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회>

언제 쯤 계수나무 그늘로

돌아갈거나

백 개의 강에는 슬픔만 흐르고

등잔 밑 숨은 달은

애를 태우네.




이무기 하늘을 날아

불타버린 하늘,

달을 삼킨 아이만

불 속에서 슬피 우네. 
 

 그리의 수수깨끼 대왕이 다시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 들었던 노랫소리와 달리 지금은 그 소리가 무시무시한 노래처럼 느껴졌다. 수수깨끼 왕은 노래를 끝마치고는 다른 그리들과 함께 거대한 벽에 일부분이 되었다. 이젠 사방에 하얀 벽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 다시 해보자!” 
 

미르는 온힘을 모아 냉기를 뿜으며 그리들의 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벽은 더욱더 두터워지는 것 같았다.

“다시 ! 다시 !”

미르는 계속 벽을 뚫어버리려고 애를 썼지만 그때마다 미르의 몸도 점점 지쳐갔다. 이제는 삼총사를 태우고 하늘을 나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다시! 다시 한 번!”

미르는 다시 한 번 벽을 향해 날아오르려다가 아래로 곤두박질 쳐졌다.

“그만해. 미르야 이러다가 네가 쓰러지고 말 거야.”

한결이는 자기들 때문에 미르가 다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쳇, 내 간식거리밖에 안 되는 것들에게 질 순 없어. 자 다시 시작하자.”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 주저앉은 미르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싫어, 집에 못 돌아가고 여기에 갇히는 것도 싫지만 네가 다치는 건, 네가 죽는 건 더 싫단 말이야.”

“바보…….  우리 꼭 돌아갈 테니까 날 믿으라고 이래봬도 가장 무시무시한 용이란 말이야. 넌 날 바보로 만들 셈이야?”

미르는 푸르륵 입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들었다.

“미르야…….”

한결이는 미르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보자, 난 널 믿어 미르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용이니까.”

“당연하지, 우린 절대 포기할 수 없어.”

“그래, 우린 절대 포기 못해.”

한결이는 눈물을 쓱 닦았다.

“왜이래 우리들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찬이와 석우도 눈물을 팔꿈치로 쓱 닦고 씩 웃어보였다.

“자 그럼 시작할까?”

미르는 한결이를 태우고 다시 그리들로 이루어진 벽을 향해 돌진했다. 찬이는 거대한 익룡으로 변해 그리들의 벽을 부리로 쪼아대었다.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포기 할 순 없었다. 언제나 세상을 포기한 것 같이 살아온 삼총사들도 이제는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자,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몸은 지쳐서 이제 팔 하나 들 힘도 없었지만 삼총사와 미르의 마음은 전혀 지치지 않았다.

“좋아,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시작이다.”

“그래, 하나, 둘, 잠깐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한결이는 귀에 손을 대고는 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 주변을 살폈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여긴 사방이 하얀 벽들뿐이잖아.”

찬이도 사방을 둘러보며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들었다니까. 어? 봐 또 들리잖아. 저기 저 왼쪽 하늘 위야.”

“좋아 그럼 우리 모두 가보자.”

미르와 찬이가 석우와 한결이를 태우고 왼쪽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결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았다.

“이리로 와”

“또 들린다. 좀 더 왼쪽 왼쪽이야”

그 소리는 아주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였다.

“이리로 와”

“맞아 나도 들려 좀 더 위쪽이야 ”

석우도 흥분해서 소리쳤다. 삼총사와 미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날아올랐다.

“여기가 분명한데.”

한결이는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모두 하얀 벽뿐이었다. 그때였다. 하얀 벽에서 눈알 하나가 깜박거렸다

“이리로 와.”

삼총사와 미르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차렸다. 바로 한결이들을 이곳으로 안내한 바고 그 그리였던 것이다.

“넌 그때 그 녀석이 구나 네가 우릴 부른 거니?”

“그래, 내가 불렀어. 이 벽 깨뜨릴 수 있어.”

“정말? 어떻게?”

“내 몸 많이 약해져 있어. 그러니까 날 뚫고 가면 돼.”

“뭐라고?”

