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9
김성중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에 대한 골치아픈 사색에 빠지게 만들며 책장 구석에서 8년 묵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꺼내들게 만드는 소설이다.


어느 날 인류의 나이가 멈추고 죽지도 태어나지도 않는 100년이 시작된다.

임산부는 임신한 채로 백 년, 임종 직전의 할아버지는 임종 직전인 채로 백 년, 15세 소년은 15세로 백 년, 하필 또 그때가 여름이라 100년의 여름을 지내야 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멈춰진 100년을 다시 사람들이 죽는 세상으로 되돌리기까지의 이야기다. 왜 사람들이 안 죽었는지에 대한 비밀은 마지막까지 가서야 알게 된다. SF를 기대하면 안된다. 과학적 소재가 뒷받침 되는 얘기가 아니라 비현실적인 꿈 같은 얘기에서 끝없이 질문하고 사유해야 된다. 


임종 직전의 할아버지는 자신을 죽여야 세상이 완전해진다며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죽여달라는 부탁을 한다. 두 사람은 2인 1조처럼 죽고 죽이기 위한 갖은 방법을 시도한다. 고문과 흡사한 일을 저지르는 동안 아버지의 이성은 파괴당했다. 목숨은 끊어지지 않아도 영혼은 파괴될 수 있었다. 


소설 속 어떤 인물은 책을 왜 읽냐면서 이런 시대가 오기 전에 태어나 사라진 사람들, 그들은 이런 시간이 있다는 것도 그래서 사람이 죽지 않게 된 것도 모르는, 백 년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쓴 책을 보는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묻는다. 그에 대한 어떤 이의 대답도 있었는데 이 죽은 저자들은 책을 상상하고 읽고 쓰는 동안에는 자기가 유한한 존재라는 걸 잊고 쓴다. 유한한 인간이 유한성 밖으로 나가 무한한 세계와 조우하는 순간은 예술과 학문 같은 것들로만 가능한 찰나였다는 것이다. 


소설 속 어떤 이는 시간이 정지해서 너무너무 행복하다며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라면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심사숙고해서 정해야 하는데 이제는 내키는 대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오십 권에서 백 권의 책을 뒤적거리던 사람이 결국 책이 없으면 아예 머리를 쓸 수 없는 상태로 변해버린다. 책을 펼칠 때만 생각을 했고 나중에는 책을 보면서도 전혀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책을 읽다 문득 든 생각이 이 소설에서 아무도 죽지 않는 백년이 시작될 때 사람들의 어리둥절하는 모습이 어쩌면 언택트 인류 백년의 시작에서 살고 있는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상상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