정글에서 살아남기와 같다. 자기 혼자는 물론 가족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아이들은 맹수 같은 약탈자들의 손아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한 아이의 성장 소설이다. 지극히 당연한 요즘 세대의 아이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가 서서히 타인을 위해 눈을 돌리는 과정이 담담히 그려져 있다. 강희와 강석, 쌍둥이이면서 너무 다른 남매다. 강석이 이미 애어른이 되어 버렸고 강희는 여전히 이기적이다. 강희의 심리적 변화의 지도를 쫓아가는 재미가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스노우 볼을 읽으며 영 어덜트 문학의 신기원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로 만들어지길 기대했다. 아마도, 그다음 작품은 루시드 드림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아주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은 극히 생략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갈등 상황들, 흔히 부모와 자식들 사이의 갈등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누구나 자녀를 기르다 보면 겪을 수도 있는 사연들이 곳곳에 묻어 있다. 강희의 태도를 보며 우리 아이들을 반추해 본다.

 

잔잔한 이야기이지만 영화적 요소들도 많이 있다. 너무나도 이타적인 강석이, 루시드 드리머로의 책임감으로 자신이 소모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을 깨우러 다니는 윤서, 위기 상황에서 경찰차를 몰았던 규성이 등등 , 영화로 제작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결말도 내가 좋아하는 엔딩이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잠자리에 든 사람을 옮길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생명유지장치는 달아주면 될 것이고 들어서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은 안 되는 것인가? 그 문제만 해결되었다면 아이들은 덜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간만에 읽어 본 가슴 따뜻한 스토리의 소설이다.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 인용]

 

자식들은 부모를 버렸고, 버림받은 부모는 죽었다. 그러나 누가 먼저 버린 건지는 명확하지 않다. (13p)

 

미쳐 버린 건 세상이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뭐가 됐든 미친 세상에선 우리도 미쳐야 했다. (16p)

 

우리가 왜 당신들을 지켜야 하냐고. 우린 아직 이렇게 어린데.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지키는 게 뭔지 아직 잘 알지 못하는데. (72p)

 

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나의 불행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불행했기 때문에 불행을 소화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빠가 사라진 후부터 나는 언제나 조금씩 부서져 있었으며 어딘가 구멍이 나 있었다. 빈 공간을 자연스럽게 불행이 메꿨다. 불행은 언젠가부터 나의 일부가 되었다. 줄곧 불행과 함께한 나는 불행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았다. 어쩌면 이건 아빠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136p)

 

변명처럼 들리는 내 말에도 아줌마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아이처럼, 홍주가 그랬던 것처럼 몸을 들썩이며 울었다 나는 문득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줌마가 불쌍해서, 내가, 홍주가, 남겨진 사람들이 불쌍해서. 망가져 버린 세계가 너무도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146p)

 

가장 어려운 건 믿음을 지키는 일이었다. ~ 중간생략 ~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윤서를 믿지 않을 것이다. 나의 믿음이 윤서에게 짐이 된다면 나는 윤서를 믿지 않아도 좋다. (152p)

  

희정은 여전히 윤서가 꿈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루시드 드리머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163p)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기적이고 싶지 않았다. 나 이외의 것들을 걱정하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싶었다. (167p)

 

꿈은 현실에서 겪은 고통을 모르게 했다. 다 잊어버리게 했다. 규성이 할머니를 깨우지 않았던 것처럼 강석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내가 다 잊기를 바랐다. (214p)

 

애초에 행복과 불행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믿으면 행복이 되고, 조금 덜 믿으면 불행이 되는 걸지도 모른다. (219p)

 

엄마가 깨어나면 물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화를 내지 않고 끝까지 들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되어 볼 것이다. 날이 밝았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문 앞에 있다. (220p)

 

잠들게 되더라도 우리를 기억하라고. 언제든 우리가 당신을 깨울 테니 단잠을 자도 좋다고.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오늘 처음으로 꿈의 세계에 대해 기록한다. 이것은 끝내 무사히 돌아온 우리의 이야기다. (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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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의사 - 영화관에서 찾은 의학의 색다른 발견
유수연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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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에 간 의사- 영화에 나오는 소재와 재료를 의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 주는 책. 의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영화는 의사스럽다.