삼총사들은 모두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럼 넌 죽게 되잖아.”

“그래 죽어. 죽는 건 싫지만 넌 약속 지켰어. 나도 약속 지켜”

“그럴 순 없어. 널 죽이고 우리가 살순 없어.”

“시간이 없어 좀 있으면 난 그냥 죽어. 내가 죽으면 벽이 메워져서 나갈 틈 없어.”

“그렇지만 난…….”

“우리들에겐 약속 중요해. 약속 꼭 지킬 거야. 너도 꼭 나가서 내가 약속 지키게 도와줘라”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그리의 눈동자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빨리 탈출해라 빨리.”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한결이는 점점 흐릿하게 사라지는 그리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는 한 번 뿐이야. 저 녀석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온 힘을 다해서 돌파하는 거야 알겠지?”

미르의 목소리도 예전과 달리 차분하고 진지하게 들렸다

“좋아, 최선을 다하는 거야!”

삼총사를 등에 태운 미르는 온 힘을 다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들은 약속 곡 지켜. 대왕님도 약속 지켰고 나도 약속 지켰어. 잊지 마라 잊지 마”

눈 하나밖에 없는 그리지만 한결이에게는 문득 그 눈이 한 순간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 간다!”

미르와 삼총사들이 그리에게 전속력으로 부딪혔고 그리는 마지막으로 눈을 깜박였다. 그와 동시에 절대 뚫지 못할 것 같았던 벽이 쩍 갈라지며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눈부신 빛이 삼총사와 미르를 감싸 안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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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회> 

 

“으으…….”

 정신을 차린 석우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잠깐 동안 정신을 잃은 것뿐인데 이상하게 몸이 무거운 쇳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굴의 석순처럼 길고 삐죽하게 생긴 새하얀 돌기둥들이 줄줄이 둘러싸인 것들이 보였다. 하늘은 보라색과 붉은 색이 섞여 있는데 이상하게 파란색 태양과 창백한 달, 그리고 별들이 함께 떠 있었다.

 “으, 여기가 어디야. 내가 죽은 건가? 나 좀 누가 도와줘. 한결아, 찬이야!”
“쉿 좀 조용히 좀 해라. 지금 그리들의 수수께끼 왕이 보이기 시작했단 말이야.”

찬이가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한결이와 미르 그리고 찬이는 벌써 일어나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선형 돌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쳇, 그럼 미리 좀 알려주면 안 돼? 창피하게…….”

석우는 툴툴대며 일어나서 다른 친구가 바라보는 쪽에 눈길을 돌렸다. 나선형 커다란 돌기둥이 있는 곳에서부터 석우가 있는 곳까지 끝도 없이 수많은 그리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새하얀 눈이 내린 것 같았다.

“우와! 끝내준다.”

석우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때였다. 멀리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와 함께 커다란 수수께끼 왕이 서서히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수께끼 왕은 미르보다 더 큰 몸집에 열 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와, 저게 수수께끼 왕인가 보네. 그럼 우린 언제 왕을 만나러 갈 거야?”

석우의 질문이 나오기 무섭게 찬이는 석우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아야! 왜 그래? 왜 그러냐고?”

이번에는 한결이가 석우의 입을 막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들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어?”

미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얼굴로 냉기를 확 뿜어서 석우를 얼려버리고 말았다.

“이 녀석은 여기서 질문에 대답을 하면 다시는 집으로  못 돌아간다는 걸 모르는 거 아냐?”
“쨍!”
“에취!”

석우는 몸이 풀렸지만 깜박 잊고 아무질문이나 막 해되던 자신이 창피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 모두 준비 됐으면 가자.”

미르가 삼총사를 태우고 날아왔다. 수많은 그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미르가 나타나자 그리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수깨끼 대왕의 노래 소리가 들리자 모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언제 쯤 계수나무 그늘로
돌아갈거나
백 개의 강에는 슬픔만 흐르고
등잔 밑 숨은 달은
애를 태우네.
이무기 하늘을 날아
불타버린 하늘,
달을 삼킨 아이만
불 속에서 슬피 우네.

“와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야.”

