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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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 명예 - 나의 명예를 지킬 것인가? 가족을 지킬 것인가?

 

여성 하원의원으로 탄탄대로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 왔다. 본인이 추진하는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법안을 통과시키며 경력에 정점을 찍을 시점에 본인의 딸에 의해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긴 하나 사건의 여파가 너무 커져 본인의 명예, 평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막아야 한다. 나를 위해 막을 것인가? 아니면 진정 딸 플로라를 위해서 막아야 하는가? 최근에 이런 소설을 읽지 못해서 그런지 1/3을 넘어가자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짐을 느낀다. 심장 쫄깃한 소설, 뒤가 궁금해서 견디기 어려운 소설이다. 아뿔사! 1권으로 끝나 버리는구나! 이 소설이 넷플릭스에서 작품화된다는 사실이 당연하듯 여겨진다. 몰입도 있는 소설이다.

 

아이러니하게 최근에 붉어진 여러 사건 기사와도 결이 비슷한 얘기에 더 집중이 되었다. 왜 사랑하는 연인들은 이런 장면을 찍으려 할까? 요즘처럼 인스턴스 사랑이 일반적인 시대에 매우 위험한 도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폐해도 우리나라도 이젠 예외가 아니고 더 심해지고 있다. 인간관계를 맺고 끝내는 방법 사회화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인성 교육과 문화가 없으니 극단치의 인간들만 양성되는 것일까?


주인공 엠마 웹스터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것 인가? 그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버릴 수 있는 사람인가? 엄마로써, 아내로써, 한 여성으로, 하원의원으로써... 모든 것을 잘해 내는 팔방미인은 동화속에만 나오는 주인공일까? 지금은 가족의 소중한 가치는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 가고 있다. 비교적 일찍 주말부부를 해 본터라 더욱이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해주지 못했던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지금의 나라면 플로라를 살리는데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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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처음 철학 공부 - 소크라테스부터 쇼펜하우어와 니체까지 형이상학부터 유머의 철학까지 세상의 모든 철학 지식 인생처음 공부시리즈 1
폴 클라인먼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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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처음 철학 공부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의 첫발을 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참고서 같은 책

 

철학은 역시 어렵다. 인생 처음 공부시리즈의 첫 번째 주자로 출간됐지만 철학이라는 과목은 아무리 요약해도 쉽게 풀어 써도 쉽게 내 안으로 쏙 들어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인생 처음시리즈니까 쉽게 이해될 것이고 철학에 대해서도 박식한 사람으로 불리겠지? 라는 일말의 기대는 무너져 버렸다. 나의 이해력 부족 때문인지는 몰라도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역시, 철학관련 책은 한두 번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 본다. 몇 번은 읽어야 감이 올 것 같은 철학관련 책. 철학은 항상 어렵다.

 

하지만, 책의 구성은 아주 훌륭하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장폴 샤르트르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삶과 철학적 배경 및 대표적인 철학적 주제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철학자들 간의 어떻게 영향을 받고 계승하고 스승을 삼았는지도 적혀있다. 한 명 한 명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넓고 얇게 와인을 시음하듯이 음유할 수 있다.

 

탈레스 - 지구가 물위에 떠있다고 상상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한 수학자도 철학자 였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 플라톤의 형상이론을 거부하고 형이상학을 제안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에 매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장자크 루소 자유 / 도덕성 / 자연상태 : 그의 사상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혁명의 기초를 마련했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4대 우상 종족 / 동굴 / 시장 / 극장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저서)

르네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볼테르 캉디드(저서)

장자크 루소 - 사회계약론

마르틴 하이데거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큰 영향 받음. 유명한 저서 존재와 시간

 

두 번째 챕터에서는 대표적인 이론과 생각들을 명제별로 간략하게 정리해 놓았다.