 

본의 아니게도 의사가 집필한 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의사가 영화관에 들어가면 벌어지는 새로운 해석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본인도 직업병이 있어 영화를 보다가 내 일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짜릿한 전율과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는 데, 작가도 그러한 것 같다.

 

책을 정말로 많이 읽는 의사인 것 같다. 특히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대해 굉장히 박식함을 자랑하다 보니 독자로써 따라가기 힘들기도 하다. 하여튼, 의사로의 바쁜 일과 삶에서도 그런 해박한 지식을 축적한 걸 보면 존경심이 저절로 든다. 책은 4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다.

 

1. 죽음과 생이 공존하는 곳

: 곤지암을 제외하고는 병원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라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그냥, 의사에 관점에서 보게 되는 새로운 해석이 참신하게 다가올 뿐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제네바 선언에 대해 언급이 되는데, 과연 그 맹약과 일치하는 참의사가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 그들은 왜 그렇게 아파했을까?

: 역시 의사의 해석은 새롭다. 미처 못 본 영화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만 저 영화가 왜 그렇지 하는 궁금증을 깔끔히 씻어 주었다. 올드보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다시 봐야겠다.

 

3. 영화 속 질병 이야기

: 챕터 제목과 가장 일치하는 5편의 영화다. 알츠하이머, 한센병, 파킨슨병, 후두염 등에 관한 소재가 담긴 영화들이다. 의사의 해석을 읽고 영화를 다시 본다면 같은 영화, 다른 느낌의 감상을 하게 될 것이다.

 

4.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 엘리시움만이 가장 적합한 소재인 것 같다. 그런 만능 치료 기계가 빨리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아이언맨을 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아이언맨의 탄생 비화에 집중하게 되는데 역시 의사로서의 관점은 다른 것 같다. 아이언맨이 치료받은 상황에 더 집중하였으니 말이다.

 

같은 영화가 이 책을 보고 난 뒤에는 또 다른 영화가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영화와 읽고 나서 보는 영화는 또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 정주행을 해봐야겠다.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 인용]

 

환자의 질병을 치유하는 곳이기에 기본적으로 육체적, 심리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모이는 숙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경제와 과학 ·의학이 발전해 감에 따라 병원의 이미지도 좀 더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4p)

 

[제네바 선언] 일부 발췌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41p)

 

이와 같은 의료인들의 자성 의지와 노력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제네바 선언으로 변모시켰습니다. (44p)

 

그런 의미에서 의학은 평범함을 쟁취하기 위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평범하고 약간은 지루하게 살기 위해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집대성이 바로 의학이죠. (1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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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치아 - 자기 치아로 평생 사는 기적의 관리법
박창진 지음, 조성민 그림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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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치아- 참 의사가 쉽게 써 내려간 치아 관리에 관한 필독서. 늦게 알게 되어 화가 나는 박창진 의사의 수드(SOOD) 테크닉. 이런 의사와 함께 살고 있는 세상은 아름답다.

 

전문적인 내용을 쉬운 단어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그림도 적절하게 들어가 있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요한 문장은 푸른 형광색으로 칠해져 있다. 또한 치과의사의 치중진담이라는 코너는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어 볼 수 있는 좋은 질문과 답들이 정직하게 정리되어 있다. 자기 전공 분야를 이렇게 쉽게 풀어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불소함유 치약이 중요하다. 그동안 불소 함유량은 보지도 않고 구매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함유량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구매한 치약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구매할 치약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불소함유량을 따져가며 구매해야겠다. 이젠 나도 수드(SOOD) 테크닉의 신봉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변화다.

 

칫솔을 다시 사야 한다. 그동안 알고 있었다고 자부하는 상식이 단번에 무너지는 기분이다. 칫솔에 대한 구매 가이드는 아래에 인용된 문장과 페이지를 참조하기 바란다.

