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 세계사 : 自然史 혁명
이종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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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 ─ 自然史 혁명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 <열대학>에 대한 책을 만났다.


‘열대학’(tropical studies)은 예술,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과 기술공학, 보건의료를 융합하려는 문제의식을 지향한다.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2016)는 열대학의 총론에 해당하며, 이 책 훔볼트 세계사는 그 각론의 첫 작품이다. 훔볼트가 탐험했던 아메리카의 멕시코시티, 아바나, 보고타, 키토, 쿠스코, 리마 등에서 현지 조사하고 난 연구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이종찬 교수님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존스홉킨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사회사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과 열대학연구소 교수이다

저자가 말하는 열대 自然史는 훔볼트과학, 식민적 문화융합, 낭만주의 예술이라는 세 차원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통해 근대 공간으로 발명되었다. 이것이 열대 自然史혁명의 요체이다.  

의학사 연구자인 이종찬 교수는 전통적인 의학사, 즉 히포크라테스나 허준을 연구하는 공부가 아닌 ‘열대’에 푹 빠졌다. 그는 ‘열대학’이란 이름의 학문 분야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고, 아주대에 열대학연구소를 만들었다.


열대학은 아마도 난학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일본 에도시대에 서양의 의학과 과학지식이 보급되었고, 이것은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정립되었다. 주로 네덜란드를 통해 전래되었다는 의미에서 난학이라 한다.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보급된 서양의 기술서적을 연구하는 학문활동이 활발히 일어났고, 이들을 난학자라고 하였다. 일본의 근대화에 대한 각성은 이들 난학자들에 의해 싹트기 시작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일본의 난학자들은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중국 중심의 중화적 질서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때 찾은 돌파구가 난학이다. 난학을 통해 동남아란 열대로 진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18세기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현대 한국의 초·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어린이 과학위인전이나 과학탐험 동화에서도 그를 만나기가 힘들다. 정조와 순조가 통치하던 조선에서

우이도의 홍어 장수 문순득이 제주도에서 류큐를 거쳐 루손 섬까지 표류되었다 누에바에스파냐의 아카풀코에서 마닐라에 이르는, 열대 해양무역 네트워크의 실체를 느꼈으리라.


대서양은 푸르지 않다. 검다. 1억 2천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약 350년에 걸쳐서 노예무역으로 팔려 갔다. 콩고-아이티 노예혁명 세계 최초로 노예가 주도한 혁명이 일어났다.

콩고 왕국에서 어릴 때부터 터득했던 열대 自然史에 뿌리를 둔 영성적인 힘으로, 50만 명의 노예들이 뭉쳐서 플랜테이션의 식민체제를 전복했다. 아메리카 전역에 거쳐서 독립혁명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인종’은 서구 노예무역에 의해 발명된 개념이다. 참다운 인간이라면 이 용어가 아닌, ‘종족’을 사용해야 한다.검은 대서양의 노예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다른 민족과 종족에 대한 서구의 차별주의는 근대성의 형성에 깊이 내면화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잉글랜드와의 7년 전쟁에서 패한 부르봉 왕조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세금을 더 확보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유용한 식물과 광물을 찾아야 했다. 이런 과업을 수행하라고 훔볼트와 봉플랑에게

특별 여권까지 부여했다.‘식민적 문화융합’이다. 훔볼트는 현지 토착 自然史학자와의 협력이 절박했다. 에스파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계몽주의 교육을 받은 크리오요를 포함해서 물라토, 메스티소, 삼보 사람들이 훔볼트와 봉플랑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침보라소와 코토팍시 산을 중심으로 한  식물지리학에 관한 거대한 실험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열대 공간은 원주민들에게 전체적인 구조가 없는 장소에 불과하다. 그 장소는 열대 특유의 다양한 식물과 숲, 강, 습지, 산, 암석, 초원, 동물들로 오밀조밀하게 짜여 있는, 自然史의 망이다.

훔볼트는 이 공간을 선, 각, 숫자, 지도, 지자기로 이루어진, 근대적 공간으로 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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