한결이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니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사는 좀 이상하지 않아. 이무기는 뭐고 달을 삼킨 아인 뭐야?”

미르는 괜히 심술을 부렸다. 미르는 지금 노래보다 달 두꺼비 열쇠를 찾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멈 춘 그리의 수수깨끼 왕은 천천히 손을 들어 미르와 삼총사 일행을 가리켰다. 그러자 수많은 그리들이 일제히 삼총사들을 바라보았다.

“빨리 물어보자. 달 두꺼비 열쇠에 대해 말이야.”

방금까지 한 마디도 안했던 석우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래, 그럼 한결이 네가 물어봐. 그래도 그리들하고는 네가 제일 친하잖아.”

“네, 네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는 질문을 잘 할 수 있도록 그리들의 대왕 앞으로 더욱 가까이 날아갔다.

“저기, 대왕님, 우린 으 그러니까…….”

“왜 이리 뜸을 드려 빨리 물어봐.”

성격이 급한 찬이가 한마디 했다.

“그러게 왜 나보고 물어 보라는 거야.”

“그리 대왕이고 뭐고 확 집어 삼켜 버릴까 보다.”

미르의 말에 한결이는 화들짝 놀랐다.

“그건 절대 안 돼 우린 부탁하러 온 거잖아.”

“알았어. 그러니까 맘 변하기 전에 빨리 물어봐.”

한결이는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이 나고 떨렸지만 용기를 냈다.

“그리들의 대왕님 우, 우린 달 두꺼비 열쇠가 필요해요 열쇠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한결이는 눈을 감고 큰소리를 말했다.

그리들의 수수깨끼 대왕은 뻗을 팔로 한결이를 가리켰다. 나지막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은 누구죠?”

“네 저는…….”

“안 돼!”

석우와 찬이의 고함 소리에 한결이는 얼른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질문에 무심코 답변을 할 뻔 했다. 대왕의 목소리는 나지막하면서도 부드러워서 멍하니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대답을 할 것 같았다. 한결이는 다시  한 번 눈을 꼭 감고 수수깨끼 대왕에게 질문을 했다.

“그, 그러니까 달 두꺼비 열쇠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수수깨끼 대왕은 대답 없이 손가락으로 찬이를 가리키며 또다시 질문을 했다.

“당신이 공룡박사라는 건 여기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공룡은 모두 몇 가지나 되지요?”

 이번엔 찬이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입을 단단히 틀어막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대답하고 싶은 공룡 이름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대왕님! 달 두꺼비 열쇠를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지 알려줘요.”

한결이가 세 번째로 질문했지만 수수깨끼 대왕은 대답 대신 석우를 손으로 가리켰다.

“배고프겠군요. 초코 맛 젤리 줄까요?”

대왕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석우는 큰소리로 “네!”하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찬이와 석우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제발요. 두꺼비 열쇠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네?”

수수깨끼 대왕은 여전히 아무 답변 없이 손가락으로 미르를 가리켰다.

“나는 미래와 현재 과거를 모두 볼 수 있는 자…….  나는 지금 우돌 영감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요.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줄까요?”

미르는 수수깨끼 대왕을 노려보다 한마디 했다.

“네 놈의 손가락부터 잘근잘근 씹어 먹어 줄까?”

“미르야, 그만둬.”

한결이는 당황해서 미르를 나무랐다. 그리고는 그리의 대왕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였다.

“죄송합니다. 대신 사과 할게요. 하지만, 우린 정말 달 두꺼비 열쇠가 필요해요.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 말을 마치고 한결이는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수수깨끼 대왕은 손을 내리고는 커다란 열 개의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훌륭해요. 당신들은 모든 시험을 통과했어요. 수수깨끼를 받을 자격이 있어요.”

말을 마치고 나자 수수깨끼 대왕의 열 개의 눈 중 가운데에 있는 오직  한 개의 눈만 파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야호! 드디어 수수깨끼를 들을 수 있게 됐어.”

삼총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럼 달 두꺼비 열쇠를 찾을 수 있는 수수깨끼를 알려 주겠어요. 그런데 이 수수깨끼는 오직 한사람에게만 말해 줄 수 있답니다. 누가 내 수수깨끼를 들을 거죠?”