 

사실, 많은 치과 의사들의 공적이 될 수도 있을 성싶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예방법 책을 집필하신 참 의사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공학도로서 그런 얘기를 종종 한다. 절대 마모되지 않는 타이어, 영구적인 수명을 가진 배터리. 이런 초유의 발명품을 만든 사람은 어떻게 될까? 상을 받을까? 아마도, 곧 해고될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로 하곤 했었다. 사업 관점에서 보면 기업에 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용기를 내어 예방법을 설파하시고 스케일링 없이 자연치아로 평생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선생님은 치의학계의 이단아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점이 민초들이 이 책에 열광하는 이유다.

 

수드(SOOD) 테크닉 4원칙

Soft(부드럽게) : 부드러운 칫솔을 연필 쥐듯이 잡고, 아주 작은 원을 그리듯이 움직이며 닦는다.

Open(입을 벌리고) : 입을 크게 벌리고 지금 내 칫솔이 닦고 있는 치아를 직접 보면서 닦는다.

One by one(하나씩) : 한 치아당 20~30, 한 치아를 다 닦은 후 다음 치아로 넘어간다.

Deeper(깊숙이) : 칫솔을 잇몸 쪽으로 45도 기울여 깊숙이 넣고 치아와 잇몸의 경계부를 닦는다.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 인용]

 

잇몸 질환으로 인한 세균, 염증 물질은 전신으로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5p)

예방은 돈이 되지 않습니다. (중간 생략)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아프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감사도 적절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식과 구조의 문제 모두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예방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9p)

 

1부 제목(예방편) : 당신이 치과에 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18p)

인상적인 카피가 마음을 울린다.

 

교과서적으로 정리해서 말하자면 충치는 치아의 구조적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중간 생략) 세균이 산을 만들고 그 산 성분에 의해 치아가 녹는 것이 바로 충치입니다. (27p)

 

치과는 이가 아프지 않을 때 가야 합니다. (33p)

 

불소치약은 원래의 치아 구조보다 치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며 시린 증상을 없애줍니다. (37p)

 

충치 예방은 실란트와 불소치약 그리고 식습관 조절로 이뤄집니다. (45p)

 

지금 이 순간도 치아에서는 칼슘이 빠져나가고 있으므로 복구를 위해 잊지 말고 불소를 발라야 한다는 게 충치 예방의 1원칙입니다. (49p)

 

불소 농도에 대해 살펴보면 적극적으로 충치 예방을 하기 위해서는 1,500ppm 적어도 1,000ppm의 농도가 되어야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55p)

 

치석이 생기는 과정에서 잇몸뼈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치석은 질병의 원인이 아닌 결과입니다. (63p)

 

칫솔모의 끝은 뾰족한 게 아닌 평평한 모양이어야 하고, 직경이 얇고(0.1mm 정도) 부드러운 칫솔모가 빽빽하게 많이(5000~6000개 정도) 심어져 있는 칫솔이 잇몸살을 닦기에, 세균막을 조절하기에 적합한 칫솔입니다. (79p)

 

치약을 바른다고 잇몸 질환이 낫는다는 건 완전한 거짓말입니다. (중간 생략)

칫솔질만 제대로 해도 예방이 됩니다. (115p)

 

1장과 2장에서 이야기한 이야기를 종합해 충치 예방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당과 산이 들어간 음식을 조절한다.

둘째, 입안에 음식물을 오래 혹은 자주 넣어두지 않는다.

셋째, 씹는 면의 홈을 실란트로 메어준다. (어릴 때부터 하면 좋다.)

넷째, 재광화로 치아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불소치약을 쓰고(1,450ppm) 일정한 주기로 치과에서 불소 도포를 받는다.

다섯째, 이와 이 사이의 청결을 위해 치간칫솔을 사용한다. (119p)

 

가글을 하더라도 칫솔질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124p)

 

식사 시간에는 식사를 해야 하고, 식구란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165p)

 

기다려야 합니다. 조금 더디고 서툴지만 스스로 해낼 때까지 사랑의 마음으로 팔짱을 끼고 그렇게 지켜봐야 합니다. 가장 훌륭한 부모는 되도록 빨리 아이가 보호자 없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175p)

 

1940년대 미국의 어느 의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잇몸 질환이 피할 수 없는 노화의 한 과정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빨리 버려라.”