실재론 / 형이상학 / 이원론 / 경험론 / 인식론 / 쾌락주의 / 공리주의

계몽주의 / 실존주의 / 자유의지 / 강한 결정론 / 유머의 철학 / 미학 / 문화철학 / 상대주의 / A이론 / 과학철학 / 언어철학 / 현상학 / 유명론 / 윤리학 / 종교철학 / 동양 철학

 

마지막 챕터에서는 플라톤의 동굴」「들판의 소같은 철학적으로 유명한 은유의 난제들을 나열해 놓았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이 반이다. - 나를 위로하는 문구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p165) 필자가 최근에 읽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정수만을 모아서 펴낸 아는 만큼 보인다에 나오는 명문이다. 책을 끝내고 나서도 정리를 못하는 나에게 그나마 위로를 주는 글이다. 어느 정도 첫걸음을 떼었으니 이제 한 번 더 읽는다면 또 다른 느낌과 감흥을 받으리라 기대해 본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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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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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정수만을 모아 담은 단 한 권의 책.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꽤 알려진 스테디셀러다. 책 제목 자체가 하나의 상징(아이콘)으로 굳었다. 이젠 애국자라 자처하는 사람은 당연히 읽어야 하는 필독서요, 문화예술인이 갖추어야 할 전공 필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말이다. 30년간 꾸준히 집필한 작가도 대단하고 그 책을 하나의 문화의 아이콘으로 성장시킨 독자들도 멋있다.

 

우리 문화재를 소개한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느낌표라는 오락 프로그램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코너에서

소개한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만나고부터다. 책을 소개해 주는 코너에서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접하면서 느낀 감동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으로 우리나라 미술과 건축의 매력을 알기 시작한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찬란한 대한민국 문화에 대해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게 된 것이다.

 

전권을 완독하지는 못했지만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전권을 완독하지는 못했다. 국내 편이 12, 중국 편이 3, 일본 편이 5, 기타 이 책과, 산사순례 등등 처음 책이 나올 때 접하지 못했기에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 저 책 읽은 것 같은데 시간이 많이 흐른 뒤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9권부터인 서울 편은 완독했다는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순례 - 결정적인 것은 산사순례다. 작가가 그동안 써놓은 글 중에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사를 그려낸 글들을 모아서 담아낸 나의 최애 책이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는데 순천 선암사를 방문하고 승선교와 강선루를 찍은 사진으로 문화홍보대사 역할에 일조를 했다는 사실이다. 선암사의 시그니처 사진(승선교와 강선루가 어울어지는 풍경)을 찍었는데 한국관광공사 태국지점 온라인 미디어 대행사에서 사진을 사용해도 되냐는 문의가 있어 애국의 마음으로 흔쾌히 허락했다는 에피소드다.

   

■ 「아는 만큼 보인다는 출간 30주년을 맞이한 작가의 엑기스 중의 엑기스를 담았다. 국내편 12권의 정수만을 담았으니 허풍이 센 사람은 이 책을 다 보고 나서 저나의 문화유산답사기다 읽었어요! 라고 해도 허언은 아니겠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아만보(아는 만큼 보인다.) 답사단을 만들고 싶다. 희망으로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기가 막히게 모집 공고문을 만들어 모든 세대가 참여해도 되는 문화유산답사단을 만들어 책의 동선처럼 따라가며 온 국토를 답사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에 내놓는다면 나름 관광상품으로도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그때는 유홍준 교수께서 로열티를 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미리 작업을 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1부 제목 : 사랑하면 알게 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p165) 조선 정조시대에 유한준(1732-1811)이라는 문인이 당대의 최고 가는 수장가였던 석농 김광국의 수장품에 붙인 글을 작가가 나름대로 각색하여 만든 문장이라고 한다.(p164참고)

원래 문장의 뜻은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데 작가가 이렇게 멋진 문구로 재탄생시켜서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더라도 다 이치가 맞아지는 희대의 명언을 만들어 냈다.

 

2부 제목 :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백제의 궁궐 건축에 대해 평한 글인데,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다고 한다. 작가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아름다움은 궁궐 건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백제의 미학이자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p408)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참으로 고풍스럽고 멋스러운 문장이다.

 

그동안 집대성한 책의 정수 중의 정수만을 모아서 한 권으로 뽑아냈으니 아주 보물과 같은 책이다. 다만, 글을 처음 쓴 시점과 수정했던 시점조차 지금과 물리적 시간의 간극이 존재한다. 이 점을 고려하고 읽어야 더욱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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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에게
최현우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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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코에게를 감상하고

 

그림책이니까 읽었다는 문장보다는 감상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한 표현이겠다. 글자 수는 아주 적다.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어른이를 위한 책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는 얘기다.