“저요!”

찬이와 석우 그리고 한결이가 모두 기쁜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미르는 전혀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바보들아, 이건 함정이야!”

미르의 고함소리에 삼총사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에 언덕에선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선 안 돼. 그럼 못 돌아와 명심해 절대 대답해선 안 돼. 명심해!”

삼총사 모두 그리의 당부를 기억해 냈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동시에 시간의 언덕에 있던 모든 돌기둥들이 스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하얀 돌기둥은 수억 마리의 그리들이었다. 셀 수없이 많은 그리들이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하늘과 땅을 그리들로 메워 나가기 시작했다. 빽빽하게 모여진 그리들 때문에 사방이 온통 하얀 벽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

“어떡해, 이제 우리는 집에 못 돌아가는 거야?”

석우가 울음을 터뜨렸다 한결이와 찬이도 무서워서 벌벌 덜기 시작했다.

“젠장 꽉 잡아!”

미르는 있는 힘껏 그리들이 만든 흰 벽을 부딪쳤다. 하지만, 단단하게 변한 그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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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회> 

 

  두 개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부엌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삼총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연기를 피해 다니는 것도 힘에 부쳤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다시 한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은 미르의 소리였다.

“안 돼! 미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봐.”

한결이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발만동동 굴렀다.

“젠장 도와주고 싶지만 앞에 아무것도 안 보여! 너무 깜깜하단 말이야.”

찬이는 이미 커다란 티라노사우르스로 변했지만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고개만 돌리고 있었다.

“그럼 어떡해 해!”

그때였다 한결이는 찬이와 석우를 번갈아보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맞다! 석우야 네가 이 연기를 다 마셔봐.”
“연기를? 이거 별로 맛없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한 번 해봐.”

한결이가 재촉을 하자, 석우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럼 시, 시작한다.”

석우가 검은 연기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엌 전체에 가득한 연기들이 차츰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내 석우는 마시기를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헥, 헥, 이제 더 이상 못해 너무 배부르단 말이야. 그리고 이거, 너무 맛없어.”

미르의 소리는 이제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결이는 다급해서 석우의 어깨를 잡았다.

“제발, 부탁이야. 한번만, 한번만 더 해봐.”

석우는 한결이의 부탁에 다시 힘을 주었다. 한결이도 마치 석우에게 힘을 주려는 것처럼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한결이의 손에서 또다시 푸른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와 배고프다!”

석우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입을 더욱 크게 벌렸다. 그와 함께 검푸른 연기들이 모두 석우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검푸른 연기가 사라지자 붉은 눈을 가진 커다랗고 검은 용의 머리가 보였다. 검은 용은 두 발로 미르를 누르고 있었다.

“이런! 나쁜 놈 !”

티라노사우르스로 변한 찬이가 재빨리 달려들었다. 석우와 한결이도 뒤를 따랐다. 찬이는 날카로운 이빨로 검은 용의 발을 꽉 물어 버렸다. 그러자 검은 용은 무시무시한 비명소리를 내며 미르를 놓아 버렸다. 한결이는 재빨리 미르에게 달려갔다.

 “미르야, 괜찮아?”

 “응 잠시 기절했던 것뿐이야.”

미르는 으르렁거리며 다시 머리를 들어서 검은 용에게 달려들었다. 석우와 미르가 힘을 합치자 검은 용은 고통스런 소리를 내며 자기가 나온 검은 구멍 속으로 차츰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 때야, 우리가 본때를 보여주자”

 찬이와 미르가 입을 벌리고 검은 용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번쩍 하고 빛이 비추더니 순식간에 검은 용도, 그리고 검은 구멍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뭐야, 도망쳐 버린 거야?”

찬이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찬이의 몸은 이제 다시 본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미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저 녀석 어떻게 여의주를 쓸 수 있는 거지?”

한결이도 번쩍 하고 빛나는 빛이 미르가 여의주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검은 용도 용이니까 여의주를 쓸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세상에 검은 용은 없어. 그리고 그 놈은 용들의 냄새가 나지 않았단 말이야. 마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그런데 어떻게 저 녀석이 여의주를 쓸 수 있는 거지?”

