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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페머러의 수호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7
조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6월
평점 :
이페머러 ephemera : 수명이 아주 짧은 것, 잠깐 쓰고 버리는 것
음모론과 UFO, 휴거, 오컬트, 묵시록, 일루미나티 따위는 한치도 믿지 않지만 이런 헛소리로 소설을 꾸민다면 무조건 재밌을거라는 확신이 든다.

위트와 풍자, 해학에 대한 자기계발을 하려면 이런 소설이 밑거름이 된다.
책소개글부터가 오바(over)다 ㅋㅋㅋ
슬랩스틱 스파이물에서부터 오컬트 오페라까지 여러 스타일을 넘나들며 음모와 묵시, 환상과 광기를 동원해 유쾌하면서도 기괴하게 펼쳐놓은 이번 소설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우주에서 이페머러로 취급받는 사람들을 위한 애가이자 연가이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독특한 우주적 상상력과 작품에 내재된 날선 사회의식으로 재미와 작품성, 그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작가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SF도 아니었고 장르소설이라 단정짓기도 힘든 순문학의 독창적인 변형에 유쾌하면서 기발한 표현과 상상력이 넘치는 형식으로 읽었다.
퀸의 보헤미안랩소디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 시대 대한민국 청년의 웃픈 분투기와 슬랩스틱 스파이물과 오컬트 오페라로의 말도 안되는 전환이 아주 생뚱맞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CIA와도 연관된 미국 대통령의 무해한 취미생활을 서포트하기 위한 세계희귀물보호재단 한국지부의 비정규직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의문의 인물 마이스터X의 초청으로 전세계 정보기관요원들이 참석하는 유물 경매장에 참석하게 된다.

소설에는 흥미진진한 경매물품들이 등장하는데 아돌프 히틀러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나의 투쟁>초판본과 히틀러와 동반자살하기 하루 전 결혼한 에바 브라운의 유골로 히틀러의 뼛가루도 섞여 있을 거로 추정되는 품목이 경매에 붙여지자 네오 나치의 새로운 성배이자 광신도들의 지성소가 될 것을 우려한 이스라엘 모사드와 중동 아랍 정보기관의 치열한 입찰 경쟁이 벌어진다.
그 외에도 스타트렉이 차용했던 클링온어 사전, 아이작 뉴턴 경의 2060년 묵시록, 태평천국운동의 도참록, 카탈루냐의 성모상 및 피눈물을 흘리는 영상, 천안문사태때 죽은 왕펑의 의상, 유골, 수첩, 미국 황제 노턴 1세가 발행한 국채와 유언장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시퀀스마다 비유를 어쩜 이렇게 실없고 맛깔스럽게 재치와 위트를 넘치게 집어넣었는지 헛소리의 대향연에 감탄하는 대목들이 꼭 있다. 예를 들면

토마토 스파게티에 악의적으로 섞인 무교동 낙지볶음 소스처럼 무심코 먹었다간 주르륵 눈물방울 콧물방울을 쏫 빼낼 도약식 지뢰
다 만 김밥에 기름솔로 참기름을 칠하듯 뭐든 완성품에는 데커레이션이 중요한 법
환승 이별을 당한 후에 저놈이 내 애인을 뺏어갔어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두 팀이 씩씩대고 있다.
비둘기를 감춘 후에 과장스럽게 사방을 둘러보는 마술사처럼 히죽 웃으며 무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요즘따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라는 것이 동맹국 호주머니를 대하는 CIA의 소유권 개념인 것이다.

마약을 밀수하려다 공항 검색대에서 걸린 재벌 3세 같이 겉으론 잘못을 뉘우치는 제스처를 취하지만 속으론 아빠의 부하들이 얼른 나를 꺼내주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누워서 유튜브 돌려 보기보다 쉬울 것이다.
리뷰가 너무 길어져서 마지막 4장 빙의와 방언이 난무하는 오컬트 오페라 내용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