 

해피에게 · 콜라에게 · 제니에게,

- 어찌 보면 코코에게라는 책 제목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다. 나름대로 그 녀석들과 함께한 가슴 찡한 스토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해피는 발바리 종이었다. 쥐를 잡아먹고 비몽사몽 사경을 헤매던 녀석을 엄마가 비눗물을 먹여서 살려 놓았는데, 또다시 쥐를 잡아먹고 황천길로 갔다.(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 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국민학교 시절인 그 당시엔 쥐약을 학교에서도 나눠주고 쥐 퇴치 운동을 벌였었다. 그래서 쥐약 먹고 비틀대는 쥐들이 동네에 꽤 있었는데 아마도 우리 해피가 그놈들을 집중적으로 사냥(?)한 것 같다) 코코에게를 읽으면서 내가 키웠던 녀석들이 하나, 둘씩 눈앞에 오버랩되었다. 눈물이 글썽하고 코끝이 시큰거리며 심장이 뜨거워진다. 해피, 해피(두 번째 개에게도 해피의 추억으로 이름을 해피라고 지었다.), 콜라 !

제니는 지금 키우고 있고, 고양이니까 빼고 가야겠지만 언젠가는 추억하며 코코에게와 같은 그림책으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목도리 책 속의 주인공 (책 속의 주인공 이름이 지칭되지 않아 이후 이렇게 부르겠다.)와 코코를 이어주는 영혼의 연결고리다. 추운 겨울 지하주차장 버려진 종이박스 안에서 만난 코코, 는 코코를 데리고 올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코코가를 따라서 왔다. 강아지는 주로 주인의 선택을 받는 게 기본인데 주객이 전도되었다. 고양이가 집사를 간택하고, 간택당한 주인이 따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추운 겨울날 처음으로 코코에게 온기가 되어준 버건디(와인)색 목도리, 코코는 그 목도리의 온기를 잊지 못했나 보다. 이사 가는 날 의 손에 목줄을 박차고 뛰쳐나간 코코가 물고 온 물건이 그 와인색 목도리다. 세상보다 따뜻한 것을, 한입 가득 물고서, 심장을 포개어 주려고 달려오는, 작고 기쁜 영혼이었지 [책 속에서 인용]

 

수묵화다. 이 책의 그림은 한국화의 대표적인 유형인 수묵화가 생각나게 한다. 코코를 만나기 전엔 전통 수묵화, 코코를 만난 후에는 민화에 가까운 퓨전 수묵화. 코코와의 동행이 마냥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득 담듯이 후반부부터 화가는 색채를 많이 쓰기 시작했다. 화려한 동행을 꿈꾸는 화가의 기대치가 색으로 표현되었다. 게으른를 일으켜 세상속으로 동화시키는 역할은 코코가 맡았다. 코코가 주인공이다. 코코가를 세상 밖의 골목으로 인도하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아이러니다. 코코와의 바깥나들이는 화려한 총천연색이다. [좋아하는 전봇대와 그 밑에 핀 풀꽃, 놀이터 모랫바닥에 숨겨진 반짝이는 병뚜껑들과, 천변의 붕어들을 보여 주었지 (책 속에서 인용)]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톤 다운이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사색하게 만드는 책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애완동물의 수명이 인간의 반의반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먼저 보낼 수밖에 없는 녀석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가 책으로 코코를 기리는 이유도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코코에게를 감상하여 먼저 간 해피와 해피, 콜라를 추억하며 기려본다. 너와 함께 많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함께 산책도 못 가서 미안하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얘들아!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단 한편의 시에 코코와의 동행하는 삶을 담담히 적어냈다. 그 시를 바탕으로 온전히 코코의 일생을 그려냈다. 화자인가 코코의 영혼을 구했나, 코코가 의 영혼을 구했나, 후자라고 시인은 얘기하는 것 같다.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면이 보인다. 세밀하게 색감과 터치를 관찰하게 되는 책이다. 보면 볼수록 디테일이 살아있는 소품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최단기간 가장 많이 반복하여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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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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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천 개의 파랑을 읽고

 

파랑의 사전적 의미는 잔물결과 큰 물결이다. 이게 SF소설이라고? 2020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고 작가의 이력을 서핑하다 보면 SF소설가로 나오니 당연한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은 SF소설을 가장한 휴먼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의 의미는 책을 다 읽고 덮을 시점에 알게 된다. 콜리의 최후의 독백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쨍쨍의 제주방언]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콜리의 독백이자 작가의 주제를 담아낸 넋두리다.