 한결이는 지난 번 우돌 영감이 알려주었던 검은 용들에 대해 미르에게도 알려주었다.

“그렇구나! 난 한 번도 영감이 말한 검은 용은 본적이 없어. 그럼, 저런 녀석들이 지금 "온 대륙"을 지배하고 있다는 거야? 가만, 그럼 영감은? 영감은 어떻게 된 거야?”

 좀 전에 부엌 한 가운데를 비추던 달빛들은 이제는 다시 창가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우돌 영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영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그 편지, 그리들이 보낸 편지 때문에 "온 대륙"으로 갔는데……. 이 그리 녀석들 내가 다 잡아먹어 버릴 거야!”

 미르가 흥분해서 한결이 옆에서 아직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리를 턱 물었다.

“살려줘. 우린 잘못 없어! 살려줘.”
“그만해 미르야, 그런다고 우돌 영감님이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
“캑캑. 우리 편지 보내는 일 못한다. 검은 용이 지키고 있어서 편지 못 보내. 캑캑 우리 못 보낸 지 1년 됐어.”

 그리가 발버둥 치면서 외쳤다.

“뭐야, 그럼, 그 편지, 그리들이 전해줬다는 편지는 가짜였던 거야?”

미르는 그제야 그리를 내려놓았다. 그리는 데굴데굴 굴러서 한결이 뒤에 착 달아 붙었다.

“제길, 영감을 잡으려고 함정을 판 거야.”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야?”

석우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나단, 그 나쁜 용 사냥꾼이 한 짓이 틀림없어.”
“그럼, 어쩌지? 이제 우돌 영감님은 못 돌아오는 거야?” 
돌아오긴 왜 못 돌아와! 내가 구해 올 거야 지금 당장!”

미르가 화가 나서 고함을 꽥 질렀다.

“하지만, 우린 달 두꺼비 뼈로 만든 열쇠도 없잖아. 무슨 수로 ‘온 대륙’까지 갈수 있단 말이야?”
“어떻게든 ! 어떻게든 갈 거야 내가 구해낼 거라고 그 바보 영감탱이 내가 구하고 말거야!
“미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르도 어떻게 할지 방법이 없었다. 그냥 화를 내며 크게 울부짖을 뿐이었다. 한결이는 미르의 슬픈 눈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한결이 등 뒤에서 숨어 있던 그리가 얼굴을 삐쭉 내밀며 한 마디 했다.

“달 두꺼비 열쇠……. 우리 대왕님, 알고 계셔.”
“뭐라고?”

삼총사들과 미르는 모두 ‘그리’를 바라보았다. ‘그리’는 그 시선이 무서운 듯 한결이 등에서 숨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왕님이 오셔. 보름달 밤, 시간의 언덕에, 우리 대왕님은 모르는 게 없어.”
“맞다! 우돌 영감님이 달 두꺼비 열쇠를 찾게 된 것도 그리들의 대왕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럼 뭘 망설여 빨리 그 대왕인지를 만나러 가보자.”

찬이의 말에 석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도 눈을 반짝였다.

“얘! 그럼 시간의 언덕은 어디 있는 거야. 우린 어떻게 하면 그곳에 갈 수 있는 거지?”

한결이의 말에 그리는 공처럼 통통 한결이 주위를 돌면서 말을 이어갔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나 있어. 우린 누구나 그곳으로 갈 수 있어.”

그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엌 여기저기에서 하얀 그리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열 마리 백 마리 그리고 수천수만 마리가 나타나자 그리들은 서로 손을 잡고 수 만개의 원을 만들어 빙글빙글 돌았다.

“어휴 어지러워.”

삼총사들과 미르는 빙글빙글 도는 ‘그리’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너희 날 잡아먹지 않는다는 약속 지켰다. 그리들도 너희 도와준다.”

그리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더니 미르와 삼총사들의 몸이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에 있던 커다란 오븐이나 부엌의 주방 도구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째깍째깍 거리는 시계소리와 커다란 숫자 그리고 시계바늘만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시간에 언덕에선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선 안 돼. 그럼 못 돌아와 명심해 절대 대답해선 안 돼. 명심해!”

