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고백
최승현 지음, 서민정 그림 / 비온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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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에서 미술사학, 독어독문학, 의류학, 일본학 등을 공부하고, 현재 독립큐레이터, 미술평론가, 미술사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승현 작가님의 첫 단편소설집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가치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돌아보는 일이 글쓰기라 말한다.


책은 총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을 담고 있다.


[완벽한 심사]

그녀는 왜 지원자도 면접관도 진행자도 아닌, 그냥 ‘관계자’로 면접 심사과정을 참관하였는가?

▷ 우리는 왜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온갖 불공정함과 불투명함에 대해 뒤에서 투덜거리기만 할 뿐 정면에서 항거하지 못하는가? 불공정함과 불투명함을 방관하는 차원을 넘어, 소설 속 ‘그녀’처럼 불공정함과 불투명함을 공정함과 투명함으로 위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당신 뜻대로]

그녀는 왜 ‘96’이란 숫자에 집착했는가?

▷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위해, 운명을 바꾸기 위해 해보기로 마음먹은 ‘노력’이라는 게 무엇인지 읽어 내려가면서 잔인함에 끔찍했고, 그걸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태도에 섬뜩했다. 뭐든 마음먹은 대로 해내는 사람, 특권을 아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계략을 꾸미면 당해낼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나 그 상대가 연약한 존재라면 더더군다나. 서평을 쓰는 시점이 공교롭게 어버이날인데, ‘효(孝)’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식이 부모에 대해 가지는 의무, 감정이나 태도 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부재중 고백]

수연은 왜 자신을 학대하는 엄마에게 반항하지 못했는가?

▷ 이 단편을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순간순간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정말 이런 엄마가 있다고?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폭력이 이렇게까지 무자비할 수 있다니. 안하무인에 자신밖에 모르는 엄마 대신 수연을 보살피고 감싸줄 외조부모님이 계셨다는 사실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수연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마련해 주신 따스한 이부자리에 누워 짊어지고 있던 긴장감을 내려 놓을 때 나의 무거웠던 마음도 편안해짐을 느꼈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단 한번이라도,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울컥했다. 결핍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기 싫어 웃지 않았던 수연이 너무 가엾다.


[어느 미래]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 당연히 올 거라 여겼던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스럽게 느껴질까? 소설 속 ‘나’는 친구들이 겪고 있었을 출산과 육아라는 험난한 일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미안해하며, ‘모성애’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부성애’ 보다는 ‘모성애’를 더 강조한다. 어머니의 끝없는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나 역시 어머니의 희생을 발판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니 엄마께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형님]

영진이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은 무엇인가?

▷ 개인적으로 다섯 편의 작품 중에서 읽으며 가장 마음이 불편했던 소설이다. 사회에서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인간들. 강약약강. 석준이 합의의 상대방에 대해 언급하는 대사나, 석준을 ‘순진한’ 또는 ‘심성 착한’ 사람이라 말하는 대사에서는 좀 역겹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영진은 ‘형님’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키고자 했던 것들이 재앙이 되어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형님’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을 포기하지 못한다.


독자들은 소설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위안을 받거나,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설 속 부조리한 현실이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며 마음이 무거워지거나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후자에 가까운 소설이었고, 그만큼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소설이었다. 독자들이 놓치기 쉬운 내밀한 세계를 잘 설계해 보여주고 화두를 던지는 것이 작가의 소명이 아닐까 한다. 참으로 고단하고 고독한 작업일 것이다. 힘든 일이겠지만 저자가 의미 있는 창작 여정을 지속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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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장미꽃향기(@bagseonju534) 님을 통해 최승현(@cyan_shchoi) 작가님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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