 

작가는 MZ세대답게 랩의 라임과 음률을 아는 것 같다. 천개의 파랑이 파랑파랑의 파랑인지, 청색의 파랑인지, 아니면 사전적 의미의 파랑을 의미하는 건지는 작가의 마음이겠지만 말이다. 파랑이라는 단어에 중의적인 어감을 곁들여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도록 유도하였으니 일단은 성공한 것 같다. 책의 제목을 접하고 이게 무슨 뜻일까 ? 궁금증을 품어가며 읽었다. 깔끔하게 해석은 안 되었지만 나름 미소가 지어진다. 어렴풋이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좀 이해의 걸음을 작가 쪽으로 한 발 내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콜리다.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 기수다. 그런데, 일반적 사이보그 기수와는 달리 우연한 실수로 칩이 잘 못 꽂혀서 주어진 명령대로만 사고하지 않는 그런 사이보그가 됐다. 사색을 하고 좀 더 사람과 닮은 사이보그가 돼버린 그다. 콜리가 투데이와 경마 경기 중에 하늘을 쳐다보다가 낙마하여 하반신이 망신창이가 되는 사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로봇에 의해 서서히 잠식되어 가는 일자리. 아주 현실감 있게 곧 일어날 것 같은 상상을 더해가며 자연스럽게 묘사했다. 그래서 , 이 소설을 SF소설이라 구분하여 상을 준 것 같다.

 

이 책의 작가가 실제로 직장생활이나 노동을 해 본 것 같지는 않다. 나이로 봐서 말이다. 그런데 인간의 노동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굉장히 날카롭다. 연재가 아르바이트자리를 잘리는 장면에서 키오스크, 무인카페, 로봇바리스타, 물류창고의 분류로봇 등 현재에도 일상화되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의 노동력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곧 다가올 현실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는 그러한 담론을 꺼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노동과 인간 , 기계에 의해 대치되는 인간의 노동의 가치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작가가 정리한 결말이 개인적으로 불편하다. 내 마음에 쏙 들지 않다는 것이다. 난 해피엔딩을 아주 좋아하는 독자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집중해서 집필한 소설이다. 가족들이 콜리와 투데이를 만나게 되고 콜리와 투데이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치유와 화해를 경험하는 과정을 결과보다 더 심도 있게 그려냈다. 해피엔딩의 결론을 정말 짤막하게 몇 줄로 정리해 버리는 작가의 심술은 어찌 할 수 없겠지만 그저 아쉬움만 남는다. 한 두 페이지 더 할애해 줬다면 좋았을 것을 몇 문장으로 정리해 버리다니 인정머리 없어 보인다.

 

모녀관계와 자매관계의 회복,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여정, 작가가 정리한 결말의 양은 불편하지만 치유와 화해의 과정은 흥미진진하고 아름답다. 이 소설은 느리게 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 꾸준히 나아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인생의 지혜다. 한국인은 속도경쟁에 익숙하다. 빠른 것이 이기는 방법이라 배우며 살고 있다. 책은 빨리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고 행복한 게 중요하다고 말을 한다. 느림의 미학도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고 있다. 비록 히어로가 나오고 우주 너머로의 여정과 같은 스펙터클한 내용이 없는 SF소설이지만 길게 여운이 남는 잔잔한 파랑처럼 내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이 잔물결이 곧 큰 물결도 되겠지?

 

책 속의 감동 문구 일부 :

천천히 천천히 빨리 달리지 말고 천천히,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경마 연습일거였다.(211p)」「너무 빠르게 달리면 다 놓치고 산대(254p)」「기술의 발달과 멸망의 속도가 같다.(183p)」「연재는 무언가에 열중할 때 빛나는 인간이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빛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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