그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하는 말이 삼총사와 미르의 귓가에 맴돌았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어디에도 없는 곳 우리들의 고향! 시간의 언덕으로…….”

그리의 목소리가 마치 뱃고동처럼 멀리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수억 마리의 그리들과 삼총사들 그리고 미르까지 서로의 몸이 하나로 겹치더니 다시 엉키고 엉켜져 소용돌이처럼 변해 버렸다.

“우와!”

삼총사와 미르는 모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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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회> 

 그날 밤, 한결이와 미르 그리고 석우와 찬이는 "용 분식집"의 커다란 부엌에 모여 있었다. 물론 미르와 한결이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석우와 찬이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한바탕 소란이 피웠지만 지금은 모두 굳은 표정으로 보름달이 뜨기만을 기다리는 참이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온 대륙으로 가는 문은 어디에 있다는 거야?”

석우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나도 처음 보는 건데,”

석우는 배가 고픈지 주머니 속을 뒤져서 초코 맛 젤리를 찾았지만 불행히도 손끝에는 젤리 껍질만 잡혔다.

“조금 기다려봐 지금 창문에 달빛이 걸려 있는 게 보이지?  달빛 들이 부엌 한 가운데를 비추면 그때 문이 나타날 거야.”

한결이는 지난번에 우돌 영감이 달 두꺼비 뼈로 만든 열쇠를 높이 쳐들었을 때가 생각나서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때 문이 열리고 짠하고 분식집 할아버지가 나타나는 거야?”
“너희에게 일일이 설명하다간 입만 아프겠다. 직접 보면 될 거 아니냐.”

미르가 야단을 치자 삼총사들은 입을 다물고 달빛이 부엌 중앙으로 모여 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옮겨서 중앙으로 향하는 달빛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약간 지루하기도 했다.

“후 암!”

 석우가 크게 하품을 하자 찬이도 한결이도 그리고 미르까지 하품을 했다.

“후 암!”

 석우가 또 하품을 하자 찬이도 다시 하품을 했다.

“후 암, 너 때문에 계속 따라 하잖아,”
“졸리니까 그렇지. 배도 고프고 …….”
“넌 벌써 배고프냐?”
“가만, 이제 달빛이 거의 가운데로 모이기 시작했어.”

한결이에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석우와 찬이가 눈을 비비고 부엌 한 가운데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사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
“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도망쳐!”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찬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달빛이 비추는 곳에서 수십만 마리의 ‘그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삼총사들은 너무 놀라 허둥대었고 미르도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행히 그리들은 삼총사 일행을 공격하지 않고 모두 벽속으로 사라졌다.

“콜록 콜록!”

이윽고 다시 기침소리가 들리더니 부엌 한 가운데에서 '그리' 한 마리가 퉁 튕겨져 나왔다.

“우이 험해 피, 피이 해라.”

 다른 그리들과 달리 이 녀석은 온 몸에 기운이 빠졌는지 마치 물처럼 흐물흐물 거렸다.

“저 녀석 뭐라고 하는 거야?”
“가만 저 녀석, 지난번에 내가 잡았던 ‘그리’잖아.” 
 

한결이는 재빨리 그리에게 다가갔다.

“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괜찮니?”
“용, 검은 용.”
“검은……. 용?”

한결이의 물음에 그리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간신히 내뱉었다.

“피해.”

순간 커다란 용의 울부짖음 소리가 부엌 전체에 울려 퍼져나갔다. 삼총사들은 그 소리에 놀라 모두 귀를 막았다. 그와 동시에 검푸른 연기가 달빛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결이는 깜짝 놀라 그리를 냉큼 집어 들고 뒷걸음질을 쳤다.

“무언가 잘못됐어. 이건, 아니야.”

 미르도 긴장했는지 매서운 눈을 하고 부엌 주위를 천천히 돌며 검푸른 연기를 노려보았다.

 “온다, 검은 용, 온다.”

그리는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한결이도 이마에서 식은땀이 났다.

