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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4월
평점 :
토니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극작가이자 작가, 사회운동가인 이브 엔슬러의 에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45년 동안 써 온 일기, 에세이, 시, 기고문 등을 주제별로 엮은 책이다.
책 소개글을 읽었을 때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느낌이 왔기 때문에 책을 손에 잡기까지 쉽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읽은 후 내게 닥칠 며칠 간의 후폭풍이 두려웠고, 저자의 거룩한 인류애를 이해하기에는 내 마음밭이 너무 옹졸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문에 쓴 표현을 빌자면 나는 나쁜 감정과 슬픔으로부터, 앎과 책임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폭력과 학대를 당했지만 곁에 있던 어머니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 저자는 열 살 무렵 집이 더 이상 자신의 안식처가 아님을 깨닫고 아버지의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발버둥친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선 무언가에 매달려야만 했을 것이다. 저자가 발견한 건 글쓰기였고, 일흔에 가까운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글쓰기는 저자에겐 생존 방식이다.
책에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몇 차례 등장한다. 저자는 서른 아홉 살이 되어서야 아버지에게 강간 당한 사실을 어머니에게 처음 알리고, 마흔 두 살이 되어서야 햇볕에 탄 몸에 알로에를 발라주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생전 처음 어머니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마음이 너무 아팠고, 나라도 그녀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그녀를 향해 “네가 내 희생양이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져 한참 내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저자는 아버지가 어린 시절 자신에게 가했던 성적 학대와 폭행에 대해 사과하기를 기다렸지만 아버지 생전에 끝내 사과받지 못한다. 아버지 사후에도 그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아버지가 죽고 31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에게 받아야 했던 사과를 본인이 직접 쓰겠다 결심하고 2018년에 <아버지의 사과 편지>라는 책을 집필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궁극의 해방감을 느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가 글쓰기를 ‘구원’이라 표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책 끝부분에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부분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감옥, 노숙자를 위한 쉼터, 밀입국자 수용소, 난민 캠프 등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그들이 처한 현실, 아픔과 슬픔을 글로, 연극으로 표현하여 세상에 알리는 방식으로 사회 운동을 실천한다. 글쓰기를 붙잡고 자신이 죽지 않고 버텨냈던 것처럼 글쓰기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었으리라! 책에는 그들이 겪은 참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적고 싶지 않다. 대신 저자가 세상 사람들을 향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옮겨 보고자 한다.
“사유의 과정은 기억하기, 인식하기, 책임지기의 행위를 수반한다. 눈앞에 있으나 우리가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바로 그것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수치심을 기꺼이 끌어안으라고 요구한다. 진정한 사유에는 실수와 잘못, 악행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필요하다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일까지도 뒤따른다.”
- 서문 중에서
“유린당한, 찢어발겨진, 굶주린, 고문당한 이백오십 명의 여자들이 언덕을 오르며 춤출 수 있다면 나머지 우리는 분명 그들을 도울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의 미래를 보장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 본문 ‘죽음에 내몰린 여자들과 그들을 돕는 남자’ 중에서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단박에 내가 책 제목처럼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전쟁, 가난, 기아, 난민, 인종 차별, 기후 위기 등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뉴스나 기사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관심 있게 지켜보려고 한다.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으신 분, 그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방법을 고민해 보고 싶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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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장미꽃향기(@bagseonju534) 님, 독서여인(@vip77_707) 님을 통해 푸른숲 출판사(@prunsoop)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