(192p)

 

고쳐주는 의사가 아니라 낮게 해주는 의사를 찾아야 합니다. (210p)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교정, 유지장치 관리법 (252p)

: 챕터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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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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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온실 수리 보고서- 솜씨 좋은 이야기꾼의 사실적인 허구스토리. 두 가지 시간 속 주인공들의 성장소설이자 탐사 보고서.

 

서사와 수사가 뛰어난 두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오버랩 된다. 주인공 최영두와 마리코인 할머니의 이야기가 대온실이라는 공동의 구역에서 두 가지 결이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두 주인공의 각각의 성장 스토리가 동시에 이어달리기 하듯 변주되어 있다. 그동안 소설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잔류 일본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한 축이라 조금은 낯설었다. 어찌 되었든 저자의 서사와 수사는 언어의 연금술사처럼 아름답고 당찬 문장들을 만들어 낸다. 고수다운 글귀를 창조해 내는 그녀는 고수다.

 

한 축 이야기의 주인공이 잔류 일본인이다. 표현되는 문장들이 껄끄럽다. 민족주의자 입장에선 일본을 미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워낙, 일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어서 그런가? 이는 창가의 토토애니를 보면서도 느낀 감정이다. 보고 나서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 사실 창경궁에 관한 이야기라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를 지닌 창경궁의 숨겨진 비화라던가 극적인 스토리를 기대했었다. 기대가 너무 지나쳐 버린 느낌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스펙터클과 할리우드 대작에 어울리지 않는 소소하고 잔잔한, 그러면서도 끈질김과 끈적끈적함이 남아있는 이야기이다. 자극적인 폭력과 싸움이 난무하는 이야기가 아닌 조용하고 담담한 소소한 사건들이 계속된다. 우리 이웃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보통의 소재로 글은 이어진다. 사실 대다수의 드라마나 영화들이 의사 변호사 검사 혹은 폭력배 재벌 등을 소재로 꽤 많이 다루고 있다. 마치 세상에 다른 직업군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자극을 원하는 팬층들은 이 소설 같은 드라마, 현실에서 쉬이 접할 수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야기 하나로 끌어가는 담담한 보통 사람들의 드라마가 많아지길 고대해 본다.

 

창경궁에 남아있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인의 어린 시절과 산아가 거울처럼 대비되며,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한다. 마리코 할머니를 추억하며 그녀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고 주인공은 그녀가 살았던 시간에 동조된다. 두 축의 주인공들 각각의 시간들이 흐르며 중첩되고 때론 대조되며 참 색다른 맛을 내는 소설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 인용]

 

구름이 달을 통과하자 달빛이 쏟아졌고 거기서 떼어낸 투명한 빛들이 내가 달리는 방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38p)

 

서울에서 누구나 가고 싶어 한다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누구를 속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들렀다 가야 하는 집.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54p)

 

사는 게 친절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면 불친절이 불이익이 되지만 친절 없음이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면 불친절은 그냥 이득도 손실도 아닌 ‘0’으로 수렴되는 일이다. (68p)

 

대문 밖만 나가면 아는 얼굴들이 나타나는 섬과, 사람 물살을 헤치고 다닐 때마다 생소한 얼굴들이 차고 슬프게 다가왔다 사라지는 이곳의 봄은 완전히 다른 계절이었다. (85p)

 

나는 술을 즐기지 않았는데 깨고 나서의 허망함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술이 들어갈 때는 기분이 좋아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깨고 나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의기소침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133p)

 

구원이 뭔데?”

그건 수난이 그치는 거야.” (155p)

 

 

순종이 창덕궁과 창경궁에 박물관과 식물원 그리고 동물원을 만드는 데 동조한 것도 교육을 위해서였다. 순종은 어찌 되었든 왕궁 문을 직접 열어 근대 문물 수용에 앞장서는 행동을 취했다. (166p)

 

그렇게 묻은 상태로는 전체를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공동과 침하가 계속되겠지. 개인적 상처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한쪽을 묻어버린다면 허술한 수리를 한 것이 아닐까? (208p)

 

그럴까요? 저 맞게 길을 가고 있는 걸까요?”