검은 연기는 부엌 전 체에 가득 차올랐다. 그런데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마치 끈적끈적한 액체 같았다. 한결이와 삼총사들의 몸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손으로 떨쳐 내려고 해도 쉽지 떨어지지 않고 휘감겼다. 삼총사들은 마치 검은 수렁에 빠진 것 같았다. 아이들은 팔을 휘두르며 검푸른 연기 속에서 허우적댔고 미르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 때, 어둠 속에서 번쩍거리는 커다란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우돌 영감님은 어디 있는 거야?”

석우는 뒷걸음을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저 녀석, 용이 아니야 용은 저런 냄새가 나지 않는단 말이야.”
“크르릉!”

커다란 붉은 눈이 울부짖자, 미르도 고개를 쳐들고 공격할 준비를 했다.

“미르야 그만둬.”

 한결이는 미르가 걱정되어서 소리 쳤지만 미르는 붉은 눈동자를 노려보더니 이내 검은 연기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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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  

한결이는 별수 없다는 듯, 한 숨을 크게 쉬었다.

‘휴, 어쩔 수 없지.’

한결이는 담임선생님 생일잔치 때 썼던 검은 도화지를 사물함에서 찾아내서 창문들을 대강 가렸다. 깔끔하진 않지만 안에서 뭘 하는지 보이지 않을 만큼은 가려진 듯 했다.

이제 칠판에다 환송식에 어울리는 글을 쓰고 꾸며야 할 일이 남았다. 하지만, 한결이는 이상하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 번도 함께 있는 친구와 헤어지는 것을 경험해 본적이 없는 한결이로서는 가슴 한 쪽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리는 거 같아 그냥 머릿속이 하얘질 뿐이었다. 파란 분필을 들고 한 참을 칠판을 바라보다가 한결이는 '미르'라는 두 글자를 쓰고는 또 긴 한 숨을 쉬었다.

 “미르 녀석, 난 이렇게 하루 종일 이상한 기분인데 휘파람이나 불고 놀러나 가버리고 정말 미워.”

 이런 생각이 들자 한결이는 파란 분필로 엉성하게 미르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무서운 척하는 미르의 눈동자를 우스꽝스럽게 그리자, 한결이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바보 미르!”

 한결이는 씩 미소를 짓더니 미르 옆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뚱뚱한 석우와 밤톨머리 찬이의 얼굴도 그렸다. 삐뚤빼뚤 그린 그림이지만 석우도 찬이도 한결이도 그리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미르의 얼굴도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결이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미르……. 안녕.”

그때였다. 갑자기 한결이의 등 뒤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한결이의 눈에는 어른 키보다 훨씬 큰 불기둥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교실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한결이는 당황해서 뒷걸음질 치다가 그만 칠판에 쿵 부딪혔다. 뒷머리가 깨질듯이 아팠지만 점점 번져가는 불 앞에서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한결이는 교실 앞문으로 뛰어가 있는 힘껏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한결이는 찬이와 석우가 바깥쪽으로 문을 잠근것이 기억났다.

‘어떻게! 찬이야! 석우야! 빨리 와 ,빨리!’

“콜록, 콜록!”

연기는 교실 전체에 퍼져갔다. 한결이는 별수 없이 운동장 쪽 창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지만 새로운 공기가 들어온 탓인지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게다가 뜨거운 열기 때문에 더 이상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무서움 때문에 온 몸이 덜덜 떨려왔다.

“미르야, 석우야, 찬이야, 제발 누가 날 좀 살려 줘.”

하지만, 한결이 주위에 들리는 것은 무서운 불덩이가 점점 커지며 내는 쉬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뿐이었다. 한결이는 덜덜 떨리는 왼쪽 다리를 간신히 들어 올려 창문에 걸쳤다. 어떻게 해서든지 더운 열기를 피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한결이는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간신히 창문 밖 난간을 왼 발에 디뎠다. 이어서 몸을 앞으로 숙여 오른쪽 다리도 간신히 창틀에 걸칠 수 있었다. 창틀을 잡은 두 손은 아직까지 바들바들 떨렸다.

‘제발, 한 발만 더 닿으면 돼’

 한결이는 있는 힘을 다 해 오른쪽 발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불길은 이미 교실 천장까지 번졌다.

