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평점 :





“우리가 알아내고 싸워야 할 자연이라는 적이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유전자가 심어놓은 본성 역시 자연의 일부다.”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계신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최정균 교수님의 책이다. 저자는 인간을 조종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영향력이 가정,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영역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가를 소개하고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셨다고 한다.
인간이 무의식 중에 하는 수많은 행동들은 유전자에 의해 지배되며, 유전자는 ‘생존’과 ‘번식’을 목적으로 한다. 1장(가정)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도, 부모의 자식 사랑도 유전자가 스스로를 ‘번식’시키기 위한 진화적 전략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현대 경쟁사회에서 부모의 뒤틀린 교육열과 능력주의 역시 유전자의 번식 욕구에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2장(사회)에서는 유전자의 ‘생존’ 욕구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혐오라는 감정으로 위장되어 나타난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민자를 비롯한 다른 인종, 비만, 동성애자 등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던 때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현상도 이에 해당한다. 이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과학적 근거가 없음(이들에게 위험이나 두려움을 유발할 만한 요소가 없음)이 밝혀져 부당한 것이다. 혐오라는 감정은 인식의 영역으로 침투해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발전하고, 낙인과 차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3장(경제)에서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생물학적 소비자(인간)의 무한한 ‘번식’ 욕구와 경쟁 심리가 과시적 소비와 자본주의의 착취 형태로 현대인들의 경제활동에 드러난다는 점을 설명한다,
4장(정치)에서는 생물학적으로 보수적 성향이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적 전략들의 적극적 발현이며, 보수적 이념이란 이러한 생물학적 성향을 합리화하기 위한 가치 체계이고, 진보적 성향이란 진화로부터의 일탈이자 체제에 대한 저항과 도전이라고 언급한다.
5장(의학)에서는 인간의 자연 친화적인(자연을 경외하고 선망하는) 본능이 기술적 진보에 대한 두려움을 유발하여 불필요한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을 설명한다(예: GMO의 부작용 우려, DDT에 대한 공포).
이처럼 이기적 유전자의 책략에 놀아나는 인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이는 행위들은 가정, 사회, 경제, 정치 등의 영역에서 온갖 불행과 사회적 부조리를 초래한다. 저자는 인간을 속박하는 자연과 우리 안에 있는, 유전자가 심어 놓은 본성에 맞서 싸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진화론, 유전학, 사회과학 기본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이해 가능한 부분이 많다. 또 다소 민감한 주제라고 볼 수 있는 정치나 종교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정치 성향이 어느 쪽인지, 종교(특히 기독교)를 갖고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의 조종 하에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잘못된 행위를 인식하고자 애쓰고, 인식했을 때 이기적 유전자의 작용에 저항하는 노력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집단이나 무리에 대한 혐오나 낙인, 차별이 유전자 본질 발현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놀라웠고, 경제학적 행동을 유전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 및 정치 성향을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도파민), 페로몬과 결부시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은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이었다.
이 책은 과학 서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독서를 통해 사회과학 지식도 많이 알게 되었고 새로운 문제의식도 갖게 되었다. 특히 3장에 나오는 ‘착취’에 대한 부분에서 ‘거대 기업들의 착취 행태’와 5장에 나오는 “유전정보는 인류 전체의 유산이며, 만인공리물 혹은 인류공동유산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은 이런 부분에 대해 별 문제의식이 없던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본 소양이 부족해 머리에 과부하가 느껴지는 독서였지만 여태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한 뺨 더 성장한 느낌을 받는 독서였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감명 깊게 읽으셨거나 유전(공)학, 사회과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 꼭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다.
#유전자지배사회 #최정균 #동아시아출판사 #유전자 #진화 #이기적유전자 #생존 #번식 #사회과학 #인류학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도서 #신간추천
*본 서평은 동아시아 출판사(@dongasiabook)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