맞고 틀리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인생 잘 모르지만.”

(238p)

 

“‘이 문을 거쳐 가며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내 슬픔을 풀 것이다라고 한 말이 승정원일기:정조대왕에 나와요. 슬픔으로 열고 그리움으로 닫는 문인 거죠.” (301p)


아니란다. 영두야. 그건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는 얘기지

세상 어딘가에는 지금 아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스미와 산아가 서로 손을 흔들며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질 때 나는 완성이라고 여겼던 보고서를 다시 이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4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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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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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 전까지는 결말을 알 수 없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책. 뒤통수 세게 맞았다. 최근엔 밤을 새워 새벽 5시까지 책을 읽은 경험이 거의 없다. 이젠 체력도 예전만 같지 않아서 쉬이 피곤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록 수십 페이지를 남겨 두고 책을 덮었지만,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몰입하여 보았고 눈을 뜨자마자 나머지를 숙제하듯 치워 버렸다. 머리가 띵하다. 히가시노 게이고 다운 정통 추리소설의 백미다.

 

다수의 희생자를 만들어낸 희대의 살인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범인은 스스로 자수했다. 그런데 어떻게? ? 죽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거부한다. 사형을 당하기 위해서 살인을 저질렀으니, 자신을 단죄해달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가족들을 잃은 유족들은 혼란스럽다. 묻지마 살인에 희생을 당한 가족들은 경찰의 지지부진한 수사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검증회라는 방식으로 사건을 규명하고자 모인다. 여기서 우리의 히어로 가가 형사가 등장한다. 가족들의 진술을 차례로 경청하며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다. 중년의 남자를 잠 못들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소설.

 

인간 관계에 관한 진한 여운이 남는 책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라는 명제에 떳떳한 사람이 있느냐? 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우리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겠지만 관계와 관계속에서 의식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행동을 할 수 도 있겠다 싶은 책이다. 학창시절에 겪었던, 학교 폭력 왕따 등의 인격살인도 살인이다.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의 비극은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속물적인 근성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선을 넘는 인간관계는 가족관의 불화 불법적인 관계들로 적나라하게 밝혀진다.

 

텔레그램과 묻지마 살인, 외톨이(히키코모리), 촉법소년에 대한 논의를 불러 올 만큼 파급력있는 사건을 담았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온 나라가 들썩들썩했을 것이다. 최근 딥페이크에 대한 범죄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딥페이크 영상을 유포하고 공유한 플랫폼이 텔레그램이라 N번방 사건 이후에 다시 입방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불법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놔두어야 하나? 일부 나라에서는 한시적이지만 텔레그램을 퇴출시켰던 적도 있었다. 언론의 자유, 정보의 자유도 필요하지만, 선을 넘는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이 좋은지 모르겠으나 적합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때다.

 

촉법소년에 대한 논의는 더욱 발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나쁜 짓을 저지르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 제도를 악용하여 범죄의 폭력성이 더 강해지고 잔인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기르던 애완동물의 죽음으로 파탄이 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관계에서 상처받은 것에 대한 복수로 천륜을 벗어나 되갚는 무분별한 악성의 광폭 질주, 게임을 하듯이 본인이 하는 행동에 대한 선과 악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


 자아가 형성되기 전의 행동들이라 할지라도, 절절한 사연과 이유가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벌이는 행동에는 책임을 지우는 징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에는 그런 사회의 현상에 대한 질문과 고민스러운 과제를 독자에게 던지고 있는 듯 있다. 기가 막히는 반전이지만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 속에 하나하나의 행동을 반추하게 된다.

 

일탈의 끝을 보여주는,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설정을 한 일본스러운 관계의 불륜, 불륜의 끝은 사필귀정이 당연하지만 그런 복선 중의 복선을 마지막까지 숨겨놓았다가 꺼내놓다니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결말에 다시 한번 놀라고 그냥 끝나버리는 페이지에 허무함을 느끼며, 생을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만 되새김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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