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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이향규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하지만 전쟁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6.25전쟁 말이다. 6.25전쟁을 화두로 꺼내다 보니 어 보수네? 진보 아니었어? 이런 반응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불행하고도 참혹한 일이다. 특히나, 같은 한민족끼리는 말이다. 한 가족이 , 한 형제가 이념의 차이로 총부리를 서로에게 들이대는 현실은 이젠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잊힌 전쟁에 그들은 왜 참전했는가?
이 책은, 영국에서는 잊힌 전쟁(영국에서는 한국전쟁을 Forgotten War라 부른다고 한다.)인 한국전쟁에 의무징집병으로 참전한 영국의 한 청년 마이클(당시 20세, 외아들)의 삶의 궤적을 쫒으면서 시작된 기억과 참회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당시 영국은 의무병제였다. 한국전쟁에 참여하면 월급을 두 배나 더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부유한 영국 남부보다 맨체스터와 같은 북부의 젊은이들이 더 많이 자원을 했다고 한다. 전쟁의 실상을 알고 지원한 것도 아닌 듯하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파병이 결정되고 의무병들은 순순히 나라에 부름에 응했으리라 판단된다.
한국전쟁에 81,084명의 영국군이 투입되었고 , 그중 1,106명이 전사, 수천명이 부상, 1,060명이 포로가 되는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나도 현재 군복무중인 아들이 하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너무나 어린 나이에 삶을 달리했던 그들이 너무 안쓰러워 계속 눈물을 삼켰다.
이름도 잘 몰랐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희생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전쟁의 참혹함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6.25전쟁때 고향을 떠나 남으로 온 아버지의 이야기
작가는 6.25전쟁때 고향을 등지고 내려온 아버지의 일기를 토대로 전쟁과 아버지의 절절한 인생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살아생전에는 이념 차이(보수와 진보/촛불과 태극기)때문에 말을 섞지 않으려 했던 그녀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의 오래된 일기장과 자서전의 기록을 읽으며 뒤늦게 아버지와 소통하며 이해하게 되는 화해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늦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낳은 이야기들을 쭉 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쳐든다.
전쟁을 겪지 않은 전쟁 이후 세대들뿐만 아니라 전쟁이후의 이념차이로 갈등과 반목을 지난하게 계속하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들도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앞으로, 우리사회를 어떻게 봉합해 나가고 이끌어 가야하는지의 단초를 제공해 주는 좋은 지침서다.
책에서 발췌
→ 그럴수록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 국가가 파병한 전쟁이므로 그렇게 전쟁터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결국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우리가 토론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역사에서 사라지니까요.”[113p]
→ 엄마는 이 결혼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밑지는’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엄마의 삶으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고 기꺼이 아버지의 삶으로 내려가서 나란히 걸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엄마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살피신 것은 한평생 엄마가 보여준 헌신에 대한 보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128p]
→ 장례를 다 치르고 아버지를 돌보았던 의사와 간호사에게도 브로슈어를 한부씩 보내드렸습니다. 감사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희 아버지를 아프고 병든 노인이 아니라 훌륭하게 삶을 살았던 건강한 분으로 다시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분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172p]
우리도 언젠가 한국전쟁을 이렇게 볼 때가 오겠죠. 전투가 아니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날이, 오랫동안 끝나지 않았던 전쟁이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이야기할 날이, ‘평범하지 않은 시대를 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날이요.[206p]
아무래도 영혼은 그에게 의미 있는 장소 ,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들 곁에 머무를 것 같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가 있을 곳에 있는 것 같아서요.[216p]
“ 화해와 평화로 가는 길은 잘못을 ‘용서받고 잊어버리는’(forgiven and forget)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참회하는’(remembering and repenting) 긴 과정입니다. 기억하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하 생략”[226p] 책에서 발췌 끝
마무리하며......
이 책은 전쟁에 대한 무거운 주제만 다룬 책이 아니다. 영국의 청년 마이클과 자기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려낸 전기이다. 우리 세대가 기억하고 되새겨야할 많은 화두를 독자에게 던져주는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화해와 용서의 구체적인 방법을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침서다. 에필로그를 읽고 나면 각자의 부모님에게 안부를 전하게 될 것이다. 읽어 보면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