“펑펑!”

그때였다. 형광들이 열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소리에 놀라 한결이는 오른 발을 창문 난간이 아닌 허공을 딛고 말았다.

“어!”

 순간 한결이의 몸은 그대로 아래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4층에서 떨어지면 죽는 걸까?’

하지만, 한결이는 그 다음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만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털썩!”

아주 차갑지만 무척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한결이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그것을 와락 껴안았다. 그것은 바로 넓고 넓은 미르의 푸른 등이었다.

“바보, 왜 이제 나타난 거야 바보! 미르.”

한결이는 미르가 너무나 고마웠지만 눈을 감은 채, 그냥 투정만 부렸다.
미르는 불타고 있는 교실에 냉기를 뿜어 불을 끄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들하고 헤어지는 게 좋았던 거야? 그래서 이렇게 늦게 나타난 거야?”

한결이는 와락 울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는 괜히 화를 냈다. 하지만, 미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

“말 좀 해봐. 뭐라고 말 좀 해보란 말이야!”

한결이가 미르의 등을 광꽝 쳤다. 그러자 차지 못한 미르가 한결이를 쏘아 보았다.

“바보는 너야! 나도 너처럼 오늘만 지나면 모든 걸 까먹게 되는 줄 알아?”
“미르야…….” 
 

한결이는 미르의 말에 그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넌 내일이면 내 모습을 볼 수도 없을 거잖아.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까맣게 잊을 거잖아. 그런데 난 뭐야? 난 뭐냐고! 너는 다 잊어버릴 텐데 나만 기억하고 있어야 하잖아? 바보…….이제 나도 잊으려고 하는데 노력하고 있는데 왜 자꾸 네 모습, 네 목소리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거야. 왜?”
“미안해, 미안해 미르야.”

한결이는 눈에 눈물이 흘렀다. 차가운 미르에 눈에도 따듯한 무언가가 흐르기 시작했다.

 불타버린 교실은 미르의 여의주로 감쪽같이 원래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석우와 찬이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 두 친구가 발견한 것은 서로 등을 기대고 자고 있는 미르와 한결이의 모습뿐이었다. 물론 칠판에는 한결이가 서툴게 그린 미르와 삼총사들의 그림도 웃고 있었다.

“쳇 결국, 환송회는 실패잖아.”

찬이는 뭐가 좋은 지 웃음을 터뜨리며 앞장서 가는 미르와 한결이의 뒷모습을 보며 툴툴거렸다.

“뭐, 어때 저 녀석들, 둘이 사이 좋아 보이는데.”
“그런데 어쩌다 교실에 불까지 난 걸까?”
“한결이 말로는 갑자기 마룻바닥에서 불이 시작됐나봐.”
“정말? 진짜 이상한 일이네. 요새 일어난 방화 사건하고 관계있는 거 아니냐?”
“에이 설마, 교실에는 한결이 혼자 밖에 없었잖아. 그럼 혹시 방화범이 한결이란 얘기야?”
“어이구,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그런데 너, 초코파이 네가 다 먹었지?”
“그,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와?”
“어이구! 환송회 안 한다고 그걸 상자 째 먹니?”
“뭐 배고프니까 그렇지. 넌 배고플 때 없냐?”
“왜 또 싸워? 빨리 따라와. 오늘은 준비해야 할 게 많단 말이야.”

한결이가 뒤를 흘끗 보고 핀잔을 주었다.

“저 바보들 놔두고 날아가자. 오랜만에 지붕에서 콰쾅 어때?”
“좋아 이번엔 두 배로 빠르게 날아가는 거야.”

한결이는 냉큼 미르에 등에 올라탔다.

‘내일이면 미르를 까맣게 잊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미르 너하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절대 잊지 않을 거야.’

한결이는 미르의 넓은 등을 꼭 껴안았다.

“자 간다!”

미르와 한결이는 뒤따라오는 석우와 찬이를 남겨두고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저녁 해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햇살을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같이 가. 한결아!”

허둥지둥 뛰어가는 석우와 찬이의 그림자도 아주 길게 그려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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